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제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고태호

‘15분 이내에 학교, 병원, 도서관, 은행 등 어디든 갈 수 있는 도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는 ‘15분 도시’의 모습이다. 이에 인과관계의 논리 구조에 익숙한 사람들은, “‘인구밀도가 높아야 규모의 경제가 발생한다’ → ‘규모의 경제가 발생해야 서비스시설의 집적 입지가 가능하다’ → ‘서비스시설이 집적 입지되어야 15분 도시가 가능하다’”라는 논리와 함께, “‘제주지역은 인구밀도가 높지 않다’ → ‘인구밀도가 높지 않으면 15분 도시가 불가능하다’ → ‘제주지역은 15분 도시가 불가능하다’”라는 논리를 전개하게 된다. 이는 ‘15분 도시’를 결과론적으로 이해하려다 보니 발생하는 오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15분 도시’는 주민들이 거주지(생활권)에서 최소한의 일상생활을 누릴 수 있는 도시로 정의할 수 있다. 코로나 19 사태를 겪으면서, 거주지에서 일상생활을 누리지 못함을 깨닫게 되자, 이에 대한 반성으로 도시계획분야에서 대두된 철학 내지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유의해야할 것은 ‘15분 도시’는 특정 전문가가 개발한 도시계획 이론 또는 기법이 아니라, 시대적·환경적 요구에 따라 자연적으로 형성되고 발전되어온 패러다임이라는 것이다. (프랑스 소르본 대학의 카를로스 모레노 교수는 이러한 철학과 패러다임을 정리하여 ‘15분 도시’라는 용어를 만들고 제안하였다.)
이러한 ‘15분 도시’ 정의에 근거하면, ‘15분 도시’에서는 먼저 ‘거주지(생활권)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설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풀어야 한다. 이에 대한 답으로 제시된 기준이 ‘도보 15분(물리적 거리: 0.8~1.2㎞)’이다. 이에 따라 ‘15분’이라는 숫자가 상징적으로 표현된 것이지, 15분 이내에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15분’이라는 숫자로 인해 ‘15분 도시’의 개념을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심지어 민선 8기 부산시정에서는 초고속 도심 교통수단인 어반루프의 도입을, 15분 도시 전략으로 발표했었다.)
‘15분 도시’의 정의에 근거하여 두 번째로 풀어야할 문제는 ‘생활권에서 주민들이 누려야 하는 최소한의 일상생활(생활필수기능)을 어느 수준까지로 설정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행정이나 외부 주체가 아니라, 생활권 내 주민들이 찾아야 한다. ‘15분 도시 제주’ 계획에서는 5+1 기능(생활, 교육, 돌봄, 건강, 여가 + 업무)과 각 기능별 지표 시설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일 뿐이지, 실질적인 필요 서비스는 생활권의 여건, 주민 수요, 예산 제약 등을 고려하여 주민들이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정리하면, ‘15분 도시’는 ‘거주지에서 기본적인 필요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인정되고, 보장되는 도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주민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 주민들이 참여하는 생활권 계획, 즉 ‘15분 도시 계획’이다. 다만, ‘15분 도시 계획’은 지역 여건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예를 들어,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는 ① 1.2㎞ 정도의 도로를 기준으로 다수의 블록을 하나의 생활권으로 설정하고, ② 생활권 내에 주민들의 필요 서비스를 공급하는 방식으로 추진된다. 이와는 달리 호주 멜버른에서는 ① 생활권 내 주민들의 필요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는 거점시설을 선정하고, ② 거점시설 반경 0.8㎞를 생활권으로 설정하여, ③ 생활권 내에 주거지를 집적시키는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와 같이 ‘15분 도시’는 지역 여건에 따라 다른 모델, 다른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모든 15분 도시에서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두 가지의 원리가 있다. 첫 번째는 근접성(Proximity)이다. 근접성은 ‘주민 – 시설’ 간 물리적 거리가 최소화되는 입지에 필요 시설(서비스)를 공급하는 원리이다. 근접성 원리가 적용되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접근이 양호한 입지에 필요 시설(서비스)을 공급해야 한다. 문제는, 일반적으로 주민들의 접근이 양호한 입지에는 이미 공공시설 내지 상업시설 등이 조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15분 도시’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이미 조성되어 있는 공공시설을 복합화하여 필요 서비스를 추가 공급하는 전략을 추진한다. 대표적인 예가, 초등학교 시설을 복합화하여 도서관 서비스 등을 추가 공급하는 것이다. 기존의 도시계획 내지 마을계획에서는 생활권 중심지에 시설 입지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자동차 이용을 전제로 생활권 외곽에 시설을 입지시키지만, ‘15분 도시’에서는 이를 현 도시계획의 가장 큰 문제라고 보고 있다.
두 번째는 이동성(Mobility)이다. 생활권 내 필요 시설(서비스)까지의 보행 및 자전거 이용 환경을 개선하는 원리이다. 보행로·자전거 도로를 개선하는 사업뿐만 아니라, 작게는 노인들이 경로당 이용 시에 걷게 되는 보행로에 벤치(포켓쉼터)를 설치하는 사업도, 이에 해당한다.
이제 앞으로 돌아가서, ‘제주지역은 15분 도시가 불가능하다’의 의미를, ‘15분 도시’의 정의, 원리에 근거해서 얘기해보자. ‘15분 도시’의 정의를 토대로 ‘제주지역에서 15분 도시가 불가능하다’는 의미를 해석하면, ‘제주지역에서는 기본적인 필요 서비스를 거주지에서 누릴 수 있는 주민들의 권리를 인정하고 보장할 수 없다’는 의미가 된다. 그리고 ‘15분 도시’의 원리에 근거해서 해석하면. ‘제주지역에서는 자동차 이용을 전제로, 생활권 중심이 아닌 생활권 외곽에 필요 시설을 공급하는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과연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도시인가? ‘15분 도시’는 가능·불가능, 성공·실패의 기준이 적용되는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추구해야 할 철학이자 패러다임인 것이다. / 제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고태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