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지법, 재심 경찰 감금.고문 85여일 인정…검찰 공소 부정
재판부, "수사기관 불법 억울한 옥살이 큰 고통 위로"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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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간첩으로 낙인 찍혔던 강희철이 22년만에 '무죄'가 선고됐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박평균 부장판사)는 23일 조작간첩 강희철씨에 재심 선고공판에서 1986년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돼 13여년간의 옥살이를 해 온 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경찰관들이 1986년 4월28일 피고인에게 구속영장을 제시하거나 범죄사실의 요지와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다는 것을 고지하거나 변명의 기회를 주지 아니한 채 피고인을 속여 대공분실로 강제로 연행한 이후 7월21일까지 법원의 영장에 의하여 구금하기 전까지 약 85일간 피고인을 불법구금했다"고 인정했다.

▲ 강희철씨가 조작간첩 재심사건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후 기쁜 표정을 짓고 있다.ⓒ제주의소리 이승록 기자

재판부는 "대공분실 소속 경찰관들이 주야로 피고인을 감시하면서 피고인의 간첩혐의에 대하여 반복적으로 강도 높은 조사를 했고, 피고인은 조사 초기에 간첩혐의를 부인하였으나 불법구금을 당한지 약 50일 정도가 지난 6월17일경 최초로 간첩혐의를 자백하는 내용의 진술서를 작성했다"며 "하지만 피고인은 경찰관들이 자백을 강요하며 피고인에게 폭행, 협박, 고문 등 가혹행위를 함에 따라 위와 같이 간첩혐의를 인정하게 되었다고 주장했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을 불법 연행할 당시 피고인이 조총련 계열인 대판조선고급학교를 졸업했고, 친척 중에 조총련에서 활동한 사람이 있다는 것 이외에 피고인의 간첩혐의를 의심할 만한 정보나 확보된 증거가 없었다"며 "이 사건 참고인들 중 일부는 대공분실에서 조사받을 당시 경찰관들로부터 각목 등으로 폭행을 당하거나 협박을 받았다고 진술하고 있는데, 특히 2~3일 동안 불법구금 상태로 조사받은 B는 당시 조사실에 있던 피고인을 보니 얼굴이 부어있는 등 몰골이 말이 아닌 상태로 있었다고 진술하고 있고, 피고인이 경찰관들로부터 폭행, 협박, 고문 등 가혹행위를 당하였다고 주장하는 대공분실 지하실의 위치 및 내부 구조가 피고인의 진술과 일치하고 있다"고 경찰의 불법감금.고문 사실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약 85일간 불법구금되어 있었던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의 주장과 같이 피고인이 장기간 불법구금을 당한 상태에서 수사 경찰관들로부터 폭행, 협박, 고문 등 가혹행위를 당하여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그들의 요구에 따라 허위 진술을 하기 시작하였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고 덧붙였다.

▲ 조작간첩 사건으로 13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강희철씨가 무죄 선고후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제주의소리 이승록 기자
재판부는 "대공분실 소속 수사 경찰관들은 피고인이 검찰에서 조사받는 것을 계속 지켜보면서 피고인이 혐의사실을 부인하지 못하도록 감시하였고, 법원에 기소된 이후에도 공판기일마다 공판정에 들어가 피고인을 지켜보았으며, 이런 사실을 알고 있던 피고인이 심리적으로 상당히 위축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의 친척이 피고인을 위하여 사선변호인을 선임하려고 하였으나, 수사 경찰관들이 사선변호인 선임을 방해하여 피고인이 충분하게 변호인의 조력을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경찰이 조작간첩 사건 이후 재판중에도 끊임없이 강씨를 압박했다는 것도 인정했다.

간첩행위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피고인의 북한지역으로의 탈출, 반국가단체 구성원으로부터의 지령 수수, 국가기밀 누설 등 이 사건 주요 공소사실에 대하여 피고인의 자백 이외의 증거로는 일제 만년필, 겨울 스웨터 등 입수가 용이하여 증거가치가 떨어지는 일부 압수물 외에 별다른 증거가 없다"고 검찰의 공소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재판부는 "오사카총영사 작성의 영사증명통보서의 기재에 의하면, 피고인을 포섭하였다는 전모씨가 1978년 6월 이후 조총련에서 활동하거나 북한에 들어갔다는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다"며 "이런 사정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피고인의 공판정에서 자백 즉‘재심대상 사건의 공판조서 중 피고인의 진술기재’ 부분은 그대로 믿기 어려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나아가 증거능력 있는 나머지 증거들에 의하면, 피고인이 지인들에게 청원경찰의 보수 및 근무내용, 제주도에서 가장 비싼 호텔의 숙박 요금, 광주항쟁 당시의 상황, 경비정의 속력 등 일반적인 사항에 관하여 개인적으로 물어 본 사실, 군에서 제대할 무렵 영내를 배경으로 동료들과 사진을 촬영한 사실 등을 인정할 수 있을 뿐이고, 달리 이 사건 공소사실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며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하여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하여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강씨는 일본에 있는 부모를 만나기 위해 밀항해 그곳에서 7년간 생활하다 1982년 일본경찰에 강제추방된 후 우리나라에서 경찰에 의해 간첩협의로 조사받았으나 무죄로  풀려난 후 군 복무까지 마친 후 1986년 4월제주도경에 연행돼 85일간 불법구금됐고, 구금조사 동안 6일간 음식물 섭취를 못한 것은 물론 구타와 물고문 등을 받았다.

강씨는 체포된 지 132일만에 고문조사 끝에 도내 관공서와 주요기관, 학교 등의 위치를 북한에 알렸다는 간첩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돼 구속됐었다.

1986년 12월4일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제주지법으로부터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1987년 9월8일 대법원에서 형이 그대로 확정돼 13년간 복역하다 1998년 8.15특사로 가석방돼 지금까지 보호감찰을 받아 옥 ㅗ있다. 그동안 제주지법은 강씨의 재심청구 재판을 벌여오며 경찰의 불법 감금을 확인했고, 대공분실을 현장 검증하는 등 심도있는 재판을 벌여왔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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