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특집] (2) 노무현 대통령 4.3사과 20주년…4.3 왜곡.폄훼 처벌 법 개정 시급

서슬 퍼런 공권력에도 진실을 감출 수는 없었다. 제주4·3의 참상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수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2003년 故노무현 대통령이 국가 원수로는 처음으로 공권력에 의한 무력탄압에 공개 사과했다. 이후 4·3은 화해와 상생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 발걸음에 역사 왜곡과 노골적인 폄훼가 다시 등장했다. 공동체를 흔들려는 시도에도 4·3을 기억하고 아픔을 치유하려는 지역사회의 노력은 굳건하다. 제75주년 4·3추념식을 맞아 4·3에 대한 책무와 과제를 되짚어보는 시간을 갖는다. [편집자 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제주4.3 유족들과 도민들에게 사과한 지 20여 년이 흘렀다. 그러나 75주년 4.3추념식을 앞두고 한 국회의원의 망언을 시작으로 4.3흔들기가 거세지고 있다. 폄훼 세력을 막기 위한 대안이 과제로 떠오른 지금, 20년 전 노 전 대통령의 사과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제주의소리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제주4.3 유족들과 도민들에게 사과한 지 20여 년이 흘렀다. 그러나 75주년 4.3추념식을 앞두고 한 국회의원의 망언을 시작으로 4.3흔들기가 거세지고 있다. 폄훼 세력을 막기 위한 대안이 과제로 떠오른 지금, 20년 전 노 전 대통령의 사과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제주의소리

“‘죄 아닌 죄’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살았지만, 4·3특별법 제정과 진상조사 결과를 놓고 노무현 대통령이 사과를 한 이후엔 누구에게도 지지 않고 4·3에 관해 논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별법과 대통령의 사과로 위로를 받게 되었고 맺힌 한도 조금이나마 풀렸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도에 오셔서 사과하는 걸 직접 봤는데 대통령이 사과하니 ‘우리 유족들도 이제 살길이 트였구나’라는 희망이 보였습니다. 정신적으로 큰 희망이 된 겁니다.”

- 김종민·한상희·강남규 ‘4.3피해자 회복탄력성 연구’ 중에서 -

발 걸음걸음 내딛는 곳이 모두 붉었다. 어딜 가도 피할 수 없었던 제주섬은 또 하나의 감옥이자 학살터였다. 이 땅에 새겨진 붉은 흔적은 검게 변해갔고 새까만 한(恨)이 됐다. 그 한은 절대 옅어지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러나 절대 이뤄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가해 주체’의 공식 사과가 55년 만에 이뤄졌고, 가슴속 응어리진 한은 울음소리로 표출됐다. 빠져나온 공허한 빈자리를 메우기라도 하듯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은 하염없이 쏟아졌다. 그렇게 새까맣던 한은 눈물이 뒤섞인 뒤에야 비로소 동백꽃을 닮은 붉은색으로 옅어져 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10월 31일 제2회 제주평화포럼 기조연설에서 ‘제주4.3사건 관련 말씀’을 통해 공식사과했다. 4.3이 국가폭력에 의한 희생임을 인정하고 국가원수로서 도민 앞에 고개를 숙인 최초의 일이다.

불의에 굴하지 않고 원칙과 소신을 지키며 선뜻 ‘바보’가 된 그의 성품 때문인지는 몰라도 노 전 대통령은 제주4.3에 진심이었다. 정부의 공식보고서인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를 확정했고, 대한민국을 대표해 도민과 유족들 앞에서 사과하며 응어리진 한을 달랬다. 진심을 느낀 유족들은 지금까지도 대통령의 사과를 가장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제58주기 4.3위령제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이 4.3영령을 위해 분향하는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58주기 4.3위령제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이 4.3영령을 위해 분향하는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제주도민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무고하게 희생된 영령들을 추모하며 삼가 명복을 빕니다. 이제 제주도는 인권의 상징이자 평화의 섬으로 우뚝 설 것입니다.” (2003년 10월 31일 故노무현 전 대통령 ‘제주4.3사건 관련 말씀’ 중)

이 같은 노 전 대통령의 제주4.3사과 20주년을 맞아 그의 생가가 있는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깨어있는시민 문화체험관’에서는 오는 4월 16일까지 ‘틀낭에 진실꽃 피어수다’를 주제로 제주4.3-여순10.19 관련 전시회가 열린다. 

주제인 ‘틀낭’은 산딸나무를 뜻하는 제주어다. 제주4‧3 유가족들은 노 대통령이 퇴임하자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제주 틀낭을 기증했고, 이 틀낭은 봉하마을 노 대통령의 집에 유일하게 표지석이 있는 나무가 됐다.

전시는 주철희, 이수진, 임재근, 이하진, 박진우 작가 등이 참여했으며 미군정청(USAMGIK), 미군사고문단(KMAG), 극동군사령부(FEC), 연합군사령부(SCAP)가 작성한 기록 중 비밀 해제된 4‧3기록과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4‧3 관련 국정 기록, 당시 언론 기록 등이 전시된다.

깨어있는시민 문화체험관에는 ‘제주4.3’ 관련 기록도 전시 중이다. ‘대통령 최초로 제주4.3 유족에 사과하다’ 코너에는 당시 사진과 사과 연설문을 비롯해 간단한 4.3사건 개요와 노 전 대통령의 활동 기록 등이 전시됐다. 

노 전 대통령의 공식 사과는 국가 공권력의 잘못에 대한 단순한 사과의 의미를 넘어섰다.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아 청산하고 대한민국의 인권 수준을 높여가겠다는 선언적 의미도 담겼다는 평가가 따른다. 4.3을 통해 제주도가 인권의 상징이자 평화의 섬으로 우뚝 설 것이라 말한 것도 그다.

최초 사과뿐만 아니라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도 처음 위령제에 참석해 4.3영령들을 어루만졌다. 공식 사과와 위령제 참석은 질곡의 세월 죄인으로 살아야만 했던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가능케 했고 화해와 상생의 씨앗이 됐다. 

(사)제주4.3범국민위원회는 노무현 대통령의 제주4.3 사과 20주년과 제주4.3 75주년을 맞아 노무현 대통령의 고향인 봉하마을 '깨어있는시민 문화체험관'에서 ‘틀낭에 진실꽃 피어수다’ 기획전시회를 열고 있다. 사진제공=박진우. ⓒ제주의소리
(사)제주4.3범국민위원회는 노무현 대통령의 제주4.3 사과 20주년과 제주4.3 75주년을 맞아 노무현 대통령의 고향인 봉하마을 '깨어있는시민 문화체험관'에서 ‘틀낭에 진실꽃 피어수다’ 기획전시회를 열고 있다. 사진제공=박진우. ⓒ제주의소리
봉하마을 깨어있는시민 문화체험관에는 노 전 대통령이 사과한 제주4.3 관련 전시 코너가 마련돼있다. ⓒ제주의소리
봉하마을 깨어있는시민 문화체험관에는 노 전 대통령이 사과한 제주4.3 관련 전시 코너가 마련돼있다. ⓒ제주의소리

그러나 최근 북한 대학생 시절부터 4.3을 유발한 장본인이 김일성이라고 배워왔다며 “제주4.3사건은 명백히 북한 김일성 지시에 의해 촉발됐다”고 망언을 내뱉는 국회의원이 등장하는 등 4.3을 왜곡, 폄훼하는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국민의힘 태영호 국회의원(강남구 갑)은 당지도부 선출을 위한 지역 순회 합동연설회를 위해 제주를 찾아 4.3영령 앞에서 이같이 발언했다. 직후 4.3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와 정치권 모두 성명을 내고 “도민 가슴에 대못을 박은 낡아빠진 색깔론”이라고 맹렬히 비판했다. 

심지어 국민의힘 제주도당 역시 중앙당에 합당한 조치를 요구했고, 중앙당은 ‘주의’ 처분하기도 했다. 하지만, 태 의원은 여전히 주장을 굽히지 않고 사과도 하지 않고 있다. 

태 의원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근거는 차고 넘친다. 남로당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김남식 선생마저 중앙당 지령설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고, 4.3연구로 미국 하버드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존 메릴 박사도 같은 입장을 밝혔다. 

정부 차원의 4.3진상조사보고서 역시 ‘남로당 중앙당 지령설 진위(162~165쪽)’를 통해 북한, 남로당 중앙당 지령설의 오류를 밝혔다. 

결론적으로 ‘4.3사건은 제주도의 특수한 여건과 3.1절 발포사건 이후 비롯된 경찰 및 서청과 제주도민과의 갈등, 그로 인해 빚어진 긴장 상황을 남로당 제주도당이 5.10 단독선거 반대투쟁과 접목시켜 일으킨 사건으로 판단할 수 있다.’로 정리된다.

그러나 태 의원의 발언으로도 모자라 우리공화당, 자유당, 자유민주당, 자유통일당 등 극우세력은 최근 제주 곳곳에 ‘제주4.3사건은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하여 김일성과 남로당이 일으킨 공산폭동이다’라는 제목의 현수막을 내걸었고 도민사회는 분노로 들끓었다. 

김해 봉하마을 깨어있는시민 문화체험관에 전시된 제주4.3 관련 작품. 사진제공=박진우. ⓒ제주의소리
김해 봉하마을 깨어있는시민 문화체험관에 전시된 제주4.3 관련 작품. 사진제공=박진우. ⓒ제주의소리
봉하마을 깨어있는시민 문화체험관에는 노 전 대통령이 사과한 제주4.3 관련 전시 코너가 마련돼있다. ⓒ제주의소리
봉하마을 깨어있는시민 문화체험관에는 노 전 대통령이 사과한 제주4.3 관련 전시 코너가 마련돼있다. ⓒ제주의소리

이 같은 4.3왜곡, 폄훼가 가능한 것은 4.3특별법상 벌칙조항이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따른다. 현행법 13조에 따르면 공공연하게 희생자나 유족을 비방으로 4.3진상조사 결과나 4.3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해 4.3 관련 단체의 명예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처벌조항은 없는 실정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희생자, 유족 또는 유족회 등 제주4.3 관련 단체의 명예를 훼손할 경우 최대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 하는 4.3특별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대표발의는 더불어민주당 송재호 국회의원(제주시갑)이 했다.

계속되는 4.3흔들기 시도에 아직 다 아물지도 못한 도민과 유가족들의 상처는 더 벌어지고 있다. 진보 진영으로 구분되는 노 전 대통령의 사과를 시작으로 반대인 윤석열 대통령도 당선인 신분으로 4.3추념식을 찾아 “온전한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진보와 보수를 구분할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헤아릴 수 없는 억울한 세월을 보내온 도민들의 상처에 계속해서 소금을 뿌려대는 폄훼 세력을 막기 위한 숙제를 안고 있는 지금, 20년 전 노 전 대통령의 사과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다음은 노무현 대통령 ‘제주4.3사건 관련 말씀’ 전문

존경하는 제주도민과 제주4.3사건 유족 여러분, 그리고 국민 여러분. 55년 전 평화로운 섬 이곳 제주도에서 국제적인 냉전과 민족 분단이 몰고 온 역사의 수레바퀴 밑에서 엄청난 인명 피해와 재산 손실을 입었습니다. 

저는 이번에 제주를 방문하기 전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의거하여 각계 인사로 구성된 위원회가 2년여의 조사를 통해 의결한 진상조사 결과를 보고받았습니다. 위원회는 이 사건으로 무고한 희생이 발생된 데 대한 정부의 사과와 희생자 명예회복, 그리고 추모사업의 적극적인 추진을 건의해 왔습니다. 

저는 이제야말로 해방 직후 정부수립 과정에서 발생했던 이 불행한 사건의 역사적 매듭을 짓고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주도에서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 그리고 1954년 9월 21일까지 있었던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무고하게 희생되었습니다. 

저는 위원회의 건의를 받아들여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제주도민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무고하게 희생된 영령들을 추모하며 삼가 명복을 빕니다. 정부는 4.3평화공원 조성, 신속한 명예회복 등 위원회의 건의사항이 조속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과거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억울한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일은 비단 그 희생자의 유족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건국에 기여한 분들의 충정을 소중히 여기는 동시에 역사의 진실을 밝혀 지난날의 과오를 반성하고 진정한 화해를 이룩하여 보다 밝은 미래를 기약하자는 데 그 뜻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4.3사건의 소중한 교훈을 더욱 승화시킴으로써 평화와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확산시켜야 하겠습니다. 화해와 협력으로 이 땅에서 모든 대립과 분열을 종식시키고 한반도의 평화, 나아가 동북아와 세계 평화의 길을 열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존경하는 제주도민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폐허를 딛고 맨손으로 이처럼 아름다운 평화의 섬 제주를 재건해 냈습니다. 제주도민들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이제 제주도는 인권의 상징이자 평화의 섬으로 우뚝 설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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