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노동세상] (103)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 개선 필요

제주 시내 ‘줄서는 식당’ 중 한 곳에서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노동자와 대화 중이었다. 얼마 전 있던 회식에서 알바 노동자는 참석 대상에서 제외되었고, 같이 일하는 처지인데 차별받는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나의 예시일 테지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차별과 노동권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노동시장 유연화와 함께 확대된 비정규직 고용
과거에는 비정규직이라는 개념이 노동시장에서 크게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시기도 있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IMF는 한국 정부에 노동시장 유연화를 요구했다.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정리해고제가 도입되었고, 비정규직 고용이 늘어났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좋은 기회였다. 2000년대 초반 IMF 자금을 조기상환했음에도 노동시장 유연화는 여전히 강화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졸라매어진 노동자의 허리띠는 풀어지지 않았고, 그 사이 소득 불평등은 더욱 악화되었다. 노동시장에 도입된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 비정규직은 늘어났고, 고용이 불안정한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적 처우도 늘어갔다. 뒤늦게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적인 처우를 구제하기 위해 각종 법·제도가 신설되었지만 비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불안정한 처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 주변의 비정규직 노동자
몇 해 전 어느 일간지에서 기획한 “누가 비정규직일까요?”라는 기사를 접한 기억이 있다. 지하철 차량기지, 케이블방송사, 대학교, 대형마트, 자동차공장 등에서 함께 일하는 노동자 2명의 사진을 올리고 질문을 하는 기획이었다. 자동차 공장에서 한명은 왼쪽 바퀴를 조립하고, 한명은 동시에 오른쪽 바퀴를 조립하는 일을 하지만 그들의 처우는 착용한 작업복의 색깔만큼 달랐다.
우리는 하루의 일상을 보내면서 많은 노동자를 직간접적으로 만난다. 생활하면서 사용하는 각종 공산품을 만든 노동자, 입고 있는 옷가지를 만든 노동자, 점심시간 식당을 찾았을 때 음식을 내어주는 노동자, 퇴근길 마트에 들렀을 때 만나는 마트노동자, 이동시 사용하는 차량을 만드는 노동자 등. 이들 중 누가 정규직이고, 누가 비정규직인지 확인하기는 어렵다.
다만, 전체 임금노동자 중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이 전국 평균 37%로 집계된다. 특히 제주의 경우에는 평균치를 넘어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이 전체 임금노동자의 44%수준이다. 노동자 10명을 만나면 4~5명은 비정규직 고용형태라는 의미다.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이유로는 제주의 산업구조 중 서비스업, 농어업의 비중이 큰데, 이들 산업의 비정규직 고용 비율이 높은 이유가 꼽힌다. 중소영세사업장과 5인 미만 작은 사업장의 경우에도 비정규직 고용 비율이 높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제주지역의 사업체의 87%가 5인 미만 사업장에 속하는 상황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남녀고용평등법에는 ‘사업주는 동일한 사업내의 동일가치의 노동에 대하여는 동일한 임금을 지급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성별에 따른 임금차별을 금지하는 취지다. 작년 21대 국회에서는 근로기준법과 기간제·파견노동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규정하는 개정안이 제출되기도 했다. 대법원은 ‘동일가치노동’의 의미에 대해서 ‘당해 사업장 내의 서로 비교되는 노동이 동일하거나 실질적으로 거의 같은 성질의 노동 또는 그 직무가 다소 다르더라도 객관적인 직무평가 등에 의해 본질적으로 동일한 가치가 있다고 인정되는 노동’으로 정의하고 있다. 쉽게 말해 동일한 노동 혹은 객관적으로 동일성이 인정되는 노동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고용형태가 다른 경우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고용형태를 이유로 한 임금과 노동조건의 차별이 존재한다. 물론 기간제·파견노동자를 보호하는 법률에서는 차별을 금지하는 조항이 있고, 차별시정제도를 통해서 구제받을 수 있도록 하고있다. 하지만 차별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인 비교대상 노동자가 있어야 하고, 처우가 다르더라도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면 차별적 처우가 용인된다.
노동권 사각지대의 노동자
비정규직 보호법안이 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차별적 처우를 개선하지 못하는 것과 같이 노동법이 있지만 노동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상시 노동자 5인 미만 사업장이라는 이유로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작은 사업장의 노동자부터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노동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가 그들이다. 제주지역 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의 규모가 점차 확대되고 있는데 아직까지 정확한 통계자료는 없다. 다만, 전국평균을 보았을 때 제주지역의 프리랜서 노동자는 7만~9만여명으로 추정된다.
일하는 사람의 노동이 빛날 수 있도록
다양한 고용형태가 늘어나고 있고, 이러한 변화의 속도에 맞추어 노동정책도 빠르게 변화할 필요가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가 고착화되었고, 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에게는 최저임금도 적용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작은 사업장 노동자는 장시간노동과 저임금에 노출되어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이러한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개선하겠다고 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개선은 노동권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김경희
‘평화의 섬 제주’는 일하는 노동자가 평화로울 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노동자의 인권과 권리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공인노무사이며 민주노총제주본부 사무처장을 맡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