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충석의 칼럼과 에세이 사이] (24) 의과대학 정원 반드시 증원해야

의대 증원 문제는 한국이 당면한 현실적인 의료문제와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오히려 의료현실적인 문제들이 의사 부족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에서 의대 증원 문제는 의료현실의 핵심적인 사항이다. / 사진=픽사베이
의대 증원 문제는 한국이 당면한 현실적인 의료문제와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오히려 의료현실적인 문제들이 의사 부족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에서 의대 증원 문제는 의료현실의 핵심적인 사항이다. / 사진=픽사베이

미국의 4대 대통령 매디슨은 미국정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파당(faction)에 대한 이해가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파당은 요새 식으로 표현하면 이익집단(interest group)이라고 할 수 있다. 이익집단에 대한 이해 없이는 미국정치의 역동성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은 민주자본주의 사회의 정곡을 찌른 개념으로써 오늘날 다원주의 연구의 단초가 되었다.

정책이란 권한·예산을 가지고 있는 정부와 다양한 이익집단 간 난해한 협상 과정의 산물이다. 미국의 정책 결정에 있어서 이익집단은 대단한 영향력을 가진다. 우리나라도 이익집단의 역할은 지대하다. 이익집단에는 사적인 집단뿐만 아니라 공적인 집단도 포함한다. 

이익집단이 힘을 가지려면 구성원 수도 많아야 하고 구성원 간 응집력도 강해야 한다. 자기들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잘 설득할 수 있는 논변력도 갖춰야 한다. 조직을 운영하는데 윤활유에 해당하는 재정적 역량이 충분하다면 금상첨화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조건을 고루 갖춘 이익집단은 어떤 세력일까? 대한의사협회다. 의사협회는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최근 의과대학 정원 확대 문제가 ‘핫’하다. 정부에서는 의대 정원을 증원하겠다고 하고 의사협회는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의대 증원을 추진하려 했지만, 의사협회가 코로나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권을 볼모로 단체행동도 불사하겠다고 겁박하는 바람에 의대 증원 문제는 백지화되었다. 의대 증원 의지를 관철하지 못한 문재인 정부도 비판받아야 한다. 정부가 의사 단체의 압력에 굴복해버린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하나. 과연 정부의 역할을 다했다고 볼 수 있는가?

의대 증원의 이유와 명분은 차고 넘친다. 그러나 의대 증원 문제는 한국이 당면한 현실적인 의료문제와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오히려 의료현실적인 문제들이 의사 부족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에서 의대 증원 문제는 의료현실의 핵심적인 사항이다. 의대 증원 문제와 관련된 의료현실을 몇 가지 짚어보자. 

첫째, 의사 부족을 가장 시급하게 느끼는 현장은 상급병원이나 대학병원이다. 특히 서울 소재 대형병원이 더욱 그러하다.  동네병원에서 치료할 수 있는 90%의 경증 환자들까지도 상급병원에서 진료받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1차 의료기관의 진료체계가 심각히 무너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중증 환자의 경우는 더욱 문제다. 중증 환자 중에는 지방소재 대학병원이나 상급병원에서 고칠 수 있음에도 서울 소재 상급병원에서 진료받으려고 한다. 대학병원이나 서울의 메이저 병원을 무조건 신뢰하는 사회문화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한 탓일 것이다. 최근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수술과 관련해서 가족들이나 당료들이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를 마다하고 서울대병원을 택한 것도 이러한 문화적인 심리가 반영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이른바 ‘한국 상위 5대’ 병원에서 상경 치료를 받은 비수도권 환자만 71만여 명이라고 한다. 암 환자의 경우 지난 5년간 103만명이 원정 치료를 받았다니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치고는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의료상경으로 받는 물리적 고통도 이만저만 아니다. 암에 걸려도 수술 날짜를 잡기까지 서너 달은 걸린다. 진료 예약을 하고도 의사를 만나기 위해 한두 시간 대기하는 것은 기본이다. 어렵게 만난 의사의 면담 시간은 약 3분이다. 3분이면 카레도 끓이고 라면도 끓일 수 있는 시간이라지만 내 목숨이 달린 문제를 진단받는 데 드는 시간이 3분이라는 사실은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문제가 대학병원 및 상급형 병원이 여러 개 있는 강원도나 전라도라 해서 예외는 아니다.

둘째,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흉부외과, 응급의학과 등 필수 의료과의 붕괴 우려가 매우 커지고 있다. 의사들이 돈 잘 버는 성형외과, 피부과, 정형외과 등으로 몰림으로써 돈이 되지 않는 진료과는 법정 인원도 못 채우고 있다. 그러면 진료과목 간 의사 수 불균형을 어떻게 교정해야 할 것인가? 이 문제의 해결은 시장적으로 접근하는 방법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 강제로 인력을 배치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의대 정원을 확대해서 의사 수를 늘리는 방법이 최선은 아니어도 차선책은 될 수 있다고 본다. 나의 우울한 경험에 의하면 돈 잘 버는 정형외과의 경우 비급여 수술 항목을 대폭 줄이면 수술 건수도 팍 줄 것이고 수익도 매우 감소할 것이다. 

성형외과나 피부과도 생명이나 건강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미용, 성형 등) 비급여 진료수익은 불로소득으로 처리해서 중과세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돈 잘 버는 진료과목에 지원하는 의사 수가 대폭 줄어들 것이다. 나의 주장은 분명하다. 의사들이 돈 잘 버는 성형외과 등으로 몰리는 문제 등은 의료인력이 늘어나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의사 증원으로 인기과 의사가 늘어나면 수입이 당연히 줄어들게 될 것이고 그만큼 지원자도 줄어들 것이다.

로스쿨을 도입할 때도 얼마나 많은 진통을 겪었는가? 하지만 로스쿨 도입으로 변호사 수를 대폭 늘렸더니 수임료가 내려가면서 많은 국민이 법률서비스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변호사들의 서비스도 좋아졌다. 나는 앞으로 변호사 시험도 자격시험 제도로 바꿔서 변호사가 되기 위한 길이 한층 더 수월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변호사 합격했다고 국가가 고용을 책임지는 것도 아니면서 변호사협회의 주장대로 시험등수로 합격자를 뽑는 것은 공정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변호사는 과거에 한국 최고의 전문 직종이었다. 그러나 변호사의 위상은 지금 많이 달라졌다. 한 직종이 사회적 명예, 권력, 돈 전부를 가진다면 그것은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다. 한 직종이 이를 다 누린다면 얼마나 불공정한가! 의사도 마찬가지다. 의사라는 직업도 특권화되어서는 안 된다. 의료는 공공재의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의사 전부가 다 장기려 박사가 될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의 공공윤리가 요구된다.

의사 부족으로 국민 불편은 이제 고충을 넘어 고통에 이르고 있다. 고령화, 수명연장 그리고 생활 수준 향상으로 의료수요는 폭발적으로 느는데 의사 수는 제자리걸음이니 곳곳에서 심각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동네 소아청소년과 병원에서는 문을 열기도 전부터 대기하는 ‘오픈 런’이 일상이고 응급실을 헤매다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소식도 끊이지 않는다. 하루가 급한 암 환자들의 수술이 수개월 대기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선의의 의료사고 문제 또한 필수 의료과 지원을 주저하게 하는 심리적 기저로 작용한다. 내과, 소아청소년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응급의학과 등이 필수의료과이지만 의료사고에 노출되다 보니 기피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의사의 본분인 생명을 살려내는 일에 최선을 다했지만 그런 과정에 생긴 선의의 의료사고 책임마저 져야 한다면 누가 그런 위험한 과를 선택하겠는가? 그들이 일부러 환자를 죽일 리 만무하지 않은가? 예를 들면 오른쪽 다리를 잘라야 하는데 왼쪽 다리를 잘랐다던가, 산부인과 수술 후 배에서 가위가 나왔다든가 하는 명백한 부주의에 의한 의료사고는 처벌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환자를 살리려다가 불가피하게 일어난 의료사고는 면책되어야 마땅하다. 정부는 의사 집단과의 합의 과정을 통해 면책 지침을 입법적으로 풀어야 할 일이다. 의료도 교육처럼 공공성이 강한 직업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의사들 간의 수입은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인기과 의사들의 수입은 대단하다. 개업의의 경우 경영상 어려움으로 문 닫는 병원도 있지만, 대체로 한국 개업의 수입은 OECD 국가 중에서 최고 수준이다. 대형병원의 의사 수입은 상상 초월이다. 국립대학병원의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대체로 대형사립병원의 1년 연봉은 세전 5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제주의 모 대형병원 의사들의 급여도 인기과의 경우 5억쯤 된다고 한다. 이러한 고액 연봉이 병원 운영에 재정적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제주대병원도 국립이라 아무리 유능한 교수를 모셔와도 연봉이 사립대형병원이나 개업의와 비교하면 상당히 적기 때문에 이직자가 늘어난다. 참 가슴 아픈 일이다.

내가 아는 지인의 예를 들어보자. 그는 한국 최고의 대학을 나와 미국에서 갖은 고생을 하며 박사학위를 받고 국내 최고의 대학에서 자연과학자로 정년퇴임을 했다. 퇴임할 때 그가 받은 연봉은 1억3천만원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제 40대 중반의 의사 아들 연봉이 그의 연봉보다 3배나 많다는 사실에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 씁쓸하더라고 토로했다. 지방 의과대학을 나온 아들의 1년 연봉은 세후 3억7천만원이라고 했다. 그는 아들 연봉이 많은 것은 자랑할만한 일이지만 사회 구조적으로 이게 맞는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가 잘 살아왔는가 가끔 회의가 든다며 나에게 술을 권했다. 양심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정부는 2025학년도부터 의대 정원을 1000명씩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의사 수를 늘려 의료 붕괴를 막겠다는 확고한 방침이다. 이에 맞서 의사협회에서는 파업으로 맞서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그동안 의사들은 2006년 이후 의대 정원을 3058명으로 묶어왔다. 의사 수가 부족한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의대 정원을 늘리면 안 된다고만 한다. 그들의 주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기득권을 내려놓고 싶지 않은 속내가 여실히 드러나 보인다.

카르텔이니 뭐니 해서 썰렁하던 학원가가 의대 열풍으로 다시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고 있다. 학원에 아이들이 몰리는 이유는 그들의 의지가 아니라 학부모들의 열망 때문이다. 그들이 의대 열풍에 가세한 이유는 아픈 사람을 치료한다는 숭고한 의지는 저 멀리 사라지고 최고 수입을 자랑하는 연봉 때문이다. 현재 의사들이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이유는 나중에 의사가 넘쳐나서 수입이 줄 것을 염려해서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 문제는 분명하다. 의과대학을 가진 국립대학 총장들도, 일반 국민도 대체로 의대 정원이 증원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대 증원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과 김윤 교수의 주장이 가장 설득력 있어 보인다. 김 교수는 충분한 의사 수를 확보하려면 의대 정원을 현재보다 최대 4500명까지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필수인력 부족과 고령화로 인한 의사 수요를 고려할 때, 의사 증원이 필수라며 최소 2500명에서 최대 4500명까지 늘릴 필요가 있다고 한다. 

반면 대한의사협회는 인구가 줄어드니 의사를 늘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구 감소보다 고령인구와 소득수준 증가로 의료수요가 늘어나는 효과가 5배나 높다는 것이다. 이런 필요성 때문에 OECD 선진국 대부분이 의대와 병원을 증원했다. 이에 OECD 회원국과 우리나라 의사 수 격차가 더 벌어지지 않으려면 의대 정원을 현재에서 2500명까지, OECD 평균으로 가려면 4500명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또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는 의사 수 증원이 의료비 증가로 이어진다는 우려에 대해 오히려 의사 공급이 늘면 인건비가 감소해 진료비 절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 의사 수입은 근로자 소득에 비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의사 공급이 부족해 의사 몸값이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라며 의사 수를 OECD 수준으로 늘리고 의사 수입도 OECD 평균 수준으로 맞춘다면 의사 소득이 높아 추가로 내는 진료비 10조원을 5조원으로 줄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만일, 의대 정원이 늘어난다면 현재 대학이 이를 커버할 수 있는 교육체제를 갖췄느냐 하는 것이다. 충북대, 제주대, 강원대 등은 의대 입학정원이 50명 이내이다. 이들 대학에선 정원을 늘려도 교육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 대학시설과 교수진, 강의실을 보면 현재 별다른 투자를 하지 않아도 120~150명까지는 교육이 가능하다는 것이 대부분의 국립대 총장들의 진단이다. 제주대의 경우, 의과대학 모집정원이 40명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 40명을 매년 교육하기 위해서 대학은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일설에 의하면 의사 한 명 배출시키는데 대학이 감당해야 하는 재정이 3억 가까이 소요된다고 한다. 규모의 경제만을 생각한다면 의과대학을 설립·운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듯 의료는 공공재이기 때문에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도 의과대학을 유지해야만 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대학에 희생만을 강요할 수 없다. 그래서 정원 규모를 적정한 수준까지 늘려야 한다는 요구가 남아 있는 것이다.

의대 증원의 기준은 어떻게 삼아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해선 준칙주의를 적용해야 한다. 증원을 신청한 의과대학이 교수 수, 강의실, 실습환경 등에 대한 기준을 세우고 이를 충족한 대학 중에서 심사를 통해 의대 정원을 배정하면 된다. 로스쿨 인가 때도 이러한 형식의 준칙이 인가 기준의 중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끝으로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현 의과대학 체제가 노무현 정부에서 실행했던 의학전문대학원 체제로 회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과대학에 입학하려면 최소한 수능성적의 1% 안에 들어야 한다. 의사는 학자가 아니고 의료기술인들이다. 물론 의과학이나 기초의학을 하는 사람은 상당한 수준의 지력 소유자라야 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일하는 의사는 훈련과 실습, 반복연습 등 유형적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과거 구 소련 같은 나라에서는 법과대학이나 의과대학은 고등학교 성적이 중상위 정도의 학생들을 배치했다. 의술은 학문이 아니고 기술이라고 생각해서다. 1%에 안에 드는 학생들은 공과대학이나 자연과학 등에 진학해서 창업도 하고 새로운 이론을 창조하는 작업에 열중해야 나라가 부강해진다. 

과거 의전원 때 학생들의 고등학교 성적은 상위권 정도였지 요즘처럼 전교 1등이 의전원에 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제주의전원을 졸업한 학생들도 다 의사고시 합격하고 국내의 유수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의과대학 출신과 그 진로가 별 차이가 없다. 의전원 입학은 의과대학 입학보다는 한층 수월한 편이었다.  나는 소위 ‘SKY’ 대학에 입학한 최우수학생들이 대학을 자퇴하면서까지 의대, 의대를 외치며 의대에 가려는 폐습을 차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고등학교와 대학 교육이 정상화될 수 있다. 국가의 장래를 보더라도 수능 1% 학생들이 의대로만 가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의전원 체제로 의학교육을 복귀해 고교 교육과 대학 교육을 정상화해야 한다. 의대로만 향하는 입시풍토를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외국인들이 몇이나 될 것인가? 유능한 인재들이 미래의 핵심산업 분야로 가도록 견인해야 나라가 번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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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충석

現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제7대 제주대학교 총장, 제주국제대학교 초대 총장, 제주발전연구원장 등을 역임했다.

제주를 대표하는 원로학자로서 칼럼과 에세이를 넘나드는 노마지지(老馬之智)의 조언을 격주로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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