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한인사회를 리드하는 자랑스런 제주인들
교수,변호사,의사,증권전문가 등 각계에 1~2세 활발한 진출과 활동

미국 최대의 도시 뉴욕. 세계 무역과 금융의 중심지임은 물론 연극, 음악, 미술 등 미국문화의 중심지로도 자부하고 있는 곳. 1946년 UN본부가 설치된 후에는 국제 정치의 중심지로서도 기능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세계 최대의 도시라 자부할 만하다.

뉴욕증권거래소, 월스트리트, 세계금융센터 등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끄덕여 지는 거리와 건물들이 마천루의 대협곡을 이루는 곳. 시청을 비롯한 고풍스런 건물로 둘러싸인 맨해튼. 도로를 점령한 노란 택시(yellow cab). 아메리칸 드림을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곳. 세계 뮤지컬의 중심 브로드웨이가 이곳에 몽땅 있다. 세계 최대의 도시공원으로 유명한 ‘센트럴 파크’도 빠트릴 수 없는 명소 중 하나. 이 보다 최근에는 전 세계인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이른 바 9·11테러 사건의 표적이었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있던 곳(‘Ground Zero’)이기도 하다.

▲ 뉴욕에서 3박 4일 있었으나 빡빡한 취재일정으로 인해, 위에 언급한 장소를 한군데도 제대로 다녀오지 못했다. 맨하탄에서 인터뷰 약속이 있어 갔다가 잠깐 들린 '그라운드 제로'만 제외하고...공항으로 돌아오는 길에 택시기사께서 저기(좌측 하얀 건물)가 UN본부 건물이라 하여 택시안에서 찍었다.
이곳에도 제주인들이 있다. 아니 있는 정도가 아니다. 미 주류사회 각계에서, 미한인사회의 중추로서 활동하고 있다.

이제는 잘 알려진, 장면 국무총리 때 주미대사를 지낸 고 고광림 박사와 부인 전혜성 박사. 이 가족은 모두 미 주류사회에서 부러움을 받는 제주가족이다. 특히 아들인 고홍주 박사는 동양인으로 최고 지위인 대통령 보좌관을 역임하고 현재 예일대 법대학장으로 재직 중이다.

뉴욕한인회 17~18대 회장을 지낸 강익조씨, 뉴욕평통협의회 및 뉴욕한인경제인협회 김동빈 전회장, 뉴욕한인변호사협회장을 지낸 한석종 변호사, 팬아시아뱅크 양문석 전 행장과 세계적인 소프라노이자 프리마돈나인 홍혜경씨, 뉴저지한인경제인협회 고용하 전 회장, 뉴욕한인영화인협회 강대희 회장 등 쟁쟁한 제주출신 인사들이 세계의 중심 미국 뉴욕에서 한인사회의 향도 역할을 해 왔다(이렇게 한인사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지난 2000년 뉴욕한인회 40주년 기념식에서, 강익조 전회장이 공로패를, 김동빈 전회장이 감사패를 뉴욕한인회로부터 수여받기도 했다). 

78년 창립된 ‘재미제주도민회’

이들의 고향 제주 사랑은 다른 지역보다 앞선 도민회 결성으로 나타난다.

▲ 재미제주도민회의 제주 수재민 돕기 성금 모금 행사 기사(미주 한국일보 뉴욕판. 9월27일). 이틀만에 7천달러가 넘는 성금을 모금했다.
벌써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인 1978년 11월 8일 결성된 뉴욕지역의 제주도민회는 현재까지 쓰고 있는 ‘재미제주도민회(회장 이한진)’란 이름으로 출발했다. 지금은 LA, 워싱턴, 아틀랜타, 시카고 등지에도 도민회가 결성되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도민회가 결성된 곳이 없던 터, 단지 뉴욕뿐만 아니라 뉴욕을 중심으로 미주지역의 제주교민들을 함께 조직하자는 취지에서 이 명칭을 쓰게 된 것. 지역도 뉴욕, 뉴저지, 코네티컷, 펜실바니아, 메사추세츠, 델라웨이 등 6개 주의 교민들을 포괄했다. 지금도 워싱턴과 가까운 델라웨이에서 오는 분이 있다고.

최근 들어 각 지역에서 도민회가 만들어지면서 도민회 명칭에 지역을 구분하라는 요구가 있어 총회의제에 안건으로 올려 토론했으나, 당분간 그 역사성을 고려하여 지킬 필요가 있다는 의견으로 모아졌다. 단 명칭은 당분간 그대로 쓰되, 뒤에 괄호 안에 ‘뉴욕’을 병기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

도민회의 초대회장은 고 고광림 박사. 현 도민회장인 이한진씨와, 김익태, 김동기, 고용하, 변창실, 고정생 씨 등이 주요 창립 멤버였다.

현재 뉴욕 일원에 거주하고 있는 제주교민 수는 1천여 명으로 추산되지만 확실치는 않다. 이중 도민회가 보유하고 있는 명단(도민회 활동에 적극적인 인사)은 140여명 정도. 이것도 다른 지역 도민회에 비해서는 가장 많은 편이다. 교민들의 이민구성은, 시민권자 30%, 영주권자 55% 등이며, 취업이민인 적문직업인(의사, 약사, 교수, 변호사 등)이 다수로 구성돼 있다. 또한, 개인주택 소유자가 50%가 넘는 등 안정적 경제생활로 뉴욕 지역에 탄탄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주목할 것은 지금까지 임기 2년의 회장직을 15대까지 거치면서 30여년이 흘렀다는 사실이다. 그 누구도 연임한 경우가 별로 없고 한명씩 돌아가면서 회장직을 맡아왔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는 “회장의 장기집권이 없고 회전이-도민회 운영이-잘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이한진 회장은 흐뭇해한다.

뉴욕도민회는 신년하례회를 매년 1월경에 실시하고, 여름총회 겸 야유회를 8월 15일 전후하여 공원에서 개최한다. 주목할 것은 장학기금 모금 골프대회를 봄이나 가을에 매년 개최하고 있다는 것. 장학회는 1985년 설립되었는데, 설립당시 1만달러 이상의 기금이 모금됐다. 예금이자와 골프대회, 볼링대회 등으로 얻어지는 수익 및 기타 기부금으로 장학금을 지급해 왔는데, 지금까지는 회원 자녀 대학생과 제주출신 유학생 등이 대상이었다.

▲ 지난 9월 23일 열린 장학기금 마련을 위한 도민회의 골프대회. 올해 3천달러를 모금했다.
이한진 회장은 이러한 장학금 지급 대상을 확대하여 “이제는 제주에 거주하고 있는 도민 자제들에게도 혜택을 줄 수 있게 하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미 제주대 고충석 총장하고도 협의를 끝냈는데, 그동안 뉴욕과 뉴저지 지역의 제주교민 자제 학생들에게만 장학금을 수여할 수 있도록 했던 규정을 바꾸어, 이제는 제주대학생에게도 수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향토에 기여하는 인재를 키운다는 의미에서, 제주도에 헌신할 수 있는 분야 학과의 학생에게 수여하기로 했다는 것.

▲ 재미제주도민회 이한진 회장
주목되는 2세들의 미 주류사회의 진출

앞서 뉴욕도민회의 구성원 등 대부분은 전문직업인(의사, 약사, 교수, 변호사 등) 출신의 취업이민자라고 얘기했다. 이 뿐만 아니라 제주인들의 2세 또한 대부분 미 주류사회의 각 전문분야에 성공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이들 뉴욕의 2세들만 조직해도 웬만한 글로벌 전문가 포럼이 가능할 정도다.

이한진 회장의 두 자녀(남매)만 해도 의사와 변호사다(관련 인터뷰 기사 참조). 좌순봉 전회장의 아들은 웨스트 포인트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 현재 대위 계급으로 한국에 있는 미8군에 근무하고 있다. 제1회 고광림박사가 1회 회장 시절 총무를 맡았던 창립멤버 중 한 분인 김문영박사(마취전문의)의 자제들도, 큰 딸이 세계적인 대형로펌의 변호사, 둘째는 고교선생, 막내 아들은 MBA출신으로 월가 탑5 순위 내에 있는 세계적인 투자회사에 근무하고 있다. 한라대 김병찬 학장이 숙부라는 김박사는 제주대에 로스쿨 생긴다는데 뉴욕도민회 2세들 중에 법률가들이 많다면서 이를 활용하라는 조언을 하기도 했다(이러한 2세들의 사례는 빙산의 일각으로, 여기서 얘기한 것은 필자가 뉴욕에서 직접 만나거나 들은 인사들의 경우에 한한 것이다. 이 외에도 수많은 제주출신 2세들이 뉴욕에서 각계의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 김문영 박사
이한진 회장은 얘기한다.

“이제 우리 세대는 이미 뒷선으로 물러가고 있다. 2세 자녀들이 벌써 3~40대가 되었고 이들이 미국 주류사회 각계에서 중추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가 제주를 위해 정책을 제언하더라도 이제는 굿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다. 이들 2세대들을 발굴하고 활용할 생각을 해야 한다. 우리는 뒷전에서 서포트할 뿐이다.”

또한 전 뉴욕한인경제인협회 회장(83년)이자 제7기 뉴욕평통협의회 회장을 역임했던 김동빈 회장은 제주도에 대해 이런 주문을 했다(뉴욕한인경제인협회 6대회장이었던 김동빈 회장은, 협회 2대회장을 지낸 김혁규 씨가 귀국, 경남지사가 되자 경상남도 '통상자문관'으로 위촉받았다).  .

“재외 제주도민회를 제대로 관리해 주었으면 좋겠다. 한두 사람이 나서서 조직 만들고 대표 행세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것은 옳지 않다....고향을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은 많다. 근데 말로만 자문받겠다 하지 말고 실질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일을 개발해야 한다. 또한 특별자치도가 되니 이러이러하게 바뀌었다는 것을 인터넷으로 자세히 설명해 주었으면 좋겠다”

제주도에서는 무슨 일이 있을 때 마다 전문가를 찾는다. 포럼이든 세미나든. 그러나 항상 그 얼굴들이어서 ‘그 밥에 그 나물’이란 평을 받는다. 여기 뉴욕에 제주와 연이 있는 젊은 전문가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을 어떻게 구슬에 꿰느냐가 관건. 이들이 제주와 멀어지기 전에 빨리 조직해야 한다. 1세들이 세상을 뜨면 이들과 제주와의 연결선이 단절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별로 없다. <제주의소리>

<이지훈 편집위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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