[소리시선] 역사 속 합리적 보수는 어디로 갔나 / 이규배 논설위원

‘소리시선’(視線)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 편집자 글


보수정권이 4.3에 대해 ‘그것은 옳은 일이었고, 우리는 이를 기억해야 한다.’고 천명해도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보수정권이 4.3에 대해 ‘그것은 옳은 일이었고, 우리는 이를 기억해야 한다.’고 천명해도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4.3을 기억하겠다던 보수의 약속이 다시 흔들리고 있다. “제주4.3의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에 앞장서겠다”던 윤석열 정부가 이런 언약을 뒤집을 수 있는 ‘2022 개정교육과정’을 행정예고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4.3항목이 필수적으로 기술되어 왔다. 한국현대사에서 4.3역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만큼 큰 것으로 평가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행정예고로 인해 앞으로는 출판사에 따라 4.3이 선택적으로 삭제될 수도 있는 가능성이 열려버린 것이다. 4.3에 대한 평가절하로 비치는 까닭이다.

4.3의 전국화가 이런 공교육을 통해 도모되어 왔던 그간의 경위를 감안하면, 그 토대가 통째로 흔들릴 수 있음은 명백해 보인다. 그래서 제주도민은 기가 막히다. 농사 해거리 모양으로 보수정권이 들어서니 또 4.3문제를 회피하고 폄훼하는 과거 회귀병이 도지는가 싶은 탓이다.

그런데 보수정권은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서 망각하고 있는 게 하나 있다. 그건 일찍이 한미 간의 잘못된 역사문제를 끄집어내며 미국의 책임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그 어떤 진보진영의 반미주의 인사도 아닌, 보수 세력의 거두 이승만이었다는 사실이다. 

해방을 앞둔 1945년 5월, 이승만은 트루먼 대통령에게 편지 한통을 보낸다. ‘미국은 일본의 한국 보호권을 인정’한다는 미일간의 ‘태프트-가쓰라 밀약’(1905년) 때문에 조선은 국권을 상실하게 되었다는 심각한 문제제기였다. 이승만은 트루먼에게 이 밀약은 “한국을 일본에 팔아넘긴” 것이라고까지 신랄하게 표현한다. 비슷한 무렵, 이승만은 미 국무부를 향해서도 유사한 내용의 편지를 보내며, 미국 때문에 한국이 ‘비밀외교의 희생물’이 됐던 과거사를 거듭해서 환기시킨다. 

이런 이승만의 과거사 기억은, 미국은 한반도 과거사에 막중한 책무가 있는 만큼 한민족의 요구(대일본 참전)를 수용하라는 외교적 압박을 더해 미국을 향한 책임 추궁(?)으로 이어진다. 과거사를 지렛대로 삼은 이승만의 대미 외교담판은 그 후에도 계속된다. 이것은 이승만이 이 과거사를 얼마나 진지하게 인식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4.3 당시에도 이미 이런 책임문제에 대한 예언이 있었으니, 이것도 다름 아닌 보수적인 우익지 ‘조선일보’를 통해서였다.

1948년 9월, 이승만 정부는 제주사태를 강경진압하기 위해 응원경관 800명을 제주로 증파한다. 당시의 언론은 정부가 제주도 동포를 학살하려 한다는 비판 일색이었다. ‘조선일보’도 이에 가세한다. 

응원경관대 파견소식에 접한 ‘조선일보’(1948.9.9.)는 먼저 ‘4.3사건은 제주도민들이 관(공권력)에 대한 불만불평과 증오심 때문에 발발’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어서, 특단의 정치적 해법마련을 촉구하며 ‘무력에 의한 토벌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경고한다. 당시 우익지로 분류되던 ‘조선일보’였지만, 정부의 무력토벌에 비판적이었던 셈이다. 그런 ‘조선일보’는 다음과 같은 주목할 만한 선견지명을 남긴다.

“중일전쟁 중 왜군이 비전투원인 중국 인민에게 야만적 학살을 무수히 감행한 것은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바로, 그 영향이 금후 중일 관계에 어떤 역사를 전개케 하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도 있거니와, 더구나 국내사건에 있어서랴.”

‘조선일보’는 제주에서의 ‘무고한 양민학살’을 ‘일본군에 의한 중국인 양민학살’에 빗댄다. 그러면서, 세월이 지나면 4.3사건이 얼마나 중대한 과거사 문제가 될 것인지를 예견했던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됐으니 매우 적절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보수는 과거사나 역사문제에 눈을 감고 있던 것만은 아니었다. 그들도 기억할 것은 명징하게 기억하고 있었으며, 예측할 것은 사리에 맞게 예견하기도 했던 것이다. 미국에게도 요구하고, 정부를 향해서도 비판하는, 이른바 ‘합리적 보수’란 이런 얼굴이 아닌가 싶다.

세계사를 돌이켜보면, 엄밀한 의미에서 이런 보수는 폭력과 거리가 멀다. 보수의 철학은 기존의 질서와 관습, 가치를 귀하게 여기는 탓에 이를 폭력적‧강제적으로 변경하려는 급격한 변혁을 혐오해 모두가 폭력을 멀리하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보수주의자들은 극좌적 이념도, 극우적 파시즘도, 다 증오한다. 극단주의는 필연적으로 폭력적 파괴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보수주의자가 ‘자유’를 열렬하게 강조하는 것도 모든 개인의 삶은 폭력적‧강제적으로 결정돼서는 안 된다는 신념에 기초한다. 

이렇게 폭력을 반대하는 보수의 지향은 대중적인 감정에 비추어보더라도 틀린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4.3 당시의 양민학살이 보수가 가장 혐오하는 이런 폭력과 불의에서 비롯되었다면, 4.3에 대한 보수의 대답은 어떻게 돼야하는가? 보수야말로 자신들의 믿음대로 가장 먼저 4.3을 기억하고 보듬어야 되는 주체가 되는 것이 자명하다는 결론에 이르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보수정권은 이런 4.3기억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보인다. 4.3항목의 교과서 삭제 여지를 열어놓은 ‘2022 개정교육과정’도 그 일환으로 의심받는 이유이다. 그러나 이미 세상의 곳곳에 각인되어 있는 4.3기억은 지워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4.3은 교과서에서 지워진다고 손쳐도, 민화(民話)와 소설, 시, 노래, 그림, 연극, 영화 등 모든 예술장르를 통해 세상의 가장 깊은 속으로 스며들어있다. 그러니 설령 이를 지우려고 해도 애초부터 가능한 일이 아니니, 보수정권으로서는 그런 헛된 공력을 소모해서 얻을 이익도 없다.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어느 나라나 ‘자랑스러운 역사’를 내세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자랑스러움이 ‘신의 자손’이라는 일부 민족을 제외한다면, 외세와 독재에 대한 저항에 있음을 안다. 미국 독립전쟁이나 프랑스 대혁명, 모든 나라의 민주화투쟁은 그 상징적인 사례일 따름이다. 그리고 우리는 폭력과 불의에 저항한 이런 자랑스런 역사를 그들의 민족혼으로 존중한다.

4.3도 그런 폭력과 불의에 대한 저항이었음이 곳곳에 기록되어 있다. 이웃의 불행을 좌시할 수 없었던 제주공동체 일원으로서의 동참이었고 저항이었다. 대한민국의 헌법 전문(前文)도 ‘불의에 대한 항거와 타파’, ‘정의‧인도와 동포애’를 최고의 덕목으로 가르치고 있으니, 4.3저항은 헌법의 정신과도 그대로 부합한다.

때문에 보수정권이 그런 4.3에 대해 ‘그것은 옳은 일이었고, 우리는 이를 기억해야 한다.’고 천명해도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니다. 외세에 맞선 3‧1독립운동을 알리고, 독재에 맞선 4.19와 5.18과 6월 민주항쟁을 알리듯이, 4.3도 폭력과 불의에 맞선 정의로운 저항으로 그렇게 널리 알려도 옳고 타당한 일이지 않겠는가?

지금까지 교과서 속에 새겨진 필수적인 4.3항목, 그대로 두어 마땅한 이유가 아닐까 한다. / 이규배 논설위원·제주4.3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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