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충석의 칼럼과 에세이 사이] (29) 15분 도시와 제주

오영훈 도정이 출발한 지도 2년이 넘었다. 오 도정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가 팽팽하다. 지난 5월, 민선 8기 중요 공약사업인 ‘15분 도시 제주’ 조성을 위한 기본구상 수립용역 최종보고회가 열렸다. 2026년까지 제주시 애월읍, 제주시 삼도1동~일도1동, 서귀포시 표선면, 서귀포시 천지동~송산동 네 곳에 대해서 15분 도시사업을 완료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날 공개한 최종보고서에는 보행환경 개선과 생활 인프라 확충 계획이 발표됐지만 정작 ‘15분 도시’의 기본 개념이나 철학은 도외시한 느낌이었다.
‘15분 도시’의 개념은 프랑스의 도시계획 전문가인 카를로스 모레노(Carlos Moreno)가 제안하였다. 시민들이 주거시설에서 직장, 학교, 의료시설, 은행 등 일상생활을 누리는데 필요한 장소에 15분 이내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시를 설계하여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도시 내 공원 등 녹지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친환경 녹색도시로의 전환도 15분 도시가 갖는 큰 장점이다. 친환경 녹색도시로 가는 첩경은 이동 수단을 일대 혁신하는 데 있다. 도보와 자전거 사용을 촉진하여 자동차 의존도를 줄임으로써 대기오염과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다는 것과 주민들이 지역 내에서 활동하게 됨으로써 소규모 상점이 활성화되고 이웃 간의 사회적 커뮤니티가 강화된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15분 도시를 추진한 대표적인 도시는 프랑스 파리이다. 2020년 안 이달고 시장은 카를로스 모레노 교수의 15분 도시(La ville du quart d'heure)’를 공약으로 내걸어 큰 주목을 받았다. 이후 호주 멜버른, 미국 포클랜드, 이탈리아 밀라노 등 세계 주요 도시를 기점으로 전 세계로 급속하게 전파되고 있다. 호주의 멜버른은 이 정책을 도입하여 도시 내의 교통 혼잡을 줄여 주민들의 생활 만족도가 향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포클랜드는 이미 오래전부터 지속 가능한 도시 설계를 추진해왔으며 15분 도시 개념을 통합하여 많은 시민이 자동차 없이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밀라노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도시 설계를 통해 15분 도시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교통혼잡을 줄여 주민들 삶의 질이 향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성공은 15분 도시정책을 각 도시의 특성에 맞게 적응하고 발전시키는 노력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외국의 여러 선진지역에서 추진하고 있는 15분 도시는 궁극적으로 행복한 삶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명제와 맥이 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도시설계자는 도시 구성원들의 행복을 디자인하는 철학자이고 미학자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들은 어떻게 인간의 행복을 도시라는 그릇 속에 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효과만 놓고 본다면 ‘15분 도시’는 더 말할 나위 없이 좋은 정책이다. 접근성, 지속 가능성, 커뮤니티 참여 측면에서 매우 이상적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 제주에 15분 도시가 적합한 정책일까? 제주의 지리, 인프라, 행정적 상황을 충분히 고려한 것일까? 의문이 든다. 15분 도시를 하기에 제주는 의외로 면적이 넓고 인구밀도는 낮다. 더욱이 기존 인프라를 15분 도시에 맞추기 위해서는 상당한 투자가 요구될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의 행정체제 구조에서 과연 실효성이 있는 정책일지 의문이 든다.
우리나라 여러 도시에서 거론하고 있는 15분 도시 구상은 파리에서 그 아이디어를 많은 부분 빌려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도시에서 어떻게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할 것인가? 그 방법론에 있어서는 파리와 우리나라의 여러 도시는 출발부터 다르다. 파리의 15분 도시모형과 제주는 매우 다르다. 파리의 15분 도시모형을 제주에 그대로 적용하는 데는 많은 한계가 있다. 특히 제주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도시를 보는 철학적 관점부터 다르다. 파리에서 15분 도시정책이 성공했다고 해서 제주에서도 성공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우리가 흔히 외국의 선진 제도나 기술, 공공정책을 수입했을 때 왜 거기서는 성공했고 여기서는 실패했느냐를 자주 따져 묻는다. 학문적으로는 이러한 논의를 ‘토착화의 문제’라고 한다. 토착화가 잘 안 되는 이유는 해당 지역이나 나라의 문화, 경제구조, 주민들의 의식 구조 등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왜 서양의 선진국에서 직수입한 민주주의 제도가 오늘날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갈지자(之)걸음을 계속하고 있는가? 그 원인은 우리나라 국민 수준이 민주주의제도를 운영할만한 역량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15분 도시를 제대로 하려면 인구 규모가 가장 중요하다. 파리는 인구 집약형의 고밀도 도시다. 많은 인구가 몰려서 사는 곳이다. 그래야 규모의 경제가 가능하다. 이외에도 역사적 생성 배경이나 직주거리(직장과 주거지의 거리), 지역 산업구조 등에서 우리와는 다르다. 이런 점을 무시하고 파리를 그대로 답습할 때 많은 매몰 비용 등 엄청난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파리는 물론이고 15분 도시를 추진하고 있는 멜버른, 포틀랜드, 바로셀로나 같은 도시들도 인구 규모가 수백만에서 1000만 이상인 과밀도시들이다. 예컨대 바로셀로나의 15분 도시인 ‘슈퍼블록’은 가로, 세로 길이가 각각 400m의 작은 마을에 5000~6000명이 생활할 만큼 인구밀도가 상당히 높은 도시다. 이런 도시와 비교하면 제주의 인구 규모는 15분 도시를 하기에는 너무 작다. 그야말로 인구 규모의 비경제성이 엄청난 장애물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은 인구감소와 소멸 위기까지 거론되고 있다. 어느 보고서에 의하면 세계적인 관광지로 주목받고 있는 서귀포시 또한 인구소멸 대상 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수도권을 제외한 다른 도시에서 15분 도시가 적합한 모델인지는 많은 회의를 자아내게 한다. 일반적으로 외국의 15분 도시 모델을 한국의 상황에 적용하기는 녹록지 않다는 뜻이다.
제주도의 면적이 넓은 것도 15분 도시 적용에 유리한 것은 아니다. 주거시설에서 15분 내로 필수적인 서비스 이용시설을 생산해내는 것이 과연 가능할지에 대한 의문도 생길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제주의 경우는 도시는 대규모 주거지 개발로 인하여 구도심은 활력을 잃은 지 오래되었고 농촌은 인구 과소화로 고령화와 저출산에 의한 소멸지수가 높아지고 있다. 제주도 전체 평균인구가 1㎢당 377명(제주시 518명, 서귀포시 218명)에 불과하다.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에서 추진하는 15분 도시가 도농 혼재 지역인 제주도와는 맞지 않다는 얘기이다. 인구가 과소한 읍면지역은 15분 도시의 필수전제조건인 주거, 업무, 상업, 보건, 교육 등의 시설 해결을 어렵게 할 것이다. 그래서 애초부터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에서 추진해야 할 15분 도시가 제주도에서 가능할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또 하나 우려되는 점은 제주에서 15분 도시를 추진할 때 인구 과밀화를 유도하기 위해 건축 높이 완화 등 각종 개발 규제를 풀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난개발로 이어질 수 있어 자연 자원이나 경관을 주요 관광자원으로 삼고 있는 제주도에 심각한 역효과가 가져다줄 수 있다. 예컨대 연삼로에 접한 일도지구는 15분 도시로서의 타당한 여건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이때까지 고수했던 2층으로 제한된 일도지구 건물 높이를 무제한으로 풀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걱정되는 것은 15분 도시를 만들겠다는 명목하에 건축이나 각종 개발 규제가 자유화되면 제주 정체성 훼손은 불 보듯 뻔하다.
이동 수단에 대해서도 언급하면 ‘15분 도시’의 핵심 개념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서비스를 도보 또는 자전거로 15분 내 접근할 수 있도록 도시공간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주요 이동 수단이 도보와 자전거라는 점이다. 또, 도시 내 공원 등 녹지공간을 많이 확보하여 탄소배출을 줄여야 한다. 이른바 친환경 녹색도시로의 전환이다. 이러한 전환이 15분 도시의 핵심 개념이다. 친환경 녹색도시로 가는 첩경은 이동 수단에 대한 일대 혁신에 있다. 시민사회에서 도보나 자전거를 이용한 녹색교통을 주창한 지 오래되었다. 자동차가 계엄군처럼 점유하고 있는 현행 도로 구조도 혁신하고 인도도 상당한 수준으로 넓혀야 한다. 그러나 왜 그것이 가능하지 않은가. 녹색 도시정책을 수립하는 세력들이 토목 세력이나 자동차 산업의 저항을 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친환경 녹색도시로의 전환은 기존의 질서를 허무는 작업이기 때문에 기존 관행에 익숙한 예산 관료나 기득권에 매몰된 정치인들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현재 부산에서도 15분 도시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부산의 15분 도시는 겉만 보면 환경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환경주의로 위장한 짝퉁 정책들이 대부분이다. 토건 중심정책이 주류를 이룬다. 가장 중요한 시민들과의 연대를 추구하는 정신이 무엇보다도 부족하다. 부산의 15분 도시가 지역적 특색을 반영하고 경제성장을 위한다고 강변하지만, 거기에는 15분 도시의 핵심 철학인 환경과 공동체주의가 없다.
그렇다면 제주의 도시환경은 어떨까. 제주도의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제주의 인구는 67만명을 넘어섰고 10년 전보다 약 10만명의 인구가 늘어났다. 또한 도내 등록한 차량은 10년 새 40만대가 급증하여 현재 66만대를 넘어섰고 올 하반기 이후에는 사람보다 자동차 대수가 많아질 것이다. 제주도의 통계에 따르면 2024년 4월 기준 제주의 인구는 67만명을 넘어섰고, 도내 등록된 차량은 70만대를 넘어섰다. 이중 전기차는 2만대에 불과하다. 인구 대비 자동차 등록 대수는 제주도가 0.96명당 1대로 전국평균 1.98명당 1대의 2배 가까운 보유율을 보인다. 차고지증명제, 버스준공영제 등의 대중교통 유도정책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차량이 증가하는 이유는 여전히 대중교통은 불편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도 제주도에서 ‘15분 도시’ 추진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될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최근 코로나 이후에도 내국인 관광객이 급증하고 그에 따른 차량과 쓰레기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러한 현상도 제주도가 15분 도시 추진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특히, 도농 혼재 지역인 제주도는 농촌 인구의 고령화, 탈제주, 저출산으로 인한 지역 소멸지수가 높아지고 있다. 지금의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인구감소 시나리오에 적합한 도시계획을 세우는 일이다. 이러한 고민 없이 제주도가 15분 도시를 추진하는 일이 우선순위에 맞는지 우려스럽다. 문득, 이런 말이 떠오른다.
“남들이 장에 간다고 나도 거름지게 메고 장에 갈 수 있나?”
고충석
現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제7대 제주대학교 총장, 제주국제대학교 초대 총장, 제주발전연구원장 등을 역임했다.
제주를 대표하는 원로학자로서 칼럼과 에세이를 넘나드는 노마지지(老馬之智)의 조언을 싣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