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기 칼럼] 세계 7대경관 추진, 뭔가 찜찜하다

 제주도 전체가 세계 7대 경관 선정을 위해 ‘올인’하는 분위기다. 행정당국은 물론, 경찰, 금융기관 등을 비롯해 도내 모든 기관 단체들이 나서고 있다. 감귤가격 동향이나 관광객동향을 제공하던 저녁뉴스 오프닝 화면도 모방송사의 경우에는 아예 7대경관 투표 현황으로 바뀌었다. 언론은 대통령과 국내 다른 자치단체장도 투표에 참여했다며 사진과 함께 보도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아예 별도의 TF를 구성했다며 정부차원의 적극 공조도 이뤄지고 있음을 시사했다. 해외동포들의 반응도 뜨겁다는 소식을 포함해 7대경관 관련 소식이 연일 신문지면에 오르고 있다. 서귀포시에서는 요즘 누구나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이른바 ‘QR코드’를 마케팅 기법으로 도입해 스마트폰으로 투표가 가능하도록 했다며 보도자료를 낸 것 같은데, 이게 도내신문에서 꽤 비중있게 다뤄지기도 했다. 선거때 빼고는 지역일에 별 노력을 보이지 않던 도내 정당도 추진본부까지 구성하며 가세하는 양상이다.

 들리는 바로는, 지난 13일 제주에서 열린 범국민 추진 선포식에 이례적으로 외신기자들이 대거몰렸다는데, 그 사실만으로도 결과와 상관없이 7대경관 추진 자체가 제주를 알리는데 꽤나 기여할 듯 보이기도 한다. 정운찬 전 총리는 선포식에서 “그 브랜드 가치와 경제적 파급 효과는 경제학자 입장에서 봐도 상상을 초월한 일대 사건”이라며 한껏 분위기를 고조시키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걷기 열풍을 불러온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도 “제주섬의 가치를 전세계에 알릴 기회”라는 응원메시지를 보내왔다고 소개하고 있다.

 물론, 필자도 제주의 가치를 알리고 이를 매개로 제주의 발전을 가져오도록 하자는데 전적으로 동감한다. 제주의 자연환경을 잘 보존하고 그것이 곧바로 제주의 경쟁력으로 삼는 정책이 가장 좋은 정책이라고 평소에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다만, 세계 7대경관 선정이 그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세계 7대경관 선정에 이렇듯 요란하게 나서는 궁극적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요즘들어 궁금증이 더해진다. 뚜렷한 이유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세계자연유산이나 생물권보전지역같은 국제기구가 공인하는 브랜드도 아니다. 스위스에 소재한 한 민간재단의 국제 이벤트일 따름이다. 물론, 그것이 공인된 국제기구이든 그렇지 않은 민간기구이든 간에 이벤트의 공감대와 영향력이 크다면 할 만한 것 일수도 있다. 그런데, 그 이벤트의 효과가 도대체 어느 정도이길래 이렇듯 사활을 거는 걸까? 그 이벤트는 정직한 것일까? 관계된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뚜렷한 효과에 대한 언급은 없다. 단지 제주의 국제적 인지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된단다.

 그렇다면 결국 세계7대경관에 선정되기 위한 지금의 이 요란한 행보는 제주를 알리고 외국인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기 위한 방편인 셈인데, 과연 이 방법이 타당하냐에 대한 논의는 거의 실종된 것 같다. 외국 언론도 비판하는 상업적 이벤트에 제주도가 올인하면서 혈세만 낭비한다는 비판성 기사를 게재했던 한 일간지도 어느새 ‘응원 릴레이’까지 펼치며 목소리를 거두어 들인 듯 보인다. 

 하지만 세계 7대경관 이벤트에 이렇듯 올인하는 게 과연 맞나하는 의문은 계속 이어질 것  같다. ‘7대 경관’이 정말 제주 천혜의 자연환경을 알리는 적합한 수단인가 하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wonder'라는 영단어의 의미대로 그것이 자연이든 인공의 유적이든, 뭐든 ‘놀랄 만한’ 무엇을 찾는 사람들의 호기심에 제주가, 아닌 대한민국이 ‘공적’으로 동참하고 만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희화화된 관심의 노출을 끌어 모으는 한 민간단체의 상업적 이벤트에 놀아나는 것은 아니냐 하는 것이다. 제발 그런 것은 아니길 바랄 뿐이다.

 어쨌든 적지 않은 예산을 들이고, 행정력을 올인 하다시피 하면서, 또한 온갖 기관단체를 다 동원하는 양상은 어떤 면에서는 좀 섬뜩하기까지 하다. 이런 분위기에서 ‘다른 생각’, ‘다른 얘기’는 용납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뭐하나 추진할 때마다 공적 기관이나 무슨무슨 단체 할 것 없이 달려드는 식의 이른바 ‘동원체제’가 또 다시 작동되는 분위기다. 우리가 사는 곳의 가치를 알리고 주목받을 수 있게 하는 구체적인 목표를 정해 뛰어드는 것 자체가 사회의 역동성을 만들어내는 긍정적 효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양상을 두고 긍정적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내가 삐딱한 것인지 모르지만, 각종 기관, 단체, 언론 할 것없이 달려드는 양상은 아무리 봐도 도정의 작심(作心)이 양산한 ‘만들어진 자발성’으로 밖에 보이지 않으니. 세계7대경관에 선정되는 것이 왜 필요한지, 뭐가 좋은지, 추진을 위해 필요한 전제는 무엇이고 과정은 어떻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도민들의 생각과 의견을 모으는 시간은 없었던 듯 하다. 동사무소 등지에 놓여진 홍보물에도 투표를 위한 ‘방법’만 구체적으로 적시되고 있을 뿐이다.

 혹자는 오히려 그런 동원체제가 다른 나라들이 못갖는 우리나라만의 장점으로 볼 수도 있다고 한다. 그 말도 필요에 따라 일리(一理)로 다가올 수 있지만, ‘목표를 향한 동원체제’는 사회발전에 필요한 반성과 점검을 더욱 감출 수밖에 없다는 것도 유념해야 한다. 목표 자체는 앞만 보고 나가는 바쁜 걸음을 재촉하게 만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7대 경관선정을 향한 지배적 여론몰이 양상은 제주사회의 미결과제인 여러 현안들에 대한 해결요구를 감추는 장막일 수밖에 없다. 나아가 지금 여느 때보다 과거에 대한 점검과 반성, 제주의 앞날을 향한 차분한 논의가 필요한때 7대경관의 세몰이 앞에서 그것은 한낱 망중한의 소일처럼 폄하될 공산이 크다.

 앞서 7대경관 선정 추진사업에 대해 비판기사를 실은 도내 일간지는 바로 그 기사에서  "인구가 많고 정부가 주도권을 쥐고 국민들에게 투표를 강요할 수 있는 개발도상국에서 선정될 것"이라는 영국 타임스의 코멘트를 인용한 바 있는데, 지금의 세계 7대경관 선정을 향한 행보가 인용된 영국 신문과 같은 밖의 시선을 뒷받침하는 한 사례로 비춰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한편, 이런 점도 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세계 7대경관 선정에 올인하면서 경관 파괴를 초래하는 대규모 개발사업을 유치하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는 언론의 지적까지는 아니더라도 소위 ‘국제 브랜드 따기’에 지나치게 열을 올리는 것은 아닌지 하는 것이다. 물론 많이 따온다고 뭐라 할 것은 못된다. 그런데 2002년 생물권보전지역, 2006년, 2008년 람사르습지지정, 2007년 세계자연유산, 2010년 세계지질공원 등 2000년대 들어 불과 몇 년 간격으로 이뤄진 성과들은 지금 어떻게 되고 있나? 생물권보전지역은 사실상 사문화된 것처럼 보이고, (아니, 딱 한 번 이름을 발휘한게 있다. 지질공원 인증되었을때 ‘트리플 크라운 달성’이라는 수식의 한 요소가 되었다. 생물권보전지역 지정이 없었다면 ‘트리플’이 안되었을테니까) 세계자연유산도 제주의 관광명소 중 하나 정도로 인식되는 듯 하다.  “세계 7대자연경관 홍보엔 20억원이란 거액을 펑펑 쓰면서도 지질공원 관련 예산은 고작 3000만원에 그치고 있다”는 작년 모일간지의 쓴소리만 봐도 지질공원 후속관리도 염려부터 앞설 뿐이다. 이미 이뤄놓은 업적의 관리야말로 보석같은 제주의 자연을 세계가 알아준 것에 대해, 그 자연에 내재된 진짜 제주의 가치로 빛을 내기 위해 세공(細工)하는 장인의 심정같은 정성과 노력이 뒤따라야 할것이다.

▲ 고유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정책위원장 ⓒ제주의소리
나아가, 제주가 뛰어든 세계7대경관 선정 노력이 왜 있게 되었는가 하는 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당연히 보존된 자연, 보존된 경관이 그래도 있어왔기 때문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과거에 대한 점검과 반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시간에도 제주섬의 수많은 곳에서 보존되어야 할 자연이 훼손되고 있다. 7대경관 선정 추진이든 무엇이든 그것의 타당성은 차치하고서라도 적어도 그 반성과 반성을 딛고 세우는 진정성 있는 철학의 토양위에서 이뤄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제 많은 사람들이 제주는 “자연환경을 매개로 먹고 사는 것이 맞다”는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 그래서 7대경관 선정 노력이 더욱 탄력을 받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그것에 마냥 고무되기 보다는 일방적 개발논리로 점철되었던 지난 세월에 대한 깊은 반성이 사회적으로 최소한 병행되도록 하는 것, 그것이지 않을까? /고유기 제주참여환경연대 정책위원장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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