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수의 스마트소설] 34. 제주살이 온 서울 사람

‘2014년 4.3평화문학상 수상자’ 제주 원로 소설가 양영수 씨가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분량은 짧지만 반전과 여운을 남기는 꽁트 소설을 격주로 [제주의소리]에 연재한다. 일명 ‘양영수의 스마트소설’이다. 모바일 인프라가 널리 보급된 시기에, 스마트폰으로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꽁트를 독자들에게 소개한다는 취지다. [편집자 주]

청수 씨는 기껏해야 반 년 정도 제주도에 살았다고 했는데도, 제주도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았다. 우리는 한라산 등반 도중에 처음 만나는 날 이야기 물꼬를 트고서는 이것저것 화제를 넓혀갔다. 그는 산을 오르는 동안 제주도 구경 다닌 이야기를 풀어놓았는데, 그중에는 내가 몰랐던 것도 많아서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서울에서 왔다고 하는 청수 씨는 고사리철에 고사리를 채취하러 오는 육지사람들이 많음을 알고 있었다. 제주도 고사리처럼 맛있고 부드러운 고사리는 육지부에는 없다는 얘기였다. 제주도 식물에 대한 그의 박식함은 구상나무 군락지에 이르러 더욱 놀라웠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있는 것이 한라산 구상나무라는 정도만 알고있는 나로서는 이 나무의 우아하고 기품 어린 자태와 하늘나라에서 보내준 것처럼 신기하고 예쁜 모습의 열매 등 이 나무 명성의 내력이 서양에까지 알려져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제주도에는 육지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것들이 많습디다. 거칠은 돌과 바람이 많은 것조차 이 시대에는 귀중한 자연자원이라는 거 아닙니까. 제주도에 오면 어쩐지 딴 나라에 온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길가에 풀이나 나무들 종류도 다른 것 같고 시골의 농가 가옥들 모양까지도 다른 거 같단 말이죠. 서울사람들은 제주도에 오면 우리 대한민국 땅에 이런 곳도 있었구나, 반갑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데 여기 사람들 눈에는 서울사람들은 돈만 알고 모양만 내는 걸로 보인다는 건지, 심지어는 우리가 마치 외국인처럼 보여서 편을 가르는 것 같더란 말이죠.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게 있네요. 제주사람들은 얼굴 생긴 것도 독특하기 때문에, 외지에서 처음 만나도 제주사람들끼리는 동향인이라는 것을 알아본다는 말을 들었어요. 키가 좀 작고 얼굴모양이 둥그스럼하다든가 그랬어요. 바람에 하도 시달려서 그렇게 됐다는 말까지 있두만요. 

--제주사람들이 서울사람을 삐딱하게 본다는 건 다 옛날 이야기일 겁니다. 요즘엔 그런 말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육지출신들은 지금 제주도 인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면서 이 지역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제주대학교의 인기학과는 육지학생들이 대세이지요. 

--듣던 중 반가운 말씀입니다. 하긴 제주도는 외지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고, 제주도에는 외국에서 유입한 다문화 인구가 매우 많은데다가, 어느 한 나라에 편중되지 않고 골고루 여러 나라에 걸쳐있다 하니, 세상 보는 시야가 넓고 포용력이 있는 쪽으로 발전할 만하지요. 여기 와서 보니까, 박물관 미술관 같은 문화체험 인프라가 얼마나 많은지 놀랐습니다. 육지만이 아니라 바다와 하늘에서 즐기는 각 분야 스포츠활동 기회도 많더군요. 제주도는 이제 세계화 수준의 선두를 달리는 거 같애요.

--그 말씀은 제주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을 바로 짚으신 거 같습니다. 

그는 제주 해녀들의 활동에 대해서도 꽤나 많이 알고 있는 듯이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 

--제가 제주문화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진 것으로는 해녀 풍속이 있지요. 저승에서 벌어다가 이승에서 쓴다니 옛날 제주해녀들의 활발한 기상과 강인한 생명력을 짐작할 만해요. 저는요, 제주해녀들 물질하는 걸 보면서 한동안은 혼란스러운 상념 때문에 머릿속이 헷갈리는 느낌이었어요. 원래 여성적인 삶의 본분은 아름다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인데 제주 해녀들은 강인한 생명력에다가 자기 삶의 모든 것을 바쳤던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 거지요. 제주도 남자들은 여자들의 막강한 기세에 억눌려서 기를 펴지 못했던 게 아닌지 의문스러웠단 말이죠. 

--그건, 잘못 보신 겁니다. 제주남자들은 제주여성들의 강인한 생활력을 존경하면 했지 억눌리다니 번짓수를 한참 잘못 짚으신 겁니다. 

--말을 좀 바꾸면, 제주여성의 아름다움 자체가 강인함에서 나온다는 말이 나올 만 하지요. 지금 시대에는 해녀들 물질하는 것 자체가 아름답고 우아한 것으로 보는 것 같단 말입니다. 해녀문화를 세계만방에 홍보하고 기념행사 같은 것도 다각도로 열두만요. 요즘은 화가들 그림이나 보통 사람들 사진촬영 소재로도 해녀들 물질하는 모습이 많이 선정되고 말이죠. 제주도의 흥겨운 민요는 대개가 노동요라는 말도 생각나게 했지요. 

--노동을 연극이나 놀이처럼 즐겼던 것이 제주사람들의 생활사라 할 수 있지요. 

--생활이 각박하다 보니까 제주사람들은 자연보존보다는 경제개발을 더 중시하는 거 같더라고요. 무슨 숲 보존 운동이다, 군사기지 반대운동이다, 이런 민감한 문제에서 제주사람들보다도 육지사람들이 더 적극적이고 맹렬하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럴 리가 있나요. 제주사람들도 어떤 것이 소중한지는 알고 있습니다. 제주 섬의 당면문제는 제주사람들 손으로 풀어갈 겁니다. 개발론으로 말하면 서울사람들이 더 극성이지요. 대형 호텔이나 골프장, 바다 양식어장 같은 것으로 돈 버는 사람들 거의가 육지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그거야 기업가처럼 돈 벌려고 작심하고 들어온 사람들이겠지요. 아, 좋습니다. 제주사람들이 돈 버는 것을 방해하는 육지사람들도 있게 마련 아닙니까. 생존경쟁이 점점 심해지는 시대이니까 말입니다. 

워낙 민감한 화제여서 나는 더 이상 말하는 것을 삼갈 수밖에 없었다. 그 다음에 나온 화제는 정말 미묘한 것이었다. 제주도 역사에서 빈번하게 일어난 민란의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얘기가 나온 것은 우리가 점심식사를 시작하면서였다. 

--제주도 한달살이를 연장 연장 하다보니 이제 반 년이 지나고 있소. 그 동안 제주도 연구를 많이 한 셈이오. 한라산을 서른 번이나 올랐고, 이 지방 역사공부도 많이 했소. 어떤 지방사학자가 쓴 역사책을 보니까, 제주도는 역사적으로 민란이 특히 많았던 지방이라 했소. 중앙에서 내려온 관리들은 섬사람들이라고 해서 얕보기가 심했는지 특별히 압제와 착취가 심했던 모양이지요. 그렇다 보니까 제주 사람들은 국가권력을 곧 외지인 즉 육지사람들의 것이라고 봤던 것 같애요. 그랬으니까 육지껏이라는 말이 나왔겠지요. 내가 어디서 읽었는데, 4.3사건 당시 제주도 빨치산이 경찰과 토벌대에게 보여준 보복행위는 육지 어디서보다도 더 잔혹했다고 했소. 이건 한두 번 민란 가지고는 생길 수 없는 일이오. 난 이제 제주살이 반년이 지나는데, 육지껏 취급을 받을까 봐서 조마조마 할 때가 많았소. 불행했던 과거사의 상흔이 아직도 남아있어서 주민들의 정치성향에까지 영향이 크다고 들었어요. 

--제주역사를 잘 들여다보면 제주지역의 수난사를 알 수가 있을 겁니다. 옛날에는 얼마나 압박과 설움을 받았는지, 한마디로 육지사람들에 대해 열패감과 소외감으로 시달렸지요. 이전에는 육지 가서 제주사람이라고 말하는 거조차 삼갈 정도였지요. 육지 가서 제주어를 쓰는 것을 창피하게 여겼고 제주도 초등학교에서는 제주도 방언 아닌 표준어를 쓰도록 가르쳤지요. 요즘에는 달라졌습니다. 제주어 쓰기 운동이라는 것이 등장했고 제주어 활용 경연대회나 제주어 전용 방송 프로그램도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육지사람들도 한국어와 다른 제주어의 묘미를 알게 되었고, 제주어가 한국어를 풍부하게 만드는 자양분이 됨을 인정하는 거 같습니다. 이제 제주인들은 자신이 제주인임을 자부심과 자신감으로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하면서도 나는 청수 씨가 자기와 관계 없는 제주도 역사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갖고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준 것이 감사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수 씨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백록담을 내려다 보면서 도시락을 까먹을 때에도 나왔다. 

--김 형은, 백록담을 보면 생각나는 것이 뭐인가요.

--글쎄요, 이렇게 높은 곳에 연못이 있다니, 희한한 일이구나 하는 거지요. 선생님은 어떤 것이 생각납니까. 

나는 청수씨가 하도 아는 것이 많은지라 언제부터인가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나보다 한참 연상일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난 설문대하르방도 칭찬 받을 일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나지요.

--네? 설문대하르방입니까. 설문대 할망은 들어봐도 설문대하르방은 못 들어봤는데요. 

--제주도 사람들이 대개는 그렇더라니까. 난 어떤 젊은 신화작가의 작품을 읽어보게 되어 설문대하르방 얘기를 알게 되었는데 대부분의 제주신화책에서는 이 부분이 없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소. 내가 읽은 스토리에서는 제주도의 산야에는 설문대할망 작품과 설문대하르방 작품이 구분되어 나와있었소. 백록담이나 탐라계곡처럼 오목한 것들은 하르방 작품이고 산봉우리나 많은 오름들처럼 볼록한 것들은 할망 작품으로 나와 있었소. 재밌지 않은가요. 남성과 여성이 그리워하는 것이 이렇게 다르다는 거요.

--오름들 중에는 볼록한 것만이 아니라, 분화구가 있어서 오목한 것도 있는데요.

--그러니까 오름들도 한 가지가 아니라는 거지요. 작품 만든 것이 할망신이냐, 하르방신이냐에 따라 다르니까 말이죠. 제주도 오름들 구경 가서는 그런 얘기하면서 화제도 다양하게 나올 텐데 제주사람들은 그런 걸 통 모르더라니까.

--그런 얘기 좀 더 들어볼까요. 

--제주도에 비가 많이 오면 물이 하천으로도 흘러가지만, 숨골이라는 구멍이 있어서 많은 물이 스며드는데, 하천과 숨골 어느 쪽이 더 많은 물을 간직할까요.

--하천으로 흘러가 버리면 결국은 바다로 가버리니까 없어지는 것이고, 지하수 물탱크에 간직하려면, 숨골로 새어들어가는 쪽이 더 좋겠지요.

--할망 하르방 두 창조신의 제주도 창세신화에는 어떠냐 하면, 보일락 말락하는 구멍인 숨골 구멍 쪽은 설문대할망 작품이고, 물이 크게 흐르는 계곡이나 하천은 하르방 작품이오. 계곡이나 하천은 힘센 남자라야 만들 수 있으니까요. 숨골로 내려가서 저장된 지하수 물이 먼 미래에는 이 땅의 소중한 재산이 될 것을 할망신이 내다 본 거요. 여다의 섬 제주도의 여성은 남성보다 더 똑똑하다는 걸 멋지게 빗댄 것이오. 

--다른 스토리 재미있는 건 어떤 것이 있든가요. 

--제주도를 돌아다녀 보니까 북쪽 해안의 구조가 남쪽 해안하고 크게 다른 것을 알겠더라고요. 남쪽 해안은 급경사가 많고 그러다 보니까 해안 풍경에 절벽이나 폭포도 많다는 거지요.

--맞아요. 정방폭포에다가 천지연이나 천제연 폭포 3형제가 있지요. 해안 풍경 다른 것도 여성신이 더 똑똑했다는 것과 관계 있나요?

--실지로 그렇다는 거요. 하르방신은 자기 힘자랑을 하느라고 제주섬을 북쪽에서 남쪽으로 밀고 내려가는데, 할망신이 가만히 보니까, 제주섬은 넓은 바다를 눈앞에 둔 현재의 위치가 딱 적당하다고 생각한 거요. 더 이상 내려가면 대륙과의 거리가 너무 멀어진다는 거지요. 그래 가지고 제주섬의 해상 이동을 급정지 시키다 보니까 지금과 같이 남쪽 해안은 급한 경사 지형이 많아진 거라는 거요. 

--그거 재미있는 스토리네요. 

--설문대할망이 등장하는 창세신화에서 제일 아쉬운 것이 남성신 여성신 간의 러브스토리라고 해요. 세계의 창세신화를 둘러봐도, 그 민족의 역사가 전개된 자연환경이 만들어지는 창세신화 스토리는 모두 남성신과 여성신의 사랑 이야기라는 겁니다. 사랑이 없는 창조는 없다는 거지요. 제주의 창세신화도 이런 러브스토리가 있어야 제주의 무속신화하고도 앞뒤가 맞아들어간다는 겁니다. 제주의 무속신화는 여성의 힘이 남성보다 강한 것으로 나오는 게 특징인데, 이건 남성중심의 한반도 신화하고 대비가 된다고 해요. 이런 독특한 사실과 부합되려면 제주의 창세신화에 남녀신의 협업과정, 여선신이 우월한 존재인 스토리가 들어가야 된다고 하더라고요.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은 사랑하는 남성신과 여성신의 협동과 소통 과정을 그 안에 담고 있었다는 걸 보여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누가 이걸 믿으라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거 말이 되네라는 정도의 공감을 일으킨다면 성공이라는 겁니다. 

--신화는 자연발생적으로 나와야 되는 거 아닌가요.

--어떤 사람이 신통한 신화 이야기를 전할 때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공감하면 그것이 자연발생적이 되는 거 아닙니까. 제주도 여성의 강인함이 신화에 나타나면 그거야 말로 역사가 신화로 발전하는 자연발생 코스 아닙니까.

며칠 후 나는 아침 신문에 난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 신문 기사에 의하면, 제주도에 제2공항을 만드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열었던 공청회가 일부 극렬한 참가자들에 의해 난장판으로 끝났다는 것인데, 기사에 실린 사진 하나가 나의 눈길을 끌었던 것이다. 극렬한 참가자들 중에 일부 폭력을 행사한 이들이 경찰에 의해 연행되는 장면이었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은 분명히 내가 한라산에서 만난 청수 씨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가 자연환경 보존을 위해 신공항 건설에 반대하는지 어떤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끝내 알 수 없었다. 서울 사람인 그가 제주사람들 걱정을 하여 이런 문제에까지 관여하다니, 내가 청수 씨에게 보여 주려고 했던 제주사람들의 자신감과 자존심이라는 것이 그에게는 가소롭게 보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머쓱한 기분이 되었다. 제주살이 온 외지인들이 진정한 협력자인지 모르겠다는 말이 생각났다. 외지인들은 아직도 제주사람들의 역량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인지. 그들이 제2공항 반대자이든 찬성자이든 우리들과는 다른 이방인으로 보이다니, 그들과의 이질감은 오래 없어지지 않을 것이 어쩌면 우리 자신의 문제가 아닌가도 생각되었다. 제주도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과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같은 생각일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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