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숙 올레길 편지] 10. 올레길에서 제주4.3을 접한 프랑스 완주자
이 글은 사단법인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이 ‘서명숙의 놀멍 쉬멍 걸으멍 - 길 위에서 전하는 편지’라는 타이틀로 제주올레 공식 블로그에 연재 중인 올레길 단상입니다. [제주의소리]가 ‘서명숙 올레길 편지’라는 이름으로 소개합니다. 제주올레길을 걸으면서 누구나 길과 하나가 되어 가슴에 맺힌 상처나 갈등을 치유하고 평화와 행복을 누렸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습니다. / 편집자 주

줄리앙과 우연한 두 번째 만남
그를 처음 만난 건(내 기억으로는) 2024년 제주올레걷기축제 때 길 위에서였다. 한 외국 남자가 다가오더니 내게 서툰 한국어로 말을 걸어왔다. 프랑스 사람 줄리앙이라면서, 그리곤 세종학당을 다니면서 한국어를 배운단다. 아, 서울 사는 프랑스인인가 보구나, 지레짐작했다. 세종학당을 연세학당으로 착각한 탓이기도 했다. 마지막 날 폐막식에서 제주 토종밴드인 사우스카니발이 제주어로 만든 신곡 ‘이어도 사나’에 맞춰서 대안학교 별꼴학교 학생들을 비롯해 참가자들이 신나게 떼춤을 출 때, 그가 열심히 카메라를 들이대는 모습을 보았다. 어때, 한국인들 흥과 끼가 대단하지, 속으로 흐뭇해했음은 물론이다.
그런 그를 다시 조우한 건 또 길 위에서였다. 유엔에서 일하는 미국인 크리스틴과 그녀의 길동무 줄리아와 함께 축제가 끝난 뒤 우리끼리 호젓하게 18코스를 걷고 있었다. 헤니 프로젝트를 좀 더 세게 밀어붙이기 위한 동행길이었다. 불탑사 근처에서 신촌 닭모루 해안길로 내려가기 전 농로길에서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한 외국인 올레꾼과 마주쳤다. 아, 그 프랑스 친구였다. 두 번째 만남이었지만, 그는 적극적으로 말을 걸어왔던 첫 만남과는 달리 다소 우울한 표정으로 고개만 살짝 숙인 채 지나갔다.

다시 그를 만난 것은 제주올레여행자센터에서였다. 그는 올레길을 다 완주하고 완주증을 받으러 온 참이었다.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물론 둘 다 제2외국어인 영어로 아주 천천히(그는 한국어로 말하기가 아직은 힘들다면서 아쉬워했다). ‘얼마 만에 완주한 거예요?’ 라고 물었더니, 2023년 봄에 시작해서 4번에 걸쳐 제주에 와서 완주하게 된 거라고 했다. 아, 그때마다 서울에서 온 건가요? 아뇨. 저 프랑스에 살아요. 파리 드골공항에서 인천공항, 인천에서 김포공항, 김포에서 제주공항, 제주공항에서 서귀포로 와서 올레길을 걸었어요. 제주시는 너무 복잡해서 서귀포에 주로 묵었는데 성산포에서는 일주일 정도 묵었고요.
아니, 서울 아닌 프랑스 파리에서 2년 사이에 네 번이나 방문해서 끝내 올레길을 완주했단 말인가? 그것도 혼자서. 최근 2~3년 전부터 부쩍 외국인 올레꾼, 그것도 유럽의 올레꾼들이 늘어나는데 그도 그중 하나인 모양이다. 그를 올레길로 이끈 배경이 궁금했다. 유럽의 올레꾼이 제주로 유입된 경로는 대개 두 갈래였다. 하나는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여행 트레일 정보를 통해서, 다른 하나는 K드라마나 영화를 보다 한국과 배경에 등장하는 제주도에 호기심을 느껴서!

마음이 이끄는 대로 떠난 제주도, 그리고 제주 4.3
그러나 줄리앙의 경우는 둘 중 어느 쪽도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황당하고 즉흥적인 이유에서 제주를 찾은 경우였다. 여행을 즐기는 그가 본디 관심을 가진 곳은 일본 남부지방이었단다. 그런데 그쪽 지도를 살펴보던 중 서쪽에 있는 섬 하나가 눈에 들어오더란다. 이름이 jeju! 줄리앙의 애칭은 juju. 친구들은 DJ를 오래 해온 그를 j-jU라고 부르곤 했단다. 자기와 이름이 같은 섬, 심지어는 자기가 너무 좋아하는 화산섬이더란다. 직감대로, 마음이 이끄는 대로 가는 게 옳다고 평소 생각해온 그였는지라 일본 대신 제주도로 즉시 마음을 바꿔 여행을 온 거였다.
그리고 나선 구체적인 여행 일정을 짜면서 그 섬에 제주올레 트레일이 있음을 알아내곤 한라산, 성산일출봉과 함께 제주올레 길도 그 속에 포함시켰다. 처음엔 하루나 이틀 정도 걸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걷다 보니 저절로 그 길에 빠져들었고 어느 때부터인가 완주를 결심하게 되었더란다. 그러던 중, 그에게 아름다운 제주 경관보다 더한 감동과 충격이 찾아들었는데 제주올레 10코스를 걸을 때였다.

섯알오름에 올라서 예비검속희생자 추모비 영문표지판 앞에서였다. 그 표지판에는 해방 이후 이곳, 이 구덩이에서 어떤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는지 간단하게 그 개요가 사실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었다. 그 설명을 읽으면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고, 도저히 멈출 수가 없더란다. 한국의 광주5.18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제주4.3은 처음 접하는 학살 사건이었다. 이 아름다운 섬에서 이렇듯 끔찍한 집단학살극, 그것도 국가 폭력에 의한 일들이 벌어졌다니, 폭력은 시간과 국가와 인종을 불문하고 참으로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졌구나 싶었단다.
그때 그 순간부터 그의 뇌리 속에는 4.3이 깊숙이 자리 잡기 시작했더란다. 프랑스로 돌아가서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것도 한국 역사와 문화를 좀 더 알고 이해하고 싶어서였단다. 일하는 틈틈이 제주여행을 꿈꾸면서 4.3 자료를 찾아보곤 했다. 그런 그에게 올해 3월 또 다른 사건이 찾아왔다. 오를리 공항내 에어프랑스 메카닉(항공기와 엔진을 정비하는 정비사)들을 대상으로 한 전자도서관에서 음악 디렉터로 일하는 그는 평소처럼 책상 위에 쌓인 신간 도서를 보던 중에 앗, 표지 사진이 자신이 가본 곳으로 확 눈길이 가더란다. 성산 일출봉과 광치기 해안이었다.


얼른 책을 펼쳐들고 읽기 시작하는데 온몸에 소름이 돋더란다. 올레길을 걸으면서 처음 알게 된 그 4.3 이야기를 다룬 소설, 저자는 한강이었다. 그 한강 작가가 몇 개월 뒤에 노밸문학상을 받는다는 뉴스를 접하고서는 자기 일처럼 기쁘고 흥분되었다는 줄리앙.
내가 정작 더 놀란 것은 그가 ‘순이삼촌’을 거론했을 때였다. ‘삼촌 순이’도 읽었다 길래 처음에는 무슨 이야기인가 했다. 알고 보니 현기영 작가의 ‘순이 삼촌’ 이야기였다. “그건 불어번역본도 나오지 않았는데 어떻게 읽었나요? 현기영 작가는 어찌 알았나요?”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축제가 끝난 뒤에 제주올레 19코스를 걸어서 북촌마을로 들어갔을 때예요. 참으로 아름다운 바닷길을 20분쯤 걸어갔을까. 너븐숭이라는 표지판이 나오고 기념관이 나타나더군요. 들어가서 한참 동안 샅샅이 둘러봤어요. 이렇게 아름다운 마을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게 정말이지 이해가 가지 않더군요. 이곳에서 벌어진 일을 현기영이라는 작가가 ‘순이삼촌’이라는 제목으로 소설을 썼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삼촌은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제주 지역에서는 나이 든 어른에게 쓰는 호칭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거든요.”
그는 서귀포의 숙소로 돌아와서 인터넷에서 현기영 작가의 인터뷰 기사를 찾아냈고, 그가 그 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당시 군 보안사에 끌려가서 고초를 당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단다. 더 미친 듯이 인터넷을 뒤진 끝에 마침내 그는 제주대학교 석사학위 논문에 실린 어느 연구자가 영어로 번역한 ‘순이삼촌’ 81쪽짜리를 찾아내는 데 성공하곤 단숨에 읽어 내렸단다.
“81쪽에 불과한 단편이지만, 정말 어마어마한 걸작이라고 생각해요. 뒤늦게라도 이런 사실을 알게 되고, 공감하게 되어서 작가분들에게 감사드려요.”

그의 감사는 다시 길을 낸 사단법인 제주올레에게 향했다.
“올레길에서 처음으로 제주4.3이라는 용어를 접했어요. 전혀 몰랐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일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으니 이런 계기를 만들어준 제주올레에 감사드려요.”
17년 전 올레길을 처음 낼 때부터 나는 이 길에서 사람들이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독특한 지질, 깨끗하고 맑은 공기, 푸르른 하늘과 바다에만 감탄하길 바라지 않았다. 그 아름다운 풍경 뒤에 깃든, 숨어 있는 아픈 역사도 고달픈 해녀생활도 독특한 생활방식도 알고 이해하고 공감하기를 바랐다. 너븐숭이나 섯알오름, 소낭머리, 광치기 해안 같은 제주4.3 유적지를 부러 우회해서라도 들러가게 길을 연결한 것도 그래서였다.

이 길을 걸으면서 저 먼 나라 변방에서 일어난 국가 폭력의 역사를 알게 되고 그 관심으로 우리 작가들의 책을 읽고 감동하는 줄리앙.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고향에 내려와서 길을 내기를 참 잘했구나, 너무나도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