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 동아시아언어문명학과 한국어프로그램 소장 오상석 교수

작년 여름 미국에 건너오기 전 하버드대에 제주출신 교수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제주의 소리에 ‘지구촌 제주인’ 연재가 진행되자 필자에게 동일한 제보가 날아들었다. 오상석 교수가 바로 그다. 작년 10월 미 동부지역(워싱턴, 뉴욕) 취재를 다녀오면서 가급적이면 직접 만나 인터뷰하고 오려 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전화를 통해서만 우선 인사를 나누었다. 이후 세계 제주인 네트워크 구축과 관련한 본 연재의 취지를 설명, 전화 인터뷰를 요청했다. 
 
오교수는 한국 내에 팽배해 있는 학벌주의, 교육지상주의, 교육일류주의 등등에 대한 비판의식을 오랫동안 지니고 있었던 터라, 자신에 대한 인터뷰가 이런 풍조를 부추기는 데 일조를 할까 저어하여 당초에는 인터뷰에 응하는 것을 꺼려했다. 그러나 미국 내 제주인 네트워크 구축에 조금이라도 일조한다는 의미에서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글을 열기에 앞서 먼저 인터뷰에 응해준 오교수께 감사의 뜻을 전한다(이하의 글은 오교수와 전화 및 이메일을 통해 나눈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 최근 한국어 프로그램 사무실 앞에서 찍은 오상석 교수 사진 ⓒ 제주의소리 이지훈
 
구좌읍 하도리 출신, 제주대 영문과 85학번, 하와이 주립대 대학원 졸
현 하버드대 동아시아 언어문명학과 한국어 프로그램 소장

 
오상석 교수는 65년 생으로 고향은 철새도래지로 유명한 구좌읍 하도리(창흥동)이다. 하도 초등학교, 세화 중학교, 제주제일고(27기 입학, 28기 졸업), 제주대학교(85학번, 영문과)를  다녔다. 대학은 군 복무 후인 89년에 복학하여 92년에 졸업.

28세인 93년에 도미, 하와이 주립대학의 언어학과 대학원 과정에 입학해서 석사, 박사 과정을 끝마치고 98년에 졸업했다.

졸업 다음 해인 99년(34세)의 나이에 첫 직장으로 캘리포니아에 있는 미국방외국어대학(Defense Language Institute)에서 1년 반 동안 한국어과 조교수를 하다가, 다음 해인 2000년도 9월(35세)에 하버드 대학으로 직장을 옮긴 후 현재까지 동아시아언어문명학과(East Asian Languages and Civilizations) 내의 한국어프로그램(Korean Language Program)에서 8년간 교수로 지내오고 있다(2000년에서 20004년까지는 한국어 프로그램에서 전임교수로, 2004년부터는 현재까지 프로그램 소장(director)으로 재직 중이다).

현 구좌읍 하도리 노인회 회장인 오만종(만76세)가 부친이며, 아내와 딸(4살)과 함께  현재 보스톤에서 살고 있다.   
  

   
▲ 오상석 교수 가족. 보스턴에서(2006년) ⓒ 제주의소리 이지훈

 
동시통역사가 되려던 꿈 바꾸어 유학 결심 

그는 어떻게 미국으로 오게 되었을까?

오 씨는 영어 어학을 좋아했다. 그래서 91년 대학 졸업 후 동시통역사가 되려고 외국어 대학 동시통역대학원 과정을 준비한다. 그러다가 뜻을 바꾸어 학자가 되기 위해 유학을 결심, 93년에 ‘국제로타리재단’의 후원으로 1년간의 장학금을 받고 도미, 하와이주립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했다. 2년만인 95년에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이후 98년에 박사과정을 수료하는 등 단 5년 만에 석·박사 과정을 모두 마쳤다.
 
오 씨의 박사학위 논문 제목은 “문법화 이론에 입각한 한국어 조동사에 대한 통사, 의미 연구:Syntactic and semantic studies of Korean auxiliaries: A grammaticalization perspective)이다.
 
하버드대에서 ‘한국어, 한국문화’를 가르쳐
전 미국대학에서 쓰일 한국어 교재 개발 사업 참여/SAT II 한국어과목 시험 출제위원

 
현 직장(하버드대 동아시아언어문명학과)에서는 하버드 대학 학부 학생과 대학원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여러 강좌(매 학기, 총 6강좌 중에서 4강좌 담당)에서 한국어/한국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한국어 프로그램 소장으로서 프로그램을 전담하여 한국어 과목의 커리큘럼 개발, 운영, 교수진 채용과 감독, 학사 운영 등 프로그램 전반에 대한 총 책임을 맡고 있다.

더불어 하버드 한국교포학생연합회, 하버드 태권도회, 한인입양자 후원회 등의 학생 클럽(동아리)의 자문 교수 역할도 하고 있다.

이외에 그는 현재 전 미국 대학 내에서 쓰일 한국어 교재 개발 사업에 참여하여 교재 저자로서 일을 하고 있고, 지난 3년간 SAT II(일종의 수능 시험)의 한국어 과목 시험 출제 위원으로 일을 해 왔다.

지난 여름에는 하버드 내의 한국학 연구소의 카터 에컷트 교수와 함께 여름학기 과정(한국역사; 한국어)을 개발하여 한국의 이화여대에서 Harvard-Ehwa Summer Program을 운영한 바 있고 올 여름에도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오교수의 얘기를 들어 보자.

“지금 한류 바람이 태평양과 미국 서부를 넘어 이곳 미국 동부 끝인 하버드 캠퍼스에도 솔솔 불어오고 있습니다. 덕분에 한국어와 한국학에 관심을 갖는 학생들이 늘어났습니다. 예를 들어 한 5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어 초급 과정에는 대다수가 교포출신 학생들이었는데, 이제는 거의 100%가 비교포 미국학생들이고 이들의 과목 수강 이유도 한국문화 내지 한류라고 답하는 학생들이 많이 늘었습니다. 이제 한국문화와 한국어도 세계화로 치닫고 있습니다. 더불어 한국어학을 이끌어가는 사람으로서 책임감도 무거워짐을 느낍니다.” 
  

▲ '한국학 연구소 (Korean Institute) 뉴스레터(2년 반 전의 것으로 Korea Institute, Fall 2005 Newsletter, volume 12, number 1) ⓒ 제주의소리 이지훈

 
하버드 생활에서의 단상
“교육에 대한 왜곡된 의식이 바뀌어야”

 
현재, 미국 유학 붐에 맞춰 하버드에도 지난 몇 년간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막 바로 하버드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작년 통계에 의하면 하버드 학부의 외국인 유학생 입학 비율 중 캐나다와 영국에 이어 한국이 세 번째를 차지했다고 한다. 이것은 동양에서는 첫 번째 순이다. 8년 전만 하더라도 하버드 학부의 경우 한국유학생이 전무했던 것을 생각하면 일견 놀라운 통계적 증가이고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추세라만 언젠가는 제주 출신의 하버드 학생도 나와 줄만도 하다고 오교수는 기대한다. 하버드에서만도 이러한데 전국적인 추세는 충분히 상상이 되고도 남는 일. 

동시에 오교수는 스스로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과연 높은 수준의 교육을 위해 유학만이 최선의 길인가?” 하는 의문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 오교수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답한다. 오히려 한국에서 교육의 질을 더 높임으로써 보다 나은 대학과정을 밟기 위해 많은 학생들이 굳이 미국까지 오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을 그는 갖고 있다.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여러 대책들이 있을 수 있지만 제도적 개선에 앞서 가장 시급한 문제로 왜곡된 교육에 대한 태도와 의식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것. 구체적으로 대학의 간판을 가지고 판단하는 학벌위주의 의식이라든지, 대학교육에 지나치게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특권의식을 조장하는 교육지상주의 같은 의식들이 사라져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한 마디로 교육에 대한 왜곡된 의식이 바뀌면 제도적 개선이나 질의 향상은 자연스레 따라올 것”이라는 게 오교수의 견해다.

이런 점에서 이 인터뷰도 어떤 특권의식을 조장하는데 일조할까 두렵다는 오교수. 그의 겸손과 교육관이 존경스럽다. 그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를 표하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우리나라로 시야를 옮겨보니, 오교수의 기대와는 달리 개선은커녕 점점 더 왜곡되고 암울해져만 가는 교육현실을 목격하게 된다. 정말 어찌해야 할 것인가? 
  

▲ 좌측부터 웨슬리 제이콥슨 교수(일본어 프로그램 소장), 마이클 프엣 교수(학과장 중앙), 우측 오상석 교수 ⓒ 제주의소리 이지훈
 
미국 생활에서 가장 어려웠던 일과 의미 있던 일
 
그는 유학시절을 어떻게 보냈을까? 뭐니 뭐니 해도 미국 생활에서 가장 강렬한 기억들은 다 유학시절의 것들일 터.
 
집안의 장손이자 외아들로 유학 자체를 반대하는 가족들을 뒤로 하고 맨 손으로 뜻을 이루겠다고 나선 유학길이었다. 그나마 1년간의 ‘국제로타리재단’의 장학금이 없었다면 유학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그는 회고한다. 다행히, 하와이 대학 언어학과에서 2년 차부터 학비 전액 면제와 생활비 보조의 장학금을 주겠다는 편지를 받았고 덕분에 전 과정을 무료로(?) 학교를 다 마칠 수 있었다. 이점에서 그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상당한 빚을 지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한 푼 없는 외국인에게 교육을 허락한 이 나라에 늘 감사하며 지낸다고. 

(처음에 굴지의 주립대학들(인디애나, 미시간, 뉴욕주립대, 텍사스대 등)에서 입학허가를 받았으나 이들 대학 중 하와이 대의 재정지원 조건이 제일 나았을 뿐만 아니라 언어학 과정으로 하와이 주립대가 여타 대학들 보다 가장 탁월하다는 점이 오교수를 하와이대로 이끌었다.)
 
공부 기간 동안 학교에서 조교로 일하며 받았던 재정 지원으로 모든 생활비를 대기는 턱없이 모자랐다. 이 때문에 생활비를 맞추기 위해 싼 곳을 찾아 5년 동안 총 8회의 이사를 해야하기도 했다. 일주일에 $20불로 식비를 충당하던 때도 비일비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재정적인 압박감은 오히려 공부의 집중력을 도와 석사·박사 과정을 5년이라는 단 기간에 끝마치도록 한 계기로 작용했다.
 
이러한 어려웠던 기억도 있었던 반면, 그의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추억들 또한 하와이에서 보낸 5년 반의 유학 시절 기간에 담겨 있었다고 그는 회고한다. ‘동전의 양면’인 셈이다.

특히 그는 하와이의 ‘따뜻한 사람 인심’을 우선 꼽는다. “세상 어느 곳을 가 봐도, 이곳만큼 후한 사람 인심을 접해 본 적이 없다”는 오교수. 동양의 하와이라 불리어지는 제주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내용이 아닌가 한다. 불친절, 바가지의 섬으로 낙인찍혀 있는 제주의 현실. 아무리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사람들이 아름답지 못하면 안 온다는 관광의 대원칙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다음으로 오교수는, 하와이의 탁월한 기후와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꼽는다. 그 5년여의 세월동안 지독하게 가난해도 그가 여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다 이런 환경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 그가 이렇게 얘기하면 사람들은 잘 안 믿는다고. 그런데 정말이란다.

그는 대학원 시절 5년 동안 주말만 되면 와이키키의 해변과 공원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서 그늘 좋은 나무 밑에서 공부를 했다. 공부를 하다가 휴식이 필요하면 바다에 뛰어 들어가서 헤엄을 치다가 그것도 싫증이 나면 나무 그늘로 돌아와 낮잠을 잤다. 그리고 깨고 나서 다시 공부하고...

그는 얘기한다.

“그야말로 돈이 없어도 공짜로 공부도 하면서 자연도 즐길 수 있는 일석이조의 낙원생활이었습니다. 자연을 떠나서도 문화와 정서적으로도 하와이는 서양과 동양이 만나서 꽃을 피우는 동서양의 회통의 향연의 터라고 감히 말하고 싶고 이때 틔운 이런 융합의 정서는 내 인생의 피와 살이 되어, ‘잡종은 보다 강하고 아름답다’라는 소위 ‘잡종(hybrid)의 미학’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이런 생활 때문에 그는 완전히 하와이 예찬론자가 되어 버렸고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하와이를 그리워하며 산다. 그의 고향 하도리 바닷가가 아름다운 것도 마찬가지이듯...     
  

▲ 중앙도서관 앞에서 ⓒ 제주의소리 이지훈
 
통합의 틀로서 언어연구에 매진-학문의 통섭 시대를 대비한 준비
 
그동안 10여 년 동안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을 위한 연구와 교수를 위한 활동을 해왔지만 그의 원래 바탕은 언어학 연구이다. 그래서 오교수는 이 둘을 병합하는 길을 걸어 왔다.

조금은 전문적인 내용이지만 관심있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 그의 얘기를 그대로 옮겨 본다.

“언어 연구는 형태와 구조 위주의 구조/형식주의를 지양하고 의미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언어의 구조와 의미를 통합하여 연구하는 기능주의과 언어사용과 인지적 기능을 강조하는 인지언어학의 틀에서 언어 연구를 해 왔습니다. 언어 변화의 원인과 작용을 연구함에 있어 언어의 구조와 의미, 공시성과 통시성을 포함하고 언어의 화용과 인지과정 등을 융합해서 바라보는 문법화 이론을 가지고 한국어 문법 구조의 발전 과정에 대한 연구를 한 게 저의 박사 논문입니다. 그만큼 저는 시작부터 나눔보다는 통합의 틀로서의 언어 연구에 관심을 가졌고 이러한 입장에서 일관되게 지금까지 한국어와 영어에 대한 연구를 해 왔습니다. 더 나아가 이런 틀의 한 지류로서 나온 인지언어학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해왔습니다. 이제 세계화의 시대와도 그 맥을 같이하여 학문 연구에도 많은 변화의 기류가 일고 있습니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분야들 간의 융합, 즉 육체와 마음의 통합연구,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통합, 과학과 종교 등의 통합 등등의 학제간 연구라든지, 학문 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지식의 대 통합, 즉 학문의 통섭 시대가 서서히 개막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맥을 같이하여 그는 언어 연구와 한국어의 국제화 작업 외에 한국의 뿌리 깊은 전통 사상인, 한국 선불교철학 등에 관심을 두고 이를 그의 연구와 통섭하는 일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특히, 앞으로 다가 올 학문 통섭의 시대와 동·서양 회통의 시대를 위해서라도 이 분야의 물꼬를 트는 데 일조를 하고 싶다고 한다. 그의 연구가 반드시 목적한 바를 이루기 바란다.
 
해외 제주인 네트워크 구축과 관련해서는 필요성을 공감하며 지금까지 관심을 가지지 못 했고 또 한 일도 없어 부끄럽다고 겸손하게 밝히는 오교수. 마지막으로 제주도 발전을 위한 조언이 있다면 해달라는 부탁에 이렇게 그는 대답했다.
 
“제 인생의 전반기를 보낸 제주를 위해 제가 지금까지 한 게 없는데 이런 인터뷰를 받는 게 부끄럽고 쑥스럽습니다. 미국에 사는 게 무슨 특권도 아니고 전문가가 아닌 입장에서 제주도 발전과 관련된 어떤 방향 제시를 해 줄 수 있는 입장도 못 됩니다. 단, 한 때 치열하게 살았던 내 정든 고향을 생각해서 굳이 한 마디 하라면 저의 ‘잡종의 미학’을 간략하게 피력하고 싶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저는 하와이에서 유학하면서 인종, 환경, 문화 할 것 없이 여러 영역에서 절묘한 융합의 힘을 절감했습니다. 한 마디로 ‘잡종’은 더욱 강하고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고유의 것만이 순수하고 온전하다고 고집할 시기는 지났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국제화’만이 살길이라고 하는 외세 일색이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가장 제주도적이면서도 보편성을 띠어 국제무대에서도 통용될 수 있는 가치와 문화 아이템들을 발굴하고 이들을 보편적인 틀로 확대 개발하는 통합적 사고로의 지향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전통과 고유한 가치들에 대한 확고한 인식과 더불어 넓은 세계를 향한 제주인의 열린 의식도 함께 필요할 것입니다.”

그의 얘기 속에 제주발전 방향의 주요한 키워드가 녹아들어 있음을 느낀다. 한마디 한마디가 내공을 느끼게 하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고향 후배들에게 선배로서 조언을 주라는 요청에는 다음과 같은 짧지만 의미심장한 얘기를 조심스레 전한다. “인생을 보다 긴 안목에서 바라 볼 줄 아는 지혜와, 용기를 가질 것과, 젊은 날의 도전과 모험의식도 긴 여정을 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라고.
 
마지막으로 그의 얘기를 들어보자.

“그저 청운의 꿈만 안고 미국으로 와서 공부를 마치면 고향으로 돌아가리라고 했는데 공부를 마치고도 돌아가지 못하고 미국에 남아 살다 보니 벌써 미국 생활이 15년이 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부모님을 가까이서 모시지 못하는 불효가 막심합니다. 또한 고향에 있는 가족들과도 물리적으로 가깝게 지내지 못하는 아픔도 있지요. 하여 모든 일가친척들을 포함 모든 고향 지인들에게 죄송스런 마음을 늘 지니며 삽니다. 이 자리를 빌려 그들 모두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더 나아가 제주도의 무궁한 발전과 제주인의 행복을 빕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도 오교수는, “저의 대단치 않은 인생 여정에 대한 얘기가 그렇지 않아도 학벌계급주의와 서구맹신주의에 빠져있는 풍토에 괜한 부채질을 하는 게 아닌가 심히 우려됩니다”며 재차 우려의 뜻을 표명했다. 이런 겸손한 태도가 그를 더 매력있게 한다. 그래서 더 그를 제주의 후학들에게 소개해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다.

오교수는 앞으로 한국에서 그리고 세계화로 치닫고 있는 제주 지역사회에서의 교육 풍토가 경쟁획일주의나 교육명품화(?) 바람이 아닌, 불교를 비롯 일부 아름다운 전통 사상에 담겨 있는 “만민평등사상에 기반을 한 상생의 교육과 인격과 지혜의 함양 등에 주력하면서 세계적인 보편성도 함께 추구할 수 있는 새로운 전인 교육”이 활성화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필자는 오교수의 이 소망이 평화의 섬 제주가 지향하는 ‘평화교육’의 실내용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버드에 한국의 혼을 심고 있는 오상석 교수, 그가 제주인이란 게 정말 자랑스럽다. 

# 자랑스런 지구촌 제주인에 대한 제보를 기다립니다(이지훈 windjeju@naver.com) <제주의소리>

<이지훈 편집위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