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노동세상] (104) 조리 종사자의 ‘조리흄’의 위험

얼마 전 학교 급식 노동자의 폐암산재를 인정하라는 기자회견이 근로복지공단 제주지사 앞에서 진행되었다. 제주에 있는 학교의 숫자만큼 그 안에서 일하는 급식 노동자가 있다. 또 학교급식의 역사만큼 그 과정에는 급식 노동자가 있었다. 이들은 오랜 기간동안 학교에서 필수적인 노동을 하고 있었지만 학교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고, 노동환경이 잘 알려지진 않았다. 이들의 노동환경이 밝혀진 건 최근 10년 정도로 볼 수 있다. 학교비정규직/교육공무직 노동자의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학교 내 존재했던 개개의 사건을 집단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되면서 구조화된 문제가 드러나게 되었다.

급식실은 식사시간에 맞춰서 일을 완료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소수의 인원이 대규모의 음식을 해내야 하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정해진 시나리오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시간을 맞추기가 불가능하다. 만약 예기치 않는 변수가 발생하면 빨리빨리 속도를 내야하고 그러다가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들도 많다. 그 이면에는 학교 급식실에 인력충원이 잘 안되는 문제가 있다. 인력배치가 안되다보니 노동강도가 높고, 노동강도가 높으니 인력채용이 되지 않아 정원에 미달되는 인원이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올 상반기에도 101명을 뽑아야 하는데 결과적으로 41명 밖에 선발되지 못했고, 결원률이 높은 상황이 악순환 되고 있다.

현재 전체 결원률은 약 10%에 달하는데, 교육공무직 직군이 정년이 보장되는 무기계약직으로 고용이 안정화 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원이 잇따르는 주된 이유로 방학 중에 거의 무급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 있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3월경에 김광수 제주도교육감이 방학 중 유급화를 검토하겠다는 입장도 밝히기는 했지만 아직 현실화 되지는 못하고 있다.

급식 노동자는 일상적인 산업재해 위험을 가지고 있다. 반복되는 작업이나 중량물 작업으로 인한 근골격계 질환부터 넘어짐, 화상, 베임사고등 다양한 산재가 있는데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것이 폐질환 관련 산업재해다. 흔히 급식실을 떠올리면 수증기가 많이 발생하고, 연기가 차있고 이런 모습을 떠올리게 되는데 실제로 이러한 공기 중에 유해물질이 발생한 상황에서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조리 흄(cooking fumes)”이라는 물질은 폐질환과 연관이 있다. “흄”의 사전적 의미는 매연이나 가스를 의미하는데 조리과정에서 발생하는 매연이라 조리흄이라고 명명된 물질이다. 이 물질은 기름을 고온의 환경에서 요리를 하는 경우, 예컨대 음식을 볶거나 튀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 입자다. 우리가 흔히 아는 초미세먼지보다 25배나 작은 물질로 한번 들이마시면 폐 깊숙이까지 흡입하게 되는데, 이 물질에 암을 유발시키는 악성물질이 포함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조리흄에 오랫동안 노출되면 폐질환 발병에 영향을 끼친다는 의학적인 소견이 있다.

환기장치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경우에는 폐암 발병 위험이 최대 22.7배가 증가한다는 해외의 보고서도 발표된 바 있다. 조리흄이 유해하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 10여년이 되었고, 학교 급식실 노동자의 폐암발병에 대해 2021년 처음으로 업무상 연관성이 인정되었는데 그 후 2년 만에 전국에서 113명의 급식노동자의 폐암산재가 드러났다. 사태가 심각하자 교육부는 전국 각 시도교육청의 급식실 종사자(영양사, 조리사, 조리실무사) 중 일정 나이 혹은 근속연수이상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폐CT진단을 했는데 결과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전체검사자 중에 30%가량이 폐결절, 폐암의심, 폐암확진 등 이상소견으로 나왔다.

제주에서는 영양사의 폐암사례가 나왔다. 해당 영양사는 1997년부터 24년 동안 여러 학교의 급식실에서 일해왔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영양사에 대한 폐암 산재를 승인하지 않았다. 직접 조리를 하는 업무가 아니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급식실의 여건상 인원이 부족하다보니 급한 경우에는 영양사도 함께 요리를 하는 경우도 있고, 튀김 온도를 체크하는 등 영양사의 업무자체가 조리과정과 별개로 볼 수 없다. 그리고 영양사로서 업무구분이 있어 노출정도가 적더라도, 24년이라는 장기 근속기간 중 누적 노출량이 많은 상황을 고려했을 때 업무상 연관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해당 사건은 현재 재심사를 앞두고 있다. 재심사 과정에서 부디 폐암 산재로 승인받고 건강을 회복할 수 있길 기원한다.

학교 급식실 노동자에 대한 사례를 이야기했지만, 주변에는 비슷한 환경에서 일하는 조리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많다. 사업장․병원의 구내식당부터 호텔숙박업에 식당, 그리고 동네 곳곳 크고 작은 식당들이 많이 있다. 일례로 중국집을 떠올리면 강력한 화력으로 기름을 이용하여 볶아내는 음식을 주로 하게되고, 돈까스집이나 튀김류가 주된 메뉴인 곳들도 있을 터이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노출정도를 생각하면 학교 급식실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 일하는 조리 노동자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조리 흄이라는 유해시설이 뒤늦게 알려지고, 학교 급식 노동자의 폐암 산재인정 과정에서 조리 종사자에 대한 위험성이 사회적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어 있지 않거나 작은 사업장에서 일하는 조리 종사자도 같은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학교 급식실의 경우 전국 각 시도교육청에서 급식실 조리시설 환기설비에 대한 개선이 추진되고 있다. 학교 급식실의 환기설비에 대한 개선에 착안하여 유사한 환경에 있는 사업장들에 대한 환기설비에 대한 보호대책이 필요하다.

폐질환의 특성상 오랜 기간 잠복했다가 뒤늦게 발병할 수 있다. 학교 급식실을 포함해서 조리종사자로 오랜기간 일했는데 관련된 질환이 발생했다고 하면 산업재해에 해당될 수 있다는 점을 참고하여 대응할 수 있었으면 한다. 


김경희

‘평화의 섬 제주’는 일하는 노동자가 평화로울 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노동자의 인권과 권리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공인노무사이며 민주노총제주본부 사무처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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