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숙 올레길 편지] 6. 길 위에서 꿈꾸는 우리들

이 글은 사단법인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이 ‘서명숙의 놀멍 쉬멍 걸으멍 - 길 위에서 전하는 편지’라는 타이틀로 제주올레 공식 블로그에 연재 중인 올레길 단상입니다. [제주의소리]가 ‘서명숙 올레길 편지’라는 이름으로 소개합니다. 제주올레길을 걸으면서 누구나 길과 하나가 되어 가슴에 맺힌 상처나 갈등을 치유하고 평화와 행복을 누렸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습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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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그날이 다가왔다. 북서풍 매서운 날 올레길 종착지 종달바당(21코스 종점)에서 역방향으로 시작한 발걸음이 다시 그 바당을 지나 시흥리 시작점에 이르게 되는 날이. 이날은 김일환 제주대 총장, 여성학자 오한숙희 모녀 등 지인 몇몇과 동행하기로 했다.

헌데 갑작스레 참가자가 더 늘어났다. 출발 3일 전, 카톡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혹시 자기네를 기억하시냐고. 코로나 때 두 아이를 데리고 완주했던 캐나다 출신 교포이자 제주도 여자와 결혼한 캐서방이라고. 기억하고말고! 사진을 보니 그들 가족과 사연이 너무도 또렷하게 되살아났다. 헌데 완주증을 받고 2주 뒤 캐나다로 돌아간다던 그들은 다시 돌아온 걸까, 잠깐 다니러 온 걸까.

일요일쯤 꼭 찾아뵙고 의논할 얘기가 있다길래, 그날은 1코스 역올레 하러 길을 나서야 한다니까 자기네도 간만에 걸을 겸 시간 맞춰 광치기 해안으로 오겠단다. 뭐 어차피 걸을 길, 걸으면서 얘기도 나눌 수 있다면 일타쌍피, 꿩도 매도 잡는 격이다. 더군다나 캐나다–제주 커플의 완주 이후의 이야기도 궁금했다.

그러다 보니 3월23일 오전 10시 광치기 해안에 모인 일행만 무려 열한 명! 때마침 시작점에서 스탬프를 찍는 한 올레꾼에게 단체 사진을 부탁했다.

자, 이 따뜻한 봄날! 20대에서 60대 후반까지, 장애 비장애. 남과 여, 직업도 제각각, 출신지도 각기 다른 이들끼리 꼬닥꼬닥 놀멍 쉬멍 말 고르멍 걸어보게이!

1코스 광치기 해변, 역방향 올레를 하기 위해 모인 서명숙 이사장과 동행들 / 이하 사진=서명숙
1코스 광치기 해변, 역방향 올레를 하기 위해 모인 서명숙 이사장과 동행들 / 이하 사진=서명숙

모든 아름다움 뒤에는 슬픔이 있다

나는 튀르키예 작가 오르한 파묵의 팬이다. 튀르키예는 유럽과 아시아의 교차점에 있는 지정학적 특성 때문에 수많은 문명과 정치, 종교 권력이 서로 충돌하고 교차하면서 그 땅과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긴 세월 싸우고 지배하고 멸망하길 여러 차례!

그 결과 그 어떤 장소도 비극적인 사연이 깃들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그래서 이곳 출신 오르한 파묵은 말했다.

“모든 아름다움 뒤에는 슬픔이 있다”라고.

조선의 수탈, 몽골과 일본의 지배와 4.3의 광풍이 휩쓸고 간 제주도 전역이 그러하거니와 그중에서도 광치기 해안은 더욱 그러하다.

정면에서 보는 것보다도 더 인상적인 성산 일출봉의 옆얼굴을 보면서 걷는 광치기 해안의 풍경은 가히 월드클래스다! 하지만 그 풍광을 배경으로 벌어진 4.3 학살의 광풍은 바닷가 근처에 놓인 추모비와 마을 주민들이 세운 기념비가 웅변해 준다. 70년 넘는 긴 세월 흐른 뒤에 문자로만 읽는 데에도 가슴에 뻐근한 통증이 느껴질 만큼. 풍광이 눈부시게 아름다우면 그 대비가 서럽고, 날씨가 혹독하면 그날과 흡사해서 야속한 이곳!

1코스 광치기 해변, 서명숙 이사장과 캐서방
1코스 광치기 해변, 서명숙 이사장과 캐서방

허나 오늘은 그 슬픔은 가슴 깊이 꾹꾹 눌러 담고 이 풍광을 최대한 즐기기로 스스로에게 약속한다. 그래서 호기심 많은 캐서방과 마침 썰물 때라서 길게 걸어갈 수 있는 너럭바위 여의 끄트머리까지 최대한 걸어가 본다. 1살 때 부모 따라 캐나다로 이민 간 캐서방은 극적인 상황에선 영어를 먼저 내뱉는지라, “어매이징, 환타스틱” 온갖 영어 감탄사를 다 동원한다.

희나는 벌써 여러 번 완주한지라 잘 걷지만 그보다 어리고 걷기 경험이 전무했던 주연이는 가다 멈추기 일쑤다. 곽 선생과 내가 양손을 잡고 돌봄 선생인 오한숙희가 영차영차 등짝을 밀면서 수마포 해안 위쪽 길을 전진시키는데, 갑자기 캐서방이 뛰어오더니 숙희를 밀쳐내고 자기가 그 역할을 맡는다. 아, 우리 제주도 아이 양수은이가 참 좋은 신랑을 만났구나 싶었다. 수은이는 미장원으로 자수성가한 싱글맘의 극성스러운 교육열에 힘입어 도내 외국어고등학교에 진학했던 나름 수재로 꼽히던 여학생이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경쟁적이고 입시 위주인 학교생활에 염증을 느끼던 중, 너 이러다 옥상에서 뛰어내릴 것 같다면서 엄마가 먼저 미국 유학을 강권했단다. 그렇게 유타주로 유학 떠난 제주 소녀가 대학에서 사귀게 된 남친이 바로 캐서방! 23살에 결혼 허락을 받으러 귀국하자 엄마는 결사반대했고, 결혼식 불참은 물론 한동안 의절하고 지냈단다. 허나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장애를 대하는 캐서방의 태도를 보면 수연이는 좋은 선택을 한 듯 하다.

드디어 도착한 이생진 시인 시비 옆. 성산포를 너무나도 사랑했던 이 시인의 시비들 옆에 제주올레 우정의 길 산티아고 표지석이 나란히 서 있다. 그 근처에서 오한숙희 팀은 점심 식사를 하고 되돌아간단다.

제주올레 1코스 이생진시비거리에 설치된 산티아고 순례길 표지석
제주올레 1코스 이생진시비거리에 설치된 산티아고 순례길 표지석

이제부터는 어른들의 시간이다. 길은 성산 갑문–오늘은 어찌나 날이 화사한지 갑문조차도 거대한 설치미술처럼 보인다–을 지나서 시흥 종달 해안 도로로 이어진다. 도내 해안 도로 중 단연 두세 손가락 안에 드는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이곳! 오늘따라 비취색, 옥색, 코발트색 층층 겹겹이 다른 바다 빛깔이 유난히 아름답고 물새들도 평소보다 더 낮게, 더 사람 가까이 다가와서 나른다.

1코스 이생진 시비거리, 서명숙 이사장과 제주대 김일환 총장
1코스 이생진 시비거리, 서명숙 이사장과 제주대 김일환 총장

그곳 정자에 앉아서 잠시 간식과 수다 타임을 갖는다. 김일환 총장님이 밝지만, 단호한 표정으로 둘러싼 일행을 향해 한 말씀하신다.

“정말 걷는 게 명상이고 행복이고 힐링이에요. 무조건 학생들을 되도록 밖으로 많이 내보내야 한다고 전 생각 해요. 지난해에 1학년 한 클라스에 올레길과 자아 성찰이라는 1학점짜리 교양과목을 첨 개설했고, 올해는 10개 학과로 확대했습니다. 하지만 제 꿈은 제 총장 재직 기간에 제주대 대학생들은 올레길 서너 코스 걷지 않으면 졸업 못 한다는 제도를 도입하는 거예요. 무엇보다도 학생 자신을 위해서요.”

강남 영어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캐서방이 가장 열렬히 박수를 치며 김 총장의 비전에 동의를 표했다. 물론 우리 모두도.

종달리 마을은 다정하고, 알오름과 말미 오름은 여전히 우주 제1경

종달리 소금밭 근처 식당에서 점심 식사 후 총장님 일행은 오후 일정 때문에 제주시로 떠났다. 이제 당초 오늘 걷기로 했던 나와 곽진영 단장(예동 어린이 합창단)과 캐서방 커플 넷만 남았다.

맨 왼쪽부터 캐서방 커플, 서명숙 이사장, 예동 어린이합창단 곽진영 단장
맨 왼쪽부터 캐서방 커플, 서명숙 이사장, 예동 어린이합창단 곽진영 단장

그들과 함께 종달리 마을 길로 들어섰다. 제주도 북쪽 행정구역의 마지막 마을, 이름하여 마침내 종, 이르를 달 종달 마을이다.

이 마을을 지날 때마다 기쁘고 평안하고 뿌듯한 마음이다. 올레길을 내면서 내가 당초 꿈꾸었던 변화가 제대로 구현된 마을이기 때문이다. 크게 개발의 광풍이 몰아치지도, 환경의 파괴도 없이, 허나 마을엔 빈집이 줄어들고 생기가 넘쳐나기를!

그게 18년 전에 길을 처음 낼 때 인구 소멸과 자녀들 도시 이주로 곳곳에 오래 버려진 흔적이 역력한 마을의 빈 집들을 보면서 내가 떠올린 제주올레 길이 생긴 이후의 미래였고 소망이었다.

종달리! 이 마을의 지난 18년간 변화가 딱 그러하다. 뭐 떡 벌어진 대형 시설이나 높은 건물도, 바닷가에 흔히 들어서는 리조트 하나 들어서지 않았다.

2007년 9월 8일 1코스 개장식을 앞두고 방문한 우리가 음료수와 생수를 좀 넉넉히 준비해 두셔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더니 주인 아주망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승희 슈퍼도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올레꾼이 지나가면 언제든 들어와서 툇마루에서 쉬다 가라고 청하시던 마당이 예쁜 집도 그대로다. 그뿐인가.

당시 빈집이어서 내 마음을 아프게 했던 몇몇 집들이 그 집 높이와 모양을 오고생이(제주어로 '고스란히 그대로') 둔 채로 내부만 깨끗이 단장해서 카페, 기념품 가게, 작은 책방, 올레 민박집으로 동네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이게 진정한 마을 살리기가 아니고 무엇이랴!

1코스 종달리 마을
1코스 종달리 마을
1코스 종달리 마을
1코스 종달리 마을
1코스 종달리 마을
1코스 종달리 마을

너무 큰 자본이나 외부 투기꾼이 투자해서 높고 큰 건물을 지어서 풍광도, 마을 인심도 달라져 버린 몇몇 마을을 보면서 지은 죄도 없이 죄스럽고 무거웠던 마음이 종달리 같은 마을을 보면 한껏 가벼워지고 뿌듯해진다. 무릇 변화에 어떻게 응전할 것인가는 그 마을 주민들에게 달려 있는 법이다.

마음이 가벼우니 발걸음도 가볍게 알오름으로 향한다. 이 길을 걸을 때면 1코스 개장식 날이 떠오른다. 당시 인도네시아 쓰나미 긴급 구호 현장으로 떠나야 하는데도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개장식에 참가했던 긴급구호 활동가 한비야. 그녀는 360도 사방이 환히 트여서 정면으로는 우도와 성산 일출봉, 고개를 돌리면 구좌 오름 군락이 보이는 알오름 정상에서 특유의 속사포 같은 빠른 어조로 이런 말을 쏟아냈다.

“여기를 영주 십경의 1경으로 해야 해. 아니 대한민국 제1경. 아니 지구 제1경, 아니 아니 우주 제1경이야!!”

너무 뻥이 심한 거 아니냐고 지청구를 줬더니 그녀가 진지한 얼굴로 반박했다.

물론 지구상에는 여기보다 더 깊고 더 넓고 더 높은 계곡 폭포 사막이 있는 곳이 많지! 하지만 제주의 아름다움은 특별해! 뭐랄까 사람을 너무 편하게 하면서도 지독히 아름다워! 그래그래 만만한 아름다움이라고나 할까!”

아, 오늘도 알오름은 그 특유의 만만하나 지극한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고 있다.

1코스 알오름
1코스 알오름

이상하게도 올레길이 계속 마음에 남았어요

마침내 말미 오름. 그곳 정상 데크 공간에 앉아서 마지막 간식타임을 가졌다. 캐서방에게 드디어 맘속에 품어둔 질문을 꺼내 든다.

“아니 그때 제주, 한국생활은 끝내고 캐나다 돌아간다더니 어찌 된 거여요?”

그가 영어와 한국어를 마구 뒤섞으면서 대답했다.

“저는 너무 일찍 이민을 가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전혀 없었어요. 스스로 한국인으로 여기지도 않았죠. 다만 아내가 제주 출신이라서 아이들에게 그 뿌리, 근본을 체험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귀국 후 아내는 유학 중 결혼을 반대했던 친정엄마와 화해하고픈 마음에 제주에 아이들과 남고, 전 돈벌이를 위해 서울 강남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주말이면 아이들을 보러 제주에 내려왔어요. 기억에도 없는 한국이 낮설었고 제주도도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러던 중 코로나가 터졌고, 그 무엇도 할 수 없어서 하는 수없이 아이들과 올레길을 완주했어요. 완주 후 보름 만에 다시 캐나다로 돌아갔는데 이상하게도 올레길의 여운이 계속 이어지더라고요. 꿈속에서도 자꾸 그 풍경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했더니 아내가 깜짝 놀라더라고요.”

캐서방과 제주여자 양수은은 올레길을 아이들 교육현장으로 활용하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단다. 영어는 수단일 뿐, 아이들을 진정 행복으로 이끄는 건, 그들의 몸과 마음을 튼튼하게 만드는 건 올레길 걷기라는 것이 부부가 내린 결론이란다.

세상을 더 폭넓게 경험해 본 그들이 우리가 낸 올레길을 얼마나 멋지게, 더 진화된 방식으로 활용할지 기대된다. 이번 완주가 내게 준 또 다른 선물이자, 또 하나의 미래다.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

제주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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