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박사 경제보고서] 외자 못지 않게 마을재발견도 중요하다

불교계에서는 매년 음력 4월 보름 선승(禪僧)들이 석 달간 선원 문밖출입을 끊고 참선수행에 매진하는 하안거(夏安居)를 시작한다. 안거란 부처님 당시 인도의 우기(雨期)에 수행자들이 외출을 금하고 일정한 장소에 모여서 단체로 수행하던 전통에서 비롯된 수행방식이다.

조계종 종정 법전스님은 올해 하안거를 맞아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가"라는 법어(法語)를 발표했다. 법전스님은 당나라 때 조주스님에 얽힌 '조주탐수(趙州探水)'라는 화두를 인용했다.

‘조주탐수(趙州探水)' 란 조주(趙州)스님이 방 안에서 "물 깊이를 잰다"며 여기저기 주장자(지팡이)를 짚으며 왔다 갔다 하자 수유화상이 "여기엔 한 방울의 물도 없거늘 무엇을 더듬는다는 말입니까?"라고 하였는데 조주스님은 주장자를 벽에 기대놓고서 말없이 방에서 나가버린 일화에서 유래한다.

나는 요새 2009 서귀포시 글로벌아카데미 강좌를 열심히 듣고 있다. 알찬 내용들이 많다. 얼마 전 안덕면사무소에서 개최된 강좌는 경남 남해 '다랭이마을' 김주성 추진위원장의 강의였다. ‘다랭이 논’ 이란 45° 비탈진 경사에 석축을 쌓아 만든 계단식 논을 말하는 것으로 제주어로는 돌랭이 논이라고 하는데 제주에는 서귀포시 예래마을 밤밭골 지경에 광범위하게 분포하였었다. 

경남 남해 '다랭이마을'은 설흘산이 바다로 내리지르는 45° 비탈진 경사에 석축을 쌓아 108층이 넘든 계단식 논을 일구어 벼와 마늘을 주작목으로 하는 보잘 것 없는 농촌 마을이었다. 그런 이 마을을 다랭이논(계단식논)을 활용한 농촌테마마을로 만들어 현재 연간 20만여 명의 관광객들이 다녀간다고 한다.

▲ 다랭이 마을 전경

나는 이 강의를 들으면서 요즘 예래휴양관광단지 조성으로 분주한 서귀포시  예래마을이 생각났다. 예전에는 이 예래마을 밤밭골 지경(중문관광단지 중문골프장과 인접한)에 다랭이마을 못지않게 계단식 논이 많았다.

예전부터 논(水畓)의 적어 논농사가 전체농사의 2% 미만에 불과했던 제주에서도 강정, 법환, 하논(大畓), 외도, 한경, 명월 등과 함께 예래지역에서도 오래 전부터 논농사(나록, 水稻)가 유지되어 왔다.

제주지역의 벼농사는 13세기 후반 삼별초의 군항이 설치되었던 귀일과 명월에서 1차 확산이 일어나고 명월을 중심으로 해서 14세기 초에는 예래지역으로 확산되었다. 즉 여몽(驪蒙) 연합군과의 항전에서 패배한 일부 삼별초들이 중앙 통치력이 다소 약하게 미치는 한라산이남 지역으로 도피하였는데 이들은 물이 풍부하고 역사가 깊은 예래지역에 정착하여 벼농사 기술을 전파시킴으로써 예래지역이 2차 확산의 중심지가 되었던 것이다.

이후 예래지역은 비교적 풍부한 수량을 가진 하천, 용천 등이 있어 제주도 타 지역에 비해 활발히 논농사를 지어왔는데 ‘생수’에서 시작하여 ‘고냉이통’을 거쳐 ‘밤밭골’, ‘논짓물’에 이르는 지경에서 오래 동안 논농사가 지속되어 왔다. 특히 ‘밤밭골’ 지경에는 단애사면을 따라 20~30평정도의 계단식 논들이 즐비하였다.

▲ 중문관광단지내 중문골프장전경(사진 오른쪽하천이 밤밭골 지경임)
일본의 경우 이러한 계단식 논을 문화재로 지정하여 그린관광의 명소로 개발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다랭이마을’ 외에 계단식 논을 자연문화재로 지정․보존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 즉 경제성장과 지역경제 활성화가 반드시 대규모 투자유치와 수도권 기업유치, 대규모 프로젝트사업 등이나 대규모 해외자본과 기술, 마케팅 능력을 갖춘 선도기업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다고 다른 경제주체들은 자연, 문화, 마을자원을 포함한 제주의 무한한 경제활동기회에 손 놓고 있어도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한 이러한 대규모 대외자본에 의존한 경제활성화 전략은 부침성이 커 경기변동에 민감하고 지나치게 외부 의존적이며 지속가능성에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결국 경제성장과 지역사회개발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에 의한 국토개발 및 경제성장전략 수준의 거시적 접근과 함께 주민주도에 의한 마을단위, 공동체 단위의 미시적 접근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우치게 된다.

한편 이번 강좌에서 희망제작소 원기준 연구위원은 마을은 보물로 가득 차 있으며 역사·음식·생태·환경, 기타 전통 놀이문화·마을행사 등 다양한 문화적 자원들이 있다고 하면서 이를 재발견하면 훌륭한 ‘마을만들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농원을 찾는 관광객수가 연간 150만 명에 달하고 매화나무 하나로 마을 전체를 먹여 살리는 ‘청매실농원’ 홍쌍리 대표는 제주는 돌담이 많은데 그 밑에 각양각색 밭주인, 집주인의 취향에 맞게 채송화, 봉선화, 민들레, 씀바귀, 붓꽃 등 한국적인 꽃들을 심어 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이에서 보면 건전한 지역사회 개발은 지역주민의 주도적 참여와 소득 내실화, 고용확대 및 안정이 최우선으로 되어야 하는 데 이를 위해서 대규모 외자유치를 통한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들과 함께 제주마을의 자원 특히 역사·문화자원에 대한 ‘재발견’이 시급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대부분 모든 강좌에서의 공통된 강조점은 ‘주민 힘으로’ 라는 것이다. 즉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주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바탕으로 하는 주민주도형 사업이 필수적이며 그럼으로써 제주 관광산업에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지평을 확대하는 효과가 크며 주민소득창출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 진관훈 경제학 박사 ⓒ제주의소리
일례로 일본의 유바리시는 관주도형으로 한때 일본 내에서 최고의 관광지로 급부상하다가 지금은 흉물스러운 시설물들만 방치된 폐허가 된 채 지난 2006년 일본 지자체에서는 처음으로 파산했다. 이는 자본과 건설에 의존한 과도한 마을 만들기로 주민참여 없이 관주도로 '주민이 살기좋은 마을'이 아닌 '살기좋아 보이는' 마을을 추구했으며 부정부패가 난무하고 이를 견제할 세력의 부재가 가져온 대표적 실패사례이다.<제주의소리>

<진관훈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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