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제주 강정마을회 강동균 회장

강정의 마을풍경은 제주도 여느 농촌마을과 다를 바 없이 평화롭기 그지 없습니다. 마을로 들어서니 나무 가지마다 이제 수확을 기다리는 샛노란 감귤들이 탐스럽게 달려 있습니다.

얕은 지붕을 하고 담벼락을 서로 맞댄 이웃집과  먹을 것을 서로 나누던 어린 시절이 생각나서 괜시리 정겨워지는 그런 곳입니다.

▲ 강동균 회장님 단식을 끝낸 후라 많이 야위었습니다. 제가 우스개 소리로 한 인물 하셨겠다고 하니 시골농부인데요 뭐... 하며 웃으십니다.
ⓒ 강충민

적어도 마을 곳곳에 세워져 나부끼는, 노란 감귤을 닮아 더욱 슬픈 선명한 이 깃발만 없다면 말이지요. 

'해군기지 결사반대.'

토요일 저녁 가족들과 밥상머리에 앉아 두런두런 얘기를 해야 할 시간에, 혹은 감귤수확을 마치고 몸을 씻고 고단한 행복을 맛보아야 할 시간에 마을회관을 지키고 있는 그를 만나러 갔습니다. 바로 해군기지 설치 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는 강정마을회 강동균 회장님입니다.

보름간의 단식.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단식(斷食).

말 그대로 음식을 끊는 것입니다.

강회장님은 강정마을의 제주해군기지 철회를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해 왔습니다. 그러다 마을 주민들과 주변의 간곡한 권유로 보름간의 단식을 해제했습니다. 회관에 들어서자마자 현재의 몸 상태부터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많이 괜찮아졌습니다. 단식농성 할 때에는 정말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지요. 그런데 참 이상한 게 일주일을 넘기면서 식욕이 사라지대요. 식욕이 사라지니까 오히려 정신이 맑아지면서 한 가지 생각 즉 우리 마을 해군기지 철회 그것만이 머릿속을 지배하게 되더군요. 그러다 숨죽이듯 어둠이 오면 조용히 그동안의 나를 되돌아보고... 일테면 내가 여태껏 살면서 남에게 아프게 한 적은 없었나... 그리고 어머니, 각시, 아들들을 생각하면 주책없이 눈물이 흐르더군요."

▲ 왜 그를 단식하게 했을까요? 달변은 아니지만 잔잔한 울림이 있습니다. 묻고 싶습니다. 왜 그를 단식하게 했을까요?
ⓒ 강충민

그 말을 마치며 그는 잠시 허공을 바라봅니다. 목이 메어 채 말을 잊지 못하고 짐짓 헛기침만 반복합니다.  그러다 눈시울이 젖은 채로 비로소 말을 잇습니다. 아주 담담하게 얘기했지만 그 말은 그 어떤 함성이나 구호보다 강한 울림이 있었습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습니다. 찬성을 하는 쪽이나 도정은 너무나 편안하게 일을 하지만 우리는 정말 사생결단 아니면 안 됩니다. 그 만큼 절박합니다."

도청은 너무 높더라. 계단에서부터...

"단식을 하면서 주위가 조용할 때 비로소 도청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도 생겼지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주변 관공서 중에서 유독 도청 계단이 너무 높더군요. 그래서 정문에서부터 도청을 보면 항상 우러러 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더군요."

말뜻을 잠시 헤아리다 순간 무릎을 탁 치게 되었습니다. 그랬습니다. 누구나 도청정문을 지나 청사로 들어가기 위해 가파른 계단을 오를 때마다 느끼는 거북함이 낮은 자세로 임하지 않고 위에서 군림하려 하는 현재 제주도정의 모습을 그대로 나타내는 정말 적절한 비유였습니다.

"대화를 했다는 것은 시늉이에요. 그리고 강정마을 주민들과의 고소, 고발을 취하한다고 했지만 그런 것 없습니다. 지금도 진행형이에요. 그런데 한 편으로는 자신의 정치적 욕망을 위해 여론몰이를 하고 장밋빛 청사진으로 유혹하는 현 도지사의 모습을 보면서 측은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과연 이런 사람이 제주도민의 손으로 뽑은 제주도 지사가 맞는지...?"

▲ 작은 아들의 글 설명하지 않아도 울컥하는 아들의 응원 글입니다. 단식하는 아버지를 곁에서 지켜봐야 하는 아들의 심정은 어땠을 까요?
ⓒ 강충민

어린 시절 꿈... 그리고 그를 지탱하게 하는 힘. 가족

참 아이러니 하게도 그의 어릴 적 꿈은 군인이었다고 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까지도 사관학교를 참 가고 싶어 했답니다. 하지만 그의 가족사 역시 제주도의 암울한 역사에서 비켜 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상검증을 통과한다는 것은 이미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참 많이 방황도 했고 특히 다섯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제주말로 홀어멍으로 그를 키운 어머니의 속을 많이 끓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를 선택하지 않았던 나름대로의 군인관(軍人觀)은 지극히 평범하고 어쩌면 정의감과 일맥상통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군인이란 국가를 지키는 일 뿐만 아니라 이 땅에 같이 호흡하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같이 말 그대로 민생을 같이 아울러야 된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지금 해군기지 문제를 보면서 참 어린 시절 가졌던 꿈마저도 회의가 들어요. 그런데 제가 만약 사상검증의 하자 없이 정말 군인이 되었다면 어쩌면 지금의 제 입장의 반대편에 서서 무자비하게 여론을 호도하고 옥죄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끔찍해요."

그 말 후에 잠시 정적이 흘렀습니다. 다시금 잔인하게 슬픈 역사를 들춰내어 힘들게 한 저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그는 무심코 생각난 듯 방명록을 꺼내었습니다. 순간 그의 얼굴에 생기가 돈다고 느껴졌습니다. 그 방명록에는 놀랍게도 그의 아들들의 아버지를 향한 무한한 사랑과 존경심이 가득 담긴 글이 있었습니다.

▲ 큰 아들의 응원글... 아버지를 사랑하는 아들, 그리고 존경받는 아버지... 이 글을 읽는 순간 주책없이 눈물이 나와 5분동안의 정적이 흘렀습니다.
ⓒ 강충민

아버지 옆에서 큰 힘이 되어 주지 못해 많이 죄송스럽습니다. 끝까지 아버지 옆에서 응원하겠습니다. 아버지 힘내세요. 강정마을의 평화를 위하여. -작은 아들-

해군기지 절대 반대 독재정치 절대 반대 아버지가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언제나 항상 아버지를 응원하고 존경하겠습니다. -큰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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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줄을 띄웠습니다. 두 아들의 글을 읽는 순간 저도 모르게 바로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이 느낌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없기에 아무 말 없이 눈물이 흐르던 시간의 표시입니다.)

"가족들에게 참 미안하죠. 특히 제가 다섯 살 때 혼자 되신 어머니에게는... 본의 아니게 불효를 하죠.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합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아무 말씀 없으시지만 속이 타들어 가겠지요. 각시는 집안일은 걱정하지 말라고... 꼭 막아 달라고, 항상 힘내라고 하고요. 새삼 고맙고 미안하고 자랑스럽고... 특히 우리 아들들이 아버지가 자랑스럽다고 말을 할 때는 힘이 나죠. 기필코 강정을 지키고 제주도의 평화를 지키겠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환경단체를 비롯한 모든 분들에게도 정말 고맙습니다. 그냥 나하고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신경 안 쓰는 세상에  모든 고마운 분들에게 다 빚을 지고 있습니다. 살면서 다 갚아야지요. 그동안 저는 얼마나 주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는지 반성합니다."

강정마을 지키기, 제주의 미래

"우리 강정마을은 400년된 마을이에요. 마을이름 강정(江汀)에서 알 수 있듯이 예로부터 물 좋고 토질 비옥하고... 그래서 공동체의식이 강하고 결속력이 뛰어난 마을이에요. 환경부가 자연생태우수마을로 지정을 했구요. 그런데 여기에 해군기지가 들어서요. 이건 발전이냐 정체냐 문제가 아니에요. 보상받고 지금 당장 조금 생활이 윤택해진다고  미래를 포기하는 무책임한 행동을 하지 말자는 거지요. 10년, 100년 후를 바라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말자는 얘기이지요. 그리고 이건 우리 강정마을 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평화의 섬에 해군기지라니요? 그냥 단순하게 초등학교 1, 2학년 아이들도 확실한 답을 알고 있는 거잖아요. 제주도정에 정말 묻고 싶은 게 있어요. 해군기지만이 제주의 미래인가요?."

강정마을 회관을 나섰습니다. 회장님도 따라 나오십니다. 마을 여기저기에는  해군기지 결사반대를 외치는 노란 깃발들이 제주바람에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이제 강정마을에 노란 깃발이 모두 걷어지고 비로소 온전한 감귤색으로 채워져 다시금 평화가 깃들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꿈은 꾸지 않습니다. 이미 그는 다시 신발 끈 질끈 동여매고, 두 발 굳건히 현실에 발을 디디고, 온 몸으로 막아내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철회는 멀지 않은 것을 똑똑히 알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제주참여 환경연대 11월 소식지에도 실린 글입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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