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의 경고, 제2공항을 향하다] ③ 새만금신공항 재판 승리 주역들

전북 새만금에서 추진되는 국제공항 사업이 법원의 판결로 멈춰섰다. 조류충돌 위험과 생태계 파괴, 부실한 환경영향평가, 군사공항 전용 의혹까지. 단순한 지역 갈등 차원을 넘어 대형 국책사업의 정당성과 타당성을 근본부터 되묻고 있다. [제주의소리]는 새만금국제공항 예정 부지를 직접 찾아 생태계의 현 주소를 기록하고, 소송을 이끈 주민·환경단체의 목소리를 담는다. 더불어 조류충돌 위험성과 부실한 환경평가, 법원의 판결이 가진 의미를 짚고, 제주 제2공항과의 구조적 유사성을 5편의 기획으로 풀어낸다. / 편집자 주

왼쪽부터 구중서 새만금신공항 백지화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 김지은 전북녹색연합 사무국장,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장. ⓒ제주의소리

◇  "환경성, 경제성, 군사적 의도...정부의 축소·왜곡 믿을 수 없었다"

"새만금신공항이든, 제주 제2공항이든, 다를게 없어요. 개인의 이해관계나 입장을 내려놓고 봐야 해요. 정말 필요한 사업인지, 이 사업이 가져올 미래가 무엇인지, 냉정한 평가가 필요할겁니다."

늦여름 꿉꿉한 무더위가 채 가시지 않을 무렵. 예정대로였다면 새 공항의 활주로가 들어섰을 부지의 중심에 선 구중서 새만금신공항 백지화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은 "새만금신공항 기본계획 취소 판결은 늦었지만 당연한 결과"라고 단언했다.

길을 걷다 쪼그려 앉기를 반복하며 새만금 갯벌의 생태계에 대해 한참을 설명한 그는 "직접 눈으로 보니 바로 알 수 있지 않았나. 이 곳에 공항을 새로 건설한다는게 가당키나 하나"라고 힘줘 말했다

구 위원장은 새만금신공항의 환경성 외에도 경제성, 군사적 의도라는 세 가지 쟁점을 되짚었다. 그는 "사업의 경제성은 이미 B/C(비용편익) 0.479로 국가사업으로는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기후위기 시대에 탄소흡수원인 갯벌을 파괴하는건 자해 행위나 다름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새만금신공항이 들어서면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는 주장은 속이 뻔한 거짓말"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현실적으로 이 곳은 송도나 서울처럼 투자 매력이 있는 곳이 아니다. 허허벌판에 화물 허브를 만든다고 기업이 올 리가 없지 않나"라며 "산업단지 역시 성토작업만 반복되고 텅 비어있다. 결국 땅을 파는 과정에서 건설업만 돈을 벌고, 그 돈은 다 세금에서 충당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새만금신공항 부지 내 식생을 설명하고 있는 구중서 새만금신공항 백지화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 ⓒ제주의소리
새만금신공항 부지 내 식생을 설명하고 있는 구중서 새만금신공항 백지화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 ⓒ제주의소리

정부는 터부시했지만, 구 위원장은 새만금신공항이 군공항 전용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미군 측이 새만금신공항의 성토를 높일 것과 군산공항과의 유도로 연결을 요구한 회의록까지 공개되면서, 새만금신공항 역시 사실상 군사기지의 확장을 모색했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주장은 지난 20여년에 걸쳐 꾸준히 군산미군기지의 폐해를 주장해 온 그였기에 가능했다. 구 위원장은 "불리한 것은 축소하거나 속이기까지 한 정부다. (군공항이)아니라고 잡아떼면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겠나"라고 했다.

구 위원장은 "메마르고 성토된 갯벌을 원상복원하기 위해서는 수 천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숨골 파괴 등의 문제가 있는 제주 제2공항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한번 파괴된 자연은 되돌릴 수 없다. 이번 판결은 우리가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지를 묻는 기점"이라고 강조했다.

◇ "한 순간도 의심하지 않았던 승소...새만금마저 패배할 수 없었다"

전주시 외곽에 자리잡은 전북녹색연합 사무실. 지난 6월 이사를 마쳤지만,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책자와 환경 관련 자료들이 구석구석에 쌓여있었다. 새만금신공항을 둘러싼 싸움이 그만큼 한 시가 촉박하게 진행됐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새만금 현장에서 만난 이들은 누구보다 신공항 반대 투쟁에 앞장선 이로 김지은 전북녹색연합 사무국장을 첫 손에 꼽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시간을 쪼개주길 요청하며 간신히 만난 김 사무국장에게는 삭발을 감행했던 결의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김 사무국장은 "현장에서는 '과연 승리할 수 있을까'라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승소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며 "새만금신공항 계획은 너무나 명백한 하자가 있었기 때문에 최소한의 상식만 지닌 재판부라면 당연히 승소할 수 있다고 봤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전주시 전북녹색연합 사무실에서 만난 김지은 전북녹색연합 사무국장. ⓒ제주의소리
전주시 전북녹색연합 사무실에서 만난 김지은 전북녹색연합 사무국장. ⓒ제주의소리

김 사무국장은 이번 판결이 국책사업의 전략환경영향평가 단계에서 실체적 하자를 인정한 첫 사례라는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기후생태 위기가 심각한 상황임을 인식한 이번 판결이 무차별적 개발사업에 제동을 건 기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판결 직후 가덕도·제2공항 등에 반대하는 전국 각지의 환경단체들이 환영 성명을 발표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특히 지난해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이번 판결의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김 사무국장은 "사고 이후 조류충돌 위험도를 다시 들여다보니 새만금신공항이 무안보다 650배 높게 나타났다"며 "너무나 가슴 아픈 사건이었지만, 제주항공 참사의 희생이 없었다면 이 문제가 다시 논의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수라갯벌의 생태적 가치를 판결이 인정한 점을 중요하게 꼽았다. 그는 "34년째 이어진 새만금 만경수역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하구 갯벌이 수라갯벌"이라며 "동아시아-대양주 철새 이동 경로의 핵심 기착지이자 멸종위기종의 마지막 터전이다. 이곳마저 사라지면 되돌릴 수 없다"고 했다.

김 사무국장은 "꼭 이기고 싶었다. 새만금 마저 패배하면 제주와 가덕도 역시 조류충돌 문제를 막아낼 수 없다는 절박함이 있었다"며 "이번 승리가 새로운 희망이 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  "'새만금다움'이 승리의 원동력...제주는 제주다워야 한다"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장을 마주한 것은 지번도 명확치 않은 군산의 어느 농로 위였다. 날이 어둑해지고, 하늘에서는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지만, 오 단장은 해가 저물기 직전까지도 도요새의 서식지를 관찰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수라>의 주연으로 새만금의 존재 가치를 알리며 저명한 강의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역할이 확대됐지만, 본업(?)은 여전히 현장에 있었다.

우연히 들어간 갯벌의 매력에 빠져 새만금 생태조사에 몸을 던진지 22년째. 생업도 제쳐두고 뛰어든 활동이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되리라 스스로도 생각치 못했지만, 함께하는 이들이 하나둘 늘어나며 새로운 동력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오 단장을 중심으로 한 새만금생태조사단이 축적한 자료는 신공항 건설의 생태계 파괴 논리를 구축하는데 기초체력이 됐다.

오 단장은 "2000년도 새만금방조제를 건설하기 위해 구성된 민간합동공동조사단의 보고서가 파행적으로 끝났다. 당시 민간이 제출했던 의견서가 관에 의해 묵살됐고, 진행해도 좋다는, 아주 악의적인 결론을 내렸다"며 "시민들이 직접 새만금의 생태를 조사해서 세상에 알려야 할 책무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군산시 군산대학교 인근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장. ⓒ제주의소리
군산시 군산대학교 인근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오동필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장. ⓒ제주의소리

누구보다 오랫동안 지켜본 수라갯벌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생명의 보고였다. 시민조사단이 직접 찾아낸 멸종위기 야생동물 흰발농게를 비롯해 저어새, 황새, 큰기러기와 같은 전세계적인 보호종이 끊임없이 날아든다는게 오 단장의 설명이다. 부지 내 법정보호종만 60여종에 이른다.

그는 20년 전 새만금의 생태계와 현재를 비교하면 "겨우 1000분의 1 정도만 보존됐다고 표현해도 결코 과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지금이라도 방조제 수문을 열어 관리 수위를 높이고, 갯벌의 근본으로 복원해야 한다"는게 그의 소신이지만, 방조제 설치 후 생성된 염습지 생태계 역시 차치할 수 없는 중요한 보존가치가 있다고 역설했다.

오 단장은 새만금신공항의 핵심 쟁점이 '보완의 불가능'에 있다고 봤다. 그는 "애초에 우긴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공항을 지어놓고 철새들에게 '다른 데로 가라'는 것은 세계자연유산과 맞닿은 모든 철새도래지를 제거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과제였다"고 진단했다.

바다 건너 제주 제2공항을 바라보는 관점 역시 뚜렷했다. 오 단장은 "새만금이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새만금다움'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땅을 메워 만들어진 농경지나 산업단지를 보기 위해 찾아오지 않는다"며 "제주는 제주다울 때 그 가치가 인정될 수 있다. 자연을 파괴하면서까지 공항을 하나 더 짓는다고 제주가 더 좋아진다고 자신할 수 있겠나"라고 근본적인 물음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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