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주의 책놀이책 Q&A 칼럼] (7) 한 번 읽은 책은 안 읽는 아이

# 에피소드7.

준호는 언제나 새 책을 찾는다. 한 번 본 책은 다시 읽으려 하지 않는다. 무작정 많이 읽는 것이 좋은 태도는 아니라고 타이르면서도, 장난감도 아니고 책을 사 달라고 조르는 것이 뭐가 문제가 될까 싶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서점에 가곤 했다. 평일에는 회사를 핑계로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을 책을 사 주는 것으로 대신하려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출판사에서 선정하는 추천도서를 바탕으로 과학과 사회, 문학과 만화책까지 골고루 사 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준호에게 새 책을 넣어 주는 것이 힘들었다. 책값도 책값이지만 어떤 책을 골라 주어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믿고 구매했던 출판사의 추천도서 중 이해할 수 없는 책이 종종 끼어 있어 혼란스러웠고, 언제나 새로운 책을 원하는 준호의 욕심도 점점 더 부담스러워진다.

아내와 상의한 끝에 도서관을 준호의 놀이터로 만들어 주기로 했다. 도서관에 있는 책은 사서 선생님이 선별한 것이니 믿을만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준호가 어떻게 행동하는지도 알고 싶었다. 스스로 책을 골라 본 적이 없는 준호에게 직접 서가에서 책을 고르게 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듯했다. 도서관에 도착한 준호는 물 만난 고기처럼 신 나게 책을 골랐다. 무려 9권을 기세 좋게 빌린 준호는 방바닥에 배를 딱 붙이고 책을 읽었다.

도서관을 이용하니 좋은 점이 있었다. 준호가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대출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어 관심사의 흐름을 알 수 있었다. 오늘도 책을 잔뜩 빌린 준호의 대출기록을 찬찬히 확인해 보면서 몇 가지 문제점을 발견했다. 그림책만 골라서 읽고 있었고, 책을 고른다기보다는 책장 한 칸에 있는 책을 통째로 집으로 옮겨 오는 것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 준호야, 준호는 어떤 책이 좋아?”
“ 재미있는 책이 좋아.”
“ 어떤 책이 재미있는데?”
“ 그냥 재미있는 책.”
“ 그럼 가장 재미있었던 책은 뭐야?”
“ 다 똑같아!”
준호는 책을 읽고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책장 넘기기에 중독된 것은 아닐까?
준호의 독서 습관을 고쳐줄 때가 된 것 같았다.

독서는 두 번 읽기부터 시작한다

책을 옆에 끼고 살지만 계속 새로운 책만 보는 아이가 적지 않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님들은 그래도 아이가 책을 많이 읽는다고 마음을 놓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한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이가 책에 ‘재미’를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만 ‘재미’를 세분화해서 이야기하면 사정이 달라진다. 준호는 책의 재미 중에서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있는 편이다. 이것 역시 책의 재미 중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깊이 알면서 느끼는 재미’가 채워지지 않는다는 게 아쉽다. 독서에서는 이 두 가지 재미를 골고루 아는 게 중요하다.

그러면 ‘깊이 읽는 재미’는 어떻게 만들어줄까? 같은 책을 두 번 이상 읽어야 한다. 진짜 독서는 두 번째 읽기부터 시작된다. 두뇌의 관점에서 봐도, 책을 처음 읽을 때는 정보가 뒤쪽뇌(후두엽)에 모인다. 아이의 독서력과 사고력 등 책이 줄 수 있는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앞쪽뇌(전두엽)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깊이 읽는 재미’다. 하지만 이 재미를 얻는다는 것은 쉬운 문제는 아니다. 더군다나 아이 스스로 책을 읽으면서 깊이 읽기까지 기대할 수는 없다. 결국 부모와 아이가 같은 책을 읽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깊이 읽는 재미가 생길 수 있다.

준호처럼 한 번 읽었던 책을 다시 안 읽는 아이에게 두 번 세 번 책을 읽으라고 하는 것은 마치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것과 같다. 과연 어떻게 준호로 하여금 두 번 세 번 읽게 할 것인가.

▲ 그림 김라연(blog.naver.com/gomgomHUG).

# 솔루션7. 두 번 이상 읽게 하는 여러 가지 장치

“ 준호야, 『지각대장 존』 읽었지?”
“ 응, 읽었어!”
“ 준호야, 줄거리를 말해 볼래?”
준호는 예상대로 도입부만 조금 말하다가 얼버무렸다. 방법을 바꿔 보기로 했다.
“ 준호야, 그럼 기억나는 단어만 말해 봐!”
“ 음, 존이랑 학교, 악어, 사자, 고릴라!”
“ 왜? 악어랑 사자랑 고릴라가 기억나니?”
“ 악어랑 사자, 고릴라 때문에 존이 학교에 늦었어. 그래서 존이 야단맞았단 말이야!”
“ 아빠도 생각났어! 처음에는 악어, 그다음은 사자가 괴롭혔지. 근데 또 뭐가 있었던 것
같은데?”
“ 맞다! 홍수도 났어!”
“ 존이 길에서 잃어버린 것도 있었는데, 기억나니?”
“ 장갑을 악어에게 던졌어. 그리고 사자한테 물려서 바지도 찢어졌어.”
존에게 일어난 일을 차근차근 말해 주었더니 준호는 자신도 모르게 책의 줄거리를 술술 이야기했다. 준호랑 이야기를 나누면서 틈틈이 메모도 하고, 전부 녹음하기도 했다. 나중에 준호에게 메모한 것을 보여 주고, 녹음한 것도 들려주니 무척 재미있어했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책을 찾아서 홍수가 났던 부분을 다시 읽기도 했다. 한 번 본 책은 쳐다보지도 않았던 준호가 변한 것이다.

▲ 그림 김라연(blog.naver.com/gomgomHUG).

부모가 아이보다 책의 장악력이 더 커야

<책 놀이 책>은 아이로 하여금 책을 두 번 이상 읽게 하는 여러 가지 놀이를 담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무척 중요한 목표다. 아이로 하여금 읽은 책의 내용을 종이에 요약해라고 해 보라. 아이의 독서 패턴이 보일 것이다. 많은 아이들이 특정 사건 위주로 하거나, 앞의 부분만 상세하게 적느라고 전체 요약을 잘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예 요약 자체에 대해서 이해를 못 하거나, 지루하다고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바로 이것이 아이들의 현재 독서 상황이다. 동시에 가족에게는 중요한 독서 출발점이 된다.

준호 아빠는 준호의 두뇌를 자극하기 위해서 생각나는 단어를 말해보라고 제안했다. 독서의 방향을 바꾸거나 환기시킬 수 있는 제안이나 질문은 아주 중요하다. 특히 요약문보다 단어 나열하기가 더 쉽기 때문이다. 단어를 나열하면서 아이는 읽었던 책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를 갖는다. ‘좋은 질문’은 그 자체가 좋은 요약이 될 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는 일종의 ‘독서 계단’으로 작용한다. 부모가 던지는 질문을 한 칸씩 밟으면서 아이는 ‘깊이 읽는 재미’를 느끼게 된다.

질문을 받은 아이는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책을 여러 번 뒤적이기도 한다. 책을 두 번 읽지 않는 준호 역시 책을 뒤적거렸으니 두 번 읽기에 발을 디딘 셈이다. 준호가 책을 두 번 읽게 된 과정을 보면 준호 아버지의 관찰력이 큰 몫을 했다는 걸 알 수 있다. 평소 아이의 독서 습관이나 독서 패턴을 보면서 원인을 파악했고, 아이와 함께 읽는 책을 정해서 깊이 읽었기 때문에 아이 수준에 맞는 적절한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준호는 책을 읽으면서 ‘편안함’을 느꼈을 것이다.

책을 읽는 아이들의 입장을 조금만 생각해 본다면 참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용 파악이나 사건과 인물 분석 등 책을 재미있게 하는 이해는 아이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다. 부모가 옆에서 힘을 보태 주어야 깊이 읽는 재미를 알게 된다. 아이든 어른이든, 책이든 인생이든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즐겁기 때문”이다.  /오승주 독서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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