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100주년-창간15주년 특집] (1)안중근 의사 순국 110주년에 찾아간 하얼빈

/ 사진제공=제주작가회의 ⓒ제주의소리
110여년전인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조선식민지화의 원흉인 일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중국 하얼빈 역의 현재 모습. / 사진제공=제주작가회의 ⓒ제주의소리

지난해 4.3 70주년을 맞아 4.3의 세계화·전국화에 역량을 함께 모았던 제주작가회의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지난 1월 역사기행을 다녀왔다. 중국 만주 지역을 중심으로 안중근 의사와 김좌진 장군을 비롯한 항일독립투사들의 발자취를 따라 약 3000여 km에 이르는 7박8일의 여정이었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3.1운동 100주년과 창간15주년을 맞아 12명의 제주작가들이 만주지역의 겨울날씨만큼이나 혹독했을 항일독립운동사의 궤적을 따라 새로운 결기를 다지고 돌아온 만주 항일유적지 기행 과정을 네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 편집자

만주. 한국 독립운동사의 주 무대이자 수많은 투쟁과 좌절의 역사가 함께 점철된 회한의 땅. 안중근 의사 순국 110주년, 3.1 만세운동 100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그 광활한 대지의 곳곳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스러져간 유명 무명의 투사들의 발자취를 좇아 떠난 항일유적지 기행.

동료작가들과 만주에 다녀온 지 벌써 두 달이 지났지만, 3월이 주는 역사적 무게감이랄까 아직 그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우리의 여정은 1월 10일에 시작되어 17일에 끝나는 7박 8일간의 일정이었다.
제주에서 출발하는 직항 항공편을 통해 첫 기착지 대련을 거쳐 하얼빈- 무단장- 산시- 삼차구- 수분하- 무단장- 대련- 여순을 거쳐 제주로 돌아오는 장장 3천여 킬로가 넘는 여정이었다.

1월 최저기온 영하 40도, 날이 조금 풀려야 영하 20도라는 만주의 혹독한 겨울, 그러나 그 칼바람을 이겨내기 위해 잔뜩 껴입고 간 복장이 무색하게 체감온도는 생각보다 훨씬 낮았다. 이상기온은 만주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인데 첫 기착지 대련의 밤 기온은 영하 13도, 여정이 끝날 때까지 매서운 추위는 없을 것이라는 안내원의 말에 다소 안도하며 대련 시내로 이동하고 숙소에 짐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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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안중근 기념관 내부에 전시된 안중근 의사 소개 패널 / 사진제공=제주작가회의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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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가 뤼순 감옥으로 이감되기 전까지 수감됐던 당시의 하얼빈 일본 영사관 건물. 일본의 만주침략 거점이던 이 건물은 지금은 하얼빈초등학교로 사용되고 있다. / 사진제공=제주작가회의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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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하얼빈 의거의 주역 3인. 왼쪽부터 안중근, 우덕순, 유동하 의사 / 사진제공=제주작가회의 ⓒ제주의소리

# 하얼빈, 우리에겐 영원한 안중근의 도시

1909년 10월26일 오전 9시30분. 안중근 의사가 조선식민지화를 주도한 민족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 역에서 저격한다. '하얼빈', 우리에겐 원수를 쓰러트린 영원한 안중근의 도시로 기억되는 곳이다. 첫 목적지인 하얼빈으로 향했다.  

대련에서 다음 날 아침 9시에 출발하는 고속열차편으로 하얼빈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가 넘어서였다. 고속열차로도 4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 대륙 속 도시와 도시를 잇는 거리감은 여정 내내 쉽게 체감되지 않는 부분이었는데 만주사람들은 한두 시간 이동하는 거리는 겨우 이웃집 나들이 정도로 생각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단순한 농담만은 아니다 싶었다.

새로 단장한 하얼빈 북역을 빠져나온 일행은 간단한 점심 후에 숙소에 짐만 놓고 서둘러 시내로 나왔다. 안중근 의사가‘나의 유해를 하얼빈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의 국권이 회복되는 날 고국으로 반장해달라’는 유언 속의 현장을 보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자오린 공원’으로 이름이 바뀐 그곳에는 안 의사가 뤼순감옥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청초당(靑草塘)이라는 유묵이 새겨진 비석이 서있었다. 일몰이 한국보다 두 시간 빠른 탓일까. 어둠은 일찍 찾아와 저물어가는 도시의 그림자를 배경으로 유묵비는 외롭게 서있었다. 안중근의 발자취를 처음 접한 일행은 이번 여정이 주는 무게감을 처음으로 실감하며 잠시 머리를 숙였다.

하얼빈 두 번째 날, 일정표를 보니 둘러볼 곳이 많았다. 하얼빈역과 안중근 의사 기념관, 구 일본영사관. 그리고 731부대. 오후에는 다시 4시간 버스를 타고 무단장시로 이동하여 만주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는 일정이었다. 서둘러 짐을 꾸리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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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안중근 기념관에 전시된 안의사의 유묵. '독립'이라는 두 글자와 손가락 한마디가 잘린 수인이 민족독립에 대한 안중근 의사의 굳은 결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 사진제공=제주작가회의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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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작가회의(회장 이종형 시인) 소속 12명의 작가들은 지난 1월 7박8일의 일정으로 만주 일대의 독립운동 발자취를 좇아 역사기행을 다녀왔다. 한중근 의사 기념관 앞 / 사진제공=제주작가회의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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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외관과 광장에서부터 서늘한 기운이 관람객을 맞고 있다. 일본이 제국주의의 광기로 한국인을 포함한 만주 일대의 민간인 1만여명을 생체실험으로 학살한 만행을 고발하고 있는 곳이다. / 사진제공=제주작가회의 ⓒ제주의소리

안중근의사 기념관은 하얼빈 시내 조선민족박물관과 이웃한 공간에 자리하고 있었다. 2014년 1월에 하얼빈 역 구내에 조성되었던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대대적인 역사 리모델링 공사로 인해 일부 기념물이 옮겨와 전시되고 있는 이곳에는 안중근의 생애와 거사 전후의 활동상황, 거사 당일의 정황, 투옥 이후 순국 전까지 가족들과 주고받은 편지 등의 자료들과 감옥에서 남긴 유묵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아쉽게도 이번 여정에서는 하얼빈 역 구내에 있는 거사현장을 볼 수 없다는 소식을 출발 전에 들었다. 역의 보수공사가 끝나긴 했지만 기념관으로 옮겨온 자료들과 총격현장을 표시한 기념물 재배치 작업이 3월 말이 되어야 완료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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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 지역은 우리 민족이 일제의 식민지화에 맞서 무장독립운동의 주무대가 됐던 곳이다. 만주의 겨울 벌판에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혼이 서려있다. / 사진제공=제주작가회의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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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에 주둔했던 일본 731부대가 온갖 만행을 저질렀던 역사의 현장엔 당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 사진제공=제주작가회의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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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가 뤼순 감옥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청초당(靑草塘)이란 유묵이 새겨진 기념비(하얼빈 자오린 공원 내) 앞에서 제주작가회의 작가들이 안 의사의 하얼빈 의거 과정을 설명듣고 있다. / 사진제공=제주작가회의 ⓒ제주의소리

 

다시 읽고 읽어도 늘 새롭게 다가오는 역사, 110년 전의 시간으로 돌아간 듯 우리는 기념물 하나하나를 놓칠세라 차분히 보고 읽으며 그의 생애를 떠올리고 다시 머리 숙여 추모했다.

안중근 의사의 발자취는 며칠 뒤 우리가 들르게 될 도시 수분하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중국의 3대음악가로 추앙받는 조선 사내 정율성 기념관과 조선민족박물관을 함께 둘러보고 안중근 의사가 뤼순감옥으로 이감되기 전까지 수감되어 있었던 당시의 일본영사관을 찾았다.

밝은 황토색의 건물은 당시 하얼빈에서 손꼽히는 대형 건물로 지금은 하얼빈초등학교로 쓰이고 있었다. 일본의 만주침략의 거점이었던 건물이 지금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채워진다니 이것이야 말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니라면 무엇일까.

하얼빈에서의 마지막 방문지는 731부대였다. 시내에서 버스로 1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그곳은 들어서기도 전에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역사의 공간.

제국주의의 광기에 사로잡힌 일본이 얼마나 잔혹하고 처참한 악행을 저질렀는지를 낱낱이 증언하고 인간으로서의 본성을 거리낌 없이 말살해버린 증거들이 살아있는 현장을 목도하는 시간은 힘들다 못해 구토증을 억눌러야 할 만큼 괴롭기까지 했다.

더구나 이 명명백백한 증거 앞에서도 과거의 역사를 왜곡하고 온갖 만행을 부정하는 오늘의 일본, 그 몰염치함을 떠올리자 안중근 의사가 그토록 열망했던 동양평화는 영원히 요원한 희망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2회에 계속> / 이종형 시인, 제주작가회의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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