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4.3재심개시 결정 앞두고 노환으로 운명...생애 마지막 소원 지난해 4.3추념식 참석

[제주의소리]가 지난해 창간15주년을 기념해 연중 기획한 [생존수형인 4.3을 말하다] 인터뷰를 통해 경기도 안양 거주지에서 만난 2019년 3월 변연옥 할머니의 생전 모습.
[제주의소리]가 지난해 창간15주년을 기념해 연중 기획한 [생존수형인 4.3을 말하다] 인터뷰를 통해 경기도 안양 거주지에서 만난 2019년 3월 변연옥 할머니의 생전 모습.

억울한 옥살이로 고향을 떠나 타지에 정착해 굴곡진 70년의 세월을 견뎌온 제주4.3사건 생존수형인 故 변연옥 할머니가 영면에 든 사실이 재판을 통해 알려졌다.

8일 제주지방법원에 따르면 재심 청구인인 故 변연옥(1929년생) 할머니가 재심개시 결정을 앞둔 7월20일 노환으로 별세해 형사소송법에 따라 자녀가 재심 청구서를 다시 법원에 접수했다.

옛 남제주군 대정면 신도리 출신인 고인은 정확히 72년 전인 1948년 10월 당시. 평소 알고 지낸 언니를 따라 무릉리의 한 궤(굴)로 들어서면서 4.3의 광풍 속에 휘말렸다. 

산에서 겨울을 나면서 장티푸스에 걸려 생사를 넘나들었다. 피난 무리에서 낙오된 후에는 홀로 돌트멍(구멍)에 숨어 열흘을 버텼다. 봄이 될 무렵 산에서 내려왔지만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경찰에 끌려간 고인은 영문도 모른 채 전기 고문을 당했다. 이어 불법적인 군사재판을 받고 배편을 통해 전주형무소에 수감됐다. 이후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됐다. 당시 나이는 만 20세였다.

이듬해인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터지자, 북한군이 밀려와 대규모 탈옥사건이 발생했다. 피난 무리에 합류한 고인은 지금의 배우자를 만나 고향이 아닌 경기도 김포시에 정착했다.

딸 셋을 낳고 가정을 꾸렸지만 4.3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2018년 제70주년 4.3추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4.3에 대한 사과 발언을 하자 그때서야 딸들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살아 생전에 제주4.3평화공원을 꼭 가고 싶다고 말한 생존수형인 변연옥 할머니가 2019년 4월3일 제주4.3추념식이 열린 제주4.3평화공원을 찾아 오열하는 모습.
살아 생전에 제주4.3평화공원을 꼭 가고 싶다고 말한 생존수형인 변연옥 할머니가 2019년 4월3일 제주4.3추념식이 열린 제주4.3평화공원을 찾아 오열하는 모습.

고인은 [제주의소리]가 지난해 창간15주년을 기념해 연중 기획한 [생존수형인 4.3을 말하다] 인터뷰에서 “죽기 전에 4.3평화 공원을 한번 가보고 싶다”며 울먹였다.

실제 고인은 2019년 4월3일 제71주년 제주4.3희생자추념식 초청을 받아 제주4.3평화공원을 찾았다. 휠체어를 타고 추념식장에 들어선 고인은 70년의 한을 떠올린 듯 오열했다.

고인은 2차 생존수형인 재심청구인 7명과 함께 2019년 10월22일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1년 만인 오늘(8일) 역사적인 재심개시 결정 소식을 직접 듣지는 못했다.

유족들은 코로나19 사태를 고려해 가족끼리 조용한 장례식을 치른 것으로 알려졌다. 2차 생존수형인들도 장례절차가 끝나고 이 같은 소식을 전해 들었다.

1차 4.3재심청구인 18명 중 故 현창용 할아버지와 故 김경인, 故 김순화 할머니, 故 정기성 할아버지가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올해 2월에는 2차 재심청구에 나선 故 송석진 할아버지도 영면에 들었다. 故 변연옥 할머니까지 생을 마감하면서 고인은 모두 6명으로 늘었다.

오늘(8일) 재심개시 결정을 듣기 위해 법원을 찾은 故 송석진 할아버지의 장남 송창기(74)씨는 재심 청구인들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법원의 관심을 호소했다.

송씨는 “재판을 받으시는 분들 모두 고령이다. 자식인 나 또한 70이 넘었다. 하루 속히 재심 절차가 끝나서 억울하게 옥살이 한 분들의 한이 풀리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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