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제주도민들이 잘살기 바랄 뿐!”
워싱턴. 미 연방정부의 최고 행정기관이 몰려 있는 워싱턴 DC. 미국 정치의 심장, 아니 어쩌면 세계 정치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곳.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워싱턴 기념탑(우측 사진), 이 기념탑을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국회의사당과 링컨기념관, 그리고 그 좌우에 포진하고 있는 세계적 수준의 박물관들은 가히 이곳이 미국의 상징임을 보여준다.
이곳에도 제주인들이 있다. 하워드대 교수, 뉴햄프셔대 교수도 있고 워싱턴에서 가장 큰 사찰의 주지스님도 있다. 전 워싱턴DC 시장보좌관 출신 인사도 있고, 의사 변호사 사업 등 각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제주인들이 대략 1천여명으로 추산된다.
워싱턴 도민회(이어 뉴욕, 시카고)를 취재하기 위해 지난 15일 아침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워싱턴 행 유나이티드 항공을 탔다. 워싱턴 델러스공항까지 꼬박 5시간 30분이 걸린다. 인천공항에서 태국 방콕 정도까지 걸리는 비행시간이다. 시차도 3시간이나 차이가 나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시간을 고쳐야 한다. 새삼 미국 땅덩어리가 넓음을 실감한다.
델러스 공항에는, 워싱턴 도민회 이호석 회장님이 직접 마중 나와 주셨다. 도민회 이사이자 제주의소리 워싱턴 시민기자인 문기성씨와 함께.

저녁 7시 북버지니아에 있는 한국식당 ‘설악가든’. 재미워싱턴지구 제주도민회 임원들이 모였다. 100만 제주인 네트워크 취재를 온 필자와 만나기 위한 이유도 있지만, 이번 탐라문화제 행사에 참여했던 이호석 회장 일행의 보고를 듣기 위해서다.
김영기 고문(4대회장), 이호석 회장, 김노라 이사장, 홍경수 부회장, 문기성 이사, 허용익 부회장, 이경숙 부회장 등 모두 7명(아래 사진순 우측부터, 이 부회장은 나중에 참석)이 자리를 함께 했다. 탐라문화재 행사 때의 에피소드를 이호석 회장이 구수한 사투리로 털어 놓으며 대화를 주고 받는데 마치 가족적인 분위기다.


대화 도중 필자가 끼어들었다.
“워싱턴에 거주하고 있는 제주교민들의 숫자는 얼마나 되는가”
- 700명에서 1천명 정도로 추산한다.
이들 중에 교민회 활동을 하는 이들은 50여명. 왜 그렇까?
허부회장이 거든다. 아직 이민 와서 얼마 안된 젊은 사람들은 “아직도 아파트 살암수다”하면서 안나온단다. 오해하지 마시라. 우리나라는 아파트가 부의 척도로 얘기되고 있지만, 여기서는 이른바 ‘하우스’라는 단독주택에 사는 것이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있다는 것을 반증하기 때문.
“4.3 후유증으로 인해 도민회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이도 있다”
충격적인 것은 심지어 4.3 후유증으로 인해 도민회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이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 머나먼 미국 땅에서 조차 말이다.
50대 중반의 모 인사는 제주출신 학생 3명을 초청하여 생활비와 등록금을 부담하기도 하고, 제주대 모금 행사에도 선뜻 기부하는 뜨거운 제주사랑을 실천하면서도 아직도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다고 한다. 허부회장을 통해 이 분을 인터뷰할 수 있도록 간청했지만 끝내 고사하여 실패하고 말았다. 마음이 무겁다. 4.3특별법이 제정되고 희생자 명예회복이 됐다고 하지만 머나먼 이곳 미국 땅에 그 피해의식이 상존하고 있다.
얘기나온 김에 허부회장을 잠깐 소개하고 넘어가자(이회장과 김고문은 따로 인터뷰 약속이 잡혀 있으니 다른 꼭지에서 소개한다). 허부회장은 제주국제컨벤션센터 사장인 허정옥 교수의 친동생이다. 91년 아버님 초청으로 미국으로 왔다. 현재 주로 트랜스미션을 수리하는 자동차 정비공장의 사장이다. 이회장이 ‘워싱턴 도민회의 허브’라고 추켜세울 만큼 도민회 일에 열심이다(와이프까지). 국내에 있을 때는 대우중공업 제주 지역 엔진담당으로 있었는데, 아버님이 “세계지도를 펴 놓으면 점으로 밖에 표시되지 않는 그곳에 남자가 살면 되겠냐”며 수차례 강권하여 미국으로 오게 됐다고. 현재 고교 1년인 딸은 중학교 졸업시 대통령상을 받은 재원이며, 아들은 미국 프로야구 선수가 되겠다고 열심이다. 누나인 허교수가 항상 자신을 걱정한다면서 오히려 컨벤션센터 사장이란 어려운 중책을 맡은 누이를 걱정한다(필자가 보기엔 이곳 교민사회에서도 인정받고 사업으로도 성공한 것 같으니 허교수께서는 이제 맘을 놓으시기 바란다).

이회장께서는 주저함 없이 단호하게 “바라는 내용? 없다! 오로지 제주도민들이 잘 살기만 바랄 뿐이다. 우리는 그 이상 바라서도 안된다.”고 얘기한다. 자신들은 힘들게 살아도 도와주려 하지 도움을 받으려고 하고 있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향토학교 참가비를 50% 보조해 주는 것도 자신은 반대했다고. "제주에 못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거기를 도와주어야지, 왜 우리가 도움을 받냐"며 반문한다.
김영기 고문은 “일전에 교민중 한사람(진 모씨)이 돌아가셨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고향으로 돌아가 묻힐 수 있게 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이역만리 외국에서 외롭게 돌아가는 이민 1세대들이 많다.” 면서 김고문은 자식들에게 자신에게 기대지 말라고 하면서 가능하면 고향에 돌아가 의미있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고 피력한다.

홍경수 부회장은 52년생으로 화북 출신이다. 서울에서 10여년쯤 살다가 97년에 미국으로 건너왔다. 현재 마루 플로어 건축 사업을 하고 있다. 홍부회장은 "미국의 밝은 면만 보지 말고 어두운 면도 보아야" 함을 강조한다. 최근 강화되고 있는 불법체류자 단속 문제가 그것이다. 이러한 신분관계 때문에 제주도민회 모임에 제대로 오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홍부회장은 고3인 딸과 고2인 아들이 있는데, 2세들을 위한 향토학교 프로그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들에게 제주인의 정체성을 심어주는 프로그램이 개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제주인이라는 것이 창피하여 자신이 제주사람이라는 것을 공개하지 않는 이도 많았다고 하는 홍부회장. 이제는 제주를 사랑하는 정신이 지워지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한다.

‘재미 워싱턴지구 제주도민회’는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인 지난 1991년 1월 13일 창립됐다. 도민회 회칙 제3조에는 다음과 같은 창립 목적이 서술되어 있다.
“제주도의 독특한 생활문화 및 언어문화를 계승 보전 육성하여 미국 문화 속에 심고, 천혜자연의 아름다운 제주인의 긍지를 바탕으로 상부상조와 2세를 위한 교육사업과 친목도모를 목적으로 한다.”
여느 도민회와 마찬가지로 ‘친목도모’가 가장 중심이 되고 있으나, 주목할 만한 것은 ‘제주도의 언어’ 또한 계승 보전 육성하겠다는 내용이다. 이게 단순한 선언 이상이라는 것은, 이호석 회장의 본토(?)발음에 가까운 구수한 제주사투리의 완벽한 구사에서 드러난다. 고향 제주에서 조차 제주 사투리를 잃어가고 있는 현실에서, 머나먼 이국땅에서 제주의 말을 보전하겠다는 의지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워싱턴도민회의 초대회장은 오충렬씨다. 2대까지 오충렬 회장단이 연임되면서 제주도와 워싱톤에서 많은 봉사와 활동을 하였다. 1996년 제3대 회장으로 김홍배 씨가 선출되어 활동하여 왔다. 당시 제주도에는 큰 이벤트가 많아서 고향 발전을 위해 전 오충렬 회장단과 함께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오게 되지만 내부적으로는 도민회 활동이 소강상태에 접어들게 된다.
그러던 중 그동안 소홀했던 워싱턴에서의 활동과 도민회 자체의 내실에 더 신경써야 한다는 여러 교민들의 의견에 따라, 2005년 2월 26일 정월 대보름 잔치 행사를 계기로 새로이 도민회원들을 초청하여 제4대 회장단을 구성하게 된다. 4대 회장에는 김영기씨, 이사장에는 이호석씨가 선출됐다.
이어 2007년에는 제5대 현 회장단이 선출되었는데, 회장에 이호석, 부회장에 홍경수·이경숙· 허용익 씨가, 이사장은 김노라씨가 맡게 된다(부동산업을 하는 김노라씨는 한미여성재단 회장이란 중책을 맡고 있고, 이경숙씨는 워싱턴에서 유명한 헤어샵을 운영하고 있다)
도민회는 매년 2회 정기총회 개최, 매년 2회 야유회 및 낚시대회 개최, 고향학생 초청 연수 및 견학 등을 실시하고 있다.





워싱턴 도민회는 앞으로 도민회를 점차 발전시켜 새로운 회원 발굴과 봉사하는 도민회로써 타 단체와의 협력과 교류를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또한 고국과 고향의 발전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기도 하다. 제주대 발전 기금도 6천 6백불 모금하여 기증했으며, 이번 탐라문화재에서 도민회에서 모금한 수천불의 수재의연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그들의 고향제주 사랑이 각별하다. 워싱턴 도민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이어서 이호석 회장과 김영기 전회장의 인터뷰(관련 기사 참조)가, 다음 주에는 강웅조 박사와 보림사 경암스님의 인터뷰가 이어집니다;필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