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 고와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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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후 칼럼] 거닐며 온라인 속 포켓몬 잡는 새로운 놀이...호기심·창의력은 더욱 키워야

걷는다. 괴물이 나온다. 포켓볼을 던진다. 맞춰 잡는다. 볼에 갇힌 괴물은 발버둥친다. 잡히거나 도망친다. 포켓볼이 떨어지면 무료 서비스 지역을 찾거나 유료 구매한다. 새로운 캐릭터를 품은 에그를 부화시키기 위해 5km를 걷는다. 끝이 없을 것 같다. 스마트폰 안의 움직임만 보며 무아지경에 빠진다. 매일 1만3000보 이상 걸으며 29종 98마리를 포획했다. 얼마 전 속초에 가서 포켓몬 고의 마법에 빠진 3일 동안의 경험이다. 유료 관광지는 게임 앱을 제시하면 입장료를 절반으로 할인해주는 등 속초, 고성, 인제는 전국의 젊은이들을 끌어 모으고 있었다. 서울로부터 멀리 떨어진 특정 지역에서만 가능한 게임이 중앙을 때린 것이다. 

포켓몬 고 열풍이 시사하는 바는 단순한 게임부터 디지털 기술 발전의 향배와 인간의 미래, 놀이와 노동에 대한 근원적 성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게임은 개인이 모니터에 나타난 동작에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기술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볼 수 있다. 개인의 열광적인 참여가 모여 스펙타클한 소비행태를 보여주는 것이 게임의 특징이다. 소비사회에서 게임은 행복, 자부심 등을 충전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확장시키는 미디어의 영역에 놓여있다. 이제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없앨 것으로 보는 견해는 보편성을 갖게 되었다.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대체하는 ‘노동의 종말’ 시대에 놀이와 노동의 관계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산업혁명 이후 놀이는 노동의 장식품이 되었다. 노동과 과학기술 발전, 생산성이 시대를 지배하고 놀이에 대한 반대 기류는 높아졌다. 산업적 가치와 과학기술이 우상화되고 인간의 의식에 스며들면서 역사의 진보라는 환상이 널리 퍼졌다. 경제적 요소에 바탕을 둔 합리주의는 노동의 가치와 물질에 대한 숭배를 심화시켰다. ‘놀이는 마약, 돈벌이는 선’이라는 프레임으로 놀이는 악마로 치부됐고 문학과 예술에서 놀이는 싸구려 취급을 당했다. 산업발전으로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서 놀이는 노동의 재충전 수단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지만 제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디지털 세상이 되면서 게임문화는 놀이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인간의 삶 속에서 놀이는 주체적인 영역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노동의 영역을 위협하는 경향이 뚜렸해진 것이다. 산업혁명 초기에 일과 놀이는 분리됐지만 4차 산업혁명기에 접어들면서 놀이와 노동은 동등한 수준에서 합쳐지고 있다. 인간본성이 놀이와 일의 인위적 분리로부터 융합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회귀하고 있는 셈이다. <호모 루덴스>의 저자인 요한 하이징아가 “모든 존재는 놀이 정신을 발한다. 진지함에서 벗어나 놀이의 세계로 들어갈 때 문화가 강력히 추진된다. 문명은 놀이요소가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한 것처럼 놀이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포켓몬 고는 실내에서만 행해진 게임을 밖으로 끌어내 어두운 이미지를 벗어 던졌다. 야외에서 움직여야만 가능하기 때문에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해소하고 있다. 아웃도어형 감성적 인간을 창출해 놀이시대의 비전을 보여준다. 새로운 마케팅 기회, 교육혁신과 공간정보 활용 혁명을 이뤄낼 수 있는 잠재력도 갖고 있다. 게임 체인저이자 상상력의 촉매로서 일과 놀이의 융합 가능성을 구체화한 것이다. 

디지털의 대량 세례를 받고 구조화된 시대에 일과 놀이의 수직관계를 수평적으로 전복하는 힘은 지속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쾌락에 치우치기 쉬운 게임은 과잉되면 권태가 생기고 자극의 강도를 높일 것을 요구받는다. 쾌락 추구의 과정은 무한 반복되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의 게임문화를 놀이와 노동을 융합하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는 기회이자 동력으로 본다면 낙관적 전망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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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후 소통기획자.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디지털시대는 집단이 아닌 개인이 기준인 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다. 개인화된 놀이는 대중을 읽을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됐다. 포켓몬 고에는 인간과 어울리는 다양한 형태의 캐릭터가 등장하고 수집욕구를 자극하면서 놀 권리를 충족시킨다. 개인이 게임을 풀어가면서 새로운 대안, 세상을 보는 창을 만들어 간다. 자존감 상실, 불안, 소외에 시달리는 청년들에게 호기심, 창의력을 자극하고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서울시와 성남시의 청년수당은 일과 놀이 문화를 장려하고, 20년후 청년 1명이 4명을 먹여살려야하는 노령화시대를 대비하는 미래 투자임에 틀림없다. 포퓰리즘으로 낙인찍고 매도할 일은 아니다. / 권영후 소통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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