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시선] 자코메티 전시에서 KBS의 ‘파우치 대담’까지 / 김봉현 이사·논설주간 

2018년 봄이었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알베르토 자코메티 한국특별전’을 보기 위해 서울 나들이를 한 일이 있다. 국민일보 창간 30주년 기념으로 기획된 자코메티의 첫 한국전(2017년 12월21일~2018년 4월15일)이었다. 천재화가 피카소(1881~1973)가 유일하게 질투했던 동시대의 예술가가 바로 자코메티(1901~1966)였고, 20세기 최고의 조각가로 평가받는 그의 특별전은 관람객들로 인산인해였다. 

당시 전시는 작가의 숨결이 밴 석고상이 대거 한국 나들이를 한다는 점에서 ‘미술을 즐기는’ 애호가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자코메티 한국특별전에는 조각·회화·드로잉·판화 등 전 미술 장르에 걸쳐 110여 점이 선보였다. 특히 조각 40여 점 가운데 석고 원본이 무려 15점이나 포함돼 있어 관심이 뜨거웠다.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 전시와 중국 상하이 유즈미술관 전시, 그리고 일본 국립신미술관 회고전에도 대여해주지 않았던 자코메티의 브랜드나 다름없는 ‘걸어가는 사람’ 석고 원본이 출품됐던 전시였다. 당시 경매가 1100억원이 넘는 188㎝의 가늘고 긴 석고상 ‘걸어가는 사람’이 지구를 반 바퀴 돌아 한국에 온 것도 큰 화제였다. 청동에 비해 파손 위험이 큰 석고 원본 작품이 아시아에서 최초로 공개됐던 전시여서 그 의미는 더욱 특별했다.  

사진 왼쪽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걸어가는 사람 II’ 석고원본 (1960). 2018년 예술의전당 전시 모습. 오른쪽은 알베르토 자코메티가 1940년대 중반부터 작업했던 긴 코를 가진 인물 작업(르 네즈, 1947-1949. 컬렉션 Fondation Giacometti, Paris ©Estate of Alberto Giacometti / Bildupphovsrätt 2020.)
사진 왼쪽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걸어가는 사람 II’ 석고원본 (1960). 2018년 예술의전당 전시 모습. 오른쪽은 알베르토 자코메티가 1940년대 중반부터 작업했던 긴 코를 가진 인물 작업(르 네즈, 1947-1949. 컬렉션 Fondation Giacometti, Paris ©Estate of Alberto Giacometti / Bildupphovsrätt 2020.)

   거짓과 위선, 살상과 파괴를 지켜 본 자코메티

피노키오는 카를로 콜로디라는 이탈리아 작가가 1883년 발표한 동화 속에 등장하는 나무 인형이자, 이 동화의 주인공이다.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피노키오의 긴 코는 거짓말의 상징이 되었다.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그의 나이 불혹을 넘긴 1940년대 중반부터 긴 코를 가진 인물 조각들을 제작했다. 동화 속 피노키오보다 훨씬 긴 코를 가진 작품들이 탄생했다. 지독한 거짓말쟁이를 표현한 걸까. 아니면 우월한 남성성을 표현한 단순한 상상력이었을까. 

스위스 태생의 자코메티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뛰어난 소질을 보였다. 그런 그가 회화와 조각 사이에서 조각가를 꿈꾸며 파리로 향한 건 스무 살 때였다. 고전 조각을 배운 뒤 입체파 양식을 거쳐 1930년대 초현실주의 작품에 몰두했다. 

제2차 세계대전은 그의 작품과 의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상상력이 아니라 현실에 기반한 인체 조각에 몰두했다. 세계대전 전후 자코메티는 인체를 가늘고 길게 늘어뜨린 고독한 인물상을 선보이며 실존주의 조각가로 명성을 얻었다. 긴 코를 가진 두상 조각도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제작됐다.

살상과 파괴, 온갖 혐오와 갈등으로 점철됐던 제2차 세계대전을 목도한 자코메티의 눈에 비친 세상은 거짓과 불안의 연속이자, 공포와 불안으로 가득한 위선의 세계였을 것이다. 거짓말하는 피노키오에게 사랑과 용서를 베푸는 제페토 할아버지는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았다. 

자코메티는 서로가 속고 속이는 전쟁터 같은 현실을 고발하고 싶었던 것일까. 마치 총구가 긴 권총을 형상한 것 같은 청동 두상을 통해 거짓과 위선이 남을 죽이는 무기도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더 본질적인 것은 그 거짓과 위선이 결국 자신을 겨누는 총구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을 게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한국특별전’은 당시 프랑스 파리의 자코메티 재단의 동의를 얻어 전시기획사인 코바나 컨텐츠가 창간 30주년을 맞은 국민일보와 협업해 마련한 전시였다. 그 전시를 매우 흥미롭게 관람했던 필자는 당시엔 코바나 컨텐츠의 대표가 김건희 여사인 줄 몰랐다. 배우자인 윤석열 대통령이 문재인 정부에서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탁됐던 시기에 김 여사는 큐레이터로서의 전성기를 맞고 있었다.    

  김건희 명품백 수수 논란 ‘민심, 심상찮다’ 

지난해 11월 말 불거진 ‘김건희 디올백 수수 스캔들’ 논란이 해를 넘겨서도 사그라지지 않는 양상이다. 지난 7일 설 명절을 앞둬 방송된 윤석열 대통령 KBS 녹화 대담은 김건희 명품백 수수 의혹 사건이라는 뜨거운 불 위로 기름을 끼얹은 분위기다. 

언론인 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에서 “대통령 입맛대로 짜고 친 방송이었다”, “공영방송 KBS가 대통령실 홍보대행사를 자처했다”, “낯뜨거운 ‘김건희 구하기’와 ‘윤비어천가’ 일색이었다”, “윤 대통령이 김 여사의 명백한 실정법 위반에 대한 유감 표명이나 사과 없이 구구절절한 변명만 내놨다” 등등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땡윤 뉴스’로 전락한 공영방송 KBS의 ‘파우치 대담’이 낯뜨겁지 않은 것은 대통령실뿐인 듯하다. 

 지난 2월7일 녹화 방송된 윤석열 대통령의 kbs 신년 대담 모습. 방송화면 갈무리 ⓒ제주의소리
 지난 2월7일 녹화 방송된 윤석열 대통령의 kbs 신년 대담 모습. 방송화면 갈무리 ⓒ제주의소리
〈여론조사 개요〉 조사의뢰 : JTBC / 조사일시 : 2024년 2월 11일~12일 / 조사기관 : 메타보이스(주) / 조사지역 및 대상 :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 조사방법 : 전화면접(무선100%, 휴대전화 안심번호 사용) / 표본오차 : ±3.1%p (95% 신뢰수준) / 질문내용 : 윤 대통령 국정수행 평가, 지지하는 정당, 양대 정당 대표, 위원장 직무수행 평가. 총선 지지 정당 등 정치 현안 / 응답률 : 12.1% / 표본의 크기 : 1004명 / 피조사자 선정방법 : 2024년 1월 말 주민등록인구통계에 따라 성별, 연령대별, 권역별 비례할당 후 무작위추출 / 가중치 산출 및 적용 방법 : 2024년 1월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 기준 성별, 연령대별, 권역별 가중치 부여(셀가중) / 이번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여론조사 개요〉 조사의뢰 : JTBC / 조사일시 : 2024년 2월 11일~12일 / 조사기관 : 메타보이스(주) / 조사지역 및 대상 :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 조사방법 : 전화면접(무선100%, 휴대전화 안심번호 사용) / 표본오차 : ±3.1%p (95% 신뢰수준) / 질문내용 : 윤 대통령 국정수행 평가, 지지하는 정당, 양대 정당 대표, 위원장 직무수행 평가. 총선 지지 정당 등 정치 현안 / 응답률 : 12.1% / 표본의 크기 : 1004명 / 피조사자 선정방법 : 2024년 1월 말 주민등록인구통계에 따라 성별, 연령대별, 권역별 비례할당 후 무작위추출 / 가중치 산출 및 적용 방법 : 2024년 1월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 기준 성별, 연령대별, 권역별 가중치 부여(셀가중) / 이번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JTBC가 4·10 총선을 50여 일 앞두고 설 연휴 막바지인 지난 11~12일 조사한 설 민심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이러한 비판 여론은 뚜렷했다. KBS 대담에서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논란에 대한 윤 대통령의 답변이 ‘부적절했다’는 응답은 67%였던 반면, ‘적절했다’는 응답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27%에 그쳤다. 특히 ‘전혀 적절치 않았다’는 적극적 여론이 48%로 절반에 육박했다.  

‘말이야? 보말이야?’라는 제주 말(語)이 있다. 사람의 말이 얼토당토않을 때 사용하는 관용 표현이다. 말을 보말과 비교한 언어유희를 통해 가당치 않은 주장을 일축할 때 쓰는 수사 의문문이다. 여당 정치인들과 극렬 보수 지지층 등 일각에서 “김건희 여사가 받은 디올백을 대통령기록물법에 따라 적법하게 보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는 이 사건이 김 여사가 덫에 걸린 것이란다. 말인가, 보말인가? 씁쓸한 코미디다. 애초에 받을 생각이 없었다면 즉각 돌려줬어야 맞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매정하게 끊지 못한 것이 아쉽다”, “제 아내가 내치지 못해서 자꾸 오겠다고 하니까 사실상 통보하고 밀고 들어온거다” 등의 취지로 사과도 해명도 아닌 궤변을 늘어놓은 꼴이 됐다. 김건희 여사가 전시 기획한 자코메티는 자신의 작품에서 거짓과 위선을 고발하는 메시지를 담았다. 전시를 기획한 김건희 당시 대표 큐레이터가 이를 몰랐을 리 없다. 

외국 속담에 ‘나귀에 금을 가득 싣고 가면 그 성문을 열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많은 사람이 명품백이 ‘문을 따고 들어가는 열쇠’ 역할을 했다고 조롱하고 있다. 우리 속담에도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라”는 말이 있다. 현직 대통령 부인의 명품백 수수 논란을 두고 정치공작이니, 적법한 선물이라는 주장을 펴는 이들은 그 알량한 입을 부디 꼭 다무시라. ‘김건희 디올백’ 논란이 윤 정권의 몰락으로 가는 대문까지 열 수 있음을 단단히 성찰하시라. / 김봉현 이사·논설주간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