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화해와 상생 선언 10주년 (중)
4.3 해결 새 전기 마련, 배·보상 이어 남은 과제는?

반목과 갈등이 심했던 제주4.3유족회와 전직 경찰로 구성된 제주재향경우회가 4.3의 정신인 ‘화해와 상생’을 내세워 조건 없이 두 손을 맞잡은 지 10년이 흘렀다. 두 단체는 화해선언 이후 해마다 합동 참배와 순례 등을 이어오며 도민화합에 앞장, 갈등 해결의 모범적 사례가 됐다. 아픔을 치유하고 미래로 나아가겠다고 천명한 화해와 상생 선언 10주년을 맞아 과거와 현재, 미래를 [제주의소리]가 세 차례에 걸쳐 톺아본다.
제주4.3평화기념관에 마련된 '화해와 상생' 코너. 모두가 희생자이기에 모두가 용서한다는 제주시 애월읍 하귀리 영모원 이야기와 4.3유족회-재향경우회의 화해선언 등 내용이 담겼다. ⓒ제주의소리
제주4.3평화기념관에 마련된 '화해와 상생' 코너. 모두가 희생자이기에 모두가 용서한다는 제주시 애월읍 하귀리 영모원 이야기와 4.3유족회-재향경우회의 화해선언 등 내용이 담겼다. ⓒ제주의소리

화해와 상생의 가치로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제주4·3. 

70여 년 동안 새겨진 아픔은 모두의 가슴에 깊이 서렸지만, 해원을 향한 첫 발을 제대로 내디딘 건 20여 년에 불과하다. 그만큼 감춰야 했고 숨어 지내야 했던 한스러운 세월이 길었다.

한국 현대사 최대 비극이라는 제주4.3의 진상을 규명하고 희생자와 유족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4.3특별법이 제정된 시기는 2000년이었다. 민주정부가 들어선 뒤 겨우 꺼내놓기 시작한 지연된 정의이자 명시적 성과였다. 

4.3에 대한 국가공권력의 책임을 인정한 국가원수의 공식 사과도 민주정부인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서 이뤄졌다. 특히 참여정부는 2003년 정부 차원의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를 확정했다.

4.3특별법은 민주정부의 강력한 의지 속에서 탄생했다. 2000년,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4.3특별법을 제정,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의 초석을 다졌고, 20여 년 뒤 문재인 전 대통령은 4.3특별법 전부개정이라는 역사를 새겼다. 

2003년 10월 제주를 찾아 도민과 4.3유족들에게 과거 잘못된 국가공권력 행사에 대해 사과하는 노무현 대통령(왼쪽), 2000년 1월11일 청와대에서 4.3유족 대표들과 제주 시민사회 관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제주4.3특별법에 서명하는 김대중 대통령(오른쪽 아래). 오른쪽 위는 4.3특별법 개정안이 국회 행안위를 통과한 뒤 오영훈 의원 등이 환호하는 모습. ⓒ제주의소리
2003년 10월 제주를 찾아 도민과 4.3유족들에게 과거 잘못된 국가공권력 행사에 대해 사과하는 노무현 대통령(왼쪽), 2000년 1월11일 청와대에서 4.3유족 대표들과 제주 시민사회 관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제주4.3특별법에 서명하는 김대중 대통령(오른쪽 아래). 오른쪽 위는 4.3특별법 개정안이 국회 행안위를 통과한 뒤 오영훈 의원 등이 환호하는 모습. ⓒ제주의소리
제주4.3평화기념관에 전시 중인 4.3특별법 전부개정 기념 법령집. 문재인 전 대통령은 법령집에 서명한 뒤 제주도에 전달했다. 서명 위로는 "제73주년 4.3희생자 추념일을 맞아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을 4.3 영령들께 바칩니다"라고 쓰였다. ⓒ제주의소리
제주4.3평화기념관에 전시 중인 4.3특별법 전부개정 기념 법령집. 문재인 전 대통령은 법령집에 서명한 뒤 제주도에 전달했다. 서명 위로는 "제73주년 4.3희생자 추념일을 맞아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을 4.3 영령들께 바칩니다"라고 쓰였다. ⓒ제주의소리

문 전 대통령은 제주를 찾아 4.3특별법이 처음 제정된 이후 개정된 과정의 모든 법률과 시행령이 포함된 4.3특별법 전부개정 기념 법령집에 서명한 뒤 제주도에 전달했다. 이는 현재 제주4.3평화기념관에 보관되고 있다.

2021년 2월 2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4.3특별법 전부개정안은 여러 의미가 담겼다. 진상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사건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추가로 조사할 수 있게 됐고, 4.3희생자에 대한 배·보상 근거도 마련됐다. 

법률 제정 후 20년간 진상조사에 따른 후속 조치가 있었지만, 희생자와 유족의 아픔을 치유하지 못했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전과자가 되고, 고문과 옥살이로 고통받은 국가폭력에 대한 정당한 배상이다.

그러나 4.3후유장애 희생자에 대한 차등지급은  ‘옥에 티’로 남는다. 후유장애인들은 14개로 나뉜 장해등급에 따라 각자 다른 보상금을 받아야 했다. 

후유장애 희생자는 14개 장해등급을 3개 구간으로 구분해 1구간(1~3등급)은 9000만원, 2구간(4~8등급)은 7500만원, 3구간(9~14등급)은 5000만원을 상한으로 뒀다. 첫 심사가 이뤄진 77명의 후유장애인 중 최대 보상금을 받은 희생자는 13명, 17%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지난해 10월 27일 4.3중앙위원회는 보상금을 신청한 304명 중 300명에 대해 252억5000만원의 국가보상금 지급을 결정했다. 이에 제주도는 보상금 청구 안내문을 보내 신청자를 대상으로 첫 보상금 지급에 나섰다.

또 4.3특별법 전부개정으로 군사재판 수형인들이 일괄 특별재심·직권재심을 통한 명예회복의 길이 열렸고, 제주4.3사건 직권재심 권고 합동수행단(단장 이제관, 합동수행단)이 구성되면서 지난해 12월 6일 19차에 이르는 재심으로 520명의 피해자가 전과자 딱지를 떼고 명예를 회복했다. 

이 밖에도 행방불명 희생자의 실종선고 특례, 가족관계등록부 정리, 4.3트라우마 치유 지원 등이 포함됐다. 4.3특별법 전부개정으로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그럼에도 제주4.3은 여전히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아직도 4.3평화기념관에 누워있는 백비는 이름 없이 누워있다. '언젠가 이 비에 제주4.3의 이름을 새기고 일으켜 세우리라'고 적힌 4.3백비처럼 정명 작업은 최우선 과제로도 뽑힌다. ⓒ제주의소리
아직도 4.3평화기념관에 누워있는 백비는 이름 없이 누워있다. '언젠가 이 비에 제주4.3의 이름을 새기고 일으켜 세우리라'고 적힌 4.3백비처럼 정명 작업은 최우선 과제로도 뽑힌다. ⓒ제주의소리
1948년 5월5일 제주비행장에 도착한 미군정 수뇌부, 왼쪽 두 번째부터 군정장관 딘 소장, 통역관, 안재홍 민정장관, 맨스필드 제주군정장관, 유해진 제주도지사, 송호성 총사령관, 조병옥 경무부장, 김익렬 9연대장, 최천 제주경찰감찰청장. 4.3진상조사보고서에는 딘 소장과 악수하고 있는 인물이 유해진 지사로 기록돼 있으나, 이후 확인 결과 안재홍 민정장관인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립문서기록관리청 소장 사진]
1948년 5월5일 제주비행장에 도착한 미군정 수뇌부, 왼쪽 두 번째부터 군정장관 딘 소장, 통역관, 안재홍 민정장관, 맨스필드 제주군정장관, 유해진 제주도지사, 송호성 총사령관, 조병옥 경무부장, 김익렬 9연대장, 최천 제주경찰감찰청장. 4.3진상조사보고서에는 딘 소장과 악수하고 있는 인물이 유해진 지사로 기록돼 있으나, 이후 확인 결과 안재홍 민정장관인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립문서기록관리청 소장 사진]

무엇보다 제주4.3평화기념관에 누워있는 백비를 일으켜세우기 위해서는 올바른 4.3의 이름을 찾는 정명(正名)이 최우선 과제로 꼽힌다. 

4.3은 진상조사보고서를 통해 사건의 정의만 내려졌을 뿐, 성격이나 역사적 평가는 내리지 않았다. 무려 7년 7개월에 걸친 탄압과 항쟁, 학살의 과정을 하나로 규정하기 힘든 까닭이다. 

정명 문제와 함께 따라붙는 과제는 당시 미군정의 책임 규명을 위한 진상조사와 후속조치 작업이다. 오영훈 도지사는 당선인 시절 4.3정명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며 미군정 책임에 대한 진상조사를 강조했다.

오 지사는 당시 “4.3 정명에 한 걸음 더 다가서기 위해서는 당시 미군정의 책임을 규명하기 위한 진상조사가 추가로 이뤄져야 한다”며 “도정이 예산과 인력을 뒷받침하고 민간 차원에서도 진상조사에 대한 활발한 활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해방 이후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까지는 미군정이 치안과 행정을 모두 맡고 있었기 때문에 미군정의 책임을 부인하기 어렵다는 전문가 의견도 따른다. 대한민국 군경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미 군사고문단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로버츠 군사고문단장이 이승만에게 초토화 작전을 진두지휘한 송요찬 9연대장을 칭찬해주라는 서한을 보낸 것은 미군이 초토화 작전을 묵인, 방조한 것이 아니라 직접 지시하고 조장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제주4.3평화재단 추가진상조사단이 진행 중인 추가 진상조사 역시 남아있는 과제다. 조사단은 관련 국내 기관 방문 조사와 더불어 미국과 호주 등 주요 관련 국가의 문서와 기록물 수집을 위한 현지 조사도 진행 중이다. 

조사단은 △지역별 피해실태 △행방불명 피해실태 △미국의 역할 △군‧경토벌대와 무장대 활동 △재일제주인 피해실태 △연좌제 피해실태 등 6가지 주제 조사를 수행, 2024년까지 ‘4.3추가진상조사보고서’를 펴낼 예정이다. 

“죽은 이는 부디 눈을 감고 산 자들은 서로 손을 잡으라. 이제야 비로소 지극한 슬픔의 땅에 지극한 눈물로 지극한 화해의 말을 새기나니, 지난 50여 년이 길고 한스러워도 앞으로 올 날들이 더 길고 밝을 것을 믿기로 하자.”

영모원 비석 글귀 중 일부다.

4.3의 완전한 해결에 다가갈 밝은 날을 위해, 모두가 희생자였던 그날의 아픔을 보듬기 위해, 화해와 상생의 가치를 드높이는 일, 산 자들이 손을 잡고 풀어나가야 할 과제다.

여기 와 고개 숙이라. 섬나라 이 땅에 태어난 이들은 모두 여기 와서 옷깃을 여미라. 해방의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 6.25의 아픔이 한반도에 닥치기도 전에 이 죄 없는 땅, 죄 없는 백성들 위에 아직도 정체모를 먹구름 일어나서 그 수많은 목숨들이 지금도 무심한 저 산과 들과 바다 위에 뿌려졌으니, 어느 주검인들 무참하지 않았겠으며 어느 혼백인들 원통하지 않았으랴. 단지 살아있는 죄로 소리내어 울지도 못한 마음들은 또 어떠했으랴. 죽은 이는 죽은대로 살아남은 이는 살아있는대로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허공에 발 디디고 살아오기 어언 50여년... 아버지보다 오래 살고 어머니보다 나이 들어서야 여기 모인 우리들은 이제 하늘의 몫은 하늘에 맡기고 역사의 몫은 역사에 맡기려 한다. 오래고 아픈 생채기를 더는 파헤치지 않으려 한다. 다만 함께 살아남은 자의 도리로 그 위에 한 삽 고운 흙을 뿌리려 한다. 그 자리에서 피가 멎고 딱지가 앉아 뽀얀 새살마저 살아날 날을 기다리려 한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모두가 희생자이기에 모두가 용서한다는 뜻으로 모두가 함께 이 빗돌을 세우나니 죽은 이는 부디 눈을 감고 산 자들은 서로 손을 잡으라. 이제야 비로소 지극한 슬픔의 땅에 지극한 눈물로 지극한 화해의 말을 새기나니, 지난 50여 년이 길고 한스러워도 앞으로 올 날들이 더 길고 밝을 것을 믿기로 하자. 그러니 이 돌 앞에서는 더 이상 원도 한도 말하지 말자. 다만 섬나라 이 땅에 태어난 이들은 모두 한 번쯤 여기 와서 고개를 숙이라. ⓒ제주의소리
여기 와 고개 숙이라. 섬나라 이 땅에 태어난 이들은 모두 여기 와서 옷깃을 여미라. 해방의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 6.25의 아픔이 한반도에 닥치기도 전에 이 죄 없는 땅, 죄 없는 백성들 위에 아직도 정체모를 먹구름 일어나서 그 수많은 목숨들이 지금도 무심한 저 산과 들과 바다 위에 뿌려졌으니, 어느 주검인들 무참하지 않았겠으며 어느 혼백인들 원통하지 않았으랴. 단지 살아있는 죄로 소리내어 울지도 못한 마음들은 또 어떠했으랴. 죽은 이는 죽은대로 살아남은 이는 살아있는대로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허공에 발 디디고 살아오기 어언 50여년... 아버지보다 오래 살고 어머니보다 나이 들어서야 여기 모인 우리들은 이제 하늘의 몫은 하늘에 맡기고 역사의 몫은 역사에 맡기려 한다. 오래고 아픈 생채기를 더는 파헤치지 않으려 한다. 다만 함께 살아남은 자의 도리로 그 위에 한 삽 고운 흙을 뿌리려 한다. 그 자리에서 피가 멎고 딱지가 앉아 뽀얀 새살마저 살아날 날을 기다리려 한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모두가 희생자이기에 모두가 용서한다는 뜻으로 모두가 함께 이 빗돌을 세우나니 죽은 이는 부디 눈을 감고 산 자들은 서로 손을 잡으라. 이제야 비로소 지극한 슬픔의 땅에 지극한 눈물로 지극한 화해의 말을 새기나니, 지난 50여 년이 길고 한스러워도 앞으로 올 날들이 더 길고 밝을 것을 믿기로 하자. 그러니 이 돌 앞에서는 더 이상 원도 한도 말하지 말자. 다만 섬나라 이 땅에 태어난 이들은 모두 한 번쯤 여기 와서 고개를 숙이라.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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