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레코드> (97) 새봄 나라에서 살던 시원한 바람 / 시인과 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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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 / 시인과 촌장 (1996)

강원도 철원에서 하사관으로 군복무할 때 ‘시인과 촌장’의 노래 ‘기쁨 보리떡’이나 한영애의 노래 ‘완행열차’를 들으며 향수를 달랬다. “기다림이 오래 되면 착한 새들은 고향으로 돌아간다”(‘기쁨 보리떡’)고 했으니 “고향으로 가는 마음을 알고 있는 기차”(‘완행열차’)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때 나는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군대에 갔었다. 그래서 대학교 재학 중 입대를 한 다른 군인들이 대학 생활 얘기를 할 때는 끼어들지 못한 채 들으며 그 푸른 교정을 동경하곤 했다. 한번은 새로 전입한 신병이 대학교에 가서 배운 노래라며 노래를 부르는데 그 노래를 들으며 남몰래 눈물을 훔쳤다. 그 노래는 ‘천지인’의 ‘청계천 8가’였다.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부분에서 이등병은 무슨 생각에 빠져 노래를 하는지 목소리가 떨리면서 눈시울이 붉었다. 난 그 노래의 노랫말이 감동스러운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한 감정은 가보지 못한 대학교에 대한 막연한 선망과 군생활의 건조함이 섞여 울림이 컸다. 외박을 나갔을 때 군장점에서 ‘시인과 촌장’ 3집 카세트 테이프를 샀다. ‘시인과 촌장’은 서영은의 소설 제목에서 따왔다고 한다. 하덕규의 노랫말을 묶어 시집이 나왔을 정도로 ‘시인과 촌장’의 노랫말은 시적이다. 그리고 함춘호의 기타도 연주가 시적이다. 휴가를 나가면 ‘우리 노래 전시회’라는 컴필레이션 음반을 찾는 게 휴가의 목적이었다. ‘시인과 촌장’ 2집의 첫 곡 ‘푸른 돛’을 들으며 먼 항해를 떠났다. ‘비둘기에게’, ‘고양이’, ‘좋은 나라’ 등의 노래를 들으며 탈영하지 않았다. 2차세계대전 때 전사한 독일군 병사의 품에서 발견되었다는 책 ‘데미안’처럼 ‘시인과 촌장’이 그 역할을 해주었다. 여우는 죽을 때 자신이 태어난 구릉을 향해 머리를 둔다고 한다. 우리는 이 세상을 왜 견디는가. 모두 고향으로 돌아기 위해서다. 전역을 하고 집에 가서 짐을 푼 뒤 용강에 있는 어머니 산소에 갔다. 사람들은 명절이 되면 고향으로 간다. 그 고향으로 가는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올해는 설날이 빠르다. 아직 겨울이다. 작은 방에 누워 ‘시인과 촌장’의 노래 ‘새봄 나라에서 살던 시원한 바람’을 반복해서 듣는다. “따뜻한 숲을 쓰다듬으며 불고싶다고 고향이 그립다고” 흥얼거리며. 그리고 생각한다. 내가 오르내렸던 휴전선 철책 계단을 오늘밤에도 오르내리고 있는 그 초병을. 많이 그리워하고 기다리는 착한 새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나니. /현택훈(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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