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4.3특별법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16건 접수, 4.3위원회 심사 관건

제주4.3 당시 희생자의 호적에 오르지 못해 뒤틀렸던 가족관계를 정정하는 길이 열린 가운데, 사실상의 마지막 관문인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 심사를 남겨두고 '증빙자료의 객관성'에 대한 해석이 변수로 떠올랐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제주4.3 피해로 뒤틀린 가족관계를 바로잡기 위해 지난 7월 28일부터 가족관계등록부 작성(정정) 확대 신청 접수를 받고 있다.

이는 지난해 7월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의한 가족관계 등록사무처리규칙' 및 올해 3월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 일부 개정에 따른 후속조치로, 4.3위원회의 결정으로 제적부 없는 희생자의 가족관계등록부 창설과 사실상의 자녀와 희생자 간 친생자 관계를 연결하는 절차다.

신청 대상자는 △제주4.3사건 피해로 제적부(가족관계등록부)가 작성돼 있지 않은 희생자 △제주4.3사건 피해로 제적부가 사실과 다르게 기록된 희생자 및 유족 △제주4.3사건 피해로 희생자와의 신분관계에 정정이 필요한 사람이다. 

제주도는 이미 16건의 호적정정 신청이 접수됐고, 관련 문의도 잇따르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사전에 행정안전부가 실시한 연구용역 따르면 제적부 없는 희생자의 가족관계 등록을 필요로하거나 친부모와의 호적이 불일치한 사례가 200여건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최종 심사를 위해서는 '희생자와의 신분관계를 입증하는 증빙자료'를 필요로 한다. 제주도는 4.3위원회에 제출될 자료는 '증거의 진실성이 객관적으로 담보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보증서 등 단독 증빙자료만으로는 그 증명력을 인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는 자료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증거의 진실성'이라는 표현이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다보니 우려의 목소리도 표출된다.

일각에서는 때아닌 이념논쟁이 불거진 현 정권에 이르러 자칫 시빗거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비치고 있다.

제주도 관계자는 "많은 유족분들이 신청 접수를 준비하는 과정에 있다. 보증인이 필요한 분들은 보증인을 찾아가고 설득하는 과정을 거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족보나 묘비 사진, 이전에 작성했던 개인일기 등 되도록 많이 제출할 수록 도움이 된다. 과거부터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찾았다는 기록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실제 제주4.3 가족관계 정정과 관련한 대법원규칙 개정 이후 행방불명된 아버지의 딸로 호적이 정정된 4.3유족 정모(75) 할머니의 경우 친부모와 찍은 사진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는 점, 수십년째 제사를 지내온 점 등이 인정받는데 도움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4.3유족들의 호적 정정을 위한 특례가 적용되기까지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통상적으로 민법에 의해 호적 정정을 하기 위해서는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의 소'와 '인지청구의 소' 등 두 개의 소송을 진행해야 한다.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 소송으로 호적상 부모가 친부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받고, 인지청구 소송을 제기해 실제 친부모를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2기의 묘를 파헤쳐야 했다. 4.3이 발생한 지 70여년이 지난 오늘날, '호적상의 아버지'가 사망한 사례가 대다수로, DNA가 불일치함을 확인하기 위해 파묘를 감행해야 했다. 

어렵게 호적상의 아버지가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점을 입증한 후에는 '실제 친아버지'와의 DNA를 대조하기 위해 다시 무덤을 파내야 했다. 이마저 4.3 당시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할 수 있었던 일부에 국한될 뿐, 아버지가 어디서 희생됐는지도 모르는 행방불명 유족들은 호적 정정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못하는 구조였다.

4.3특별법에는 '4.3사건 피해로 인해 가족관계등록부(호적)가 작성되어 있지 아니하거나 사실과 다르게 기록된 경우에는 다른 법령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4.3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가족관계등록부를 작성하거나 기록을 정정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정작 유족들의 열망을 가로막은 것은 대법원 규칙이었다. 대법원 규칙 '4.3특별법에 의한 가족관계 등록사무처리규칙' 제2조에 따른 호적정정 대상자는 '희생자'로 한정돼 '유족'으로서의 호적 정정은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20여년 동안 해당 조항은 무용지물이나 다름 없었다.

[제주의소리]에서 최초 보도한 김종민 4.3중앙위원회 위원 특별기고 [김명수 대법원장님께 드리는 편지…4‧3유족 호적 정정 가로막는 대법원 규칙]을 통해 이 같은 불합리가 공론화됐고, 도민사회가 한 목소리를 내자 대법원도 화답했다. 대법원규칙을 개정하며 호적정정 신청권자를 기존 희생자에서 유족까지 확대했다.

가족관계등록부 작성 결정 신청·접수가 되면 유족과 이해관계인에게 신청사항이 통지되며 공고와 의견 제출, 사실조사를 거쳐 4.3실무위원회 심사와 4.3중앙위원회의 심의·결정이 순차적으로 이뤄지게 된다.

이후 4.3위원회 결정 통지서를 받은 신청인이 가족관계등록 관서에 신청하면 최종적으로 가족관계등록부가 작성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