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다른 생각' 배제는 미래 밝힐 등불 끄는 것

‘소리시선’(視線)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 편집자 글

윤석열 대통령. 사진제공=대통령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윤석열 대통령. 사진제공=대통령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어느 시대든 해결해야 할 문제는 있다. 그러나 반드시 해결해야 할 지상 과제는 시대에 따라 다르다. 따라서 현재적 관점에서 과거를 평가하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 일제강점기에 우리의 지상 과제는 무엇이었고, 해방 직후 남북이 분단되던 시기에 민족의 과제는 무엇이었던가. 우리는 2차세계대전 이후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이념체제 경쟁으로 세계질서가 재편되고 남과 북에 이념이 서로 다른 정부가 들어서는 과정에서 참혹한 희생과 민족 최대의 비극을 겪었다.

그리고 우리는 민초와 청년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세계에 유례없는 짧은 기간에 산업화와 정치민주화를 이루었다. 산업선진국들은 우리를 놀라워했고, 개발도상국들은 부러워했다. 그러나 압축된 경제성장으로 부의 양극화가 극에 달하고, 계층 세습이 불공정하게 이어지고 있으며, 수도권 비대화와 지방의 몰락을 가져왔고, 대규모 개발과 과소비로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가 심화되고 있으며, 지나친 경쟁시스템으로 공동체정신은 사라져서 극단적 이기주의만 남게 되었다. 세계 최저의 출산율은 그러한 우리의 현실을 잘 보여 준다. 지금 우리나라는 경제 기적을 이뤘지만, 행복을 잃은 나라라는 오명을 듣고 있다. 

이제 우리는 부의 양극화를 해결해야 하고, 몰락하는 지방을 살려야 하며,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을 증진해야 하고, 청년과 여성들이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그리고 세계적 추세에 맞춰 환경과 생태계 보전에 힘써야 하고, 어렵고 더디지만, 전쟁 대신에 평화의 길을 가야 한다. 이것들은 우리가 풀어야 할 지상 과제이다. 현 정부의 뜻과 다르다고 적대시하거나 반국가세력이나 공산세력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세상에는 순선(純善)도 순악(純惡)도 없다. 그 어떤 정치적 이념도 인간이 생각해낸 것이기에 흠결이 있고 한계가 있다. 그리고 한때는 이상적인 이념도 상황과 여건이 바뀌면 효력을 잃는다. 따라서 지나치게 한 이념이나 사상을 강조하다 보면, 자신들의 입장과 다를 경우 나머지 모두를 적으로 돌리게 되고 비이성적이고 반인간적으로 변질된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다른 사람의 자유와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 그 어떤 주장과 의견도 자유롭게 개진하게 한다. 반면에 전제주의나 독재정치에서는 자신들과 다른 주장과 의견을 제시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도록 통제한다.

자신과 의견이 다르더라도 막지 말고 토론을 거쳐야 하는 이유는 내가 틀리고 상대방이 옳을 수도 있고, 내가 옳고 상대방이 틀리더라도 그를 설득하여 공동체의 일원으로 함께 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상과 이념이 서로 다르더라도 용납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것들이 함께 어우러짐으로써 서로를 보완하면서 보다 나은 사회로 진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유럽과 북유럽 국가들은 시장경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주의적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더불어 잘 사는 사회로 발전할 수 있었다.

오늘날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과학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인공지능, 메타버스, 블록체인 등의 정보과학기술과 줄기세포, 유전자조작, 생명복제 등의 생명과학기술은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종교 등 모든 분야를 바꿔놓고 있다. 앞으로 우리는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삶의 방식과 세계관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새로운 길을 찾으려면 보다 자유롭고 다양한 사고와 제도들이 용인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학문과 예술의 자유가 보장됨으로써 창의적인 성과들이 나와야 하고, 새로운 방식과 정책들을 모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국가는 그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윤용택 제주대 철학과 교수. ⓒ제주의소리
윤용택 제주대 철학과 교수. ⓒ제주의소리

언론을 통제하고 예술을 규제하고 인권을 말살하고 복지를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 현재 우리는 모든 분야에서 전 방위적인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런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서 정부와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고 해서 반국가세력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정부와 다른 생각을 가진 개인과 조직과 단체에 지원을 끊는 것은 미래를 밝힐 등불을 끄는 것이다. 전쟁 시기에나 통용되던 흑백논리를 앞세워 철 지난 이념 전쟁을 벌이는 것은 밝은 미래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어두운 과거로 역주행하는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 윤용택 논설위원, 제주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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