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노동세상] (108) 새해, 차별과 혐오 없는 모두의 노동세상으로
설날연휴 오랜만에 만난 친지와 지인에게 안부를 물으며 덕담을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다. 하지만 임시공휴일이 선포되어 길어진 연휴임에도 불구하고 새해가 시작된 것도, 연휴의 느낌도 나지 않는다는 주변인의 반응이 많다. 아마도 지난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의 충격은 현재 진행중이고, 연말 발생한 사회적 참사를 겪으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제주산간을 비롯하여 전국에 눈이 많이 왔는데, 새해 첫날 눈이 많이 오면 그해 풍년이 오고, 모두가 평안하다는 옛 선조들의 바램을 빌려서라도 서로를 위로하고 싶은 요즘이다.
본가에 와서 전을 부치기 위해 바닥에 펼친 작년 2월자 신문에 군인들에 둘러쌓여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윤석열의 사진이 보인다. 사상초유의 비상계엄이후, 군을 중심으로 한 내란 세력들이 그들만의 세상을 위해서 계엄을 치밀하게 준비해왔다는 사실이 하나하나 밝혀지고 있는터라 사진에 주목하게 된다. 내란을 공모한 그들이 바랬던 세상은 무엇일까? 윤석열이 만들려던 노동정책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윤석열 정부 취임 이후 2년반 동안 추진했던 노동정책 속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023년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윤석열 정권 심판! 노동탄압 저지! 2023 전국노동자대회. ⓒ권우성 [오마이뉴스]](https://cdn.jejusori.net/news/photo/202501/433701_458863_657.jpg)
후퇴 된 노동기본권
‘주120시간도 가능하게 노동시간제도를 변경해야 한다’ 윤석열의 대통령 후보시절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이는 취임 후 정부가 구성한‘미래노동시장연구회’를 거쳐, ‘주69시간’까지 가능한 근로기준법 정부개정안 발의로 이어졌다.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역사적 흐름을 역행한 윤석열표 노동시간제 추진은 현장노동자를 비롯한 여론의 거센 반발로 중단되었다. 헌법 제32조는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고 하여 국가의 책무를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은 그러하지 못했다. 기업의 이윤극대화를 위해 경영계에서 요구해왔던 노동시간제 유연화를 포기하지 않고 시도했고, 노동자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도입된 중대재해처벌법의 무력화를 시도했다. 또한, 헌법 제33조에 보장된 노동3권을 근간으로 노동자의 기본권 향상을 위해 존재하는 노동조합의 활동을 위축시키려 했다.
2022년 화물차 안전운전을 위한 적정운임료를 정하는 ‘안전운임제’의 확대적용을 요구한 화물연대의 파업에 대해 정부는 노동자가 아닌 집단의 불법파업이라며 파업을 방해했다. 현재 화물노동자를 위한 안전운임제는 존재하지 않고, 반토막난 운임과 사고우려 속에서 2024년 11월 화물노동자는 다시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건설노조에 대해 ‘건폭’이라 명명하며 사무실 압수수색과 노동조합 간부에 대한 체포로 탄압했다.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노동조합의 단체협상과정을 ‘공갈협박’이라며 기소했다. 노동조합이 체불임금 해소를 요구하는 집회를 하고, 건설현장의 안전을 지적했다는 것이 공소장의 내용을 구성했다. 이에 모멸감을 느낀 강원지역의 노동조합 간부 양회동 열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23년의 일이다. 현재 건설현장의 임금체불액은 역대 최고치이고, 현장의 노동안전은 불안하다. 윤석열 정부는 노동관계법 개정시도로 직접나서서 노동기본권의 후퇴를 시도하거나 노동기본권 향상을 위한 조직인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과 혐오조장을 통해 그들의 활동을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후퇴시켰다.

노동자는 그들의 ‘국민’이었나.
윤석열이 임기기간 중 한결같이 가슴에 새겼다는 ‘국민’에 노동자는 과연 존재했는가. 2023년 윤석열 정부가 쏘아 올린 소위 ‘시럽급여’의 논란에서 구직자들을 ‘꿀빨아먹는 백수’로 둔갑시켰다. 쪼개기‧단기간 계약의 증가와 경기불황으로 인해 실직이 코로나때 만큼 늘어났는데 이에 대한 대책보다는 반복수급을 문제삼아 실업급여의 상한액을 낮추고, 반복수급을 제한하는 법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일하다가 병들고 다친 노동자가 치료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들을 ‘나일롱 환자’라고 왜곡했다. 산업재해 당사자로 고통 받고 있는 노동자, 높은 산재 문턱으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있는 노동자 모두를 우롱한 것이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고, 노동자의 고용과 임금을 보장해야 할 헌법상의 의무가 있다. 또 최근에는 고용형태 다양화로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를 위한 지원법을 추진하겠다고 하면서 모호한 노동약자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이는 노동자간의 연대를 방해하고 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부정을 고착화 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그간 윤석열 정부는 플랫폼‧프리랜서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노조법 2‧3조 개정안에 대해 두 번의 대통령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다. 2025년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의 새해 첫 외부일정은 경제계‧기업인과 신년인사회를 하는 것이었다.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고용노동부 누리집의 멘트가 아득하게 느껴진다.
새해, 차별과 혐오 없는 모두의 노동세상으로
비상계엄이후, 각자의 공간에서 외쳐왔던 다양한 요구들이 광장으로 집중되고 있다. 제주에서도 매주 토요일 제주시청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고,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광장이 열리고 있다. 새롭게 시작될 민주주의는 시민이 안전하고 평화로운 세상, 차별과 혐오 없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언젠가 기고문을 통해 노동인권 수업을 위해 방문한 학교에서 노동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노동은 별’이라는 한 고등학생의 답변을 소개한 적이 있다. 별이 자신만의 빛을 내기 위해 반짝이는 노력을 하는 것처럼 노동자도 자신의 노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며 스스로의 삶을 일궈가는 노력을 하는거라는 답변이었다. 서로가 빛나는 광장이 만들어 지는 것과 같이 서로의 반짝이는 노동으로 차별과 혐오 없는 노동중심의 노동세상이 만들어지길 소망한다.
올 한해 ‘노동세상’ 지면을 통해 우리가 만들어 가는 새로운 노동세상을 함께 고민해 보았으면 한다.
김경희
‘평화의 섬 제주’는 일하는 노동자가 평화로울 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노동자의 인권과 권리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공인노무사이며 민주노총제주본부 사무처장을 맡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