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노동세상] (106) “개처럼 뛴다”는 노동자들...운영진, 책임 있는 자세 필요
얼마 전 학생들과 함께하는 노동인권교육 중에 있던 일이었다.
20살, 자취생의 신분을 전제로 하여 각자 한 달 동안 몇 시간 일을 할지 결정하고, 그 금액으로 생활비 예산을 짜보는 시간이었다. 제출한 한 학생의 월 노동시간이 무려 450시간이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물어보니 “저는 하루에 15시간씩 쉬는 날 없이 일해서 돈을 많이 벌겠습니다!”라는 답변이다.
그 학생의 발표시간이 되었고 내용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하루 15시간 일하기 위해서는 ‘아침 8시부터 저녁 11시까지 꼬박 쉬지 않고 일해야 하는 시간’이며, 중간에 밥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자정이 넘어야 일이 끝난다. 그렇게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면 ‘금방 골병이 들어 병원비를 상당부분 지출해야 할 것’ 같다. ‘OO를 만나려면 집이 아니라 병원 응급실로 가야할 것 같다.’ 등등 의견이 이어졌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74년 전, 전태일 열사가 현실에서 무용했던 근로기준법 화형식에서 본인의 몸에 불을 붙이며 외쳤던 구호다. 요즘 밀면 집이나 식당에 가면 서빙 기계를 자주 볼 수 있다. 기계는 고장 나면 고쳐서 쓰다가 망가지면 버리면 된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다. 인간은 기계가 아닌 인격이기 때문에 지금의 노동법이 탄생했고, 우리 근로기준법은 주당 노동시간에 대한 규제를 하고 야간노동을 제한하고 있다. 일하다 다치면 치료받으며 쉴 수 있도록 사회보험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휴게시간도 그러하다. 근로기준법에서는 하루 4시간이상 노동하는 경우 30분 이상을 하루 8시간 이상 일하는 경우 한 시간 이상의 휴게시간을 도중에 부여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달 제주지역에서 쿠팡이 심야배송 서비스를 시작한지 1주일 만에 2명의 노동자가 쓰러졌다. 심야배송을 하던 택배 기사가 뇌출혈로 쓰러져 수술을 받았고, 애월읍 장전리 쿠팡캠프에서 분류작업을 하던 50대 노동자가 쓰러져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해당 장소에는 폭염에도 불구하고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지 않고 중간에 휴식시간도 부재했다. 노동자들이 쿠팡에서 일을 하다가 쓰러지거나 죽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전국에서 4명의 노동자가 쓰러졌고 그 중 3명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개처럼 뛰고 있긴 해요”, 쿠팡 노동자의 현실
2020년, 쿠팡 칠곡물류센터에서 일을 하던 20대 노동자가 일을 끝내고 집에서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태권도 4단에 헬스와 등산이 취미였고, 담배도 피우지 않고 술도 많이 마시지 않았다. 다만 쿠팡 물류센터에서 제품 포장과 출고 전반을 지원하는 야간 전담 업무를 한지 1년여 만에 15kg의 체중 감소가 있었고 사망 원인은 급성 심근경색으로 전형적인 과로사였다.
2024년 5월, 남양주2캠프에서 배송을 하던 4남매의 아버지인 41세 노동자가 같은 원인으로 사망했다. 쿠팡에서 시행하고 있는 심야 배송을 담당하던 택배 노동자였다. 쿠팡의 심야 배송은 “밤 12시 이전에 주문하면, 아침 7시 이전에 현관에 도착하는”서비스다. 그가 쓰러져 사망한 당시에 주 77시간 노동(야간노동 가산반영)을 이어가고 있었다. 쿠팡에서 일한지 1년 2개월 만이었다. 유족에 따르면 그도 일한지 1달 만에 10kg 넘게 체중이 감소했다고 한다. 고인이 쿠팡 직원과 나누었던 문자메시지에는 오전 7시까지 반드시 배송을 완료해줄 것을 독촉하는 메시지에 대해 ‘개처럼 뛰고 있긴 해요’라는 답변이 남겨져있었다.
일상의 편리함과 노동자의 건강권
몇 해 전 친구네 집에 놀러간 서울에서 전날 밤에 주문한 상품이 다음 날 아침에 현관 앞에 와있는 것을 직접 보면서 참으로 신기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신기하다고 생각하고 말았던 그 때를 반성한다.
몇 년 사이 심야배송은 우리 사회에 깊숙하게 자리 잡았다. 업계 1위 쿠팡이나 마켓컬리등 대기업을 비롯해서 제주지역 중소업체도 경쟁에 뛰어들어 신선배송·새벽배송을 선언하고 있다. 올해 초 윤석열 정부는 대형마트의 새벽배송을 가능하도록 법을 개정하는 규제 완화 정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소비자의 일상의 편의도 중요하지만 심야배송을 위해 야간에 작업을 해야 하는 노동자의 건강권도 함께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니 심야노동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SNS를 중심으로 온라인 거래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하는 이들도 많다.
제주 쿠팡에서 연이어 사상 사고가 발생하자 한 친구는 그날 쿠팡 와우클럽 서비스를 해지했다고 한다. 추가택배비가 있는 제주에 살면서 본인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탈퇴해보겠다는 다짐이었다. 필자는 쿠팡에 회원 가입이 되어있지 않아 따로 탈퇴를 하진 않았지만 친구의 선언을 응원하며 지지한다.

수업 중 장시간 노동을 선언했던 학생은 ‘15시간 노동 계획을 철회’하며 발표는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철회를 한다고 해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전국에서 평균임금이 가장 낮은 제주는 맞벌이 비율이 가장 높다. 낮은 임금으로 인해 주말 알바나 대리운전 부업을 하는 주변의 지인을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의 노동 시간을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플랫폼 노동의 이면에는 생활이 가능한 수입을 위해 강도 높은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하는 현실이 숨어 있다.
쿠팡이 급속도로 성장하여 유통업계 1위에 등극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고 있는 각종 노동 관련 문제에 대해서는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쿠팡과 비슷한 플랫폼, 특수고용노동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업계 1위 쿠팡은 하나의 기준점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쿠팡이 사용자로서의 고용의무를 할 수 있도록 관심 있게 지켜보고 함께해야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