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숙 올레길 편지] 8. 쉼팡이 되어준 길, 제주올레에서 다시 시작한 그녀

이 글은 사단법인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이 ‘서명숙의 놀멍 쉬멍 걸으멍 - 길 위에서 전하는 편지’라는 타이틀로 제주올레 공식 블로그에 연재 중인 올레길 단상입니다. [제주의소리]가 ‘서명숙 올레길 편지’라는 이름으로 소개합니다. 제주올레길을 걸으면서 누구나 길과 하나가 되어 가슴에 맺힌 상처나 갈등을 치유하고 평화와 행복을 누렸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습니다. / 편집자 주

누구 나눠주지 말앙! 너만 하영 먹으라이~

‘그녀를 만나는 곳 100미터 전’이라는 노래 가사가 절로 떠오른다. 연인도 아니건만 그녀와의 재회를 위해 제주올레여행자센터로 가는 발걸음은 가볍고 마음은 설렜다. 얼마나, 어떻게 변했을까? 그때는 언니랑 걸었는데 오늘은 서울서 내려온 남편과 걷는다고 했지!

그녀와 처음 만난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속옷까지 다 껴입고 나섰는데도 북서풍이 기승을 부리는 영등절을 앞둔, 2월 어느 날. 당시 나는 12월 말부터 나 홀로 시작한 역올레 완주를 띄엄띄엄 해 오던 참이었다. 그날의 코스는 서귀포에서도 가장 멀리 떨어진 축에 속하는 용수포구에서 무릉리까지 12코스. 속옷까지 오겹살로 중무장했지만 절로 몸이 오그라드는 맵싸한 날씨였다. 절경의 당산봉을 넘어서 남매의 전설이 깃든 수월봉을 내려와서 평지 농로로 막 접어드는데, 맞은 편에서 한 여성이 혼자 다가온다.

앗! 근데 너무나도 쓸쓸하고 외로워 보이는 얼굴이다. 올레길 걷는 여느 여성들과는 분위기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대체 무슨 사연을 안고 걷고 있길래? 실연을 한 건가? 실직을 한 건가? 누구를 떠나보낸 건가?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사진=이현주
사진=이현주

“혼자 걸으러 오셨나 봐요?”

그녀가 살짝 머리를 흔든다. 앗, 바로 뒤편에 또 다른 여자가 다가왔다. 언니란다. 아파서 내려왔단다. 폐암 수술을 받은 후 휴양차 석 달 살이를 하러. 한 달은 이 근처 고산리에, 나머지 두 달은 월정리에서 머문단다. 속으로 생각했다. 아, 왜 하필 이 겨울에 추운 중산간 마을과 바람 센 서쪽 끄트머리 바닷가야? 내가 누누이 강조하지만 겨울엔 따뜻한 남쪽나라 서귀포지! 하지만 어디까지나 맘속으로만! 암 투병 중이라니 마음에 쓰여서 그만 내가 이 길을 낸 사람이다, 그러니 부디 힘을 내서 찬찬히 완주하시라, 완주증은 미리 연락을 주시면 제가 직접 드리겠다고 장담을 하고야 말았다.

자매는 이 길을 도청에서 낸 줄 알았다면서 놀라워하고 신기해하고 반가워했다. 언니가 말수 없는 동생 대신에 완주를 약속하면서 동생을 부추긴다. 그런 애틋한 자매와 작별한 뒤 나는 수월봉으로 올라가는 자매를 내내 눈으로 뒤좇았다. 그녀의 슬픔이 젊은 날 찾아온 병마 때문이었구나, 부디 제발 길도 다 걷고 몸도 회복하기를! 그녀에게 완주증을 줄 수 있게 되기를!

그날의 장면들을 떠올리면서 약속한 제주올레 여행자센터 1층 카페로 들어서는데 저쪽에서 누군가 손을 흔들며 반긴다. 머릿속에 번쩍 불이 켜진다! 그 마른 풀잎 같았던 그녀가 지금 나를 향해 활짝 웃는 저 여성이라고? 창호지처럼 창백했던 안색은 구릿빛이 되었고, 홀쭉했던 볼은 탱탱해졌고, 침울하던 표정은 미소로 빛나고 있으니 두 달 전의 그녀를 상상하기 힘들 정도였다. 나의 놀라움은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 순간 두 배로 증폭되었다. 목이 쉬고 개미 소리 같던 그녀의 목소리가 그렇듯 야무지고 또렷할 수가! 내 놀라움을 눈치챈 듯 그녀가 서둘러 설명했다.

“그때는 수술 후유증으로 목소리가 제대로 안 나왔어요. 그래서 묻는 말에 대답도 못 하고, 언니가 대신….”'

아 그랬었구나! 그제서야 오늘 마지막 완주코스인 6코스를 함께 걸었다는 그녀의 남편이 눈에 들어왔다.

“기쁘시죠?” 그가 씨익 웃는다.

“그렇고 말고요. 너무나 기쁘죠!”

사진=이현주
사진=이현주

폐 절반 잘라내고, 폐활량 25% 잃고, 성대 마비까지

목소리가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그녀에게서 그동안의 사정을 제대로 들을 수 있었다. 평소 아픈 데라곤 1도 없이 건강하고 취미가 등산이었던 직장맘 그녀가 전이암에 걸려 바깥 출입을 거의 안 하시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단다. 언제는 무슨 일을 하고 무얼 배우고 하는 식으로 늘 계획을 세우면서 일분일초도 허투루 쓰지 않고 야무지게 살던 그녀에게 계획에 없는 일이 생긴 건 지난해 10월 중순.

해마다 하는 직장 종합 건강검진에서 폐 정밀검사가 필요하다는 소견이 나왔고 그냥 넘길까 하다가 동네 병원에서 폐 CT를 찍었더니 의사가 상급병원에 가보라고 해서, 일산 암병원으로 갔더니 영상을 보자마자 1기 판정! 그래서 12월 초 왼쪽 폐 절반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고 폐활량 25%를 상실했더란다. 수술도 수술이지만 후유증은 더 심해져서 성대가 마비돼 목소리도 안 나오고 음식물도 쉽게 못 삼키게 되었더란다.

다행히도 성대에 필러를 넣는 수술을 해서 의사소통은 가능해졌지만 쉰 목소리에 말하는 게 너무 힘이 들어 낙심천만이었단다. 집에는 전이증 암 환자 시어머니가 계셔서 케어 받을 수도, 그분을 케어할 수도 없는 상황. 직업도 시민단체에서 소비자를 상담하고 상담원들 관리하고 교육하는 것이 주업무인지라 업무 복귀도 불가능한 상황! 두 달간 요양병원 생활을 거친 뒤에 제주행을 결심했더란다. 갑작스레 암이 몰고 온 불안감, 상실감, 두려움을 떨쳐내고 원기를 회복시켜줄 것 같은 그 섬으로 떠나기로!

나와 만났던 날은 두 번째로 올레를 걷는 날이었단다. 첫날은 동생이 안타까워 동행을 자원한 친정언니와 말로만 듣던 올레길 14-1코스를 걸었는데 언니가 걱정을 엄청했더란다. 동생이 발을 끌면서 걷는 소리가 너무 자주 들려서. 그래서 이틀째 날은 반만 걷기로 하고 신도리 해안에서 출발했다가 오름 입구에서 나를 만난 것이란다.

그날 이후로도 그녀는 서울에서 내려오는 지인들과 걷기도, 혼자서 반주만 하기도, 아카자봉 함께 걷기도 하면서, 급기야는 클린올레에도 도전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스타일로 걸으면서 남편과 오늘 걸을 6코스만 남겨두었더란다. 그런 그녀에게 남편과 마지막 코스를 걸은 소감을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6코스는 10킬로미터라 길이도 짧은 데다 마지막 코스라서, 마치 마라톤 결승지점 테이프를 보면서 뛰어 들어가는 느낌이었어요. 걸을수록 힘이 난다고나 할까. 참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이현주 님과 제주올레 길을 동행한 가족, 지인, 올레꾼들 / 사진=이현주
이현주 님과 제주올레 길을 동행한 가족, 지인, 올레꾼들 / 사진=이현주
이현주 님과 제주올레 길을 동행한 가족, 지인, 올레꾼들 / 사진=이현주
이현주 님과 제주올레 길을 동행한 가족, 지인, 올레꾼들 / 사진=이현주
이현주 님과 제주올레 길을 동행한 가족, 지인, 올레꾼들 / 사진=이현주
이현주 님과 제주올레 길을 동행한 가족, 지인, 올레꾼들 / 사진=이현주
이현주 님과 제주올레 길을 동행한 가족, 지인, 올레꾼들 / 사진=이현주
이현주 님과 제주올레 길을 동행한 가족, 지인, 올레꾼들 / 사진=이현주

내가 받은 사랑, 행복 : 다른 이들에게 나눠주고 싶다

그녀와 나눈 이야기 중 백미는 마을 주민들에게서 받은 응원과 칭찬 이야기였다. 이틀간 길동무를 해 준 친정언니를 떠나보내고 처음으로 혼자서 산경도예에서 무릉생태학교까지 걷는 날. 넓디 너른 밭길만 이어지는 길에는 그날따라 사람도 없었더란다. 겨울에 또 푸르른 밭이 신기하면서도 외로운 마음으로 걷던 중 브로콜리를 수확하는 한 할머니를 만났더란다. 자기도 모르게 여전한 쇳소리 나는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더니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시더란다.

목소리가 안 나와서 목을 손으로 딱 붙잡고 “일산에서 왔어요. 몸이 아파서 목소리가 안 나와요.” 대답했더니 남아 있는 브로콜리를 건강에 좋은 거라고 마구 담아주더란다. 지퍼가 안 잠길 지경이 되어서야 손길을 멈춘 그녀는 누구 아무도 주지 말고 혼자서만 먹으라고 신신당부하더란다. 많으니까 나눠 먹으라는 말보다 활씬 좋아서 숙소로 돌아오는 내내 벙싯벙싯 웃음이 나오더란다. 많이 먹고 빨리 나으라는 제주할망의 덕담을 들은 것 같아서.

사진=이현주
사진=이현주

그녀가 들려주는 제주할망 스토리는 계속되었다.

19코스 클린올레를 하면서 걷는데 초등학교 옆 정자에서 야외용 버너 켜놓고 음식을 만들던 동네 할머니들이 수고한다면서 찰떡-제주에서는 지름떡이라고 한다–을 나눠주는가 하면, 찰떡 먹고 기운이 솟구친 그녀가 누군가 끼워 넣은 돌담 사이 물티슈를 집게로 꺼내는 걸 보고선 버스를 기다리던 할머니가 멀리서 큰소리로 마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청소해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건넨 이야기도 들려준다.

얼추 건강을 회복한 그녀의 계획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앞으로 남은 한 달 길에서 받은 치유와 행복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기 위해 클린올레를 하면서 걸을 계획이란다. 6월에는 서울로 돌아가서 다시 직장에 복귀도 할 것이고.

그녀는 마지막으로 힘주어 말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무조건 부지런히 계획적으로만 살지는 않을 거예요. 이제부터는 마음에도, 몸에도 쉼팡을 사이사이에 꼭 들이려고 해요. 가끔 내려와서 올레길도 걷고요.”

사진=이현주
사진=이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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