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산은 우리 제주도 인민의 성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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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후의 4·3칼럼> (58) 먼저 제주4·3에 대한 형상화를 이룬 북한문학

제주4·3과 북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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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기관지인 월간종합문예지 『조선문학』.
‘북한문학 어떻게 읽어야 하나/

북한문학작품들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북한작가들이 직접 겪지 않은 광주항쟁이나 제주4·3항쟁을 문학으로 형상화한 장편 <무등산>(사람펴냄)과 <섬사람들>(힘펴냄)이 출간된데 이어, 최근에는 북한문학의 한 전형으로 꼽히는 장편 <피바다>(한마당에서민중의바다)도 게재하며 펴냄도 소개했다. <실천문학>겨울호는 김일성의 항일투쟁을 다룬 조기천의 서사시 <백두산>을 비롯, 45년에서 50년 사이 초창기 북한문학의 대표작을 소개하는 <북한문학특집>을 꾸미기도 했다. <조선문학사>5권 가운데 제3권(19세기 말~1925)이 이번주 내로 출간, 북한에서 저술한 국문학통사가 부분적으로 선보이게 되고 조선 말엽의 지리학자 김정호의 일대기를 그린 역사소설 <조선의 아들>도 이번 주 안에 출간된다. 분단의 벽을 넘어 40년 만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이 ‘북한문학’과 호기심에 가득한 독자 대중 사이에는 그러나 아직 두 겹의 ‘높은 벽’이 가로놓여 있다.

△공산권문화예술을 전면 해금하면서 미해금의 영역으로 남겨둔 정부당국의 행정적 금기가 첫번째 벽이라면, △북한의 사회사와 정신사적 배경에 대한 충분한 사전 이해 없이 문학작품을 맞닥뜨리게 되는 대중의 ’인식의 벽‘이 두번째다. 우선 공산권 문화예술을 해금하면서 북한만을 제외시켜 놓은 정부 방침은 이율배반이라는 것이 문학인들의 지적이다. 분단극복의 일차적인 과제로 민족동질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북한문화예술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에 다소 생경한 북한문학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그동안 문학에 관한 기초자료와 정보가 차단돼와 단 한명의 북한문학 전문가도 없는 실정이다. 물론 반공교육용이 아닌 객관적 시각에서 쓴 연구서도 없다. 문학평론가 임헌영씨는 북한문학을 이루는 세 가지 바탕으로 △사회주의적 보편성의 미학 △북한의 민족적 특수성 △분단체제가 낳은 유일사상, 이른 바 ’주체사상‘을 꼽으면서 그간 북한문학에 대해서는 개인숭배 문학으로만 선전돼 왔으나, “배경을 무시하고 주체사상으로만 이해해도 곤란하며 너무 북학문학의 민족적 형식만 우상시하는 것은 좋은 태도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북한문학을 이해하려면 우선 작품이 상품화되는 자본주의 사회의 경우와 사회주의 사회가 문학의 생산양식과 미학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갈등의 미학, 부조리성을 바탕으로 의식의 내면을 드러내는 것이 자본주의적 미학이라면 철저한 변증법적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가는 것이 사회주의적 미학이다. “근대 이후에 대두하는 민족의식의 정통성을 남북한을 공정히 보는데서 창조된다. 이에 부정 일변도에서 벗어나 북한문학을 긍정적으로 수용, 통일의 민족문학사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도록 해야 한다”고 임헌영씨는 말한다.’ - 한겨레신문 1988년 12월 6일

북한문학의 성립은 1945년 해방과 남북분단을 기점으로 한다. 이 시기에 북한에서는 사회주의 이념을 내세운 공산체제의 확립을 위해 문학예술의 민중적인 교화기능을 강조하고, 문학 예술인들의 조직 동원, 사회주의 문예정책의 수립, 문예활동을 통한 사회주의 이념의 계몽강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북한문학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문학, 특히 소설이다. 북한에서는 소설을 ‘인민들 속에서 가장 사랑받는 문학형태’로 규정한다. 한 나라의 문학 수준은 소설 문학의 사상 예술적 높이에 따라 평가된다고 보면서 소설 발전을 강조한다. 예술의 발전은 문학의 발전 없이 이루어질 수 없으며, 소설이 먼저 발전하고 창작 분야의 혁신이 일어나야 예술 전반에 걸친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으며, 문학예술의 모든 형태가 주어진 사명과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또 북한에서는 시의 종류를 한국 등과는 달리 대체로 △서정시 △서사시 △이야기시 △서정서사시 △장시 △가사 등의 6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북한의 시를 포함한 모든 문학·예술은 사상과 이념을 내세우며 주민을 공산주의적으로 교육시키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만 인식, 내용을 형식보다 훨씬 중시하고 있다.  

초기문학에서 김일성의 지도자 위상은 중요한 문학적 소재로 취급되었다. 그에 대한 문화적 형상화는「김일성장군 찬가」(리찬, 1946), 「햇볕에서 살리라」(박세형, 1946), 「3천만의 태양」(김우철, 1947), 「김일성 장군님께 올린는 시」(윤시철, 1947) 등의 시에서 확인된다. 소설에서 김일성의 형상화는 「혈로」(1946), 「개선」(1948) 등을 창작한 한설야가 주도했다. 시와 소설에서는 김일성의 지도자적 덕성을 담아내는데 주력했다. 그중에서도 장편서사시 「백두산」(조기천, 1947)이 성과작으로 거론된다. 

근래에 와서 북한문학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현상은 남한의 문학에 대한 관심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남한문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미상불 1988년 남한에서의 납․월북 문인에 대한 해금 조치 이래 북한 현대소설 출간이 하나의 유행성 풍조를 보였다.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기관지로서 월간종합문예지 『조선문학』이 있다. 4x6배판의 투박한 용지에 한글 전용으로 되어 있다. 그 편집체제나 내용에서 보다 강경일변도로 바뀐 것은 주체사상이 강화되기 시작한 1986년 이후 무렵부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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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세덕.
특히 제주4·3에 대한 형상화의 경우 남한문학 보다 북한문학에서부터 먼저 이루어졌다. 북한에서는 4·3발발시기부터 한국전쟁 직전까지 제주4·3을 형상화한 작품들이 여러 편 발표되었다. 그 중 함세덕의 희곡 「山사람들」, 강승한의 서사시 「한나산」이 대표적이며, 안률만의 「동백꽃」, 박운산의 「노래」, 임학수의 「남쪽바다 섬을 생각하고」 등의 시에서도 제주4·3을 형상화하고 있다. 1980년데 이후에 나온 장편소설로는 김일우의 「한나산 (1986), 양의선의 「한나의 메아리」가 있다.  

‘1999년 탈북한 최진이 시인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의 조선작가동맹 문인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불만을 터뜨리곤 한다. 그런 자리에서 김일성 부자 찬양시를 너무 많이 쓴 어느 작가가 동료 문인들에게 욕을 먹은 적이 있다. “너는 짬만 나면 김일성 부자 욕을 하면서 찬양시는 어떻게 그리 많이 쓰느냐”는 말을 들은 것이다. 그 작가는 “나는 김일성 부자가 아니라 내 하느님을 생각하면서 글을 썼다”고 웃겼다고 한다. 김정일도 작가동맹의 찬양시를 보곤 “닭살이 돋는다”며 퇴짜놓은 적이 있다.

▶김일성 우상화 문학의 시조 격은 함흥 출신 소설가 한설야다. 그는 1946년 북한에서 단편 ’혈로(血路)를 냈다. ‘김일성 장군’이 낚시질로 터득한 유격 전술로 소부대를 이끌면서 조천 천지에 광명을 비춘다는 내용이다. 임화를 비롯한 다른 월북 문인들은 김일성 우상화 같은 것을 생각도 않을 때였다. 임화는 1953년 미제 간첩으로 몰려 숙청됐다. 한설야는 그 후 김일성 우상화 소살을 계속 써 교육문화상(相)까지 올랐지만 그 역시 1962년 숙청됐다. ‘나 자신의 문학을 할 때가 온 것 같다’고 동료에게 쓴 편지가 고발당했다.

▶김일성 우상화 문학은 1960년대 후반 본격화됐다. 당시 노동당 중앙위원 4년차였던 김정일이 ‘주체문학론’을 내세워 김일성 우상화를 지도하기 시작했다. 1967년 숙청된 함경남도 갑산군 출신 권력층 ‘갑산파’는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당 간부들에게 읽히고 봉건유교 사상을 퍼뜨렸다는 이유로 밀려났다. 노동당은 ‘김일성 혁명 사상만이 화고 부동한 신념’이라고 선언했다.

▶1994년 김일성이 죽은 뒤엔 김정일이 ‘수령영생문학’이란 걸 하라고 지시하면서 김일성 추모시가 많이 나왔다. 김정일의 선군 정치를 찬양하는 ‘선군혁명문학’도 나왔다. 2004년 북한 최고 시인 오영재는 ‘선군의 총소리’란 시를 발표했다. 기관단총을 쏘는 김정일을 노래하며 ‘오직 총대만이 민족을 구원할 수 았음을/ 온 세상에 선언하시는/ 철의 결심의 폭발이었다’고 읊조렸다.

▶지난 14일 경주에서 열린 국제펜대회 총회에서 ‘망명 북한 작가 펜센터’ 가입이 참가국 86개국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북한은 펜 회원국이 아닌데 탈북 문인 20여명이 먼저 가입했다. 탈북 문인들은 “쓰고 싶은 글을 못 쓰는 북한 문인들이 우리를 얼마나 부러워하겠느냐”고 했다. 앞으로 탈북 문인들은 국제펜본부에 북한 문학과 인권 실태를 정식 보고하게 된다. 탈북 문인들이 겪은 ‘주체문학’ 보고서도 냈으면 좋겠다. 세계문학사에서 가장 희극적이면서도 가장 비극적인 대하소설 한 세트는 충분히 되지 않을까.’-조선일보 만물상 ‘북한문학 66년’(2012년 9월 17일)        

강승한의 서사시 『한나산』

강승한(康承翰)은 1918년 황해도 신천군 석당리에서 태어났다. 해방이 되자 황해도 문예총지부장으로 일하면서 시 창작에 힘썼다. 그가 창작한 작품들은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열화같은 충성심과 건당(建黨)·건국(建國)·건군(建軍)을 위한 투쟁, 공화국 북반부에서 실시되고 있는 변화의 개혁들에 대한 열정을 높은 호소성과 전투적 기백으로 노래하였다.

이러한 특징은 단막극 「천지개벽」,「토지개혁 만세」, 장막극 「덕보의 운명」, 시 「강령은 우리를 승리로 인도한다」, 「진군」, 서사시 『한나산』 등에 잘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작품 중에서 서사시 『한나산』이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분단 이후 북한문학사에서 조기천의 서사시 「백두산」과 함께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다.

『한나산』은 제주도 인민들의 항쟁을 통하여 이승만 정권의 망국적인 5·10 단선을 반대 배격하고 전조선적인 통일적 중앙정부를 세우려는 남조선 인민들의 강렬한 지향과 조국통일에 대한 염원을 폭넓게 재현하였다고 북한에서는 말한다. 실제 작품에서도 미제와 그 주구들의 반인민적 책동과 그로 말미암아 고조된 인민들의 반항의식을 보여주면서 5·10 단선을 반대하는 투쟁을 기본 내용으로 하여 사건을 전개하고 있다.

서사시 『한나산』의 주인공들을 보면 김 선생, 만갑, 인구, 순갑 등의 투사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한라산의 봉우리에서 투쟁의 횃불을 올리며, 이 불길을 신호로 멀고 가까운 봉우리마다 투쟁의 봉화가 불타오르게 된다. 투사들은 ‘단독선거 절대반대’ ‘미군 즉시 철퇴하라’ ‘친일파, 민족반역자 타도하자’ ‘인민공화국 수립 만세’ 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경찰서’ ‘특별경비대’ ‘독촉 지부’ ‘대청, 서청 지부’들을 무자비하게 족친다.

“김일성 장군님의/ 밝으옵신 령도 받들어/ 한시바삐 남조선에도/ 민주개혁을 펴웁시다./ 한나산은/ 어떤 원쑤라도 가히 범치 못할/ 우리 제주도인민의 성새/ 싸웁시다!/ 나아갑시다!/ 장백산의 줄기에 어린 피자국이/ 우리를 부르고/ 우리를 인도하는 곳/ 승리가 있을 뿐이오!/ 광명이 있을뿐이요!” -『한나산』 중에서

김 선생의 격정적인 목소리의 연설 대목이다. 제주도를 인민의 성새(城塞)라고 보고, 이 성새를 지키기 위해서는 모든 인민이 나가서 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원수들의 망국적인 5·10 단선을 ‘짓부셔버린’ 제주도 인민들이 통일적인 중앙정부를 세울 자기들의 대표를 ‘북조선’으로 떠나보내는 장면을 묘사한다. 제주도 인민들의 대표로 ‘북반부’에 온 만갑은 자주적이고 창조적인 북반부의 행복한 생활상을 보고 끝없는 감격에 휩싸인다. 곧 이어 만갑은 다른 ‘남조선’ 대표들과 함께 ‘경애하는 수령’을 만난다.

“수양산 산머리가 떠나갈 듯/ 우렁찬 박수 박수/ 영광의 환호성 솟음치며/ - 김장군님이시다!/ 김장군님이시다!/ 김일성 장군님께서 들어오신다!// 마음 지척에 모시여 그리웁던/ 김일성 장군님” -『한나산』 중에서

만갑은 김일성 장군을 뵈옵는 순간에 남녘땅에서도 기어이 ‘장군님’의 정치가 베풀어지도록 하기 위하여 결사 투쟁할 각오를 다시 굳힌다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강승한의 『한나산』을 두고, 북반부에 대한 남조선 인민들의 끝없는 동경과, 남녘 땅에도 기어코 인민의 정권을 세우고야 말리라는 그들의 투쟁 결의를 격동적으로 노래하였다고 말한다. 

강승한은 장편서사시 『민족의 태양』을 창작하던 중 ‘원쑤들’에게 체포되어 1950년 10월 17일 처형되었다. 한국 전쟁 당시 유엔군에게 체포된 것이다. 그러나 강승한의 『한나산』은 시적 소재가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그 객관적 사실과 공정한 평가를 벗어나 혁명적 전략을 위한 김일성 유일체제를 공고히 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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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山사람들' 1949년 1월 평양공연(윗줄 왼쪽 함세덕, 오른쪽 배우 육철시, 아래 김순남).

세덕의 희곡 「山사람들」

함세덕(咸世德, 1915~1950)은 1936년 『조선문학』을 통해 「山허구리」로 희곡문단에 등장하였다. 1940년 조선연극협회가 만들어지고 해방에 이르기까지 친일작품 활동을 하며「낙화암」을 시작으로「무영탑」,「추장 이사도라」,「남풍」 등을 만들어낸다.  해방 직후 조선연극건설본부에 가담하고 황철, 박민천, 서일성 등과 극단 ‘낙랑극회’를 조직하였다. 그 창립공연으로 프리드리히 쉴러(Friedrich von Schiller)의 작품 「군도」를 번안했다는 「산적」을 공연하였다. 

1947년 1월, 미군정 경찰총감 장택상의 특별고시가 발표되자 안영일, 함세덕, 문예봉 등 30여 명의 무대예술대표가 러치(Archer L.Lerch) 미군정장관에게 ‘고시취소 요구 건의서’를 전달하였다. 이것이 묵살되자 ‘문화단체총연맹’에서 상임위원회를 열고 김남천, 함세덕, 김기림 등이 중심이 되어 ‘문화옹호 문화인 예술가 총궐기대회’를 개최하지만 또 다시 실패한다. 

1946년 연극이 인연이 되어 만난 10세 연하의 여인과 결혼하였다. 결혼 직후 1947년 제2차 전국문학자대회가 실패하자 문인들이 대거 월북하는데 함세덕도 그 일원으로 북행(北行)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약 1년 후 그의 아내도 남편을 따라 북으로 갔다. 함세덕의 아내는 북에서 아이를 하나 낳았으나 곧 죽고 말았다고 전해진다.

함세덕은 월북 연극인들과 더불어 북한 연극의 발판을 세웠다. 이들은 당의 노선에 따라 목적극을 썼는데 즐겨 다룬 내용은 남한의 반정부 투쟁이었다. 함세덕 역시 제주4·3항쟁을 다룬 「山사람들」(1949), 이승만을 비판한 「소위 대통령(所謂 大統領)」(1949)을 창작하였는데, 그의 작품은 북의 문학사에서 언급되지 않는다. 오히려 엉뚱하게도 「동승」이 언급된 정도이다. 그러나 한국동란 때에 남하하던 도중 함세덕은 1950년 6월 29일 신촌 부근에서 폭탄을 맞아 적십자 병원에서 수술 도중 사망하였다.

「山사람들」은 제주민중들이 폭력에 맞서 항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당위성과 통일정부수립의 당위성을 포착한 작품이다.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 소련과 김일성, 북조선을 이상화하는 대사와 장면은 작위적이고 경직된 느낌을 준다. 지서장은 일제 고등계형사로 신의주에서 도주해온 자이고, 전 형사는 제주도 출신의 전 사법계 형사다. 

“삼바우; 북조선은 여기허군 아주 딴 세상이 아님수까? (중략) 장달; 농촌만이 아니우다. 공장두 그렇다구 헙디다. 모두들 인민들 손에 그게 돌아왔다구 헙디다. 그래서 흥남에선 우리헌테 필요한 질소비료가 산떼미루 쏱아 나오구 있답디다. 그리구 황해제철소선 입으루 무쇨 먹으문 아래루 철로길이 쑥쑥 나온다구 헙디다. 삼바우; 그게 다 쏘련 사람들 덕택이 아님수까. (중략) 부장의; 그럼 우리들두 일가권솔 해가지구 북조선으로 가서 살자꾸나.”

등장인물들로 대표되는 제주사람 누구나가 북한을 동경하는 사회주의자로 비쳐지고 있다. 인물의 내적 갈등양상은 기껏해야 1막1장에서 아들의 사회주의 활동을 염려하는 제곤母의 넋두리가 전부다.

“제곤모; 그 애가 주정공장에 댕길 땐 다달이 받든 거허구 내가 농사짓는 걸허구 보태서 그래두 끄니 거르지 않구 살았는데 지난날에 동맹파업 일으키구 거기서 내쫓기구 나선 동전 한 푼 들어오는데 없구나 <중략> 느네 오래바가 우리 아일 괜히 노동조합에다 넣어가지구 저렇게 맹글어 놓지않었니.”

제주4.3당시 제주도의 풍토와 문화는 사실적이다. 장문의 해설을 통해 해촌마을의 취락구조와 주거형태,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업에 관계된 노동방식과 노동기구에 대한 묘사는 세밀하게 나타난다. 극중에 ‘희가(戱歌)’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4·3 당시의 구전가요의 삽입 또한 4.3을 바라보는 제주도민의 정서를 제대로 보여준다.

“경찰놈은 감둥 개/ 서청놈은 미친 개/ 대청놈은 하얀 개/ 민족청은 푸른  개/ 경비대는 노랑 개/ 미국놈은 오랑캐/ 모가지를 줄줄 매서/ 일본해로 보내주자”

“山에서 살고/ 山에서 내려왔다/ 다시 山으로 올라간다고/ 부락 사람들은 그들을/ 山사람이라고 불렀다” 

「山사람들」의 등장인물을 보면, 부을나, 삼바우처럼 작가가 창조한 인물들도 있지만 실존인물과 관련된 인물들도 많다. 안재홍, 송호성, 김영배, 조병옥 등은 실존인물이 그대로 나온 경우이며, 선우기승, 부용철 등은 성이나 이름의 일부만 살짝 바꾸어 나온 경우이고, 김석민, 최진렬 등은 특정 인물을 모델로 삼은 것으로 추정되는 경우다.

“삼바우; 북조선은 여기허군 아주 딴 세상이 아님수까? (중략) 장달; 농촌만이 아니우다. 공장두 그렇다구 헙디다. 모두들 인민들 손에 그게 돌아왔다구 헙디다. 그래서 흥남에선 우리헌테 필요한 질소비료가 산떼미루 쏱아나오구 있답디다. 그리구 황해제철소선 입으루 무쇨 먹으문 아래루 철로길이 쑥쑥 나온다구 헙디다. 삼바우; 그게 다 쏘련 사람들 덕택이 아님수까. (중략) 부장의; 그럼 우리들두 일가권솔 해가지구 북조선으로 가서 살자꾸나.”

등장인물들로 대표되는 제주사람 누구나가 북한을 동경하는 사회주의자로 비쳐지게 하고 있다. 애초부터 이들은 모두 혁명가였고 철저한 사회주의자였다. 인물의 내적 갈등양상은 기껏해야 1막1장에서 아들의 사회주의 활동을 염려하는 제곤母의 넋두리가 전부다.

“제곤모; 그 애가 주정공장에 댕길 땐 다달이 받든 거허구 내가 농사짓는 걸허구 보태서 그래두 끄니 거르지 않구 살았는데 지난날에 동맹파업 일으키구 거기서 내쫓기구 나선 동전 한 푼 들어오는데 없구나 (중략) 느네 오래바가 우리 아일 괜히 노동조합에다 넣어가지구 저렇게 맹글어 놓지 않었니.”

임화의 시 「인민항쟁가」와 「해방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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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화.
“원수와 더불어 싸워서 죽은 무리의 죽음을 슬퍼말아라/ 깃발을 덮어다오 붉은 깃발을 그 밑에 전사들 맹세한 깃발// 더운피 흘리며 말하던 동무/ 쟁쟁히 가슴속 울려온다/ 동무야 잘가거라 원한의 길을/ 복수의 끓은 피 용솟음 친다// 백색테러에 쓰러진 동무/ 원수를 찾아서 떨리던 총칼/ 조국의 자유를 팔려는 원수/무찔러 나가자 인민유격대”-「인민항쟁가」(임화 작사/ 김순남 작곡) 

“조선의 대중들아 들어 보아라/ 우렁차게 들려오는 해방의 날을/ 시위자가 울리는 발굽 소리와/ 미래를 고하는 아우성 소리// 노동자와 농민들은 힘을 다하여/ 놈들에게 빼앗겼던 토지와 공장/ 정의의 손으로 탈환하여라/ 제놈들의 힘이야 그 무엇이랴” -「해방의 노래」(임화 작사/ 김순남 노래) 

임화(林和, 1908년~1953년)는 시인이며 문학평론가, 정치가이다. 서울 출신이며, 본명은 임인식(林仁植)이다. 1927년경부터 계급문학에 관심을 보이며, 1929년에 시「우리 옵바와 화로」, 「네거리의 순이」 등을 발표하고 경향파 시인으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을 대표하는 작가로 부상했다. 태평양전쟁 후 조선문학건설본부, 조선문학가동맹 등 좌익 문학단체에 적극 참여하면서 박헌영에게 매료된 그는 이후 남로당 노선을 걸었다.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의 멤버로 활동하였으며, 해방 이후에는 조선공산당 재건운동과 건국준비위원회 활동, 남조선로동당 창당 활동 등에 참여했다. 그가 작사한 「인민항쟁가」는 해방 이후 널리 불리어진 노래이다. 

김봉현·김민주의 『제주도인민들의4·3투쟁사』에는 “그들은 간고하던 항일무장투쟁의 나날들을 회상하며, 또 그때마다 혁명의 각종 노래로써 사기를 돋우며 모든 곤란과 슬픔을 이어 나갔다.「제주도빨치산의노래」,「남조선형제를잊지말라」,「전평의노래」,「유격대행진곡」, 「나팔수의노래」,「적기가」,「해방의노래」,「추도가」,「민전가」,「인터내쇼날」 등의 혁명가요를 성난 파도와 같이 드높게 부르며, 항쟁의 기량을 불러일으켰다”고 쓰고 있다.

1947년 미군정의 탄압을 피해 월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국에 참여하였으나 휴전 직후인 1953년 8월 6일에 남로당 중심인물들과 함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재판소 군사재판부에서 ‘미제간첩’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당했다.

김순남(金順男, 1917년~1983년) 작곡의 파르티잔행진곡은 임화가 작사한  ‘남조선 빨치산의 노래’와 박찬모가 작사한  ‘제주도 빨치산의 노래’가 잘 알려져 있다. 1948년 제주항쟁
을 담은 연극이 평양국립극장에서 함세덕 극작, 안영일 연출로「山사람들」로 상연되었다.

양의선의 장편소설 『한나의 메아리』

양의선의 『한나의 메아리』는 제주4·3 당시 무장대 지도부였던 강규찬·고진희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당시 제주도당의 투쟁과정을 밀도 있게 그린 작품이다. 강규찬·고진희·이덕구·김달삼 등 4·3 당시 무장대들을 실명으로 내세우며 제주4·3을 미국에 대항한 반제국주의 통일운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기존의 북한문학에서 제주4·3을 남로당 지령 또는 남로당 제주도당위원회의 독자적 봉기로 보지 않는데 반해『한나의 메아리』는 제주도당위원회의 자발적 판단에 의한 인민봉기로 그려내고 있어 주목을 끈다. 남한을 탈출한 최준오라는 인물이 제주4·3의 핵심인물 중 하나였던 강규찬·고진희 부부의 일생을 취재하는 형식으로 그려진 이 소설은 액자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다.

『한나의 메아리』는 당시 무장대가 김일성 노래를 감격스럽게 부른다거나, 이들이 ‘김일성 장군’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보이는 것으로 그려내면서 제주4·3과 김일성의 영웅성을 교차해내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또 이들 부부가 제주에서의 투쟁을 마치고 북한의 공화국 창립대회에 참가해 ‘김일성 장군’의 품에 안기며 조국애와 민족애를 느낀다는 결말은 북한 리얼리즘 문학의 한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4·3의 발발과 김달삼과 김익렬의 평화회담, 오라리 방화사건 등 당시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밀도 있는 묘사는 북한에서도 제주4·3의 실체를 대한 문학적 형상화 노력이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김일우의 장편소설 『한나산』

북한이 제주4·.3을 진지한 학문적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자신들의 정치적 틀 속에서 이용한 측면이 강하다. 김일우의 장편소설『한나산』(1986)은 제주4.3을 역사적 배경으로 한 제주섬 사람들의 이야기다. 토벌대 소위에서 인민유격대 소대장으로 변신한 제주 출신 군인 양동석과 해녀조합 책임자였다가 인민유격대 소대장으로 변신한 연인 김아의 투쟁과정을 그렸다.  

“그 자는 우리 편이 아닙니다. 아무리 봐도 그 자는 색깔이 다릅니다. 무서운 좌경분자일 뿌 아니라 이적행위를 한 것 같습니다. (중략) 결국 우리가 범한 과오이고 제주도 당 조직이 범한 과오입니다. 우리가 잘못 싸웠지요.”

『한나산』을 비롯한 양의선의 『한나의 메아리』등 다수의 북한 소설 속에 제주4·3에 김일성의 영향력이 행사되었지만 남로당의 오류로 전략적 필요 이상의 희생이 발생해 결국 실패한 사건으로 끝났다는 논조가 스며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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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주 동화작가 크리스토퍼 리처드슨(왼쪽 두 번째)이 방북 당시 북한어린이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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