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80년대 조작간첩 10%는 제주도민...'고문과 학대' 수십년만에 진실 밝혀져

36년 전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에 불법 연행돼 간첩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한 제주도민이 70대 노인이 되어서야 누명을 벗었다.

대법원 3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978년 징역과 자격정지 각 10년을 선고 받은 양모(77)씨의 재심에서 무죄를 확정했다고 24일 밝혔다.

양씨는 1976년 12월3일 제주시 한경면 자신의 집에서 “대통령의 초도순시가 있으니 도움을 달라”는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의 말을 믿고 함께 서울로 향했지만 중앙정보부에 연행돼 감금됐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양씨의 이복형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 소속인 것을 알면서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간첩 자백을 강요했다. 결국 양씨는 간첩 혐의를 인정하고 옥살이를 해야했다.

양씨는 뒤늦게나마 재심을 신청했고 올해 8월 서울고법은 “피고인의 고문 또는 가혹행위 관련 주장에 대해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 없이 형사소송법에서 정한 재심사유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검찰이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원심이 공소사실에 대해 범죄의 증거가 없다고 해서 무죄를 선고한 것은 정당하다. 원심이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양씨의 손을 들어줬다.

제주도는 4.3사건 이후 일본으로 떠난 재일교포가 상대적으로 많다. 1970~80년대 일본과 관련된 국내 조작간첩 사건의 10%가 제주도민이다. 강희철(55), 故이장형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강희철씨는 1987년 간첩 누명을 쓰고 법원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무기징역이 확정돼 1998년 8.15특사 때 가석방되기까지 12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천주교인권위원회의 도움을 얻은 강씨는 재심을 청구했고 2008년 6월23일 당시 제주지법 제2형사부(재판장 박평균 부장판사)는 “간첩의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故이장형씨는 1984년 6월14일 제주항에서 제주경찰국 대공분실 직원들에게 붙잡혀 서울로 끌려간뒤, 전기고문 등 각종 학대를 받다 간첩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1986년 1월10일 정부는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죄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1998년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면서 8.15특사로 사면돼 14년만에 고향으로 되돌아 왔다.

故이장형씨는 2005년 천주교인권위원회의 도움으로 재심을 청구했고 2008년 12월19일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재판장 이광만 부장판사)는 무죄를 선고했다.

24년만에 조작간첩의 진실이 밝혀졌지만 1심 선고 2년 전인 2006년 12월12일 이씨는 지병으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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