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4.3중앙위 희생자-유족 추가 의결...심사 과정서 '기계적 기준 적용' 논란

지난 20일 제주도청 본관 4층 탐라홀에서 열린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주의소리

[기사보강- 7월23일 18:00] 발족 후 22년만에 처음으로 제주에서 열린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이하 4.3중앙위원회)'를 통해 4천여명의 희생자·유족이 추가 인정되는 역사가 쓰였다.

다만, 특정 사안에 있어서는 희생자를 판단함에 있어 수동적이고 기계적인 기준을 적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4.3중앙위원회는 지난 20일 오후 2시 제주도청 본관 4층 탐라홀에서 30차 회의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위원장인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해 이종섭 국방부장관, 이완규 법제처장, 행정안전부·기획재정부·법무부 차관 등 정부위원과 민간위원 14명 등 총 21명의 위원이 참석해 추가 희생자 및 유족 결정안 등을 심의했다.

그 결과 7차 희생자 및 유족신고자에 대한 심사를 거쳐 88명의 희생자, 4027명의 유족을 추가 인정했다. 4.3중앙위원회는 회의를 통해 4.3사건 이전에 사망한 사례나 4.3과의 연관성이 확인되지 않은 사례에 있어서는 불인정 결정을 내렸다.

개중에는 기계적인 판단으로 인해 희생자로 인정되지 못한 사례가 논란이 됐다. 최종 심사 보류 결정이 내려진 어린이 2명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사건은 1956년 5월 서귀포시 남원리 목장지대에서 당시 나이로 각 10세, 13세 어린이들이 폭발물에 의해 사망한 사건이다. 

당시 방목한 소를 데리러 오라는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목장을 거닐던 어린이들은 방치된 쇠붙이가 폭발물임을 인지하지 못하면서 운명을 달리한 것으로 기록됐다.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20~30m 이격된 곳까지 돌아봐야 할 정도로 참혹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사망한 시점이 4.3특별법에 명시된 4.3사건 외의 시기라는 점에서 희생자로 인정되지 못했다. 4.3특별법 상의 4.3 기간은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인데, 이후에 벌어진 사건이라는 것이다.

이날 회의에서도 "4.3당시 설치된 폭발물에 의해 사망한 사례이기에 4.3희생자로 분류해야 한다"는 의견과 "사망 시점이 4.3특별법 규정 기간 외에 있기 때문에 직접적인 4.3희생자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부딪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두고 위원회가 기계적인 기준을 적용해 억울한 사례를 방치했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엄밀히 따지면 해당 사건은 법으로 정한 4.3기간의 약 1년 반 후에 벌어진 사건이지만, 4.3과 뗄 수 없는 사건이라는 주장이다.

실제 앞서 4.3당시 폭발물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표선국민학교 학생 15명이 집단으로 사망하는 사고로 인해 희생자 결정이 이뤄진 바 있고, 서귀포국민학교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발생해 사망자는 희생자로, 부상자는 후유장애자로 인정된 사례도 있다. 

이 경우 특별법 상의 4.3기간 내에 벌어진 사건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거의 동일한 형태의 사건이었다. 불과 1~2년 시간차를 두고 벌어진 사건에 대해 상반된 해석을 내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회의 과정에서는 해당 사례에 대한 '불인정' 결정 직전까지 치달았으나 김종민 위원 등의 거센 반발로 간신히 '심사 보류' 결정이 내려진 것으로 전해졌다. 보수정당의 추천 몫으로 참여한 현덕규 위원도 희생자 제외 결정에 문제를 공감했다는 것이 현장의 전언이다.

4.3단체 모 관계자는 "4.3 당시 고문이나 폭발사고로 부상을 당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4.3사건 기간이 끝난 이후에 사망해도 희생자로 인정을 해줬다. 10살 꼬마가 사상범이길 하냐. 이럴거면 AI(인공지능) 회의를 하라고 하지 위원회 의견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라고 쓴소리를 냈다.

'제주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실무위원회(4.3실무위원회)의 역할론도 뒤따랐다. 실무위 점검을 통해 희생자로 인정됐다면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을 사안인데, '불인정' 결정을 내리는 바람에 해결이 더 요원해졌다는 비판이다.

이날 심사 보류 결정이 내려진 또 다른 신청자는 미군 기록상에 남로당 간부로 명시된 인물이다. 헌법재판소가 정한 4.3희생자 기준에는 남로당 핵심간부를 제외토록 하고 있어 희생자로 분류할 수 없다는 의견이 제시된 반면, 사망자의 행적을 추가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반영돼 심사 보류됐다.

한편, 위원회는 지난 7차 희생자‧유족 신고 건 중 아직 심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2만4328건에 대한 심사를 신속히 추진하고, 내년 1월부터는 8차 신고 접수를 받을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심사 보류된 이들에 대한 추가 검토를 통해 안건을 재상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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