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재심, 역사의 기록] (127) 제주4.3 희생자 故 정창림 무죄

지서에서 경찰서로 이송되던 중 소나무밭으로 끌려가 총살당했다. 이후 가족들도 몰살당하다시피 피의 광풍에 휩쓸렸다. 살아남은 아들만이 77년의 억울함을 토해낼 뿐이었다.
제주지방법원 제4형사부(노현미 부장)는 25일 오후 제주4.3 희생자 고(故) 정창림 아들 정치중 씨가 신청한 재심 사건에 대한 재판을 진행, 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의 무죄 선고 직후 숨죽였던 가족은 두 팔을 치켜들고 “만세”를 외쳤다.
고인은 죄 없이 끌려가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또다시 경찰에 붙잡혀 서귀포시 남원지서에서 제주경찰서로 이송되던 중인 1948년 음력 4월, 소나무밭에서 총살당한 희생자다.
경찰은 반정부 활동을 했다는 누명을 뒤집어 쓰고 1947년 9월 선고받은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 판결을 빌미로 또다시 고인을 끌고 갔다. 그러나 이번엔 재판 기회도 없이 죽였다.
고인의 아들은 총살의 빌미가 된 1947년 사건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다. 77년만에 억울하게 돌아가신 아버지의 누명을 벗겨내고 명예를 회복시켜드리기 위함이다.
당시 고인은 무허가 집회, 남로당 제주도당 지령서 수취, 3.1절 기념행사 주도, 3.1사건 투쟁위원회 경찰 발포 사건 성명서 전달 등 포고 제2호 위반 등 혐의를 뒤집어썼다.
변호인은 “서귀포시 신흥리에 가족과 함께 살던 고인은 죄 없이 끌려가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으며, 이후 4.3희생자로 결정됐다”며 “경찰이 연행, 재판을 받게 하는 과정에서 적법절차가 지켜지지 않았고 공소사실에 대한 증거도 제출되지 않았다”고 무죄를 주장했다.
앞서 검사 역시 “공소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없으며,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가 온전히 회복되길 바란다”고 재판부에 무죄를 선고해줄 것을 요청했다.
발언 기회를 얻은 아들 정치중 씨는 “말문이 막힌다”며 “아버지는 읍사무소 총무계장을 다녔고 총파업을 이유로 송치돼 집행유예로 풀려났다가 또다시 끌려가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가 3.1절 발포 사건 이후 총파업하는 데 선두에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검사가 말한 죄를 저질렀다는 것은 금시초문”이라며 “시국을 고려해 넓은 아량으로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호소했다.
재판부는 “재심은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심판하는 절차로 공소 입증 책임은 검사에게 있다. 그러나 증거가 제출되지 않았고 이는 범죄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한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면서 “해방 직후 벌어진 4.3의 소용돌이 속에서 피고인이 반정부 활동을 했다는 명목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이후 억울하게 희생됐다”며 “억울함과 애통함을 가늠하기 어렵지만, 이번 판결이 억울함을 푸는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