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재심, 역사의 기록] (126) 60차 군사재판 직권재심 38명 무죄

살아있을 때 명예를 회복할 수 있도록 법원과 검찰 등이 온 힘을 쏟았지만, 결국 재심청구 직전 숨을 거둔 제주4.3 희생자. 고스란히 남겨진 억울함에 법정 안은 숙연해졌다.
제주지방법원 제4형사부(노현미 부장)는 25일 ‘제주4.3사건 직권재심 합동수행단’이 청구한 김병규 등 38명에 대한 제60차 군사재판 직권재심을 진행했다.
재판 결과는 다른 직권재심과 마찬가지로 공소사실을 증명할 수 없는 때에 해당, 각 무죄다.
희생자인 피고인 38명 모두 각 무죄를 선고받은 가운데 망인 중 1명은 올해 4월까지만 해도 생존 희생자 자격으로 일반재판 재심을 준비 중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70여년 세월 억울함을 직접 풀고 명예를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노현미 부장판사는 무죄 선고에 이어 덧붙이는 말을 통해 고(故) 양이운 희생자의 사연을 전했다. 고인은 합동수행단의 생존 희생자 재심 청구 직전인 4월께 운명을 달리했다.
제주지방법원 역시 재심이 청구될 경우 거주지 인근 법원에서 재판을 진행할 수 있도록 출장 재판까지 준비했지만, 청구 직전 작고하면서 일반 재심을 하지 못하게 됐다.
이후 고인은 4월 말 4.3희생자로 결정받고 4.3특별법에 따른 직권재심으로 명예를 회복했다.
고인은 4.3 당시 시위 중 경찰이 발포한 탄환에 맞은 지인을 치료, 목숨을 구했다는 이유로 끌려가 소년범으로 인천형무소에서 1년간 복역했다.
출소 이후 고인은 한국전쟁에 참전해 나라를 지킨 유공자가 됐다. 자녀에 따르면 고인은 심리적 두려움으로 4.3에 대해 말하기 꺼려했다고 전해진다.
또 이날 발언 기회를 얻은 故 최병호 장남 최용상 씨는 “다시는 이땅에서 4.3과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이번 판결을 통해 분명하게 역사에 못을 박아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한 최씨는 발언 도중 흐느끼며 울분을 토해냈다. 이 자리를 통해 아버지의 억울한 누명이 벗겨지고 한이 꼭 풀리기를 바란다는 아들의 흐느낌에 법정은 한순간에 숙연해졌다. 이후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퍼졌고 사람들은 눈물을 훔쳤다.

이날 재판이 진행된 희생자들은 1948년 12월 1차 군법회의와 1949년 7월 2차 군법회의에서 내란과 국방경비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합동수행단은 “정상적인 재판이라면 피고인마다 증거와 주장 등을 살펴보고 죄가 있다면 양형에 따라 형량을 정했어야 했다. 그러나 관련 공소장 등 소송기록은 없다”며 “희생자 증언에 따르면 왜 재판을 받는지도 몰랐고 형무소에서 형량을 알게 된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2차 군법회의 당시 3일간 345명이 재판을 받고 모두 사형을 선고받았다. 예외없이 일률적으로 사형을 선고한 것은 물리적, 시간적으로 정상적인 심리를 거쳤다고 보기도 여럽다”며 “부대가 철수하며 수용 민간인을 처리하기 위해 졸속 처리한 것”이라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수십 년 통한의 세월, 직권재심을 통해 국가 공권력의 부당한 잘못을 바로잡고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길 진심으로 바란다”며 “무고한 희생자의 실추된 명예가 회복되고 유족의 아픔을 달랠 수 있길 바란다”고 재판부에 무죄를 선고해줄 것을 요청했다.
변호인은 “4.3희생자인 여러 피고인, 망인에 대한 무죄 판결 선고는 다른지역 법원과 다른 제주만의 일상이 됐다”며 “지금 재판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고통과 수많은 눈물로 힘든 시간을 견뎠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건국 이래 찾아보기 힘든 재심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재판부와 합동수행단에 유족과 희생자를 대신해 경의와 감사를 표한다”며 “다시는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고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고 책임을 다하는 데 큰 뜻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노 부장판사는 “희생자에게 맺힌 억울함과 두려움이 얼마일지 가늠하기 어렵다. 희생자 자녀들이 고령인 모습을 보면서 더 늦기 전에 재심이 이뤄져야겠다는 안타까움과 조급함이 더해진다”고 말했다.
이어 “고인 외 희생자 가운데 중학생인데 희생된 분들도 많다. 얼마나 애끓는 심정이었을지 유족들의 이야기를 통해 가늠조차 안된다. 겨우 다가볼 수 있는 정도”라며 “판결 선고가 희생자 가족들을 짓누른 억울함을 푸는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위로했다.
그러면서 “가족이 없거나 자녀가 고령인 경우, 해외에 살아 신고하지 못한 희생자를 위해 유족회가 대신 신고, 올해 희생자로 결정된 분들이 많다”며 “유족회와 4.3지원과, 도민 노력에 감사하다. 특히 그동안 노력한 합동수행단과 국선변호인에 대해서도 감사의 말씀 전한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직권재심 명예회복 명단(최근 10개 사건)
23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5년 4월8일)
임동야, 이상봉, 현봉규, 현두평, 조재두, 정창옥, 고태규, 강석규, 강관주, 안창규, 김태인
장성근, 현철종, 김시보, 우성대, 강진희, 이봉휴, 고신순, 황승휴, 김창순
21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5년 7월8일)
김한석, 우정생, 정옥련, 문도훈, 김명국, 강원선, 강몽필, 송남규, 양기형, 오남곤, 김태우, 김완봉, 진생남, 고대호, 김봉우, 서인수, 고재철, 김진국, 김탁하, 문팽용
22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5년 7월8일)
오도흠, 김병화, 부규방, 양동직, 문종옥, 오남숙, 오영호, 김종하, 김양선, 강인현, 고성학, 김두석, 고창잠, 고두옥, 양성수, 송만표, 강위옥, 양병오, 강순옥, 김태준
24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5년 7월8일)
김정택, 현봉석, 최운길, 강희진, 문성순, 홍성태, 김홍집, 강순열(이명 강순옥), 채수삼, 김덕수, 오동식, 김기식, 오기봉, 진영숙, 김두규, 고방전, 부덕삼, 안상숙, 오창서, 고군옥
25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5년 9월23일)
김태규, 홍종봉, 박신원, 지문옥, 오태전, 김옥선, 홍중화, 오태순, 오태보, 김윤평, 김희관, 한형조, 정홍남, 강인식, 고한성, 좌우보, 김두만, 김성훈, 조원배, 안대규
26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5년 9월23일)
김봉호, 강창우, 양영춘, 현순종, 고성춘, 한우섭, 홍두표, 이동준, 임백기, 고원식, 조경호, 임기방, 이경문, 문기남, 김순경, 강을생, 윤수형, 이승택, 기경출, 송휴진
27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5년 10월28일)
고창림, 강순홍, 문춘옥, 홍남하, 김창희, 김신림, 강순현, 김윤희, 고사만, 양병호, 배문경, 강상보, 박창효, 양을평, 박윤지, 오도연, 강주남, 신찬호, 김석구
28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5년 10월28일)
안덕찬, 좌중호, 강승호, 신응반, 신응두, 김군택, 강병호, 현병림, 현기정, 문상기, 오규환, 강기종, 이수성, 양남호, 백우현, 이세근, 이계춘, 김용주, 이성규, 문보택
29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5년 10월28일)
고완병, 김필순, 강위풍, 윤학석, 진윤식, 최문빈, 강효생, 김용철, 강영호, 강희찬, 임한준, 강승홍, 강성봉, 한석도, 오희윤, 강장성, 임평문, 조화옥, 송운옥, 오진옥
60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5년 11월25일)
김병규, 김종인, 김화윤, 김능환, 백창순, 양원춘, 이성수, 강창겸, 김남형, 문진옥, 김성오, 김세홍, 손석규, 현인하, 김규현, 김현수, 고창룡, 정원호, 강창균, 송두경, 양이운, 김구하, 김의창, 양문오, 문지윤, 양철호, 이완형, 김규림, 김두호, 김인하, 이태훈, 양시우, 고치영, 홍옥녀(이명 홍옥례), 강반삼, 강창언, 김희현, 최병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