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자연의벗-제주의소리 공동기획] 제주도시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제언③
제주도당국은 오랫동안 환경수도 등 친환경적인 도시를 지향한다고 공공연하게 거론해왔다. 이 중에 실제로 구체화 된 것이, 최근 추진하고 있는 ‘15분 도시’로 보인다.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된 ‘15분 도시’의 취지는 직장, 학교, 가게, 공원 등이 가까이 있어 자동차 의존도를 줄이고, 친환경적, 생활 편의성이 높은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15분 도시’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제주 도시의 패러다임 전환은 필연적이기에 제주자연의벗-제주의소리는 제주도의 ‘15분 도시’에 대한 진단과 함께 제주도 도시 패러다임 전환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기획 연재를 5회에 걸쳐 진행한다. [편집자 주]
도시는 인간과 자원을 특정한 면적에 압축적으로 실현한 공간이다. 도시의 활발한 작동을 위해 필요한 에너지가 압축적이지 않으면 도시공간 속에서 생산하기 어렵다. 현대 시대는 지질학적 시간 속에서 고도로 응축된 에너지인 화석연료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형태의 도시 에너지 생산과 공급 체제는 화석연료 고갈, 온실가스 배출, 불균등하게 분포된 특성으로 인해 자원전쟁의 발생과 에너지 가격의 급등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유지하기 어렵다. 따라서 지속가능한 도시를 위한 에너지는 재생에너지를 기반으로, 시민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적정한 생산과 소비 규모로 조정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제주도는 석유파동이 일어난 지난 반세기 전부터 무한히 불어오는 바람을 대안 에너지로 사용하기 위해, ‘풍력발전’을 시범적으로 최초 도입 개발한 ‘대한민국 에너지전환 1번지’이다.
1970년대 미전화 지역인 중산간 목장지대에 자가발전을 위해 설치한 풍력발전기는 1980년대 선진 외국의 기술을 도입해 실증하는 국가연구단지와 함께 도청 자체의 시범사업으로 이어졌고, 1990년대 말에는 국내 최초의 상업용 풍력발전에 성공하며 연구개발 단계를 넘어 상용보급으로 들어섰다. 그 결과 2024년 말 현재 제주도 전체 전력공급의 20%를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공급하고 있으며 그 중 절반이 풍력발전이다.
특히 올해 4월 14일에는 바람이 잘 불고 태양광발전이 본격 출력을 내기 시작한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4시간 동안 일시적 RE100을 달성한데 이어, 10월 27일에도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 사이에 2시간 동안 일시적 재생에너지 100%(RE100)을 달성하기도 했다. 비록 하루 중 2~4시간 정도로 일시적이긴 하지만, 섬 전체의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공급하기로 선언한 2012년 5월의 ‘카본프리 아일랜드 2030’ 계획을 발표한 지 13년 만의 일이기도 하다.
특별법을 통한 권한 이양을 바탕으로 제주의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풍력발전 허가 및 지구지정 제도의 수립과 함께, 지난 십여 년 동안 꾸준히 생산단가가 낮아지며 풍력보다 더 빠르고 많이 보급된 태양광발전, 그리고 지난해 12월 준공하여 육지와 실시간으로 역송이 가능토록 한 제3해저연계선 등 재생가능에너지에 기반을 둔 새로운 기술과 제도의 도입, 운영능력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일시적 RE100을 상시적 RE100으로 만들기 위해 그 동안 해왔던 것보다 더 치밀하고 꾸준한 연구개발과 기술도입이 필요하다.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제주 전력계통의 특성 상, 재생에너지의 점유율이 높아지면 계통의 안정적 운영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면서 20년 전에는 ‘풍력발전 계통한계용량’을 설정하기도 했고, 10년 전부터는 풍력발전에 대한 ‘출력제한’조치를 취하고 있기도 하다. 전력소비량 보다 생산량이 더 많아지면 전압과 주파수에 문제를 발생시켜 정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제주에서는 이러한 보수적인 계통운영을 극복하기 위해 기술개발과 정책 실험을 새롭게 시작했다. 생산량이 많으면 소비를 더 늘리기 위해 전력을 다른 에너지 형태로 변환해서 소비하는 P2X(Power to X) 사업을 시도한 것이다.

이미 그린수소를 생산하는 P2G(Power to Gas)사업은 제주에너지공사의 행원풍력발전단지에 실증사업을 추진하여 함덕충전소에서 수소연료전지버스를 충전하여 시내노선버스를 운영하고 있고, 전기를 열로 바꾸는 P2H(Power to Heat) 사업은 한림읍 금능리에 위치한 서부농업기술센터에서 실증사업을 진행 중이다.
또한 전기자동차 배터리를 에너지 저장장치로 활용하여, 계통으로 방전하고 전력을 공급하는 V2G(Vehicle to Grid) 사업도 시범적으로 실시중이다. 이러한 기술적 실험 이외에 ‘실시간 입찰제’ 등 정책실험도 제주시범사업이란 명칭으로 전력거래소에서 작년부터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개발과 정책실험은 전기에너지를 주요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앞으로 화석연료 소비는 줄어들고 모든 에너지가 전기에너지로 생산 공급되는 ‘전전화’(全電化) 현상이 심화되는 것을 예상할 때, 매우 선도적 실증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의 2050 탄소중립시나리오에 따르면, 이렇게 재생에너지에 기반을 둔 전력공급모델로 바뀌는 과정에서 현재보다 전력소비량은 2배 더 증가한다고 한다. 그러면 전력설비는 지금보다 더 많아져야 한다. 제주도가 작년에 발표한 ‘에너지대전환을 통한 2035 탄소중립 비전’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발전시설은 현재 보다 약 7배 정도 늘어난 7GW를 설치해야 한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정해진 시간 내에 만들 수 있을 것인가?
해당 공급 목표는 제주의 물리적이고 생태적인 한계를 고려하였다기 보다는, 목표연도의 필요한 에너지양을 재생에너지로 공급한다는 가정에서 역산해 도출했고, 소요재원 조달의 실현가능성은 과거의 수많은 계획들처럼 구체적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속가능성은 무한정한 성장을 전제로 하지 않고 지구의 생태적 한계를 인정하며 적정한 생산과 소비를 지향한다. 50년 전에 제주도에 최초로 설치 가동된 풍력발전은 3㎾이었는데, 현재 설치된 용량은 약 30만㎾(300㎿)로 무려 10만 배가 증가했지만, 전체 도내 소비의 10%를 공급하는 정도이다.
놀라운 정도로 많은 양이 생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더 빠르고 거대한 소비를 따라잡지는 못하는 것이다. 즉, 아무리 공급을 계속 늘린다 하더라도 소비의 절대적 감축 없이는 탄소중립과 에너지자립은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에너지효율화와 함께 적정한 수준으로 에너지소비 조절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와 함께 에너지 분야 특유의 ‘전문가주의’도 극복해야 한다. 에너지원의 다양성과 더불어 에너지전환 기술의 복잡함으로 인해 일반 시민이 에너지정책 결정과 평가에 참여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민주주의는 권력에 대한 시민의 통제이므로, 말 그대로 물리적 권력(Power)에 대한 시민의 참여와 견제는 ‘에너지 민주주의’를 위한 중요한 방법이다.
최근 제주도는 에너지법과 에너지 기본조례에 근거하여 제7차 지역에너지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생활과 산업 전반에서 수요자 참여 기반의 에너지전환에 속도를 내기 위해 도청 담당 부서에서는‘에너지전환 드라이브 전담팀’을 구성하여 계획 수립을 지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난 2019년 당시 제6차 지역에너지계획 수립을 위해 운영했었던 ‘시민연구단’과 같은 형태의 전면적이고 개방적인 시민참여 방법은 이번 7차 지역에너지계획의 용역 과업지시서에도 찾아볼 수 없다. 단순히 “시민사회단체 등으로 구성된 연구자문단 및 연구협의회룰 운영하여 연구방향 등에 대해 수시 자문을 구하는 등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도록 한다”정도의 과업수행기준만 있을 뿐이다.
에너지 민주주의는 단순히 최근 일부 사례가 나타나고 있는 재생에너지 개발의 지역주민 투자참여 방식만으로 한정하고 치환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에너지 생산과 유통, 분배, 소비 과정에서 사회적이고 환경적인 영향과 경제적 비용 등 종합적인 정보를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청취하고 정책결정에 참여하며, 그에 따른 이행평가에도 참여가 보장되는 종합적인 ‘에너지 거버넌스’의 방법이자 구조라고 할 수 있다.
5년 전, 17개 시도가 동시에 만든 첫 지역에너지계획에서 제주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20명 남짓의 제6차 지역에너지계획 수립 시민연구단을 구성하여 6개월 간 운영하여 정책 수립에 참여시켰고, 10차례에 걸친 회의결과는 지역에너지계획 보고서의 부록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계획 수립 이후에는 계획 이행 과정을 지켜보고 의견을 제안하기 위해 100여 명으로 참여대상을 더 넓혀 ‘도민참여 에너지 거버넌스’란 이름으로 수년간 확대 운영하였다. 그런데 그 기간 동안 에너지소비량은 줄지 않고 증가했는데 비해, 에너지 거버넌스 운영예산은 사라져버렸다. 더 지속되지 못한 시민참여의 선도적 사례가 다시 이어질 수 있도록 도정의 관심이 필요하다.
에너지전환은 멀리 있지 않다. 우리 삶 속에서 충분히 시작하고 참여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정책과 산업을 바꿔나갈 수 있다. 이미 제주도민들은 2013년부터 전국에서 최초로 내연기관 차량 대신 전기자동차를 널리 보급하는데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농민을 비롯해 많은 도민들은 태양광발전에 토지를 임대하거나 투자하기도 했다. 대규모 풍력발전 추진은 전국 최초로 마을공모를 통한 부지결정 방식이 도입되었고, 발전 사업에 주민투자를 적극 검토하는 마을도 늘어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지가가 높고 여유부지가 적은 도심에서도 충분히 다양한 방식으로 가능하다. 점점 공동주택 보급률이 많아지고 있으므로 베란다 미니 태양광발전의 적극적 보급을 통해 자투리땅에 텃밭을 가꾸는 것처럼, 한 뼘의 공간이라도 햇빛이 비추는 곳 어디든지 기꺼이 에너지 생산을 위해 활용할 수 있다.
보다 구조적으로는 자가용에 기반을 둔 도시계획을 전면적으로 재구성하여 도보와 자전거, 대중교통 등으로 근거리에 도달한 규모로 도시공간을 축소시켜야 수송 에너지를 줄이면서도 전체 도시의 물리적 기반을 유지시키기 위한 공적이면서도 사회적 비용도 줄여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방향으로 재생에너지 기반의 지속가능한 도시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과거의 좋은 사례들을 발굴하고 꾸준히 이행함과 동시에, 에너지소비량의 감축과 시민참여 정책 수립 및 평가 등이 필수적이다. / 김동주 환경사회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