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 스님의 편지] 세상과의 단절은 또 다른 나의 시간

눈 속에 묻힌 선래(善來)왓  ⓒ제주의소리 / 사진=오성 스님

눈이 며칠째 쉼 없이 내립니다.
얼마 전 온다던 지인
전화로 이곳의 상태를 묻더니 다음에 온다고 합니다.
세상과의 단절

또 다른 나의 시간이 시작됩니다.
옷 두껍게 입고 빵모자 눌러쓰고 목이 긴 장화 신고
작은 마을길을 돌아 또 다른 세상 들녘으로 나섭니다.
동네 강아지들도 모여 어디론가 길을 나섭니다.
저들에게도 그들이 가야할 세상과 만남이 있나 봅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동쪽 너른 들에 도착하면
몸은 따뜻해져
흩날리는 눈바람도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생강차를 끓여
그 향이 방안 가득 채워질 즈음
유리창 넘어 마당에
그림처럼 참 오랜 된 벗이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휴休  ⓒ제주의소리 / 사진=오성 스님

“차가 안다닌다던데”
“버스타고 큰 길에서 내려 걸어서 왔죠.”
그랬습니다. 자동차에 익숙한 문화에서
차가 못가는 곳은 사람도 못가는 곳이 됐습니다.
차의 편리는 딱 그만큼의 사람관계를 한계 지었습니다.
세상의 시간보다 더딘 사람만이
또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벗은 돌아가고
방안 가득 따뜻한 사람의 온기가 남았습니다.

<글.사진=오성 스님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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