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재심, 역사의 기록] (128) 제주4.3 희생자 故 변우중 무죄

법률이 없으면 범죄도 형벌도 없다는 형법 근본 원칙 ‘죄형법정주의’ 위반 주장이 포고 제2호 위반 등을 다룬 제주4.3 재심에서 나왔다. 증거가 없어 무죄라는 기존과 다른 접근이다. 

제주지방법원 제4형사부(노현미 부장)는 25일 ‘제주4.3사건 직권재심 합동수행단’이 청구한 고(故) 변우중 사건에 대한 일반재판 직권재심을 진행했다. 

고인은 1947년 7월부터 같은 해 11월까지 무허가 집회 개최, 남로당 제주도당 당비 납무 토론, 미군 비판, 삐라 작성 첩보 등 반정부 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끌려갔다. 

이듬해 6월 25일 제주지방심리원에서 포고 제2호 위반 등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그해 11월 이유 없이 군경토벌대에 끌려가 희생당했다.

이날 재판에서 고인에게 적용된 혐의는 포고 제2호와 법령 제5호 위반이다. 법령 제5호 위반은 고인이 세계 2차대전 직후 일본 방비대로부터 빼앗은 권총과 탄환을 소지한 혐의다.

그러나 당시 재판은 두 혐의를 병합한 채 진행됐고 한꺼번에 판결이 내려졌다. 이에 합동수행단은 재심 사유인 포고 제2호 위반에 대해서만 무죄를 구형했다. 

검사는 “공소사실이 모두 병합돼 유죄 판결이 내려졌지만, 대법원 판례에 따라 각 공소사실을 나눠 의견을 낸다”며 “4.3 관련 공소사실은 증거가 없어 무죄, 법령 제5호 관련은 당시 시대 상황과 재판 취지를 고려해 선고유예를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변호를 맡은 문성윤 변호사는 이날 포고 제2호에 대해 ‘죄형법정주의’를 주장했다. 법령이 명확하지 않아 무엇이 금지 행위인지 알 수 없고 재판관에 자의적 해석에만 맡길 수밖에 없다는 것으로 기존 4.3관련 재판에서는 나온 바 없는 주장이다.

문 변호사는 “법령이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데다 추상적이어서 국민들이 법률에 따른 금지 행위를 알기 어렵고 형벌도 사형 또는 형벌로만 돼 있어 그 종류를 알 수 없다”며 “이는 범죄와 형벌을 법령으로 정해둬야 한다는 죄형법정주의를 위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관련 주장은 여수·순천 10.19 재심 재판에서 다뤄진 바 있다. 해당 재판에서는 변호인 주장과 달리 재판부가 직접 관련 내용을 판결에 적용했다. 피고인인 희생자들은 이로써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어 문 변호사는 “공소사실 역시 입증 책임은 검사에게 있는데 이를 하지 못하고 체포와 재판 과정도 적법하게 이뤄지지 않았다”고 피력했다. 법령 제5호와 관련해서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시대적 상황을 감안해 판결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고인은 이 판결 이후 군경토벌대에 끌려가 희생됐고 가족들은 경찰의 감시를 받으며 막심한 연좌제 피해를 겪었다”며 “불법 재판과 피해를 입은 유족을 위로하는 의미에서 유족과 피고의 명예가 회복되길 바란다. 억울함 없는 판결을 선고해달라”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재심 대상이 아닌 부분에 대해서는 유죄를 파기할 수 없고 양형에 대한 최소한의 심리만 가능하다”며 “4.3 관련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증거가 없으므로 무죄, 법령 제5호 관련은 형의 선고를 유예한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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