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중심 26만평 6,400만불 투입, ‘국제불교총림’과 ‘워싱턴 평화대학’ 설립 꿈
태풍피해입은 도민위해 약천사와 제주대에서 전시회

워싱턴에서 가장 큰 사찰인 보림사. 해봉 김경암, 이 사찰의 주지 스님이다.

필자가 보림사를 찾은 때는 지난 10월 17일 오후 1시경. 다음날 한국으로 출국할 준비를 하시느라 매우 분주한 상황이었는데 시간을 내 주셨다. 스님께서 한국으로 출국하는 이유는 ‘산에서 부는 바람’이라는 타이틀의 제7회 선서화(禪書畵)·도예 전시회가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 보림사 전경

‘국제불교총림’과 ‘워싱턴평화대학교’ 건립기금 마련 선서화·도예 전시회

이번 전시회는 지난 2004년 제6회 서화 전시회 이후 3년 만이다. 서울 종로구 경운동에 있는 수운회관 4층에 있는 다보성갤러리에서 지난 10월 27일~11월 2일까지 열렸으며, 그 이후에는 대전 불교사암연합회 회관(11월 5일~12일), 인천 인하대(11월 15일~22일)에서, 그리고 내년 가을까지 대구 경북대, 부산 동주대학, 일본 오사카 보현사에서 이어진다. 이 기간 중 제주 약천사와 제주대에서도 전시회가 열린다. 2008년 5월 경에는 미국 및 캐나다 주요도시 순회전시회도 예정돼 있다.

경암스님이 이런 전시 대장정에 나선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백악관 서문 66번 종점에 있는 미국 초대대통령 조지워싱턴 공원 앞 26만평의 부지(기 매입)에 ‘국제불교총림’과 ‘워싱턴평화대학교’를 건립하기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이다.

필자가 보림사를 방문했을 때는 이 전시회 팜플릿이 나오는 날. 가편집 완료된 팜플릿에는 국내 불교계는 물론 여러 인사들의 추천사 및 격려사들이 게재돼 있다.

▲ 전시회 팜플릿
황진경 전 조계종 총무원장의 격려사를 필두로, 월서 전 조계종 호계원장과 조계종 포교원 혜총스님, 조계종 삼각산 도선사 주지 혜자스님, 전 LA 불교사원연합회 회장 김현일스님, 불교TV 대표이사 석성우 스님 등 내노라하는 불교계 관련인사들의 축사가 실려 있다. 이것 만이 아니다. 정치권에서도 김원기 전 국회의장과 현 민주당 대통령후보인 이인제 국회의원의 축사가 실려 있으며, 톰 데비스 버지니아 국회의원, 제임스 P. 모렌 버지니아 국회의원은 물론 버지니아주 훼어팩스 카운티 자치단체장인 저널드 코놀리의 축사도 게재돼 있다. 눈에 띠는 것은 여기에 제주대 고충석 총장과 김형수 서귀포시장의 축사도 실려 있다는 사실이다.

재해구호금 조성 목적의 전시회가 제주대와 약천사에서 열리게 될 예정이어서 두 분의 축사가 실려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김형수 시장과는 친족관계이다.

얘기나온 김에 경암스님의 이력을 살펴보자. 42년 제주생으로 남원읍 신흥리 출신이다. 제주대 체육과 김성찬 교수가 초등교 동창, 현 교수협의회장 강민수 교수가 5년 후배가 된다. 9남매 중 막내였고 어릴 때부터 나팔꽃을 잘 그렸다고.

의제 허백련 선생에게 사사...일현 스님과의 만남

어떻게 출가하시게 됐나는 질문에 스님의 답변이 이어진다.

▲ 경암스님
1957년에 마곡산에 입산하고, 다음해인 58년에 서울 종로 조계사에서 김일현(金一玄) 스님을 은사로 손경산(孫慶山)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수지를 받으면서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되었으나, 처음에는 전혀 스님이 될 생각이 없었다.

1955~6년 경 광주 무등사 옆 움막에서 의제 허백련 선생에게서 동양화 사사를 받고 있었다. 겨우 감자로 끼니를 이어가면서 2년 반 동안 생활했었는데, 다행히 다른 문하생과는 달리 한문을 어느 정도 뗀 상태여서 스승의 가르침을 쉽게 수용했다(어릴 때 경암스님의 당숙이 한문서당을 했는데, 경암스님은 천자문에서 논어 맹자까지 떼고 한문시를 짓는 경지까지 통달한 상태였다고).

어느 날 스승의 친구인 김일현 마곡사 주지스님이 인근 절에 49제 공양드리러 왔다가 스님을 보고 “배를 한번 채워줄까?” 했다. 당시 경암은 너무 배고픔에 힘들어 하고 있던 상태. 다음날 그 49제를 하는 절로 찾아갔다. 오전 중에 끝날 것으로 예상했던 제는 오후 2시가 지나서야 끝이 났다. 일현 스님에게 밥상이 들어오는데 스님은 수저를 들지 않는다. “스님 식사 안하세요?” 경암이 물었다. 그랬더니 “오후는 축생들이 먹는 시간”이란다. 스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배고픈 경암은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근데 갑자기 음식물을 섭취해서 그런지 배가 아프고 설사하며 난리가 났다. 아프니까 가족생각도 나서 때굴때굴 구르며 나 죽겠다고 대성통곡했다. 스님께서 잠깐 기다리라고 하며 광주에 가서 약을 몇 방울 사다 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정로환이었던 것 같다. 놀랍게도 씻은 듯이 30분만에 통증이 사라졌다. 바로 이 ‘정’ 때문에 스님이 되었단다. 자기를 살아나게 해 준 그 정 때문에... 원 입산은 수덕사 위에 있는 정해사에 했고, 거기서 3개월 정도 있다가 마곡사로 갔단다. 그 이듬해 총무원으로 갔고...

이쯤 되면 다음으로 “어떻게 하여 미국으로 오게 되셨나”는 질문이 자연스런 수순이다. 그런데 여기서 귀를 의심케 하는 답변이 돌아왔다. “나는 김재규의 장자방이었다!”는 것이 그것. 김재규? 유신정권을 몰락시킨 10·26정변의 주역 김재규를 말하는가? 그랬다. “10·26이 무엇 때문에 일어났고 왜 일으켰는가는 내 머리 속에 있다”고 당당하게 말씀하시는 스님..

김재규와의 인연...미국으로 도피

스님에 따르면 ‘박어흥, 박어종(朴於興 朴於終: 저 박씨가 (공화당을) 일으키고 저 박씨가 (공화당을) 끝마친다)’는 글귀를 김재규에게 설명하여 결국 10·26 사건으로 군사독재를 해체시킨 장본인이라는 것.( 이외에도 여러가지 충격적인 얘기를 들려 주셨으나 여기서는 생략한다...) 

스님은 김재규에 대해 “내가 본 공무원 중 가장 깨끗한 공무원”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다음으로 꼽는 이는 반기문 UN사무총장이라고. 반총장은 박동신 대사 부임 시 총영사로 근무했는데 그 때 만났단다. 반총장은 자신을 보면 걸어오지 않고 항상 뛰어온단다. 자신이 알기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청빈한 공무원은 이 두 사람 밖에 없다고.

이 일로 인해 스님의 도피생활은 시작된다. 처음에는 일본으로 밀항하려고 부산 태종대까지 가서 배 밑창에 탔다가 실패해서 돌아왔고 그 이후 온양, 조치원, 청주 일대를 전전긍긍하며 다녔다. 그 이후에 지인의 도움으로 간신히 미국으로 오게 됐다. 당시는 미국을 전혀 몰랐으며, 막연히 한국을 벗어나야만 목숨을 건질 수 있다는 생각뿐이었다(이후 전두환 정권 하에서는 한국에는 가지 못했다. 노태우 6.29 선언 이후 대사관에서 미국 시민권을 따고와야 안전하다는 조언을 받고 88년 시민권을 딴 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다).

당시 미국으로 도피할 때 갖고 온 돈은 모두 3천불. 처음에는 조계종 직명법사(조계종 국제부 추천) 자격으로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황룡사로 왔다. 거기서 생활하다가 이 곳은 내가 거할 곳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어 샌프란시스코 공항으로 무작정 갔는데, 거기서 또한 우연한 도움으로 워싱턴으로 오게 됐다.  이후 여러 곳을 전전하는 스님... 

어려웠던 초기 미국생활

스님은 볼티모어에서 약 1년 반 동안 버려진 집, 비가 새는 아파트에서 150불의 월세를 내고 어렵게 살다가 1984년 1월에 알렉산드리아 서모씨의 지하실을 얻어 7개월간 정식 법회를 연다. 1984년 7월 경 알렉산드리아 최모씨 소유의 건물과 5에이커를 월 8백불의 임대로 빌려 정식법회를 열고, 100세대 신도를 모으게 되어 연방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았다.

88년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한 경암스님은 서울 봉은사에 있는 아는 선배 스님에게, 미국 포교를 위해 “한 3천만원만 주십시오” 했다. 그랬더니 그 스님이 “너는 재간이 있지 않나?” 하며 물감을 사 주었다. 58일, 약 두 달 동안 머물면서 108점을 그렸다. 이 그림을 전시회하여 10만불을 모금했고 버지니아 보림사 신도들이 약 2만불을 모아 현재의 건물(5300 Ox Road, Fairfax, Va 22030)을 31만 1천불에 1989년 2월 6일에 매입 이주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1997년에는 천불전 법당과 천불 봉안을 위해 50만불을 들여 새 법당을 지었다.

▲ 보림사 천불전
봄·가을 학기에 4개대 종교학과 300명 학생 한국불교 체험

보림사는 1995년부터 대원불교대학 미주분교를 수용, 경암스님은 미주분교장으로 불교통신대학을 개설 미주 전역에 많은 불자들을 교육시켜서 법사들을 배출하고 있다. 1990년 3월부터 불교신문 미주지사장을 임명받고 미주 불교신문을 발행하여 미주 전 지역은 물론 캐나다까지 보급하고 있다(현재는 당분간 발행이 중지된 상태).

▲ 미주불교신문 중. '중원'스님과 '도법'스님 기사가 눈길을 끈다
보림사 초청 법사로는 1994년 7월 10일부터 국제불교 합창단을 초청하여 개나다, 뉴욕, 워싱턴에서 공연을 주도하였고, 1994년 1월 강창화 스님을 비롯, 고 이서옹 전 조계종 종정 스님, 황진경·김서운·송월주 전 조계종 총무원장 스님, 북한 불교 위원장 박태화스님과 그 일행등을 초청 대법회를 열기도 했다.      

보림사는 현재 봄과 가을 학기에 조지워싱턴대학, 메릴랜드대학, 조지타운대학, 조지메이슨대학의 4개 종교학과 300여명의 학생이 한국불교를 체험하는 수련장으로 사용하고 있고, 경암스님은 참선과 한국문화를 강의하고 있다. 학점도 3~6학점 이수 인정된다.

2002년 가을 웨스트 버지니아에 130에이커의 부지를 매입한 스님의 제자 해인스님의 제안을 받아들여 추가로 72에이커의 부지를 매입하였다. 이 곳은 조지워싱턴 공원 부지 인근이라 그 활용도는 더 크다. 이는 한국 토지 26만평에 해당하는 면적으로 대한불교 조계종의 미국 국제총림 건립부지로 선정되었다.

워싱턴 중심 26만평 부지에, 6,400만불 투입, ‘국제불교총림’과 ‘워싱턴 평화대학’ 설립 꿈

경암스님은 2004년 1월 1일자로 이사회에서 전권을 위임받아 이사장직에 취임하였다. 경암스님은 종교부지에는 국제불교총림과 국제선방 대웅전 요사체 등을 지을 계획이다. 한국 대장경각도 옮겨올 예정이라는데 동판으로 뜨는 비용만 2백억이란다.

교육부지에는 ‘워싱턴평화대학교(University)'을 설립할 계획인데, 단과대로 불교·개신교·천주교 대학을, 기타 학과로 생명공학 등 이상적 미래학과를 15개 정도 구상하고 있으며 세계 최고의 교수진들을 확보할 계획이란다. 공사금은 미화 총 6천4백만불(6백 4십억)로 예산을 세웠다.

이러한 막대한 예산에 대해서도 걱정하는 눈치가 아니다. 현재 홍익문화재단에서 150만평을 기증받았고, 강원도 지역에서도 60만평 기증받았단다. 문제는 이를 이전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든다는 것.

도이 하쿠데이(土井白亭) 한중일 예술문화교류회장은 경암의 시서화를 보고 ‘선학의 선승’이라며 “그 계보가 중국 청나라 양주 팔경의 한사람인 정판교(鄭板橋)로부터 유행한 것” 이라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미국의 심장부에 한국의 마음, 한국인의 불심을 심고 있는 스님"이란 찬사를 받고 있는 김경암 스님. 그 또한 제주인이다.

▲ 경암스님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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