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경 칼럼] 세계 속 일본의 현주소(2)

일본이란 브랜드가, 메이드 인 재팬(Made in Japan)이란 브랜드가 최고로 올라간 때가 1970년대라고 필자는 생각하고 있다. 1980년대까지만도 일제 좋았고, 일본도 좋았다.

필자는 1985년부터 일본에 살고 있다. 1990년대까지 한국에서 사람들이 오면, 일제 전자제품과 카메라를 꼭 사려고 했다. 사지 못해서 안달이 났다. 안내도 많이 했다. 이런 거 몇개 안들고 한국에 가면 이상하게 쳐다 봤다.

1990년대부터 한국에서 온 사람들은 전자제품, 카메라를 사는 사람들은 한 사람도 없다. 한국에서 일본에 와서 이런 물건을 사서 가지고 가면 촌놈 소리 듣게 된다.

1980년대 90년대 우리 세계는 어떤 세계에 살았을까? 음악이 테이프에서 CD로 또 MP3로 바뀌고, 사진이 필름에서 디지털 카메라로 바뀌었다. 포켓벨(삐삐)라는 것이 나와서 사람 꼼짝 못하게 만들더니, 휴대폰이란 것이 나와서 사람 더 바쁘게 만들었다.

컴퓨터(PC)가 나오더니 인터넷이 보급,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을 하나 더 만들었다. 요즘엔 스마트 폰 이란 것이 나와서 사람들을 손장난감만 쳐다 보게 만들고 있다. 이것들이 다 디지털이다. 아나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뀐 것이다.

이 80년대 90년대 세계를 움직인 제품중에 일본, 일본메이커가 히트를 친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한국이 히트 친 제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전자 강국 일본이 휴대폰에서 손을 들었다. 세계에서 성공한 휴대폰 기업은 '노키아'이고 한국 '삼성' 'LG'였다. 전자 강국 일본이 휴대폰 세계시장에서 손을 들고 만것이 참으로 이상하다고 본인들도 느끼고 있다. 세상이 아나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면서 일본이 시들시들 해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 국내 경제를 봐보자. 1980년대 일본 경제는 버블(거품) 경제였다. 실제 가격이 백만원인 물건이 2백만원 3백만원으로 가격이 올라갔다. 실물 가격보다 더 올라간 버블(거품) 백만원 2백만원을 가지고, 돈 벌었다고 먹고 마시며 흥청망청 했다. 90년대가 되면서 거품이 없어지고 실제 가격(거품이 없어진 물 수준)으로 내려왔다. 흥청망청한 그 돈, 그 거품은 이제 빚으로 남게 되었다. 아직까지도 그 빚(거품)처리를 다 하지 못했다.

만약 1980년대 90년대에 일본 물건이 세계에서 히트를 쳤다면, 세계의 돈이 일본으로 모였을 것이다. 거품으로 없어질 것이 아니라, 거품이 물이 되여 물 높이(수준)이 올라갔을 것이다. 계속 높은 수준의 경제가 운영되고 있었을 것이다.

엔고(円高)경제가 계속되고 있다. 엔고는 일본 엔이 가치가 있다고 다른나라 돈으로 엔을 사기 때문에 일어나고 있다. 일본경제는 수출경제이다. 물건을 만들어 세계에 수출 해야만 되는 경제이다. 엔고가 되면 그만큼 일본기업의 이익이 적어진다. 이익이 적어진 만큼 수량으로 많이 팔면 되지만, 히트가 없기에 수량이 늘지 않았다. 그래서 기업은 저이익율이 계속 되고 있다. 결과 사원 봉급이 올라가질 못한다. 올라가질 못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는 내려가고 있다. 봉급이 내려가면 소비를 줄이게 된다.

일본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서, 올해 우리회사 연말 보너스는 100%밖에 못 받았어, 라는 말에, 옆 친구가, 너희는 보너스 100%라도 있으니까 좋다. 우린 아예 보너스는 없다. 라는 말이 비일비재하다. 1년에 받는 연봉 총액이 적어져, 소비를 줄여야 된다. 소비가 줄면 또 파급 소비가 줄어들어 악순환이 되고 만다. 지금 일본은 이런 악순환 속에 있다. 가장 표준이 되는 공무원, 일본 공무원 봉급이 내려가고 있다. 호봉이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보너스가 적어져 연간 받는 연봉이 내려가고 있다.

금년 3월에 일본에서 대지진과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일어났다. 사람으로 본다면 다리 하나가 잘려나간 큰 부상을 입은 것이다. 일본이 큰 부상을 입어 다운 되었으니 엔을 사는 사람이 적어져 엔저(円低)가 될거라고 필자는 생각했다. 결과는 반대였다. 계속 엔고(円高), 그것도 부족해서 기록적인 엔고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 국채, 그리스의 국채 문제 등 국제적인 금융 문제가 엔고를 만들고는 있지만, 이것을 봐도 저것을 봐도 아직은 엔이 좀 믿을만 하다는 금융의 심리가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국 말에, 부자는 망해도 3년 먹을 것 나온다,는 말을 생각 나게 해준다.

기업에선 죽겠다는 아우성이 튀여나오고 있고, 일반사람들의 생활은 험암해 졌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험악함이 보이고 있다.

2011년 10월말, 기록적인 엔고를 기록했다. 1달러당 75엔대로 올라간 것이다. 1달러당 1엔이 엔고가 되면, 자동차기업 도요다(豊田)는 340억엔을 손해 본다고 아우성 치고 있다. 도요다(豊田)은 1년에 세계에서 700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하여, 그중 300만대를 일본에서 생산하고 있다. 1달러 70엔대의 엔고가 계속되면, 일본국내에서 생산하는 것을 포기, 해외에 나가서 생산을 해도 될까 말까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100만대를 해외로 빼버리면, 일본 국내 고용은 10만명분이 없어지고 만단다.

충격적인 뉴스가 나왔다. 2011년은 일본은 무역흑자가 아닌 적자로 전락 한다는 것이다. 「수출 입국 일본」이 무역적자국으로 전락한다는 것은, 이제 일본은 떨어질때까지 떨어졌다는 것인가? 올해는 지진으로 인한 수출 부진과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인하여 화력발전을 위한 가스등의 수입이 늘었기에 적자라고는 하지만, 전자 강국 일본의 전자제품 수입액이 수출액보다 위에 올라서고 말았다.

그러나 부자는 망해도 3년 먹을 것이 있다고, 일본이 경기 좋을때 해외에 투자해 놓은 주식등의 배당금등 금융 수입이 있어서, 해외에서 들어오는 직접소득은 상당액 있다.

왜 일본이 이렇게 떨어질때까지 떨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1980년대 90년대 2000년대, 지난 30년간 일본은 히트 제품 하나도 없다. 더욱더 지금까지 가졌던 시장점유률마저 다른 나라 기업(특히 한국)에 빼앗기고 있다. 80년대까지는 생각도 못했던 한국 전자제품들이 일본시장에 진출하게 되었다.

일본이 자랑했던 전자제품에 대해서 봐보자. 디지털 카메라에서 일본은 세계시장 점유률 80%까지 가진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가격경쟁 밀려 일본 메이커가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은 외국 메이커에 시키고 상표만 붙치는 OEM 생산방식이 50%를 차지하고 있다. 앞으로 일본국내에서는 디지털 카메라 생산공장을 새로 건설하는 일은 아마도 없을 거라고, 메이커들은 말하고 있다.

TV는 어떤가? 파나소닉은 일본 국내 5개 공장을 2개만 남기고, 3개 공장은 폐쇄하겠다는 것이다. 소니(Sony)는 공장없는 경영을 하겠다고 나섰다. 물건 만드는데 귀신들이 물건을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파나소닉도 소니도 올해는 적자 결산을 예상하고 있다.

전자제품에서 2010년 무역적자가 1천억엔이 나왔다. 최고로 벌어들인 일본의 효자중의 효자 종목이 이젠 적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일본 메이커가 중국 타이에서 자기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을 일본으로 가져온 것도 수입으로 계산되 있다.

휴대폰은 어떤가? 다른 제품보다 더 허덕되었다. 휴대폰은 세계시장에서 한번도 고개들러 보지 못했다. 스마트폰이 되더니 더욱더 이다. 스마트폰에서 일본국내에서 일본제 스마트폰 점유율은 40%정도이다.

왜 전자제품에 일본은 시들시들 해지고 있는 것일까? 메이커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엔고(円高)와, 가격경쟁력에 졌다, 라고 말하고 있다. 왜 가격경쟁에서 다른 나라의 메이커에 지고 있을까?
아나로그 전자에서 디지털 전자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아나로그 때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외국제품들(특히 한국, 중국제품들) 일본 전자가게에 진열도 못했다.

아나로그 전자제품과 디지털 전자제품은 과연 무엇이 다른가? 아나로그 전자제품과 디지털 전자제품은, 생산하는 방식이 다르다. 아나로그는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생산한다. 디지털은 필름으로 사진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생산한다.

화가가 그림을 그리기에 화가의 손재주가 그림의 질을 좌우한다. 필름으로 사진을 찍어내는데는 작업원의 손재주가 그리 좌우하지 않는다. 좋은 필름 원판만 만들어 놓으면 대량생산이 가능한 것이다. 좋은 필름 원판만 있으면 인건비 비싼 일본이 아니라, 아프리카에 가서도 사진 찍어낼수 있다. 그래서 아나로그 때는 일본제 전자제품 질이 좋았다.

반도체 생산은 사진을 만들어내는 바로 그 방법으로 생산한다. 반도체 공장에 들어가는 기계의 메이커들은 사진기(카메라) 메이커(니콘 케논 등)들이 주름 잡고 있다. 반도체 생산은 대량생산의 규모가 또 성패를 좌우한다.

한국 반도체 메이커 제조현장 부장급 친구가, 「반도체 생산은 군대와 같은 체제를 가지고 있어야 성공을 합니다」라는 말을 했다. 대장이 강력한 리더쉽으로 총알같이 빠르게 밀고 나가야 성공이든 실패든 한다는 것이다. 대장이란 그룹 회장을 말한다. 반도체 생산은 초기 설비에 어머어마한 돈을 투자해야 된다. 또 다른 메이커보다 제일 먼저 제품을 시장에 출하해야 초기 이익이 어머어마하게 남는다. 2번째 3번째로 출하하게 되면, 제조 원가하락으로 제품가격 하락, 가격경쟁으로 빠져들게 되면, 이익이 있는지 없는지로 되버린다. 또 제품의 라이프사이클이 워낙 빨라 곧 다음 세대의 제품으로 이전을 해야 한다.
「초전박살」로 초기 이익 챙기고, 가격경쟁이 들어가면 대량생산으로 경쟁에서 이겨야 되는 산업이다. 처음부터 기업 생사(生死)가 걸린 어머어마한 자금으로 「밀어」라는 명령 하나에 일사분란하게 빠르게 움직여 신제품을 출하해야 된다. 기업 생사 걸린 어머어마한 자금을 움직일 수 있는 대장이란 그룹 회장이라야 가능한 것이다.

일본의 반도체및 전자 메이커들 대부분은 「경영과 자본의 분리」이다. 대주주가 경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월급쟁이 사장이 경영을 하는 것이다. 의사결정의 권한이 한국의 회장과 같지 않다. 디지털 제품은 강력한 중앙집권체제가 필요하다는 것은 다른 사례에서도 볼수 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Steve Jobs),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Bill Gate)를 봐도 알수 있다.

전자제품만이 아니라, 세상이 아나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일본 사람들은 디지털과 아주 잘 맞는 민족일까? 일본사람들은 디지털에는 영 둔하다. 못하는 것이 아니라 둔하다.

나는 일본 대학에서 컴퓨터 관계를 강의하고 있는 현역 교수이다. 일본 사람들의 디지털 사용에 대해서 계속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고 있다. 이들이 컴퓨터에 둔하다는 것을 여러각도에서 증명할 수 있다. 최근에 나온 스마트 폰 보급율만 봐도 그렇고, 쓰고 있는 내용을 봐도 그렇다. 한국과 비교해서 보급 및 사용에 대해서 항상 한발 늦다.

디지털에 둔하고 늦기에, 디지털 제품(기계)에서 세계보다 한발 앞서면서 일본시장에서 성공한 제품이 없어, 세계에 선보일 물건이 없다. 최근 스마트폰의 경우는 일본시장마져도 외국 제품이 들어와서 일본 메이커들의 점유률을 잡아먹고 있다. iPhone이 그렇고 한국 삼성 스마트폰이 그렇다. 1970년대 라면 한국제품은 점포에 진열도 못했다.

한국에서는 당연한 것이 아직 일본은 안되는 것이 있다. 휴대폰 충전기이다. 한국은 어떤 휴대폰이라도 하나의 충전기로 다 된다. 한국은 휴대폰은 새로 구입해도 충전기는 주지도 않는다. 집에 가면 몇개씩 있다. 일본은 아니다. 한국의 예전처럼 회사마다 충전기가 다르다. 학생들에게 한국은 이렇게 한다오, 라고 말을 하면 전원이 진짜로 편리하겠네요, 라며 눈이 커진다. 정부의 지도로 충분히 가능한 일을 왜 하지 않아서 국민들만 불편하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또 휴대폰 문자도 그렇다. 한국은 어떤 통신회사이건 문자를 주고 받는데는 문제가 없다. 그런데 일본은 문자를 주고 받을려면 같은 회사만 가능하다. 통신회사가 다르면 문자가 아닌 e-mail로 해야 된다. 전화번호로 문자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e-mail어드레스를 알아야 문자교환이 가능하다. 이것 또한 한국이 좋다. 기술적으로 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이러한 문제들, 정부의 지도로 가능하리라고 생각해 보지만, 일본은 아직도 불편하게 쓰고 있다.

세종대왕이 발명하신 우리 한글, 나는 한글은 컴퓨터용 문자가 아니라 휴대폰용 문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500여년후에 휴대폰이란 물건이 나온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신 세종대왕께서 발명해 주신 우리 한글. 휴대폰에는 '세계 넘버 원' 이다. 일본 글자로 휴대폰을 써 보면 한글의 편리함을 너무도 잘 알 수 있다.

디지털이 되면서 일본 사회는 변하고 있을까? 사회가 디지털화 되면서 기업경영및 관리의 속도는 엄청나게 빨라졌다. 농경사회때는 시속 1Km라고 한다면, 아나로그 시대때는 시속 10Km, 디지털 시대에 와서는 아마도 50Km쯤으로 빨라졌을 것이다. 아나로그 시대때는 전화나 FAX가 통신수단이었다. 지금은 메일과 문자는 기본중의 기본이다. 요즘엔 스마트 폰이 나와서 속도가 더 빨라졌음을 느끼게 한다.

몇년전에 한국에서 친구가 1년간 유학을 왔다. 이 친구, 집에 인터넷을 설치 하겠다며 인터넷 전용선을 신청을 했다. 한달이 되도 안나와, 두달이 되도 안나와, 몇개월후에는 친구가 성질을 내며, 그 전용선 신청을 취소해 버리고 말았다. 안나온 이유는 그 아파트 조합에, 그 회사 전용선 신청을 하고 허락을 받는데서 시간이 걸린 것이다. 결국 그 친구는 집에서 인터넷을 쓰지 않고 대학에서만 쓰다가 한국으로 돌아갔다. 아마 한국에서 인터넷 전용선 신청을 하고 개통까지 몇일내로 처리되지 않으면 큰일이 났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결국은 몇개월이 걸려도 개통되지 못했다.

얼마전 은행에 통장을 하나 개설하려고 갔다. 통장 하나 만드는데 설명을 들어야 되고, 또 무엇무엇을 해야 되는데, 30분이상 1시간 가까이 걸리고 말았다. 통장 하나 만드는데 이정도 시간이 걸린다면, 통장 하나 만드는데 단가가 얼마 걸리며, 이렇게 한다면 이 은행 이익을 내고 있을까 라는 걱정아닌 걱정을 해 보았다.

회의가 많다. 이런 안건이라면 회의없이 조직장의 직권으로 진행시켜도 될 일을 회의를 한다. 회의를 하게 되면 여러 의견이 수용되여 가운데 길을 걷게 되는 장점은 있지만, 일의 진행이 그만큼 늦어진다. 또 회의를 거친 일이 잘못 되면 조직장의 책임이 아니라 그 조직의 책임을 지게 되므로 개인이 문책을 당하는 일도 적게 된여, 조직장의 모가지가 길게 붙어있다. 그러나 회의가 많기도 하지만 길기도 길다.

일본 사람들은, 일본 사회는 일을 신중하게 처리한다. 돌다리도 두둘기고 두둘겨 걷는다. 신중한 것은 좋치만 일이 엄청 늦는다. 아나로그 시대때에는 이런 속도로 업무를 처리해도 문제가 없었겠지만, 지금은 몇배 더 빨라야 될 디지털 시대이다.

일본은 글로벌에도 실패하고 있다. 일본민족이 패쇄적이라는 것은 세계적으로 소문났다. 이 패쇄적인 나라에 사는 우리 동포들은 있는 차별 없는 차별 다 받으면서 힘들게 어렵게 살아왔다. 이것이 다 일본민족의 폐쇄적인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하루아침에 고치기는 어렵다. 이 폐쇄적인 마음으로 세계를 상대로 하는 비지니스는 그만큼 어려워진다. 중국 현지 조사에서, '노키아'등 세계화에 성공한 기업들은 현지법인 사장들을 현지인으로 한단다. 그러나 일본의 현지법인 사장은 꼭 일본에서 파견한 일본 사람이다. 현지인은 믿지 못해서 못 맡긴다는 것이 이들의 마음이다. 또 최근에는 외국으로 유학 가는 일본 학생들이 매년 줄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이러다가 유학 공짜로 가는 장학금이 생길 것 같다.

최근에 타이에서 홍수가 났다고 일본국내에서 난리이다. 처음에는 타이에서 난 물난리를 가지고 왠 호들갑 일까? 라고 생각했다. 호들갑이 아니었다. 일본에서 타이에 7천 회사가 진출해 있고, 방콕에 있는 일본인 학교는 1개학년 12학급 400명이 있는 학년이 있을 정도로 외국에 있는 일본인학교 중에서는 단연 톱이다. 또 방콕에는 여행자가 아닌 상주자가 3만4천명이 살고 있다고 한다.

왜 이렇게 많이 진출해 있을까? 타이는 주변나라와 FTA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타이에서 생산한 제품이 중국이나 인도로 들어갈때 세금이 없다. 이것을 이용해서 그쪽 나라에 편리하게 물건을 수출하기 위해서 타이에 많은 기업들이 진출한 것이다. 또 타이 사람들은 일본에 우호적이고 말도 잘 듣는다며 너도나도 타이로 행차 했다. 특히 도요다등의 자동차 산업, 하드디스크는 세계시장의 1/2가 타이에서 생산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 공장들의 생산설비, 즉 기계에 물이 차버린 것이다. 기계에 물이 물어가 버리면, 다시 원상보귀하여 정상적인 생산에는 어마어마한 시간과 투자가 필요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요즘 타이의 물난리를 연일 1면 톱으로 보도하고 있다.

올해 3월에 지진, 원전 사고, 유럽에서 날라오는 엔고, 재수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타이에서 난 물난리까지 일본 기업들을 목 조이고 있다. 디지털과 세계화(글러벌), 과연 이 나라는, 이 민족은 어떻게 적응해 나갈 것인지? / 신재경

 

▲ 신재경 교수 ⓒ 제주의소리
 필자 신재경 교수는 1955년 제주시에서 출생했다. 제주북초등학교, 제주제일중학교, 제주제일고등학교, 한양공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했다. 한일방직 인천공장에서 5년간 엔지니어를 한 후 1985년 일본 국비장학생으로 渡日해 龍谷大學대학원에서 석사·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3년 京都經濟短期大學 전임강사를 거쳐 현재 京都創成大學 經營情報學部 교수로 있다. 전공은 경영정보론이며, 오사까 쯔루하시(鶴橋)에 산다. 오사카 제주도연구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기도 한 신 교수는 재일동포, 그 중에서도 재일제주인들의 삶에 대해 조사 연구하고 있으며, 특히 재일동포들의 '밀항'을 밀도 있게 조사하면서 <제주의소리>에 '어떤 밀항이야기'를 연재해 왔다. 또 일본 프로야구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발휘 '신재경의 일본야구'를 써 왔다.    jejudo@nift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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