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여성관광객 실종 사건이 남긴 후폭풍...난데없는 '예멘 난민 관련설'로 일파만파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30대 여성 관광객 실종 사건이 사실상 실족사로 정리되고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조사 결과 발표가 남아있고, 제주 동북쪽 구좌읍 세화항에서 사라진 여성이 어떻게 100km 이상 떨어진, 그것도 정반대 쪽 대정읍 가파도 해상에서 발견됐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지만, 여러 정황상 범죄 연루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조심스럽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유달리 과도한 주목을 받은 측면이 없지 않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에서는 여름철이 되면 이따금씩 이와 유사한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2016년 2월 제주시 추자면 신양리에서 전복된 통발어선에서 실종된 선원이 50일 후 일본 나가사키현 해안가 방파제에서 발견된 사례, 지난해 12월 부산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에서 실종된 승객이 열흘 후 일본 후쿠오카현에서 발견된 사례 등이 대표적이다.

실종 여성을 찾기 위해 한참 분주했을 무렵인 지난달 30일 가파도 방파제에서 보말을 따다가 물에 빠진 60대 남성은 보름이 지난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음에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너무 대조적이다.

이번 여성 관광객 실종 사건과 관련한 갖가지 논란과 의혹은 일부 언론이 부추긴 측면이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많은 언론이 적나라한 민낯을 드러냈다. 어뷰징(abusing) 기사를 양산하는데 열을 올리면서 불필요한 오해와 억측이 확대 재생산됐다.

어뷰징 기사란 언론사가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통한 클릭수를 늘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동일한 내용의 기사를 반복 전송하거나, 자극적인 제목을 단 기사 등을 뜻한다. 이번 사례가 그랬다.

'제주 실종 여성'이 포털사이트 인기 검색어로 뜨기 무섭게 '복사-붙여넣기'식 기사가 양산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내용 없이 문장 배열이나 서술어 몇 개만 바꾼 기사가 화려한 제목을 달고 포털 가판대에 올랐다.

눈길을 끌기 위한 제목은 자극적이었다. 실종자를 가장 애타게 찾아 헤맸던 남편도, 인접한 시간대 포구를 지나갔다는 이유만으로 동네 낚시꾼도 경찰이 아닌 언론에 의해 용의자가 되고 말았다.  

정제되지 않은 일부 네티즌들의 댓글을 그대로 인용해 기사 제목으로 작성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이건 범죄 가능성 99%"라는 한 네티즌의 댓글을 따와 기사 제목에 '99% 범죄'라고 단 기사는 압권이었다. 

새로운 내용의 보도가 나오면 지역 기자들이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을 무렵, 인터넷에는 똑같은 내용에 술어 몇 자만 바뀐 기사들이 쏟아졌다. 기본 중의 기본인 팩트체크도 없을 뿐더러 '기록자'인 기자(記者)로서의 자존심도 내팽개쳤다.

코미디 아닌 코미디의 백미는 '예멘 난민'이 엮이며 연출됐다.

모 매체에 등장한 패널이 "실종된 여성이 난민 범죄에 연루됐을 수 있다"는 무책임한 발언을 내뱉자 의혹은 일파만파 커졌다. '제주 실종 여성'이 인기 검색어에 오른 상황에서 '인기'가 '보장'(?)된 검색어 '난민'이 섞인, 끔찍한 혼종이 탄생한 것이다.

당시 언론에서 쏟아낸 기사들의 제목을 살펴보자. "범죄에 예멘 난민이?", "난민 범죄 가능성은?", "난민 연루 사실일까?", "난민 범죄 의혹↑", "난민범죄 의혹 확산" 등의 제목을 단 40여건의 기사가 하루새 쏟아졌다. 애초에 범죄를 기정사실화 해놓고 그 위에 난민을 갖다붙인 것이다.

한마디로 허무맹랑했다. 현장에는 아무런 범죄 증거가 없었다.

담당 경찰도 "도대체 난민 범죄라는 주장은 어디서 나온 것인지 모르겠다. 수사하기도 바쁜데, 왜 이런 내용까지 일일이 해명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구독자수에서 수위를 다투는 이른바 메이저 언론들도 일련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나마 체면을 지키고자 했는지 '난민 범죄 근거없다'는 제목을 달았지만, 역시 새로운 팩트는 없는, 흔하디 흔한 어뷰징 기사들이었다.

도를 지나친 어뷰징 기사 때문에 졸지에 제주는 '범죄도시'라는 시선을 받게됐다. '앞으로 제주를 찾지 않겠다'는 네티즌들의 반응은 뼈 아프다. 실제로 이달 들어 제주 관광시장도 주춤했다기에 아픔은 더 크게 다가온다.

실종 관광객과 관련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던 유사한 패턴의 기사들은 부검 결과가 발표된 지난 2일부로 자취를 감췄다. 혹여 개중에 신념을 갖고 범죄 가능성을 파헤치는 기자가 있었다면 아쉬움이 덜 했을지 모른다. 

왜 제주가 불필요한 오해를 받아야 하는지 씁쓸함이 가시지 않아서 하는 말이다. / 박성우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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