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미의 제주여행(23)] 남원해안의 또 다른 비경

▲ ⓒ양영태
조천읍 조천리와 남원읍 남원리를 연결하는 1118번 도로를 남조로라 부른다.
제주섬 동부지역 중산간을 가로지르는 남조로변 들판에는, 꽃을 피우려는 억새들의 노래소리가 한창이다.
억새들의 노래를 귓전으로 흘리며 남조로의 끝인 남원에 도착하여 방향을 틀지 말고 그대로 내려가면 바다와 만난다.
제주섬 어딜가도 만나는 바다이지만, 여기 또한 어딜가도 만나는 해안도로가 있다.

▲ ⓒ 양영태
남원리 해안도로의 동쪽으로는 태흥1리와 이어지고, 태흥1리 바닷가 해안의 '들렁머리'라는 곳에는 환해장성의 잔재 일부가 남아 있다.

▲ ⓒ 양영태
다시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남원리 포구로 향한다. 남원포구를 두고 속칭 '재산이개'라 한다. 어원(語源)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그리 크지 않은 포구에는 여남은척의 배가 매어져 있고, 방파제 위에서는 동네꼬마들의 야유회가 열리고 있다.

▲ ⓒ양영태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에는 바다의 지형지물을 의지하여 포구로 사용하였지만, 지금의 포구들은 콘크리트 구조물로 반듯하게 잘도 만들어져 있고 바닥도 잘 준설되어 있다.
하지만 어부나 해녀의 마음은 아직 콘크리트처럼 단단하고, 포구바닥의 깊이만큼 넉넉하지는 못한 것일까? 포구 한쪽 구석에 있는 '널당'에는 아직도 치성의 흔적들이 역력하다.

▲ ⓒ양영태
동료들은 이미 물질을 나간 한적한 오후, 급한 집안일이 있었을까? 홀로 뒤쳐진 해녀 한사람이 뒤늦은 채비를 하고 종종걸음으로 바다를 향한다.

▲ ⓒ 양영태
남원리 해안도로의 끝에는 조그마한 소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그 곳에는 해안절벽을 따라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다.
'큰엉'이라고 하는 이 곳은 20여m 높이의 해안절벽이 바다와 맞닿아 있다.
'엉'은 바닷가 암반이나 절벽에 뚫린 바위그늘을 일컫는 제주어로, 큰엉해안절벽에는 큰 규모의 해식동굴들이 발달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 ⓒ 양영태
영화박물관이 생긴 이후로 이 곳 '큰엉해안'을 찾는 관광객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수려한 바다풍경과 깎아지른 해안절벽의 웅장함은 관광객의 마음을 붙잡기에 충분할 것이다.
해안 산책로를 따라 가는 한가로운 산책도 운치가 있을 것이다. 그리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길을 따라 놀멍놀멍 돌아도 몇십분이면 충분할 거리이다. 

▲ ⓒ 양영태
큰엉해안을 나와 일주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달리면 위미리와 만난다. 위미2리 세천동마을에는 속칭 '버둑할망 돔박숲'이라는 동백나무 군락지가 있다.
제주도기념물 제39호인 이 숲은 1800년대 말, 현맹춘이라는 여인이 황무지(버둑)를 사들인 후 모진 바람을 막기 위하여 심어 가꾸었다는 동백나무 숲으로, 현재 560여본이 자라고 있다.

▲ ⓒ 양영태
위미포구 입구에는 거암괴석이 길게 뻗어 있는 '조배머들코지'가 있다. 높이 20여m가 넘는 괴석들이 용이 날아가는 모습으로 서있는 이 곳은, 일제때 파괴된 것을 1998년 복원했다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 ⓒ 양영태
위미마을 앞, 크게 만을 이루는 곳을 '앞개'라고 한다. 마을 바로 앞에 있는 '개'라서 '앞개'라고 했다. 지금에는 '앞개' 전체 양쪽으로 방파제를 축조하여 漁港을 만들었다. 예로부터 앞개 안쪽 동서로 두 개의 포구가 있었는데, 서쪽을 '서앞개'라 해서 위미1리 사람들의 전용포구이고, 동쪽의 것을 '동앞개'라 하고 위미2리 사람들의 전용포구였다.

▲ ⓒ 양영태
위미교(橋)를 지나 안쪽 위미1리 리사무소 앞 '서앞개' 옆에는 수질과 물맛이 좋아 식수는 물론 소주 생산에도 사용했던 '고망물'이 있다.
상수도가 개설되기 전 위미마을 사람들의 식수원이었던 고망물은 1940년대 황하소주공장이 있어 소주를 생산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바닥에서는 끊임없이 물이 솟아나오고 있다.

▲ ⓒ 양영태
위미1리 포구인 서앞개를 지나 해안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조금가면 해안동산 아래 '바른앞'과 '소롱코지'로 둘러싸인 자그마한 포구에 테우 한 척이 메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위미1리와 공천포 마을을 경계 지으며 흐르는 '종남천' 하구인 이곳은 '밍금개'라고 부르는 포구이다.
명칭의 기원은 알 수 없지만 개 위쪽으로 자갈돌이 깔렸고 그 바닥에는 단물이 솟는다.
밍금개에서 보이는 '소롱코지'는 곶의 형태가 용이 머리를 쳐들고 승천하는 모양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밍금개를 지나면 '넙빌레'라는 해안이 나온다.
바다쪽으로 넓게 암반이 평평하게 형성되어 있어, 넓은 암반이라는 뜻에서 '넓빌레'라고 부르는 그 곳은 여름철에는 암반 사이에서 생수가 용출하여 지금은 피서객들이 많은 찾는 곳이다.  

▲ ⓒ 양영태
신례2리인 공천포(公泉浦)는 예전에는 공샘이(공세미;貢泉味)라 불렀다고 한다.
해안선 군데군데에서 깨끗한 용천수가 용출하여 예로부터 관청의 식수나 제수로 사용되었고, 그 과정에서 '맛이 좋은 샘물을 바친다'는 뜻으로 지명이 공샘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 후 포구가 있는 마을이라 공천포로 바뀌어 불렀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공천포 마을 앞 해안을 따라 깨끗하고 검은 모래벌판이 형성되어 모래찜질로 유명한 곳을 '모살왓'이라고 부른다.
영등물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서 생수가 용출하여 식수는 물론 빨래와 목욕하는데 사용하기도 하였지만 지금 다 고갈되어 버리고 영등물만이 흐르고 있다. 

▲ ⓒ 양영태
'모살왓'의 모래틈에서 힘차게 용출하여 바다로 흐르는 '영등물'은 영등할망이 들어왔다가 나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이 영등물은 물맛이 좋고 차갑기로 유명하고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은 공장폐수 유입으로 오염되어 식수로는 사용할 수가 없다.

▲ ⓒ 양영태
공천포를 지나 서쪽 해안 하례리 마을포구를 '망장포'라고 한다. '망장포(望場浦)'는 왜적을 후망하는 포구라는 뜻에서 불리웠다고 하고, 몽고지배 당시 이 포구를 통해 세금으로 거둬들인 물자와 진상품을 실어내던 포구에서 '전세포' 또는 그물을 많이 펴서 고기를 잡던 대표적 포구라 '강장포'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 ⓒ 양영태
망장포에서 예촌망을 거쳐 쇠소깍까지는 해안단애를 이루고 있어 접근이 어렵다. 다시 일주도로로 나와 서귀포시와 남제주군의 경계인 효돈천하구를 통해 쇠소깍으로 향한다.
쇠소깍은 바다와 맞닿는 하구에 형성된 깊은 소(沼)이다. 이 소(沼)의 물을 주로 소(牛)의 급수용으로 이용하였던 데서 연유한 이름으로 추측된다.
쇠소깍은 제주시의 용연과 비교될 정도로 깊은 계곡과 아름다운 상록수림대를 이루는 곳으로, 바다와 만나는 하구에 형성된 깊은 호수와 높은 계곡은 서귀포의 숨겨진 명소로 최근 찾는 이가 줄을 잇고 있는 곳이다.

호수를 떠 다니는 테우에 피곤한 몸을 실어 보내고, 오늘도 가벼운 마음을 추스리며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 양영태님은 '오름오름회' 총무, 'KUSA동우회 오름기행대' 회원입니다. 이 글은 양영태님의 개인 홈페이지  '오름나들이(ormstory.com) 에도 실려 있습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