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숙 올레길 편지] 12. 올레지기의 역할은 어멍과 아방
이 글은 사단법인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이 ‘서명숙의 놀멍 쉬멍 걸으멍 - 길 위에서 전하는 편지’라는 타이틀로 제주올레 공식 블로그에 연재 중인 올레길 단상입니다. [제주의소리]가 ‘서명숙 올레길 편지’라는 이름으로 소개합니다. 제주올레길을 걸으면서 누구나 길과 하나가 되어 가슴에 맺힌 상처나 갈등을 치유하고 평화와 행복을 누렸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습니다. / 편집자 주

날씨가 좋아도 너무 좋은 날이었다. 흘러가는 구름조차 예술작품처럼 보이는 그런날. 눈이 부시게 하늘도 높고 푸르른 오후. 문득 내가 사는 서귀포 구도심과 가까운데도 자주 찾지 못하는 제주올레 길 8코스를 걷고 싶어졌다. 더군다나 며칠 뒤 육지에서 내려오는 한 단체의 회원들에게 제주올레 특강을 한 뒤에 그 코스를 같이 걸을 예정인지라, 점검 차원에서라도 미리 다녀올 필요가 있었다. 오랜만에 그 구간을 걸으면 가끔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길의 상태와 변화를 자세히 살피려면 동행 없이 혼자 가는 게 정답이다.
제주올레 길, 8코스에서 만난 그녀

시작점인 월평 아왜낭목에서 출발해 다정하고 오붓한 대포항을 지나서 언제나 감탄을 자아내는 주상절리 해안가에 앉아 잠시 멍 때리다가, 드디어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큰길을 건너간다. 데크가 깔린 계단을 제법 많이 올라야 하는, 나로서는 등반에 가까운 노력을 해야 하는 깔딱 코스다. 힘들 때마다 뒤돌아서서 내려다보는 마라도, 가파도, 송악산 바다 뷰가 그 노력을 보상해 주고도 남는다. 그렇게 올라간 베릿내 오름 정상에서 한라산과 바다를 동시에 즐기는 360도 파노라마 뷰를 한참이나 독점적으로 누린 뒤에 아쉬운 마음을 접고 능선 데크길로 내려섰다. 몇 발자국이나 갔을까. 맞은편에서 두 여자가 걸어온다.

처음엔 그저 역방향으로 걷는 올레꾼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한 여성의 차림새가 예사롭지 않았다. 전정가위 같은 작업 도구가 여러 개 꽂힌 가방을 허리에 차고 있다. 대체 뭐 하는 여성일까? 얼굴을 자세히 보려는 순간, 그녀가 먼저 큰 소리로 "어머 이사장님 아니세요?" 말을 걸어온다. 아, 그녀 로구나. 얼마 전까지 제주올레여행자센터에서 봉사자로 일하다가 제주올레 8코스 올레지기로 임명된 조정희 씨였다. 약속된 만남이 아닌지라 더욱 반가웠던 우리는 다시 베릿내오름 정상으로 되돌아가서 그곳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올레 이주자인 그녀는 조근조근 올레와 자신의 긴 인 연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센터에서 자주 얼굴을 마주친 사이였지만, 각자 할 일에 바빴던지라 그녀의 속사정은 처음 듣는 터였다.
서울에서 의류자영업을 종사하면서 누구보다도 바쁘게 살던 그녀는 올레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을 때 방송으로 처음 그 소식을 접했더란다. 12코스 와 14-1코스 개장 때는 첫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서 참석했을 정도로 처음부터 올레와 사랑에 빠졌더란다. 갱년기의 터널을 힘들게 통과할 무렵 어 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충분히 애도의 시간을 갖지 못한 충격까지 겹치면서 공황장애가 더 심해졌고, 그럴수록 올레길이 유일한 영혼의 휴식 처로 자리 잡았단다.
그녀는 공황장애 치료를 받던 중 어느 정도 상태가 호전되자 2019년 5월 제주로 6개 월살이를 하러 내려왔고, 처음에는 언제 서울로 돌아올 거냐 고 채근하던 지인들도 한결 밝아진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그녀의 제주살이를 차츰 이해하기 시작했더란다. 6개월 살이는 1년살이로, 다시 지금까 지로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그 사이에 1년 반 가량 올레센터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다가 제주관광대에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하면서 아쉽게 접었단 다. 그런 그녀가 찐올레꾼도 어지간해서는 되기 어렵다는 올레지기가 된 데에는 올레센터에서의 자원봉사자 이력이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단다.
그 어렵다는 올레지기가 되다니!
이쯤에서 올레지기에 대한 설명을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제주올레길에서는 27개 코스 올레길마다 오직 한 명의 올레지기가표식 관리와 길 검 검을 맡는다. 다만 추자도 코스(18-1, 18-2)는 섬의 특성상 2개 코스를 한 명의 올레지기가 맡고 있어서 올레지기는 모두 26명. 최소 보름에 한 번 썩은 자신이 맡은 올레길을 직접 걸으면서 올레꾼의 행복과 안녕을 책임지는 리본을 적절한 위치에 매달고 헌 리본을 수거하고 새 리본으로 교체한 다. 올레지기의 역할은 한마디로 길의 양육을 책임진 부모나 다름없다. 그래서 나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올레지기들을 그 코스의 어멍, 아방(엄마, 아빠의 제주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올레지기 제도가 처음 도입된 것은 2009년 탐사대 몇 명만으로는 길을 찾아내고 연결하고 보수 공사를 하고 무성한 풀을 예초하는 것만으로도 몸 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그러자 코스를 전담해서 관리하는 자원봉사자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코스가 새로이 열리기 전에 그 길의 탐사에 동행하면 서 도움을 주었던 토박이, 자기가 사는 마을에서 가까운 올레길이나 특정 코스를 사랑하는 지역민과 이주 올레꾼 중에서 리본 관리를 자청하는 이들 이 번쩍 손을 들었다.
그중에는 제주도내 명문고인 오현고 등반 동호회에서 올레길을 걸으러 왔다가 산 대신 올레에 푹 빠져서 15코스 고향 마을 올레길을 낼 때에 앞장서 서 길 찾기에 나섰던 김흥석(현 올레지기 회장)씨, 본인 입으로 '독실한 천주교인이면서 현실에서는 유복한 가정환경 탓에 살짝 나쁜 여자였지만 올 레길을 걸으면서 진정한 감사와 겸손을 배워 착한 여자로 거듭났을뿐더러 남편을 먼저 보낸 가눌 수 없는 슬픔조차 길에서 위로받은 사모님 출신 김 애숙씨는 출발부터 함께 한 원조 올레지기다. 크고 작은 갖가지 올레행사 때마다 본인이 직접 내린 커피를 보온병에 담아서 오름에서건 바닷가 정자 에서건 즉석 바리스타 노릇을 마다하지 않는 서귀포 전통의 중국집 '덕성원의 손녀딸 왕옥미씨, 지금은 잠시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육지 올레길 여 행에 열중하고 있는 택시운전 기사 출신이자 올레를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이름조차 개명한 강올레씨도 빼놓으면 섭섭할 올레지기다. (추자도 올 레의 시작과 끝을 다 책임지고 있는 김정일씨를 비롯해 또다른 올레지기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서 마음이 힘들지만, 스크롤 압박을 생 각하면 멈출 수밖에. 언젠가 그들에 대해서도 쓸 날이 있으리라).
살랑거리는 오름의 가을바람을 맞으며 제주올레 8코스 올레지기의 사연을 듣고 나니, 허리춤에 전정가위의 용도가 궁금했다. 탐사대도 아니고 웬 전정가위냐고 물었다. "어차피 코스 점검을 위해서 자주 걷는데 그때마다 삐죽삐죽 자라나서 자칫 사람들이 다칠 수 있는 가지는 보는 사람이 먼저 잘라줘야겠다 싶어서요. 그래서 주위분들에게 전정 요령을 배우고 가위도 종류별로 구입했는데 배낭에 넣으면 꺼내기가 번거로워서 아예 허리춤에 차고 다니는 거죠."
낡은 리본을 적절한 기간에 떼어내고 반짝반짝 윤나는 새 리본을 달아매고, 가끔씩 벌어지는 지자체나 마을 혹은 사유지 공사로 떼어내진 리본이 없 는지 점검하고, 자기 맡은 구간에 보고 사항이 발생하면 본부의 탐사팀이나 사무국에 알려주는 올레길을 양육하는 부모들! 이들의 역할은 이렇듯 공통적이지만, 올레지기 개인의 개성과 특기에 따라서 관리 스타일은 저마다 조금씩 다르다.

올레지기, 그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자기에게 행복과 위로를 가져다준 이 길에서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길이 올레지기라고. 그리고 리본을 매달다가 지나가는 올레꾼들이 고맙다고 인사하고 가는 그것만으로도 고생한 보람을 느낀다고. 그러니 올레꾼들이여! 길을 걷다가 나무에 매달려 동동거리며 리본을 매는 올레지기를 혹여라도 만나게 된다면 반갑게 인사해 주시기를! 마침 이 편지를 쓰려고 마음먹고 있던 중에 길을 걸으러 서울에서 온 지인이 내게 감동적인 장면을 목격했노라면서 한 올레지기가 까치발을 들고 애써 리본을 매달고 있는 사진을 보내왔다. 확인해보니 20코스 올레지기 문순열씨였다. 이 사진을 편지에 곁들일 수 있게 되어 어찌나 기쁜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