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충석의 칼럼과 에세이 사이] (28) 위헌·헌법 불합치 결정의 배경

지난 4월 헌법재판소는 민법 제112조 등 유류분 제도와 관련하여 위헌법률심판 및 헌법소원에서 일부 위헌 및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려 세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유류분은 법에 근거해서 고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유족들이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유산 비율을 말한다. 나처럼 산수 머리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상속 비율을 이해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어느 신문에 나온 계산법을 소개해 본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전 재산을 장남에게 물려주고 사망하였는데 유족으로 어머니와 딸 2명, 아들 2명이 있다고 해보자. 이때 어머니의 법정 상속분은 자녀의 1.5배이고 네 명의 자녀들이 받을 상속분은 아들·딸 구별 없이 동등하게 1:1:1:1이다. 따라서 어머니의 법정 상속분은 1.5/5.5이고 자녀 4명의 법정 상속분은 각각 1/5.5가 된다. 유류분이란 법정 상속분의 1/2에 해당하는 상속분을 말한다. 따라서 어머니는 장남을 상대로 법정 상속분의 1.5/5.5의 1/2인 0.75/5.5만큼을, 장남을 제외한 자녀 3명은 1/5.5의 1/2인 0.5/5.5만큼을 유류분으로 청구할 수 있다.
다른 나라들은 유류분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을까? 미국에서는 자녀의 유류분은 완전히 배제되지만, 함께 재산을 형성한 배우자는 유류분을 인정해준다. 자녀는 재산 형성에 이바지한 바 없으므로 자녀에게까지 유산을 증여해 줄 필요성이 없다는 것이다. 영국도 부모와 형제자매의 유류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프랑스는 선 순위 상속 자녀의 유류분만 인정하고 자녀가 없는 경우에는 배우자가 권리를 갖게 된다. 부모나 직계 존속은 상속받을 권한이 없다. 독일은 조부모나 형제자매의 유류분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고인이 죽기 전 10년까지 이루어진 증여만 유류분 계산에 포함하고 있다. 일본도 독일과 비슷하다. 그 외에도 스위스는 형제자매의 유류분을, 오스트리아는 부모의 유류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유류분은 나라마다 다르게 적용되어 어떤 것이 옳다고 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애초에는 유류분 제도가 존재하지 않았다. 전통 관습법에도 없었고 1958년 민법을 제정할 때도 유류분 제도를 도입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 유류분제도가 도입된 것은 약 50년 전이다. 1977년 민법을 개정하면서 유류분 제도를 도입했는데 이유는 다음과 같다.
사려 깊지 못한 유증으로 부양가족의 생계가 곤란해지는 위험을 방지해야 한다는 점, 상속재산은 유족 공헌의 산물이므로 유족의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점, 여권 신장을 위해 필요하다는 점 등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유류분제도는 애초 입법 의도대로 제 역할(menifest fuction)을 하고 있는가? 당초 의도와 달리 급격한 사회변동으로 인해 유류분 제도 도입 당시의 명분들이 많이 훼손된 점도 논란의 구실을 제공하였다.
유류분은 농경사회의 장남 우선 상속제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속의 억울함을 구제하기 위함이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농경사회에서는 주로 장남에게 재산을 상속해 주었다. 장남은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은 대신 부모를 대신하여 어린 동생들을 교육하고 출가시키는 책임과 의무를 졌기 때문에 장자 우대상속에 별 불만이 없었다. 시골 땅값이라 해야 부모 봉양하고 제사 지내면 그만인 정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70년대 이후 산업사회가 도래하면서 시골의 땅값이 오르기 시작하였고 여성들에게도 권리가 생기게 되어 유류분을 제정하게 된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저물어야 날개를 편다’라고 했다. 이는 철학이 앞날을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현상이 일어난 뒤에 역사적인 조건을 고찰하여 철학의 의미가 분명해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법도 마찬가지이다. 법은 사회의 변화에 따라 바뀔 수밖에 없다.
예전에는 평균수명이 길지 않았다. 보통 환갑을 넘기면 장수한 편이었다. 하지만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평균 기대수명은 80세 시대를 지나 지금은 100세를 바라보고 있다. 부모가 일찍 돌아가시고 형이 아우를 돌보는 일은 드물게 되었다. 부모가 살아있는 가운데 형제들은 제각각 살림을 꾸려 살아가는 형국이 되었다. 오히려 요즘은 누가 늙은 부모를 봉양하느냐 하는 문제가 관건이 되었다.
1970년대의 유류분은 장남 우대상속에서 비롯된 불합리함으로부터 차남이나 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면 지금 논란이 되는 유류분은 부모를 장기간 유기하거나 정신적·신체적으로 학대하는 등 패륜적인 행위를 일삼은 상속인의 유류분에 대한 우려라고 볼 수 있다. 이는 국민의 법 감정과 상식에 반한다며 헌법 불합치 판정을 내림으로써 패륜 자식이나 자식을 방치한 부모 등은 유류분마저 상속받지 못한다는 취지이다. 나는 이런 조항에 동의한다.
그간 유류분 제도는 파렴치한 사람들로부터 악용·오용되고 있다는 부정적인 의견들이 도덕적 힘을 얻었고 유류분 제도의 존폐에 대한 논란이 무성했다. 이에 기름을 부은 것은 아이돌 가수 구하라 씨의 죽음이었다. 2019년 인기 아이돌 그룹 카라의 멤버였던 가수 구하라 씨가 사망했다. 가수로서뿐 아니라 예능에서도 재치 있는 입담을 뽐내며 많은 인기를 누리던 그녀의 죽음은 팬들은 물론 많은 국민에게 슬픔을 주었다. 그녀는 미혼인 상태에서 자녀 없이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상당한 재산을 남겨 직계 존속인 부모가 재산을 상속받게 되었다. 문제는 구하라 씨의 부모는 그녀가 9살 때 이혼했다는 것이다. 이혼 후 구하라 씨와 오빠는 할머니에 의해 양육되었고 어머니는 연락마저 두절 된 상태였다. 아버지는 재혼하여 사실상의 유족은 오빠였지만 부친과 모친이 상속 1순위가 되어 부친이 50%, 모친이 50%를 상속받을 수 있었다. 부친은 상속받은 재산을 오빠에게 양도했다. 문제는 9살 이후 연락이 끊겼던 어머니에게 구하라 씨의 재산이 상속되었다는 점이다. 구하라 씨의 어머니는 딸의 장례식장에 온 연예인들과 기념사진을 찍는 등 인면수심을 드러내며 빈축을 샀다. 자식을 잃은 어미의 슬픔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러한 행동은 구하라 씨의 오빠는 물론 구하라 씨 팬들과 국민의 분노를 유발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사례는 천안함 피격 사건, 세월호 침몰 사고, 심지어는 4.3 손·배상 등에서도 비일비재했다. 어린 자식을 버리고 도망갔던 부모가 갑자기 나타나 오직 부모라는 이유 하나로 자식의 사망보험금을 타내고 상속을 요구하는 일이 빈발했다. 자식을 버린 용기만큼이나 그들의 파렴치함은 극에 달해 관계자들은 물론 국민을 분노케 했다.
구하라 씨의 오빠는 현행 민법의 상속법 개정을 촉구했다. 구하라 씨 같은 사례를 막기 위해 발의된 ‘구하라법’은 20대 국회에서 입법이 추진됐지만, 정쟁만 일삼은 국회의원들의 무관심 속에 기한 만료로 폐기되고 말았다. 2024년 4월 25일 ‘학대 등 패륜 행위를 한 가족에게도 의무적으로 일정 비율 이상의 유산(유류분)을 상속하도록 정한 현행 민법이 헌법에 어긋난다’라는 결정으로 구하라법 통과를 기대했지만 여야 간의 정쟁으로 법제 사법심사 위원회 전체 회의 문턱을 넘지 못함으로써 21대 국회에서도 자동 폐기되고 말았다. 구하라 씨의 인생만큼이나 구하라법의 입법 과정도 순탄하지 못했다.
헌재의 결정으로 재산상속의 유류분 제도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그 쟁점은 두 가지다. 형제·자매의 유류분 인정은 위헌결정이 난 만큼 논외로 하자. 패륜적 행위를 한 상속인에게도 일률적으로 유류분을 인정한 것과 사망자를 장기간 부양하거나 재산 형성에 특별히 이바지한 자를 우대하는 조항이 없는 것은 헌법 불합치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헌재는 유류분 제도를 당장 폐기하지 않은 대신 패륜적인 상속인의 상속을 막을 입법을 하라고 국회에 주문했다. 헌재가 입법 시한으로 정한 내년까지는 현 제도가 유지되기 때문에 국회가 서둘러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 22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유의미한 성과가 이루어지길 기대해 본다.
그러면 국민은 유류분 제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토마토 그룹 여론조사를 인용해 보자. 2023년 5월 18일부터 22일까지 국민 6180명(남녀 무관)을 대상으로 온라인 조사를 진행했는데 유류분 제도에 반대하는 비율은 53.7%, 찬성한다는 비율은 46.3%로 나타났다.
유류분제도에 반대하는 이유로는 ▲고 구하라 씨 친모사건 등에서 볼 수 있듯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답변 28.2% ▲제도 도입 당시와 현재는 환경과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라는 의견 26.2% ▲부를 형성하는데 아무런 기여가 없는 상속자에 대한 불공평함이 17.3%였다.
한편 유류분 제도에 찬성하는 이유로는 ▲상속인에게 최소한의 재산을 남겨 생계를 보호해 줘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답변 33.9% ▲차별상속으로 발생하는 갈등 완화 28.8% ▲법 개정으로 단점 보완이 가능하다는 이유 14.5%였다.
공방이 매우 치열한 유류분 제도 존폐를 둘러싼 찬·반 논쟁을 요약 정리해 보자. 먼저 반대 논리부터 살펴보면 한마디로 유류분 제도는 ‘불효자를 웃게 하는 상속제도’라는 것이다. 심지어 유족 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불효자 양성법’이라는 의견도 있다. 유류분 제도의 도입 목적이 상실되었다는 것이다. 이 제도가 시행된 이후 핵가족화, 평균수명의 연장, 여성 지위가 향상되어 도입 당시의 환경과 상황이 판이해졌다. 시대가 바뀌면서 당시 문제가 되었던 장남 우선 관행도 사라졌다. 수명까지 높아져 고인이 사망할 때쯤이면 상속인들은 이미 성인이 돼 독립적인 경제활동을 하는 경우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미성년 자녀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부닥칠 수 있어 이들을 부양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이런 이유도 이미 퇴색되었다. 여성의 지위도 매우 향상되었다. 예컨대 종중의 땅 처분에서도 재산상의 권리를 주장, 재산을 상속받는 여성 인구들도 늘어 나가고 있다. 과거 남성 위주의 전통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부를 형성하는 데 전혀 이바지하지 않은 자들도 당연한 것처럼 유류분을 주장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유류분 제도의 존치를 찬성하는 논리는 무엇일까? 문제점이 있으면 예외 조항을 두거나 비율을 조정하는 등 개정으로 해결해야지 유류분 제도 자체를 폐지하는 것은 안 된다는 의견이다. 유류분제도는 상속 차별로부터 발생하는 갈등을 완화하는 완충장치 역할을 하는 등 유족들에게 여전히 그 필요성이 인정된다. 이 제도는 가족 권력 구조에서 소외되어 상속받지 못하는 자식이나 혼외자, 장애인 같은 아웃사이더 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매우 필요한 제도이다. 이들이 만약 기초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경우, 유류분은 가뭄 속의 단비와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유류분제도는 가난한 자식(세대)의 최후 보루라는 것이다. 오늘날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지만, 오히려 풍요의 그림자는 너무 짙고 넓다. 경제의 불안정성, 청년 실업률 상승 및 자산 형성의 어려움 등을 고려하면 오히려 상속인에게 최소한의 재산을 남겨 생계를 보존해 주어야 한다. 이러한 필요성은 유류분 제도의 도입 당시보다 더 강화되면 되었지, 약화하지 않았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유류분 제도의 존재 정당성은 많이 훼손되었다. 그렇다고 유류분제도가 완전히 없어져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폐기 여부를 둘러싼 국민 간의 이견도 분분하다. 구하라법이고 유류분이고 간에 이 모든 이야기는 도덕적이고 공정한 상속에 관한 이야기이다. 도덕적으로도 정당하고 공평한 유류분 제도라야 생명력과 지속성이 담보된다. 이런 점을 잘 고려해서 앞으로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른 법 개정 등 후속 조치가 잘 뒤따라야 할 것이다. 나도 유류분 존치에 찬성하는 견해다. 단, 인지상정이 통용되는 범위에서 시대에 맞게 합리적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충석
現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제7대 제주대학교 총장, 제주국제대학교 초대 총장, 제주발전연구원장 등을 역임했다.
제주를 대표하는 원로학자로서 칼럼과 에세이를 넘나드는 노마지지(老馬之智)의 조언을 싣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