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人터뷰] 영화 ‘빛나는순간’ 주인공 '해녀 진옥' 열연한 배우 고두심

검은 현무암 돌덩이를 철썩 때리는 파도를 따라 저 멀리 바다로 시선을 옮기다 보면 보이는 테왁, 그 아래서 숨을 참아가며 열심히 물질하는 주인공 진옥(고두심 분). 극중 나이 일흔 둘의 제주해녀다. 

파도가 몇 차례나 부서진 끝에야 수면으로 올라와 턱 끝까지 참아왔던 숨을 터뜨리는 그의 숨비소리는 마치 힘들고 척박한 삶을 살아온 삶의 한풀이면서 무언가에 대한 그리움 같기도 하다.

영화 '빛나는 순간'의 주인공 진옥(고두심)은 ‘바다에서 숨 오래 참기’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하고 성질도, 물질도 이길 사람이 없는 강인한 제주 해녀다. 사진=네이버영화 스틸컷.

제주4.3으로 부모님을 여의고 바다로 나가 물질하길 50여 년. 반세기를 훌쩍 넘기는 동안 그녀가 제주바당을 밭으로 삼아 살아온 세월은 물질 실력으로나 성격으로나 따라올 자가 없다는 진옥의 삶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하다.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잔잔하게 일렁이는 바다 같은 삶을 살아온 진옥은 서울에서 다큐멘터리를 찍겠다고 내려온 청년 경훈에게 ‘육지것’이라고 매몰차게 굴길 여러 차례. 

매니저 역할을 자처하며 진심을 보여준 그에게 서서히 마음을 열고, 아무도 고라주지 않던(이야기 해주지 않던) ‘곱닥허다(예쁘다)’라는 말을 듣고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

환하게 웃는 미소가 아름다운 배우 고두심. 그는 제주 해녀를 연기하기 위해 서울의 한 다이빙장에서 잠수 연기를 연습하는 등 노력 끝에 깊은 바다를 제외한 대부분의 장면을 직접 연기했다. ⓒ제주의소리
환하게 웃는 미소가 아름다운 배우 고두심. 그는 제주 해녀를 연기하기 위해 서울의 한 다이빙장에서 잠수 연기를 연습하는 등 노력 끝에 깊은 바다를 제외한 대부분의 장면을 직접 연기했다. ⓒ제주의소리

소준문 감독, 고두심(진옥 역)·지현우(경훈 역) 주연의 영화 ‘빛나는 순간’은 제주의 혼과 같은 해녀의 삶과 제주의 아픔, 그 속에서 펼쳐지는 여성의 자존감을 한데 녹여 영화 이름처럼 빛나는 순간을 표현해낸다. 

평생을 해녀로 살아오며 사랑이라는 감정을 잊고 살았던 진옥에게 그 감정을 일깨워준 경훈. 세대를 뛰어넘은 멜로와 함께 해녀의 삶과 제주의 아픔을 담아낸 영화에 실제 해녀들은 웃음과 눈물, 감동을 자아낸다. 

자신들이 일평생 해온 물질 연기에 나선 고두심 배우를 보며 공감의 웃음을 터뜨리고 밀려드는 감동에 눈물을 훔치기도 한 해녀들. 

12일 오후 3시 서귀포시 롯데시네마에서 개최된 영화 ‘빚나는 순간’의 해녀 초청 시사회에서 [제주의소리]가 배우 고두심 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날 시사회는 서명숙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이 자리를 마련하고 서귀포수산업협동조합(김미자 조합장)이 해녀들을 초청하면서 개최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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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고두심 씨는 이날 해녀와의 간담회에서 친근한 제주어를 구사하며 웃음과 감동을 자아냈다. 이날 시사회는  서명숙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이 자리를 마련하고 서귀포수산업협동조합(김미자 조합장)이 해녀들을 초청하면서 개최될 수 있었다. ⓒ제주의소리
고두심(진옥 역)과 지현우(경훈 역)이 마음을 주고받는 장면. 사진=네이버영화 스틸컷.

“제주도의 정신은 해녀 정신이에요. 그게 곧 제주의 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해녀 역할을 제안받았을 때 내가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제주도가 아름다운 곳으로만 보이지만 그 속에 얼마나 아픈 역사가 있는지 사람들은 잘 모르잖아요. 지혜롭고 숭고하게 살아온 해녀 정신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고두심이 아니었다면 대한민국 그 어떤 배우라도 쉽게 할 수 없었을 제주 해녀 연기. 그는 ‘고두심의 얼굴이 곧 제주의 풍광’이라며 고두심이 하지 않는다면 영화를 접겠다는 소준문 감독의 말을 듣고 사명감을 가진 채 물질에 나섰다.

척박한 제주 땅에서 살아낼 수밖에 없었던 환경에 지혜롭게 대처하며 즐겁고 평온해지기까지 수없이 겪었을 고통의 과정을 연기로 표현해내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웠다는 고 배우. 

하지만 피투성이 속에서도 지금까지 지혜롭게 살아온 그들의 정신을 영화를 통해 조금이라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실제 물질에 나서는 어촌계 해녀들을 한 자리에 모시고 진행한 시사회에서 고 배우는 해녀들의 성에 안 차는 연기를 했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해녀들은 고 배우의 물질 장면을 보고 ‘저거 맞아’라고 말하며 웃음을 터뜨리고 눈물을 흘리길 여러 차례, 영화가 끝난 뒤 고 배우를 보고 ‘고생했수다’라는 말을 연신 내뱉었다. 

고 배우는 “해녀분들의 성에 안 차실까 걱정을 많이 했다. 아무래도 정말 힘든 해녀의 삶 모두를 보여준 것이 아니라 조금씩 건든 셈이 됐기 때문”이라면서 “그럼에도 많이 공감해주고 웃어주셔서 감사하다. 이처럼 영화도 잘 만들어져 지구 반대편에서 상도 받았잖나”라고 웃으며 말했다.

실제 고 배우는 지난 6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개최된 ‘제18회 아시안 필름 페스티벌’에서 첫 해외 영화제 여우주연상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그는 “감독님과 제작사에 감사하다. 이 영화는 제주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될 것”이라며 “해녀의 인생에 대해 이 정도로 만든 영화가 이제껏 없었다. 또 영화에는 우리 제주의 역사가 담겨 있어 의미가 깊다. 역할을 안 맡았다면 후회했을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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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간담회에서는 실제 해녀들이 찾아 영화를 보고 고 배우와 대화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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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배우와의 대화 시간에서 박수치며 웃는 제주 해녀들. ⓒ제주의소리

영화 속에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이라는 제주4.3에 대해 언급된다. 주인공 진옥은 경훈이 촬영하는 카메라 앞에서 어린 시절 겪었던 4.3에 대해 독백하는데, 이 장면을 본 사람들은 눈물을 흘린다. 

‘마치 심방이 신들린 듯 대본에 없던 대사까지 토해냈다’는 고 배우의 설명처럼 영화는 짧은 순간이지만 압축적으로 4.3을 표현한다. 해녀의 주된 일터인 바다를 떠나 곶자왈 속으로 들어가 울분을 토해내는 장면은 학살을 피해 숲으로 숨어 들어간 그때를 표현하는 듯하다. 

이처럼 바다와 곶자왈, 오름 등을 오가며 천혜의 제주 자연을 담아내고자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영화를 보고 취재기자는 제주의 자연과 환경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고 배우는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곳이니 편리하게 가꾸고 개발은 해야겠지만, 특별자치도인 만큼 특별하게 해야하지 않겠나”되묻고 “제주도답게 개발을 해야지 다른 지역에 있는 것들과 똑같이 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제주는 서류를 들고 급행열차를 타고 뛰어다녀야 하는 곳이 아니라 자연을 즐기고, 관광하러 오는 곳 아니냐. 왜 곶자왈을 없애면서까지 길을 내고 외국 자본에 땅을 팔아먹어 쓰지도 못하는 건물을 짓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쓴소리했다. 

그러면서 “골목골목 차로 다니기 힘들어 ‘이게 무슨 길이냐’ 하더라도 제주다운 길을 만들어 사람들이 오래 머무르며 제주를 느낄 수 있게 해야 돈을 가지고 온 만큼 쓰지 않겠나”라고 했다.

또 “제주어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말하는 데 가게 간판들부터 제주어로 바꾸면 좋겠다. 제주말 중에 멘도롱 같은 예쁜 말도 많지 않나. 그런 장점을 살려 제주어로 간판을 걸어 특별자치도의 특색을 살렸으면 한다”고 제언했다. 

가장 좋아하는 제주의 장소를 물으니 “나는 지금도 오름이나 산담, 밭담같은 돌담을 좋아한다. 마치 어머니의 가슴 같은 구멍 숭숭 뚫린 그 돌로 쌓인 담들은 볼수록 아름답다”며 “돌담을 따라 오소록(아늑하고 포근한)하게 난 길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고 배우는 막내동생이 결혼할 때 양쪽의 검은 돌담 사이 난 길을 따라 하얀 드레스를 입고 걸어가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그는 “우리 막내동생이 서귀포에 시집갈 때 돌담이 양쪽으로 놓여있는 길을 따라 하얀 드레스를 입고 걸어가는 장면이 너무 예뻐 잊을 수 없다”라면서 “지금은 그 돌담들이 어디로 가버린 건지 모르겠다. 참 안타까운 모습”이라고 했다.

스크린 속 고두심의 열연에 눈을 떼지 못한 제주해녀들. 배우 고두심도 제주해녀들의 만남에 깊은 울림을 간직한 듯 했다. 해녀들은 자신들의 삶을 연기로 풀어준 배우에게, 배우는 인생에 후회없을 해녀 배역의 기회에 고마움을 감추지 못했다. 해녀들도, 국민배우 고두심도 이날만큼은 '후회 없는 날'일 테다. 고향 제주에서의 뜻깊은 만남이어서 더욱 그럴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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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시사회에서 제주 해녀들은 꽃다발을 준비해 고 배우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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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장면. 영화를 본 해녀들은 웃음과 눈물을 흘리며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제주의소리
영화 '빛나는 순간' 포스터. 사진=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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