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에게 후한 인심 파는 제주 '듬삭 깡통구이' 사장님

▲ 음식점 입구 우연히 이 앞을 지나다가 어묵에 이끌려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 장태욱

찬바람이 부는 주말에 신제주 제원아파트 인근에서 절친한 형님과 오랜만에 맥주 한잔씩 나눴다. 1년 만에 어렵사리 만든 자리라 그냥 헤어지기가 섭섭했다. 마침 가게 입구에서 끓고 있는 어묵이 눈에 띠어 소주 한 병만 더 마시기로 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젊은 남자가 환하게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주문을 받았는데 알고 보니 이 가게의 사장님이다. 그런데 벽에 붙어 있는 글귀를 읽고 나서는 어묵을 먹겠다는 마음이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니들이 고생이 많다. 이모가 쏜다! 소주1병 +김치찌개 = 5000원'

5천 원만 있으면 둘이 소주 한 병을 마실 수 있다는 얘기다. 반신반의하며 김치찌개에 소주 한 병을 주문했더니, 이집 사장님의 대답이 가관이다.

"손님,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우리 집 김치찌개는 무한 리필입니다."

그렇게 마시다보니 처음에 한 병만 마시기로 했던 소주는 두 병이 되었는데, 그 사장님은 "김치찌개에 소주만 계속 드시면 되겠냐"며 해물전 한 접시에 막걸리 한 병을 서비스로 제공했다. 결과적으로 그날 우린 돈 8천 원에 김치찌개, 해물전을 안주로 소수 두 병과 막걸리 한 병을 마신 것이다.

▲ 음식 세트 우리가 대접받은 식탁이다. 김치찌개에 소주가 세트로 5천원이고 나머지는 서비스다. ⓒ 장태욱

형님과 난 그 순간이후 이 가게 사장님의 후한 인심에 푹 빠졌고, 난 일주일에 한 번 넘게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혼자만의 규칙을 깨고 이틀 뒤 그 형을 꼬여서 가게를 다시 찾았다. 이번엔 그 가게를 제대로 들여다볼 요량이었다.

평일 저녁임에도 가게 안에는 손님들 10여 명이 테이블 두 개를 차지하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종전처럼 김치찌개에 소주를 주문하고 나서 가게 구석구석을 들여다봤다. 주방 안에서는 직원들이 분주하게 뭔가 준비하고 있었다. 나중에 듣기로는 고기 소스를 준비하는 날이라고 했다.

분주한 와중에 김훈호 사장님(38)을 우리 테이블로 모셨다. 김 사장님은 이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유통회사 직원으로 근무했다고 한다. 사장님은 아 가게를 내기 위해 혼자 1년 6개월 동안 준비를 했고, 가게를 시작한 것은 3개월 전이다.

▲ 김훈호 사장님 이 가게 사장님이다. 테이블로 모시고 가게 운영 전반에 대해 물었다. ⓒ 장태욱

음식점을 내는데 2년이란 긴 세월이 왜 필요했을까? 이 물음에 사장님은 고기를 굽는 방식에서 그만의 독특한 노하우가 있다고 했다. 이 가게에서는 고기를 구울 때 고기를 황토방에서 초벌구이를 한 다음 돌판 위에서 완전히 구워낸다. 초벌구이용 황토방과 고기를 완숙하는 돌판에 그 만의 '지적재산'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황토방을 좀 보고 싶다고 했으나 '특허'문제가 있어서 보여줄 수 없다고 답했다.

우린 이 집에서 김치찌개와 해물전에 소주와 막걸리만 마셨기 때문에 고깃집에 왔다는 사실을 감쪽같이 모르고 있었다. 재차 간판을 확인했더니 상호가 '듬삭 깡통구이'다.

가게를 내는데 임대료와 시설비 등을 포함해서 총 7천 만 원이 들었다고 했다. 오픈한 이후 3개월간 단골이 많이 늘었지만 아직까지는 운영해서 돈을 남기지는 못하는 형편이다. 부인이 대한항공 직원이라 KAL사택에서 생활하는 처지라고 했다. 사장님은 "집에 생활비를 가져다주지 못해 아내에게 미안하다"면서도, "그래도 내 덕에 아내는 가게에서 사모님 소리를 듣는다"며 능청을 떨었다.

▲ 손님들 저녁 10시 경인데 우리를 포함하면 세 테이블에 손님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 장태욱

사장님은 2년 동안 준비한 것이 고기를 굽는 요령만은 아니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 맺기"인데, 그 관계를 제대로 맺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손님들을 즐겁게 해 줘야한다고 했다. 어쩌면 당연한 말처럼 들리는데, 김사장님은 그 당연한 이치를 제대로 실천해보이기 위해 독특한 발상을 내보였다.

그 발상의 첫째가 우리를 반하게 만든 '니들이 고생이 많다' 메뉴다. 사장님은 주방에서 일하는 주모를 '이모'라고 부른다. 요즘처럼 서민경제가 어려운 시기에는 '이모'의 솜씨로 손님들을 따뜻하게 위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선보인 거란다.

두 번째 발상은 화장실에 있다. 이 가게의 화장실은 다른 어떤 가게보다도 청결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그리고 화장실 소변기 정 가운데는 빈 맥주병이 세워져 있고, 벽에는 '똑바로! 세워 쏴주세요'라는 문구가 붙어있다.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이번에는 제대로 쐈다"고 자랑을 하는 손님도 있었다. 사장님은 화장실 맥주병을 매개로 손님과의 마음의 벽이 허물어져서 대화가 좀 더 원활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해보는 시도라고 했다.

▲ 화장실 남자용 화장실 벽에 '똑바로! 세워 쏴 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혀있고, 소변기 안에는 백주병이 세워져 있다. ⓒ 장태욱

세 번째 발상의 결과는 가게 입구에서 팔고 있는 어묵이다. 가게 입구에서 어묵을 삶아서 파는 이는 가게에서 11시까지 일을 하는 직원 김모씨인데, 사장님은 그를 '형님'이라고 부른다. 그 '형님'은 집안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해 다른 직장에서 낮에 일을 하고나서도 저녁에 다시 이 가게에서 일을 한다. '형님'의 딱한 처지를 감지한 사장님이 장비를 사주고 근무시간 이후에 어묵을 팔수 있도록 배려를 해줬다고 한다.

물론 어묵 판매에서 얻어진 수익은 모두 그 '형님'의 몫이다. 하지만 어묵을 먹기 위해 다가온 손님들이 가게로 들어와 소주 한 잔을 마시기도 하고, 가게 안에 손님들에게 어묵 국물을 제공할 수도 있어서 어묵은 사장님에게도 여간 도움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를 제외하고는 손님들이 남아있지 않았다. 시간도 늦었고 해서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설 차비를 하는데 사장님이 또 한마디를 했다.

"우리 가게는 맘대로 들어 올 수는 있어도 나갈 때는 맘대로 못갑니다."

가게에 한 테이블만 남았을 때는 그 손님을 나가지 못하게 막는 것이 이 가게의 철칙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손으로 못 가게 붙잡는 것은 아니다. 계속해서 서비스를 제공하다보면 손님들이 돌아가는 것을 잊어버린다는 거다. 가게에 손님이 한 명도 없을 땐 너무 초라해진 느낌이 들기 때문에 한 테이블은 꼭 사수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해물전 한 접시에 어묵 한 사발을 무료로 제공받았다. 다른 손님들이 나가는 바람에 우리만 수지맞은 셈이다.

조금 있으니 연인으로 보이는 한 쌍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사장님과 격의 없이 인사를 나누는 것을 보니 잘 아는 사이처럼 보였다. 강용은씨와 원의정씨인데 서로는 부부사이며, 사장님과는 추자도에서 함께 자란 고향 친구들이라고 했다. 이 가게가 잘 되기를 바라며 거의 매일 찾아오는 응원군이다.

▲ 강용은(우)- 원의정(좌) 부부 김훈호 사장님까지 세 명은 추자도에서 함께 자란 고향 친구 사이다. 이 부부는 김훈호 사장님이 성공하기를 바라며 거의 매일 가게를 찾는다. ⓒ 장태욱

이 젊은 부부 덕에 '포로 신분'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가게 문을 나서는데 우리에 앞서서 밖에 나갔던 사장님이 큰 소리로 "어서 오십시오"라고 외친다. 들어올 때도, 나갈 때도 '어서 오십시오'가 인사라고 했다.

우리가 나오자마자 손님 두 분이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밖에서는 사장님의 '형님'이 지나가는 손님들에게 둘러싸인 채 어묵을 팔고 있었다. 여기에 있는 모든 이들 얼굴에 웃음꽃이 질 줄을 몰랐다.  

덧붙이는 글 | 상호 : 듬삭 깡통구이
위치 : 제주시 연동 문화칼라사거리 남쪽, (구)신제주극장 앞에 있다.
연락처 : 064-749-7725

*블로그 '불량농부의 제주여행(http://blog.daum.net/taeuk30)'에도 올립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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