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작은 어촌이 세계 최대 규모로 뜨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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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혁이 떠난 러시아 여행] (6) 무르만스크 

 

▲ 무르만스크 기차역. ⓒ양기혁

북극권 도시로 최대의 도시라고 하는 무르만스크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작은 어촌 마을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이듬해 1915년 여름부터 항구도시로 조성되기 시작하여 공식적으로는 1916년 10월 4일(구력[율리우스력]으로는 9월 21일)  건설되었다고 한다.

‘로마노프 나 무르마녜’(무르만의 로마노프)라는 도시이름은 곧 무르만스크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바렌츠 해가 내륙 깊숙이 수십 킬로미터를 뚫고 들어와 강처럼 보이는 콜스키 만의 여러 언덕에 세워진 이 도시는 노르웨이 해안을 따라 흘러온 멕시코만 난류의 영향으로 겨울에도 얼어붙지 않는 무르만스크 항을 중심으로 20세기의 여러 전쟁을  거치는 동안 급속히 발전을 거듭하였다.

1차 세계대전시에는 독일군의 봉쇄를 피하여 연합군이 러시아에 물자를 지원할 수있는 유일한 항구(무르만스크와 상트뻬쩨르부르그를 연결하는 철도는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16년 건설되었다)였다. 북드비나 강변의 아르한겔스크 항구는 일년의 절반은 얼어붙었고,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1917년 10월 볼셰비키 혁명 이후 벌어진 내전시에는 소위 간섭군이라고 하는 서방동맹군이 1920년까지 점령하여, 적군에 대항하여 싸우는 백군을 지원하는 주요 군사기지 역할을 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시 독일군은 전쟁 초기 점령한 노르웨이를 통하여 산악부대를 침투시켰고, 폭격기를 동원하여 이 도시를 폐허로 만들었다. 그러나 북방의 붉은 군대는 오히려 반격을 가하여 노르웨이에서 독일군을 몰아내었으며, 무르만스크는 대조국전쟁을 수행한 ‘영웅의 도시’가 되었다. 전후 냉전시 이 곳은 쏘련 군사력이 집결된 최대 군사도시가 되었으며, 북방함대의 기지이기도 하였다.

▲ 대조국전쟁을 수행한 영웅적인 도시에 수여한 훈장. ⓒ양기혁

러시아 열차는 대체로 정확하다. 예정시간인 아침 7시 25분 기차가 도착한 도시는 잔뜩 흐려있고, 비가 좀 내린 듯 젖은 아스팔트가 선명한 검정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역을 빠져나와 우선 노르웨이로 가는 버스가 정차한다는 역앞의 호텔로 향했다. 가이드북에 무르만스크에서 노르웨이 국경마을인 키르케네스를 다니는 버스가 있다는 내용을 보고, 노르웨이를 하루쯤 갔다와야 겠다는 생각에 푹 빠져있었다. 호텔 데스크의 여직원은 오늘 버스는 없고, 내일 아침 7시에 호텔 앞에서 출발한다고 알려줬다. 

우선 아침 식사를 하고 시내관광을 할 생각으로 식당을 찾았으나 문을 연 곳을 찾을 수 없었다. 기차역과 광장 그리고 고급호텔들이 있는 시내중심가에서 아침을 시작하는 인파로 북적여야할 평일 아침 8시에 문을 연 식당이 하나도 없다니 기가 막힐 일이다. 그러고보니 마치 휴일 아침처럼 거리를 지나는 사람도 뜸했다.

아침식사를 조금 미루고, 먼저 ‘알료샤’에 다녀오기로 생각을 바꿨다. 무르만스크의 상징과도 같은 알료샤를 보고 오면 그때쯤 식당들도 문을 열 것이라는 생각으로 역 앞에 택시들이 줄지어선 곳에 서있는 젊은 청년에게로 다가가서 알료샤에 가자고 말했다. 청년은 몇사람이 낡은 택시에 모여서 카드놀이를 하고 있던 노인에게 데리고 가서 나를 인계했다. 수십년은 운행했을 것으로 보이는 러시아산 라다 택시다. 노인은 서둘러 카드를 정리하고, 택시에 올라타서 출발했다.

알료샤까지 택시로 왕복 500루블. 한국 돈으로 2만원 정도다. 낡은 택시와 노인이 어쩐지 닮아 보이기도 한다. 출발하고 좀 지나서 노인에게 물었다

이즈비니쩨, 스꼴까 밤 례트(죄송하지만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지요)?
노인은 대답대신 빙긋 웃으며 손으로 목을 한번 쓱 긋는다. 자신이 너무 오래 이 세상을 살고 있다는 뜻일까.

▲ 무르만스크 시내와 항구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세워진 거대한 병사의 석상 ‘알료샤’. 높이가 35m에 달한다. ⓒ양기혁

 

▲ 알료샤 석상 앞에 타오르고있는 꺼지지않는 불꽃. ⓒ양기혁

 

▲ ‘알료샤’에서 바라본 콜스키 만(灣)과 무르만스크 항구. ⓒ양기혁

알료샤는 무르만스크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잡은 거대한 군인의 석상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태어난 지 3년 만에 간질병으로 죽은 아들의 이름이며, 그의 소설  ‘카라마조프가(家)의 형제들’중 막내이며, 순결한 심성의 소유자이기도 한 알료샤는 러시아에서 가장 흔하고 친근감을 느끼는 이름중의 하나이며, 이곳 무르만스크의 언덕에 서있는 알료샤는 대조국전쟁에서 죽어간 모든 러시아 젊은이들의 이름이다.

러시아를 여행하면서 느끼는 것 중의 하나가 아름다운 정교회 사원과 함께 유난히 이 나라에서 대조국전쟁이라고 부르는 제2차세계대전을 기념하는 동상이나 기념물이 많다는 것이다. 모스크바의 크레믈 성벽 앞에는 ‘1941-1945 조국을 위한 전사자들’이란 무명용사 기념비 옆에 꺼지지 않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고, 아르한겔스크의 드비나 강변에 세워진 기념탑에도 불꽃이 타고 있었다. 전 유럽대륙을 정복할 정도로 막강한 독일 군대에 맞서서 처절한 전투를 벌이고 승리를 일궈낸 자부심에서 독일과 전투를 벌인 도시마다 대조국전쟁을 기념하는 기념비가 세워져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차역으로 돌아와서 광장인근의 식당을 찾았다. 늦은 아침식사를 하는 손님들로 북적이는 식당은 ‘블린’이라고 하는 러시아 전통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었다. 샐러드와 커피 한잔 그리고 밀가루 반죽을 얇게 지져, 넓게 만든 다음 다양한 재료의 속을 넣은 ‘블린’을 두 개나 시켰다. 하나로도 충분한데 이것저것 먹어볼 욕심으로 아침부터 과식을 하고 말았다.

무르만스크는 외부에서 찾아오는 방문객을 위한 숙박시설이 매우 부족한 실정이었다. 우선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객을 위한 유스호스텔이 없다. 값싼 중소형 호텔 몇 군데 찾아갔으나 가이드북에서 경고한 그대로 방을 구할 수 없었다. 아침에 갔던 기차역 앞의 메리디안 호텔로 다시 찾아갔다. 다른 호텔에 가는 것보다 내일 아침 노르웨이 가는 버스를 타려면 버스가 서는 이 호텔이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객실 두개가 욕실을 공동으로 쓰는 저렴한 방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방으로 들어가서 침대에 누워 있는데, 밖에서 음악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호텔 앞의 광장에서 가설무대를 세우고 그 위에서 연습하느라 악기와 노래 소리가 닫힌 창문을 넘어 들어왔다. 아르한겔스크 길모퉁이 전광판에서 알리고 있던 러시아의 날이 오늘이고, 여기서도  그 행사를 위해서 준비하고 있었다. /양기혁

                    
   
필자 양기혁은 1958년 서귀포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때 상경해 도시 생활을 시작했다. 중앙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나서 서울에서 바쁘게 살다 중년에 접어들고서 고향으로 돌아올 결심을 했다. 제주시내에서 귀농 생활을 즐기다 우연치 않게 방송통신대 중문과에 입학해 중국어를 공부했다. 이왕 공부한 김에 중국 횡단 여행을 다녀와 <노자가 서쪽으로간 까닭은?>이라는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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