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의 경고, 제2공항을 향하다] ② "의도적 축소, 부실 검토" 직설
전북 새만금에서 추진되는 국제공항 사업이 법원의 판결로 멈춰섰다. 조류충돌 위험과 생태계 파괴, 부실한 환경영향평가, 군사공항 전용 의혹까지. 단순한 지역 갈등 차원을 넘어 대형 국책사업의 정당성과 타당성을 근본부터 되묻고 있다. [제주의소리]는 새만금국제공항 예정 부지를 직접 찾아 생태계의 현 주소를 기록하고, 소송을 이끈 주민·환경단체의 목소리를 담는다. 더불어 조류충돌 위험성과 부실한 환경평가, 법원의 판결이 가진 의미를 짚고, 제주 제2공항과의 구조적 유사성을 5편의 기획으로 풀어낸다. / 편집자 주

돌이켜보면 승리를 쉽게 예상하지는 못했다. 새만금신공항은 환경이나 안전 문제를 떠나 경제성이나 절차적 타당성 측면에서도 하자가 분명했지만, 그럼에도 승리를 자신할 수는 없었다. 국가의 주도로 수천억원이 투입되는 대형 개발사업을 사법부가 제지하는 형태의 전례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탓이다. 애초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인 것을 인정하면서 시작된 싸움이었다.
판결을 앞두고 시작된 '새, 사람 행진'은 뭐라도 해보겠다는 애달픔의 발로였다. 8월 초 전북 전주시 전북지방환경청에서 출발한 행진단은 약 260km를 도보로 행진해 한 달이 지나 서울 양재동 서울행정법원 앞에 다다랐다. 제주 해군기지 반대에 온 몸을 던졌던 문정현 신부는 아흔을 바라보는 오늘날에도 지팡이를 짚고 새만금을 지키는데 앞장섰다.
9월 11일 '새만금신공항 기본계획 취소소송' 선고공판 기일. 법원 밖 공터에 모여든 시민들의 염원은 그만큼 간절했다.현장의 분위기는 묘하게 흘러갔다. 5분 정도면 끝났어야 할 재판이 길어지기 시작하니 기분 나쁜 침묵을 깨고 술렁임이 감지됐다. 한창 바빠야 할 경찰 경호인력이 평소답지 않게 겉도는 것도 예사롭지 않았다.
이내 광장은 환희의 함성으로 가득찼다. 일부 시민들은 얼싸안고 흐느끼며 서로 말을 잇지 못했다. 법원이 윤석열 정부 당시 국토교통부가 확정한 새만금신공항 개발계획을 취소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직후다. 그렇게 승리의 기억은 새만금 갯벌을 지켜온 이들에게 깊게 각인됐다.
김지은 전북녹색연합 사무국장은 "아주 최소한의 상식을 가진 판사라면, 내용적으로는 무엇으로 봐도 우리가 이길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며 "역사적인 판결이 될 것이기에 그 엄중함을 깨닫고 제대로 된 판결이 나온 것이라 본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김 사무국장은 "이번 재판은 전략환경영향평가 단계에서 실체적인 하자를 인정한 첫 사례"라며 "기후생태 위기가 굉장히 심각한 상황에서 무차별적인 개발사업에 제동을 건 기점이 될 것으로 본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실제 장장 69페이지로 구성된 판결문은 새만금신공항 사업의 문제점을 빼곡하게 기술하고 있다. 법원은 1300여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국민소송인단과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측이 제기한 10여가지의 주장을 대부분 채택했다.
첫 머리에 다뤄진 것은 '조류충돌'의 위험성이다. 재판부는 지난해 12월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의 사례까지 직접 언급하며 새만금국제공항 입지 선정 절차에서의 조류충돌위험 평가는 물론, 저감방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재판부는 "피고(국토부)는 타당성평가 단계에서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기준에 정해진 입지 평가 항목 중 '환경성'과 관련해 생태자연도 1등급 훼손면적의 정도·상수원보호구역 및 해양환경 훼손 정도․보호종 출현 여부만을 검토했을 뿐 조류충돌위험은 평가하지 않았고, 그 결과 조류충돌위험이 이 사건 입지 선정에 전혀 반영되지 못했다"고 판시했다.
특히 국토부가 전환평 단계에서 조류충돌 위험을 평가하기는 했지만, 위험 정도를 지나치게 낮게 평가했을뿐더러 이를 입지 대안 비교·검토 과정에 반영하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했다. 수라갯벌의 조류충돌 위험성이 국내 어느 공항보다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음에도 평가 모델을 일관성 없이 적용하거나 대상 지역을 축소했다는 것이다.
바뀐 기준에 의해 새만금신공항은 무안국제공항과 조류 서식환경·규모가 유사한 것으로 의도적으로 축소됐다. 반면 미국·캐나다 조류 충돌 위원회 모델을 적용해 산출된 '신규공항 입지검토 모델' 상의 실질적인 조류충돌 위험도는 판이하게 달랐다.
새만금신공항 사업부지 반경 13km에서의 연간 예상되는 조류충돌 횟수(TPDS)는 최소 10.45467회, 최대 45.9293회로 조사됐다. 이를 치명적인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예상년수로 환산할 시 최소 84년, 최대 19년으로 산출되기도 했다.
이는 국내 어느 공항과도 비교되지 않는 수준이다. 조류충돌횟수가 가장 높게 매겨진 인천이 2.9971회, 김포가 2.84142회다. 제주항공 여객선 참사가 발생한 무안공항이 0.07225회인 것과 비교하면 새만금신공항의 위험도는 최소 100배에서 최대 600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새만금신공항 부지 인근 생태계 역시 사업을 막아서는 결정적 요인이 됐다. 재판부는 "수라갯벌은 현재 염습지 상태로서 법정보호종(천연기념물, 멸종위기 야생생물) 조류 등이 다수 서식하고 있고, 이 사건 사업부지로부터 약 7㎞ 떨어진 서천갯벌은 습지보호지역·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돼 있다"며 "국토부는 신공항 사업이 해당 부지 및 서천갯벌에 서식하는 법정보호종 조류 등에 미치는 영향을 더 면밀히 검토했어야 한다"고 했다.
해당 부지에 서식하는 조류의 취식지·휴식지가 파괴되거나 축소되면서 개체수 감소되는 악영향을 피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또 조류충돌 위험으로 인해 수라갯벌 바로 인근에는 대체서식지를 만들 수 없다는 근본적 한계가 있고, 조류충돌 위험성을 줄임과 동시에 조류를 보호하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 것 역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조류충돌, 생태계 파괴 등에 초점을 맞춘 새만금신공항의 판결은 곧 제주 제2공항에도 파급된다. 전략환경영향평가 부실 문제와 과도한 수요예측, 군사공항 전용 의혹 역시 제주 제2공항과 맞닿아있다.
국토부는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에 대한 항소 절차에 돌입했지만, 이번 판결은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제주 제2공항 논란에도 그대로 투영되며 제주의 기시감을 더욱 짙게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