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법화학·유전자 재감정서 증거물로 제시...변호인 “1심과 증거물 달라진 게 없어”

11년 전 제주 보육교사 살인사건으로 구속기소 돼 무죄를 선고 받은 피고인에 대한 본격적인 항소심 재판이 열렸지만 예상대로 검찰은 스모킹 건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광주고등법원 제주제1형사부(왕정옥 부장판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강간등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모(51)씨를 상대로 27일 항소심 2차공판을 열었다.

아웃도어 복장에 마스크를 쓰고 변호사와 함께 법정에 들어선 박씨는 시종일관 침착한 모습으로 재판에 임했다. 검사석에는 공판검사 대신 기소 당시 수사를 맡았던 이환우 검사 마주했다.

검찰은 공소유지 과정에서 핵심 간접증거로 제시한 미세섬유의 재감정 결과를 증거물로 제출했다. 반면 변호인측은 1심과 달라진 것이 없다며 증거에 부동의 한다는 뜻을 전했다.

미세섬유 증거물은 피해자 이모(당시 27세)씨가 2009년 2월1일 새벽 당시 택시기사였던 박씨의 차량에 탑승했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다.

당시 피해자의 시신에서는 박씨의 DNA가 나오지 않았다. 택시에도 피해자의 DNA는 없었다. 검찰은 이에 보완하기 위해 섬유 중 하나인 실오라기를 미세증거로 제출했다. 

검찰은 11년 전 박씨의 택시 앞·뒤 좌석과 트렁크에서 섬유조직 여러 개를 발견했다. 피해자의 옷에서도 의문의 실오라기들이 등장했다.

노출된 적이 없는 여성의 상의와 치마에서 박씨의 남방과 유사한 진청색 섬유가 다수 발견됐다. 택시 운전석과 조수석에는 여성이 입던 무스탕의 목 부분 안쪽의 동물섬유가 확인됐다.

특히 동물섬유는 둥근 유리구슬 형태의 독특한 구조가 일치했다. 공장에서 다량 생산되는 면섬유와 달리 동물 털은 종에 따라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두 사람 간 격렬한 접촉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했다. 피해 여성의 부검에서도 몸 곳곳에서 몸싸움으로 추정되는 외상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반면 1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신체에서 박씨의 옷에서 전혀 발견되지 않은 미세섬유에 주목했다. 이 경우 피해자가 사망 전에 제3자와 접촉했을 가능성이 제기될 수 있다.

실제 원심 재판부는 검찰이 제시한 미세섬유가 일반적인 옷에서 다량 생산되는 만큼 섬유의 유사성은 인정할 수 있어도 동일성을 입증하기는 어렵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은 증명력을 높이기 위해 피해 여성의 무스탕에서 무작위로 15개 부위의 미세섬유를 추출하고 이를 박씨의 차량 속 섬유와 대조한 결과를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변호인측은 “검찰측 의견서는 1심과 내용이 같다. 동물털 역시 제3자의 것일 가능성이 있고 대조군도 검찰이 임의로 제출해 이를 믿을 수도 없다”며 증거 부동의 의사를 전했다.

재판부는 6월10일 오전 10시30분 3차 공판을 이어가기로 했다. 이날 검찰측 증거에 대한 동의 여부가 가려진다. 증인신청이 없으면 결심으로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