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경찰청, 국립제주호국원 안장 최종 승인 일궈...5월10일 이장

살아있을 때 문형순 서장의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살아있을 때 문형순 서장의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헌신하고, 4.3때 학살 명령을 거부해 수많은 도민들의 목숨을 구한 ‘경찰영웅’ 문형순(文亨淳, 1897~1966) 성산포경찰서장이 국립제주호국원에 안장된다. 

제105주년 3.1절을 하루 앞둔 29일 [제주의소리] 취재 결과, 문형순 서장의 호국원 안장이 최근 승인됐다.  

호국원 안장이 결정되면서 제주경찰청은 문형순 서장의 생년월일을 토대로 묘를 이장하기 가장 좋은 날을 택일(擇日)했다. 

현재 제주시 오등동 제주 평안도민 공동묘지에 잠든 문형순 서장의 안장식은 올해 5월10일로 결정됐다. 파묘와 화장, 영결식 등 순으로 이장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다. 

문형순 서장 호국원 안장을 담당하는 제주청 윤현식 경무계장은 “문형순 서장은 큰 업적을 남긴 분이다. 경찰영웅인 문형순 서장을 호국원으로 이장하는 절차에 경찰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예우를 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1897년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난 문형순 서장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의 요람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해 1920년대 만주 일대에서 일제에 저항했다. 그는 의용군과 고려혁명군 군사교관 등으로 활동했다. 1945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공식 군대인 ‘광복군’으로 복무했다.

문형순 서장은 1947년 5월 경위로 경찰에 입직해 제주에서 기동경비대장과 모슬포경찰서장 임시서리, 성산포경찰서장, 경남청 함안경찰서장 등을 역임했으며, 1953년 제주청 보안과 방호계장으로 퇴직했다. 

1950년 6월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퇴직 직전인 1952년 지리산전투경찰대 소속으로 전쟁에도 참전했다. 

경찰 제복을 벗은 문형순 서장은 약자를 위해서 살았다. 제주에서 쌀 배급소를 운영하면서 몸소 베풂을 실천했고, 1966년 6월20일 제주도립병원에서 향년 70세로 후손 없이 홀로 생을 마감했다. 

제주경찰청에 설치된 고 문형순 서장 흉상.
제주경찰청에 설치된 고 문형순 서장 흉상.

경찰 재직 당시 문형순 서장이 수많은 도민들의 목숨을 구한 일화는 위인전과 다름없다. 

4.3의 광풍이 몰아친 1949년 제주에서 모슬포경찰서장으로 재임하던 문형순 서장은 처형 위기에 놓인 100여명의 도민들을 훈방했다. 

당시 제주에서는 중산간 이상에 사는 도민들을 모두 ‘빨갱이’로 판단, 제주 곳곳에서 대규모 토벌(학살) 작전이 이뤄졌다. 토벌대는 “자수하면 살려준다”고 유혹했고, 죄가 없음에도 살기 위해 자수한 수많은 도민들이 사형되거나 군사재판 등에 넘겨져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 썼다. 문형순 서장이 훈방한 100여명도 중산간에 살다 ‘빨갱이’ 몰려 살기 위해 자수한 사람들이다. 

또 1950년 성산포경찰서장 재임 때는 예비검속 지시에 대해 ‘부당(不當)하므로 불이행(不履行)’한다며 학살 명령을 거부해 무고한 295명의 목숨을 구했다. 

문형순 서장은 가족 없이 생을 마감했지만, 후손들이 그를 또렷이 기억했다. 제주평안도민회와 이북5도도민회 등이 그의 묘를 찾아 정비했고, 각종 자료를 모아 독립유공자 서훈을 신청했다. 

하지만, 정부는 독립운동가 ‘문형순(文亨淳)’과 제주에서 생을 마감한 ‘문형순(文亨淳)’ 서장이 동일인물이라는 기록이 부족하다는 이유 등으로 무려 6차례나 서훈을 거부했다. 

그의 업적을 기려야 한다는 도민사회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경찰청은 2018년 문형순 서장을 올해의 ‘경찰영웅’으로 선정했고, 제주청에 문형순 서장의 추모 흉상이 설치됐다. 

제주 경찰은 경찰영웅 문형순 서장의 업적을 기리는 일에 참여, 지난해 12월 국가보훈부로부터 한국전쟁 참전유공 국가유공자 선정을 일궜다. 

경찰은 국가유공자로 선정된 문형순 서장을 호국원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 올해 호국원 안장 최종 승인을 받아 최고의 예우를 다한 영결식와 안장식 등을 준비중이다.

국립제주호국원은 국립현충원 등 다른 지역에 잠든 영웅들을 고향으로 모시기 위해 2021년 12월 제주시 노형동 산19-2 부지에 문을 열었으며, 문형순 서장처럼 국가유공자들이 잠들어 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